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을 지니고 사는 방법 ◈

2009. 9. 9. 21: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728x90

◈ 복을 지니고 사는 방법 ◈     

1.
가슴에 기쁨을 가득 담아라.
담은 것만이 내것이 된다.

2.
좋은 아침이 좋은 하루를 만든다.
하루를 멋지게 시작하라.

3.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라.
웃음꽃에는 천만불의 가치가 있다.

4.
남이 잘되도록 도와줘라.
남이 잘되어야 내가 잘된다.

5.
자신을 사랑하라.
행운의 여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6.
세상을 향해 축복하라.
세상은 나를 향해 축복해 준다.

7.
기도하라.
기도는 소망성취의 열쇠다.

8.
힘들다고 고민말라.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이들게 마련이다.

9.
준비하고 살아가라.
준비가 안되면 들어온 떡도 못먹는다.

10.
그림자를 보지말라.
몸을 돌려 태양을 바라보라.


11.
남을 기쁘게 하라.
10배의 기쁨이 나에게 돌아온다.

12.
끊임없이 베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게 마련이다.

13.
안될 이유가 있으면 될 이유도 있다.
될 이유만 말하라.

14.
약속은 꼭 지켜라.
사람이 못 믿는 사람 하늘도 못 믿는다.

15.
불평을 하지말라.
불평은 자기를 파괴하는 자살폭탄이다.

16.
어디서나 당당하라.
기가 살아야 운도 산다.

17.
기쁘게 손해를 보라.
손해가 손해만은 아니다.

18.
요행을 바라지 말라.
대박을 노리다가 쪽박을 차게된다.

19.
밝고 힘찬 노래만 불러라.
그것이 성공 행진곡이다.

20.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
그 노래는 복나가는 노래다.


21.
푸른 꿈을 잃지 말라.
푸른 꿈은 행운의 청사진이다.

22.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감사하면 감사 할 일이 생겨난다.

23.
남의 잘함만을 보고 박수를 쳐라.
그래야 복을 받는다.

24.
좋은 말만 사용하라.
좋은 말은 자신을 위한 기도다.

25.
희망의 꽃을 피워라.
희망의 꽃만이 희망의 열매를 맺는다.

 

Freddie Aguila의 * Anak *

 

50대 연령층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시작되는 외국 곡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1970년대 어느 날 TV에 등장한 낯선 외국가수. 통기타에 긴 머리.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노래를 시작한
그의 이름은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길라. 그 노래의 제목은 ‘아낙(Anak.아들)’이었다.

‘아낙’ 이 한 노래로 단숨에 아시아의 별로 등극했던 프레디 아길라.
그의 노래, 아낙은 세계 28개국에서 번안되며 당당히 8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자식이라는 뜻의 아낙(Anak)은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감정적인 갈등을 그린 노래다.
 KBS 수요기획팀은 (2007년 6월) 20일 ‘프레디 아길라, 그를 기억 하십니까’를 통해

70년대 세계를 사로잡았던 슈퍼 스타 프레디 아길라를 만나 노래처럼 감동적인 그의 삶을 만나봤다. 

80년대 초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 등 팝의 황제들과 함께

당당히 빌보드 싱글 챠트 5위 기록을 남긴 프레디 아길라가
지금 살아가는 곳은 마닐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빈민가다.


그는 그곳에서 한 칸의 교실에서 이 지역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유일한 공부방 아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필 한 자루까지 공연을 통한 수익금으로 채운다.

그가 가장 큰 성공을 누렸을 당시,  필리핀은 마르크스 독재에 신음했던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때 프레디 아길라와 필리핀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마르크스 독재를 피해 망명 중이던 니노이 아키노가 필리핀으로 돌아오던 중 공항에서 암살된 것.
분노한 민중은 거리로 나섰고, 독재에 항거했다. 프레디 아길라는 그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의 숨결로 노래를 했다.

그때부터 그는 필리핀 민중의 삶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다.
자유를 외치는 곳,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곳에 항상 그가 있었다.
이제 그는 단지 가수가 아니라 사랑과 존경이 담긴 전설이 되었다.
항쟁의 시기는 끝났지만 프레디 아길라의 노래는 여전히 필리핀 사회를 보듬고 있다.
그는 여전히 술집여자, 해외 이주노동자, 감옥에 갇힌 이들의 아픈 삶을 노래하고 어루만진다.
58살,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감동의 순간을 KBS 수요기획팀은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Freddie Aguila의 * Anak *

 

 Nu'ng isilang ka sa mundong ito
Laking tuwa ng magulang mo
At ang kamay nila, ang iyong ilaw

At ang nanay at tatay mo'y
'Di malaman ang gagawin
Minamasdan pati pagtulog mo.

At sa gabi'y napupuyat ang iyong nanay
Sa pagtimpla ng gatas mo
At sa umaga nama'y kalong ka ng iyong amang
Tuwang-tuwa sa iyo.

Ngayon ng malaki ka na
Nais mo'y maging Malaya
'Di man sila payag walang magagawa

Ikaw nga ay biglang nagbago
Naging matigas ang iyong ulo
At ang payo nila'y sinuway mo.

Di mo man lang inisip na
Ang kanilang ginagawa'y para sa iyo
Pagkat ang nais mo'y masunod ang layaw mo
'Di mo sila pinapansin.

Nagdaan pa ang mga araw
At ang landas mo'y naligaw
Ikaw ay nalulong sa masamang bisyo

At ang una mong nilapitan
Ang iyong inang lumuluha
At ang tanong "Anak, ba't ka nagkaganyan?"

At ang iyong mga mata'y
Biglang lumuha di mo napapansin
Pagsisisi at sa isip 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Pagsisisi at sa isip 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Pagsisisi at sa isip 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아낙(아들)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네가 태어난 그날 밤

우린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천사 같은 모습을

우린 언제나 지켜보았지

 

밤새 엄마는 너에게

우유를 따뜻이 데워 주셨지

낮엔 언제나 아빠가

네 곁을 감싸며 지켜주었지

 

너는 크면서 언제나 말했지

이제는 자유를 달라고

진정한 의미도 모르며 졸랐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변해가는 너의 모습에

우린 너무나 가슴아파했지

 

엄마아빠의 사랑을 버리고

넌 그만 떠나버렸지

엄마아빠의 마음에 아픔을 남기고

넌 그만 떠나 버렸지

 

지금 네가 가는 그 길은 거칠고 험한 길이지

갈수록 험하고 나쁜 길이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너도 이제는 후회하겠지

엄마는 언제나 울고만 계신다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 눈에 고여 있겠지

너도 이제는 후회의 눈물이

두 눈에 고여 있겠지

 

 

1. 필리핀의 국민가수, 필리핀의 ‘조용필’


필리핀 마닐라의 한 작은 클럽, 매일 밤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는 그곳에 프레디 아길라, 그가 있었다.
무명시절 인연을 맺은 후 30여년 동안 꾸준히 지켜왔던 그의 작은 무대.
이곳에서도 신청곡 1위는 아낙. 여전히 필리핀에서는 하루 몇 번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프레디 아길라가 음악활동을 펼쳤던 곳에는 그의 동상이 서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를 친애하는 캅(Captain)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그는 여전히 필리핀의 국민가수, 필리핀의 ‘조용필’이었다.

2. 아낙(아들), 그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노래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자식이라는 뜻의 아낙(Anak)은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감정적인 갈등을 그린 노래다.
프레디에겐 세계적인 성공을 가져다 준 노래.

그러나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는 죄인이 된다. 가수의 꿈을 반대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17살에 가출해 클럽을 전전했던 프레디.
어느 날 문득 밀려오는 향수병과 외로움에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들었던 노래가 바로 아낙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프레디가 세계적인 가수로 성공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이미 부모가 되어 아낙(아들)을 낳고, 다시 아낙의 아낙을 본 프레디 아길라는
그래서 더 깊은 회한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3. 빈민가 아이들의 아버지, 그의 집 마당에서 졸업식이 열리고

 

80년대 초 라이오넬 리치/마이클잭슨 등 팝의 황제들과 함께 당당히 빌보드챠트 5위라는 기록을 남긴 프레디 아길라.
그러나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가 살아가는 곳은 마닐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빈민가다.
때 마침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앞마당에는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아이들의 졸업 식 모습. 집 한구석에 마련된 교실 한 칸, 운동장으로 쓰는 집 앞마당...
협소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이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유일한 공부방. 아낙학교의 졸업식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필 한 자루까지 공연을 통한 수익금으로 채운다.

4. 마르크스 독재에 항거하던 시위의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그가 가장 큰 성공을 누렸을 당시, 필리핀은 마르크스 독재에 신음했던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때 프레디 아길라와 필리핀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마르크스 독재를 피해 망명중이던 니노이 아키노가 필리핀으로 돌아오던 중 공항에서 암살된 것.
분노한 민중은 거리로 나섰고, 독재에 항거했다.
프레디 아길라는 그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의 숨결로 노래를 했다.
그때부터 그는 필리핀 민중의 삶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다. 자유를 외치는 곳,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곳에 항상 그가 있었다.
이제 그는 단지 가수가 아니라 사랑과 존경이 담긴 전설이 되었다.

5. 58살 그는 여전히 현역이고 수퍼스타다.

거센 항쟁의 시기가 물러갔지만, 프레디 아길라의 노래는 여전히 필리핀 사회를 보듬고 있다.
그는 여전히 술집여자, 해외 이주노동자, 감옥에 갇힌 이들의 아픈 삶을 노래하고 어루만진다.
58살,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항상 열려 있는 프레디의 집안 대문 너머로는 오늘도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맑게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