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스님(1876~1951)

2009. 7. 11. 21:5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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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암스님 - 아름다운 좌탈입망상

 벽에 쳐져있는 담요는 군인들이 문짝을 태워서 문에 담요를 두른 것.                   


한암스님(1876~1951)

1925년 봉은사 조실로 계실 때 조선총독부에서 협조를 요청하자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익히지 않겠노라"

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 상원사에 은둔, 입적하실 때까지 27년간을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6.25 전쟁이 나자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떠났으나 한암은 그대로 상원사에 남았다.

이어 1.4후퇴 때에 국군이 월정사와 상원사가 적의 소굴이 된다 하여 모두 불태우려고 했다.

월정사를 불태우고 상원사에 올라온 군인들이 상원사 법당을 불태우려고 했다.

한암스님은 잠깐 기다리라 이르고 방에 들어가 가사와 장삼을 수(受)하고 법당에 들어가

정좌한 뒤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당신이 군인의 본분에 따라 명령에 복종하듯이

절을 지키는 것도 나의 도리이다.

중이 죽으면 어차피 화장을 해야 하는 것,

이제 불을 지르시오." 했다.

스님의 법력에 감복한 장교는 법당의 문짝만을 뜯어내 불을 지르고 떠났다.


입적하기 15일 전부터

사바세계의 연(緣)이 다함을 알고 물외에는 먹지 않았다.

1951년 3월 21일 아침, 스님은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시고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이 음력으로 2월 14일이지" 하고는

가사와 장삼을 찾아서 입고 단정히 앉아 입적했다. (세수 75세, 법랍 54세)

(출처:조연현기자 cho@hani.co.krⓒ한겨레(http://www.hani.co.kr)



* 경허-한암 : 스승과 제자의 이별시 

              

                  초대종정 한암스님                                                


21살 때 금강산에서 출가한 한암은 대도인 경허 선사의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

헤맨 끝에 23살 때 경북 금릉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를 친견한다.

경허는“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는〈금강경〉한 구절로 아직 외형만을

향하던 청년 한암의 심안을 열어주었다.


경허는 바람이었다. 한곳에 머무는 법이 없었다. 경허는 누구에게도 집착하는 법이 없었다.

말년에 홀연히 함경도 삼수갑산에 머리를 기르고 숨어든 그를 애제자 수월이 찾아왔을

때도 방문을 열지 않은 채“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는 말 한마디로 돌려보낸 경허다.

그런 경허가 한암에게만 예외적인 모습을 보였다.

수도암과 해인사에서 1년을 함께한 뒤 경허는 한암과 헤어짐을 너무나 아쉬워했다.

 


경허 화상이 한암스님에게 준 전별사 


  “나는 천성이 인간 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삽살개 뒷다리처럼 너절하게 4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우연히 해인정사에서 한암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성행(性行)은 순직하고 학문이 고명하여 1년을 같이 지내는 동안에도 평생에 처음

만난 사람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오늘 서로 이별을 하는 마당을 당하게 되니 조모(朝暮)

의 연운(煙雲)과 산해(山海)의 원근(遠近)이 진실로 영송(迎送)하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다.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즉,

이별의 섭섭한 마음이야 더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


옛사람이 말하기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진실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랴’고 하지 않았는가.


과연 한암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 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이 되랴.

그러므로 여기 시 한 수를 지어서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북해에 높이 뜬 붕새 같은 포부                捲將窮髮垂天翼

변변치 않은 데서 몇 해나 묻혔던가.           向槍楡且幾時

이별은 예사라서 어려운 게 아니지만           分離尙矣非難事

부생(浮生)이 흩어지면 또 볼 기회 있으랴.     所慮浮生杳後期


한암스님은 이와 같은 경허 화상의 전별사(餞別辭)를 받아 보고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로

답을 하고 이별을 아쉬워했을 뿐 경허화상을 좇지는 않았다.


서리 국화 설중매는 겨우 지나갔는데             霜菊雪梅  過了

어찌하여 오랫동안 모실 수가 없을까요.          如何承侍不多時

만고에 변치 않고 늘 비치는 마음의 달,          萬古光明心月在

쓸떼없는 세상에서 뒷날을 기약해 무엇하리.      更何浮世謾留期  

 

 

 (출처: 한암 일발록 )

 

 

살아 간다는 것은


삶1
산다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작은 생의 아픔 속에도 아름다움은 살아 있습니다.
삶이란 그 무언가의 기다림 속에서 오는... 음악같은 행복 !
삶의 자세는 실내악을 듣는.... 관객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삶 2

시간을 낭비하는 삶은 위험한 생존법입니다.
시간 속에는 삶의 지혜가 무진장 잠겨 있는 것입니다.
성장할 수 있는 삶은.... 노력함 속에 잉태합니다.
삶의 가치는... 최선 속에 있는 영원한 진리인 것입니다.



삶 3
사람은 강하고 높아질수록 낮음을 배워야 합니다.
강자가 된 사람은 쉽게 자신을 망각하게 됩니다.
강한 사람일수록 적을 많이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강자란.....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삶 4
사람은 고난이 깊을수록 철학을 깊이 깨우칩니다.
시행착오 속에서 더욱 삶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고난 깊은 사람은 결코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습니다.



삶 5
부자와 가난은 한 겹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가난한 자는 부자를 통하여 의지를 갖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합니다.
부자란 자신을 잘 지킴 속에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삶 6
인생을 살아 가는 일은 전쟁입니다.
그러나 삶을 위해 투쟁하는 행복한 싸움입니다
산다는 것은 의문이오. 답변을 듣는 것.
승자되는 삶이란.... 그냥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삶 7
강자일수록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강자의 그늘 속엔 언제나 약자가 칼을 갑니다.
강자의 정면 속에 또다른 강자가 도전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강할 수 있는 지혜를 깨닫습니다.



삶 8
고난이 깊은 사람일수록 인생의 참맛을 압니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비우는 일입니다.
완전한 것은 이 세상에서는 없는 것.
노력함 속에 중요한 삶의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