수월관음도/통도사 박물관

2009. 6. 10. 17:48일반/생활일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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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통 받는 사람은 모두 내게 오시오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특별전(2009.4.30-6.7:통도사성보박물관)

 

    <수월관음도>, 고려 1310년, 견본채색, 430cm×254cm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

-통도사 가는 길-

 

5월 29일 금요일 새벽 2시 20분.

알람이 울렸다. 알람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일어나 목욕을 시작했다.

두 시간 남짓 잤을 뿐인데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오랜만에 아주 곤한 잠을 잔 듯 의외로 정신이 맑았다.

큰 일이 닥치면, 잠자는 것이나 먹는 것 등 평소 내 삶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것처럼 느껴지던 일과가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침 6시에 알람이 울릴 때면 5분만 더 누워 있고 싶어 뭉기적거리던 어제까지의 나는 완전히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목적을 위해 계획된 대로 움직이는 전혀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럴 때의 나는 지금까지 정해진 습관대로 살지 않으면 큰 일 날것처럼 엄살 피우는 그런 내가 아니라, 내 생각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을 가진 전혀 다른 파장대에 진입해 있는 사람 같다.

 

이런 비슷한 경험은, 몇 달 동안 끌어오던 책 한 권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자주 느낀다.

이를테면 새벽부터 일어나 쓰기 시작한 글이 오후를 지나 밤이 되고 다시 새벽이 올 때까지 앉아서 작업할 때 아무리 몸이 고되고 뻐근해도 감히 서슬 푸른 정신 앞에서는 쉬고 싶다는 내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 권의 책이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면 그동안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숨죽여 있던 몸의 피로가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 몇 날 몇 일을 쓰러져 누워 있게 되지만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나는 몸의 지배에서 자유롭다. 특별한 날에는 그렇다.

 

                                                         통도사 극락암에서

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통도사에 수월관음도를 친견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600여년 전에 일본에 건너간 수월관음도를 통도사에서 전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그 작품을 오늘 친견하게 되었으니 잠이 온다면 그게 더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정성 들여 머리를 감고 목욕을 끝낸 후 곱게 다려놓은 모시옷을 꺼내 입었다.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가방을 챙기고 카메라를 준비하는 나의 마음은 설레임과 담담함과 비통함이 뒤섞여 있었다.

처음 통도사 전시회를 보러 가리라 생각할 때만 해도 내 마음속에 비통함이나 슬픔이 함께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수시로 발생한다.

나의 기대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속수무책으로 발생한다.

통도사에서 전시가 시작되면 그 곳에 꼭 함께 가자던 사람과의 약속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듯 항상 우리 곁에서 우산이 되어 주고 길을 안내해주리라 생각했던 사람도 갑자기 생을 달리하는 것이 인생이다.

 

 

                                통도사 가는 길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장일이다.

내가 불평을 하든 짜증을 내든 언제든 그 자리에서 묵묵히 미소 지으며 다 받아줄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을 때의 당혹감이 내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나의 말이 칼날이 되어 그의 가슴에 피 흘리게 하는 지도 모르고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되어 나를 뼈아프게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별 의미 없이 던진 나의 비난이 누군가를 죽음에까지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무섭고 두렵다. 무책임하게 누군가를 욕한 뒤 가해자인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살고 있을 때 그 누군가는 고독한 시간을 혼자 견디다 생을 마감해야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아프다.

 

이런 마음으로 통도사에 가는 길은 그러니까 내게는 단순히 아름다운 예술품을 감상한다는 차원을 넘어 때 묻은 마음을 맑게 하고 비통하게 떠난 분의 명복을 빌기 위한 길이다. 눈을 뜨자마자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빳빳하게 달여 놓은 모시옷을 입은 것도 제의에 참가한 사람의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준비를 다 끝낸 시간이 3시. 20분쯤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서울에서 출발한 일행이 곧 집 앞에 도착한다는 문자가 왔다. 박사과정 동기인 조선생 내외가 운전하는 카니발 차를 타고 용인을 출발해서 5시간을 달린 후 통도사에 도착했다. 중간 금강휴게소에서 합류한 제자와 대구에서 출발한 김선생과 절 입구 식당에서 함께 아침을 먹고 나니 8시 반이었다.

 

                               영축총림 통도사 일주문

 

우리 일행은 매표소에서부터‘영축총림(靈鷲叢林)’이라 적힌 일주문까지 소나무숲길을 걸어 들어 갔다.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두꺼운 껍질을 한 노송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모습은 흡사 수십 마리의 용이 땅 속에서 솟아올라 하늘로 승천하려는 것 같았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눈보라가 치면 맨몸으로 추위를 견디면서 노송들은 속 깊은 곳 나이테 속에 살아온 세월을 간직하며 의연하게 서 있었다. 솔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 동안 마음속 깊이 드리우고 있던 어둠이 걷히는 듯 했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산사에 가면 대웅전 앞까지 차를 타고 가는 대신 절 입구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통 받는 사람은 모두 내게 오시오-

드디어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도착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은 한국최초의 불교박물관으로 1987년에 개관했다. 전 통도사 방장이신 노천 월하스님의 교시와 후원으로 건립된 박물관은 10년 전에 현재 위치한 신관으로 옮긴 후 최신 첨단시설과 전시실로 한국 불교박물관의 선두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동안 불사리장엄전, 티베트 특별전, 감로탱 특별전 등 불교미술과 관련된 특별전을 연속적으로 개최해왔으며 계속되는 문화강좌로 불교미술의 산 교육장이 되었다. 또한 통도사박물관에서는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전국 사찰의 괘불탱을 봄, 가을에 개최해왔는데 이번에는 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전으로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의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전시하게 된 것이다.

 

 

                                              통도사성보박물관

 

밖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떨리는 마음으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대형 괘불을 전시할 수 있도록 1,2층을 터서 만든 공간에 수월관음도가 걸려 있었다! 그동안 화보집에서만 봤던 작품을 이제야 비로소 실물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 그 사람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듣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실물을 보니 예상외로 크고 화려했다. 고려 불화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려불화는 세계적으로 ‘종교예술의 백미’로 인정받고 있다. 고려 불화의 종류는 관경변상도, 미륵하생경변상도, 아미타여래도,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 사경변상도 및 나한도 등이 있는데 현재 전하는 작품은 160여점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수월관음도는 약 40여 점으로 전체 고려불화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華嚴經)』「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동자가 보살의 가르침대로 행하기 위해 53선지식을 찾아가서 보살도(菩薩道)를 배우는 내용을 근거로 제작되었다. 그 중 선재동자가 28번째로 찾아간 선지식이 보타락가산의 관세음보살이다.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은 인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관세음보살은 이 곳에 머물면서 중생을 제도한다고 전해진다. ‘수월관음’이라는 뜻은 달이 높이 떠올라서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보살이 물가의 벼랑 위에 앉아서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가미진자 수월관음도는 대부분의 고려 불화들이 규모가 작은 것에 비해 가로 254cm에 세로 430cm로 한·중·일 세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화려하다. 에도시대(江戶時代)의 기록을 보면 270cm에 500cm 였다고 되어 있어 현재 네 변이 조금 잘린 채 장황된 상태를 감안하면 원화는 더 크고 장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은 관음보살이 화려하게 장식된 바위 위에 반가부좌한 자세로 부들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그 뒤로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서 있고 앞쪽 정병에는 버들가지가 꽂혀 있다. 관음보살은 일반적인 수월관음도와 반대로 화면 왼쪽을 향해 앉아 있어서 선재동자도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서구방, <수월관음도>, 1323년, 견본채색, 165.5cm×101.5cm, 일본 개인장

     :대부분의 수월관음도가 화면 오른쪽에 관세음보살이 앉아 있고 왼쪽 하단에 선재동자가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  는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을 친견한 우리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부 관세음보살님께 삼배를 올렸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종교를 떠나 사람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상과 종교와 이념으로 물들기 이전의 인간 본연의 순수한 세계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순간 인간은 평소 자기 자신조차도 잊고 살았던 지고지순한 성스러움과 만나게 된다. 순수함이야말로 성스럽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미소가 성스러운 것도 순수하기 때문이다.

 

종교미술의 아름다움은 성스러움에 있다. 성스러움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든다. 돈과 재주와 시간을 생각하는 인간의 계산을 훌쩍 뛰어넘어 오로지 성스러운 존재에게 바치는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다짐으로 붓을 들 때 화공의 손은 상상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고려시대 화공의 작품이 6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의 내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인간 존재의 한계를 간단없이 뛰어넘은 성스러움에 있다.

 

화려한 기암괴석과 신비로운 산호초가 어울려 신비롭기 그지없는 보타락가산의 동굴을 배경으로 관세음보살님이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 선재동자와 함께 앉아 있는 내게 법을 전하고 있다. 머리에는 아미타불의 화불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가슴과 팔에는 영락장식을 한 관세음보살의 피부는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사라(紗羅)가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귀갑문 바탕에 연꽃무늬를 그린 붉은색 천의자락의 문양의 생생함과 정교함은 화공이 붓질할 때 어느 한 곳도 소홀함이 없었음을 말해준다.

 

                                  선재동자

이 작품은 1310년 5월에 충선왕의 후궁인 김씨의 발원에 의해 8명의 화원이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겸재 정선의 작품을 감상할 때도 느낀 점이지만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천재성이 아니라 성실함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고 연습하는 가운데 천재는 만들어진다.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이다. 중생의 고통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 가서 그 고통을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는 분이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한 번에 한 사람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천 명의 중생을 동시에 살피고 어루만져주기 위해 천 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가졌다. 그래서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이다. 물론 여기서 천 개란 단순히 천 개라는 뜻이 아니라 많다는 의미다. 그러니 무한 중생을 보살핀다는 뜻이다.

 

이런 거대한 마음을 가진 분을 그리는데 화공이 어찌 평범한 생각으로 붓을 들 수 있었겠는가. 그는 아마도 이 작품이 완성되는 동안 새벽이면 일어나 찬물에 목욕재계하고 붓질 한 번에 절 한 번 하는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고심했을 것이다.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고자 하는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이 간절했다면 그 자비스런 마음을 제대로 전달해주기 위한 화공의 마음도 관세음보살의 마음 못지 않게 간절했을 것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의 마음은 곧 화공의 마음이다.

 

오늘 이 자비스런 관세음보살의 마음과 화공의 정성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수월관음도 포스터를 몇 개 사고 박물관을 나왔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나는, 어쩌면 금생에는 다시 보지 못할 가가미진자의 수월관음을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했다. 지금 고통받고 있거나 고통 받다 돌아가신 분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2009년 5월 29일 무진당)

 

                          통도사 극락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