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유마, 대원 장경호 거사를 만난다
1백여만부에 이르는 불교서적 출간, 50여 곳의 군 법당 건립, 불교방송 설립 지원, 최초의 불교 교양대학 설립, 대한불교진흥원 설립…. 우리 불교사에 남겨진 이 같은 발자국들은 하나같이 동국제강 그룹 창업주인 故 장경호 회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장 회장 입적 30주기를 맞아 그의 일생과 수행 과정을 담은 평전 <이 땅의 유마, 대원 장경호 거사>가 출간됐다. 평생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에 매진하고, 이 땅에 불국토(佛國土)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한국 재가불교 운동의 사표로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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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제강 창업주이자 우리나라 재가불교 운동의 한 획을 그은 대원 장경호 거사 평전이 나왔다. | |
1899년 부산에서 태어난 장경호 회장은 17세 되던 해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됐다. 이후 3ㆍ1운동에 참여한 뒤 일경에 쫓겨 일본으로 건너간 장 회장은 그곳에서 종교서적을 탐독하며 ‘불교’를 다시 만난다. ‘부처님 말씀대로 살면 사람 노릇 하겠구나’라는 결심으로 고국에 돌아 온 그는 통도사 구하 스님에게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라는 평생의 화두를 받았다.
27살에 처음으로 통도사에서 안거를 난 후 “상업에 종사해 크게 돈을 벌어 불교에 바치겠다”고 맹세한 그는 1929년 첫 사업체인 대궁양행을 설립한다. 이후 점심 한 끼 사 먹지 않고,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 쓴 장 회장의 노력한 덕분에 이 사업체는 오늘의 동국제강으로 거듭났다.
그는 사업가로서 뿐만 아니라 재가 수행자로서도 뒤지지 않는 구도열을 내뿜었다. 만공 한암 스님을 찾아 깨달음의 길을 구했고, 평생 정월 초하루 불공을 빠뜨리지 않았다.
특히 ‘나이 육십이 되면 사업에서 물러나 수행에 전념하겠다’던 결심을 잊지 않고 62살이 되던 1960년부터 10여 년간 부산 금정산 무위암에서 안거를 지낸 일은 깨달음에 대한 그의 신념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대중 포교에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문서포교를 위해 불서보급사를 설립하고 불교서적을 펴냈으며,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대원정사를 건립해 도심포교의 거점으로 삼고 불교계 최초의 불교 전문교양대학과 시민선방을 개원했다.
갑작스런 췌장암 선고에도 그는 목숨을 부지할 생각보다 포교를 고민했다. 그가 ‘불교 중흥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과 함께 남긴 사재 30억원은 대한불교진흥원 건립의 초석이 돼 포교 현장에 두루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철학으로 동국제강을 세계적인 기업체로 발돋움하게 하고, 대중포교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장 회장. 평전을 통해 장 회장의 부처님 법을 따르겠다는 굳은 신념과 초심을 잃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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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유마, 대원 장경호 거사>(대원장경호거사평전간행위원회 엮음, 대원사, 1만원)
대원 장경호거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이 편지를 받고 박정희 前 대통령은 故 장경호 거사의 간절한 염원을 새기기 위해
불교계, 정부, 국회의 대표가 중심이 된 (재)대한불교진흥원을 설립토록 했다.
(재)대한불교진흥원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이 했습니다.
진흥원은 군 포교와 불교방송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불자가 이런 큰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박정희 前 대통령에게 보낸 정재헌납 편지 전문>
존경하옵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에게 삼가 이 글월을 올립니다.
격동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국가발전과 민족의 안녕 및 중흥을 위하여 힘쓰고 계신 대통령 각하께 충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더욱이 북한 공산도당들이 또다시 민족적 비극인 대살육의 망상을 꿈꾸고 있는 이 마당에 국가위난을 국민총화와 총력안보로 극복하시려는 영도자로서의 각하의 의연한 결의와 자세는 정말로 든든하옵고, 이를 위해 불철주야 골몰하시는 각하의 모습이 눈에 선하오며, 그 노고에 새삼 감사와 송구함을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마는, 각하의 확고한 신념과 오랜 인고의 보람으로,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근면ㆍ자조ㆍ협동하는 새마을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고,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며 국가를 반석 위에 세우려는 유신과업의 수행대열에 국민 모두가 흔쾌히 참여하고 있음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올해 77세의 고령인 동국제강의 창업자 장경호입니다.
이제 멀지 않아 이 생을 마칠 것을 내다보고, 인생무상의 대도 앞에, 조용히 그리고 엄숙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며, '영원한 진정'을 각하에게 말씀드리게 된 것을 한량없는 영광과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본인 장경호는, 평소 소박한 생활신조로서 남자로 태어난 것과,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과, 불교를 신봉하게 된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항상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비산업이 아닌 국가의 기간산업을 일으켜 산업보국하려는 데 뜻을 두고 시작한 제강공업이 조그마한 업적으로나마 남기게 되었다면, 그것은 국가ㆍ사회의 은혜에 힘입은 바 큰 것이며,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 소불자는 평생을 통해서 오직 근면과 검약으로 일관해서 기업을 키워 나왔사오며, 그 결과 본인에게 돌아오는 얼마간의 사유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 재산은 저에게는 필생의 피와 땀의 대가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국가와 사회 그리고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제가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한 결과, 본인 명의의모든 사유재산을 낙후한 한국불교의 중흥사업을 위해 내어놓기로 하였습니다.
각하께서는 저의 뜻을 받아 주시옵고, 국가의 도움 없이는 종교가 존립ㆍ발전할 수 없는 만큼, 불교중흥을 위하여 대통령 각하의 가별하신 하념이 계시옵기 바랍니다.
본 소불자가 이토록 불교중흥을 염원하게 된 것은 그 어떤 정의나 사상보다도 불타의 정신이 건전하며, 인간의 행복과 사회윤리를 진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지키는데 불교가 큰 몫을 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 일천육백여 년 동안, 신라통일의 원동력으로서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였고, 고려 때에는 국가총화정신의 뿌리를 이루었으며, 숭유억불의 이조 때에도 국가누란의 위기를 막기 위해 임진왜란에서 호국종교로서의 진수를 발휘하였고, 일제 탄압 밑에서도 민족주체정신을 지켜온 전통이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삼계의 대도사시고, 사생의 자부이신 석가모니불께서는 미망에서 방황하는 인류에게 절대적 자아의 발견으로 인간완성과 세계평화의 밝은 길을 교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세계는 전쟁의 참화와 불안, 공포에 떨고 있고, 인간성은 점점 상실되어 정신적 갈등 속에 온갖 불순한 사상으로 사회혼란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세계적 위기현상과 부단히 변화하는 내외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하께서는 조국근대화 작업을 전개하며, 한편으로는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또 한편으로는 국민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족적 자각을 통한 국민총화를 이룩하는데 힘쓰고 계십니다.
이러한 때에 어느 종교보다도 우리 민족의 정기와 전통문화에 큰 몫을 한 불교가 오늘날 인간의 정신향도에 무기력해진데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사오며, 이 기회에 다시금 새로운 생기를 한국불교에 불어넣어야할 줄 믿습니다.
참된 종교는 인간의 생각을 가장 건전하게 이끌고, 올바른 생활을 통하여 행복을 누리게 하며, 나아가 사회윤리 진작과 국가발전으로 승화시키는데 그 존재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이제 우리 불교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어려운 국가적 현실을 직시하고, 구력(救力)의 정법이념을 드높이 내걸고, 국민의 정신생활에 지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오늘의 한국불교는 자각과 반성으로 일대개혁의 시점에 다다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산사 중심의 의식과 기복에 치우친 소극적ㆍ관념적ㆍ무사안일주의에서 벗어나 번뇌와 정신적 갈등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야 하며 고질적 병폐인 교리를 빙자한 분열과 분파로 배타, 비난하는 퇴영적 종파불교의 폐습을 불식하고 통불교 이념으로 사부대중은 본질적 평등 속에 화합단결해야 할 줄 압니다.
이렇게 하여 불교가 바로 설 때 국민정신이 올바로 설 것이며 불광이 온 누리에 비칠 때, 이 땅 이 민족이 국태민안 속에 번영ㆍ발전하고, 나아가 전세계는 자유와 평화가 이룩될 것으로 믿습니다.
대통령 각하, 세상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은 많을 줄 압니다.
그 좋은 일이란, 자기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중생을 위하는 길이며, 불교가 인간정신을 선도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국가민족을 수호,발전시키는 데 중요하다고 확신하게 된 본인은 오직 불교중흥이라는 일념만으로 저의 조그마한 사재를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역대의 어느 국가지도자보다도 불교에 대한 참된 이해와 성원이 계시는 박대통령 각하께서는 저의 이 미충(微衷)을 굽어 살펴주시옵고, 이것을 중흥불사를 위한 한 전기로 삼으셔서 역사적인 불교발전을 위해 큰 배려를 베풀어 주시옵기를 다시금 간절히 원합니다.
끝으로 대통령 각하께서 국가를 영도하시는데 부처님의 가호가 항상 함께 하셔서, 밝은 지혜와 큰 능력 속에 만수무강하시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1975년 7월 10일
장경호 합장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