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님들은 고행을 택하는가/송강스님

2009. 9. 29. 23:5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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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스님 ] 왜 스님들은 고행을 택하는가
 
 

문 : 왜 스님들은 고행을 선택하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살기 좋은 세상을 떠나 출가하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만든 생각 틀 깸이 출가

고행 아닌 새로운 삶을 택한 것

 

답 : 스님들의 출가생활은 고행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평생의 독신생활, 매일 계속하는 독경과 염불, 종일 이어지는 면벽좌선, 며칠씩 자지 않는 용맹정진, 방대한 경론의 평생 연구 등이 평범한 일상과는 멀게 생각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그 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에 처절한 결심을 했던 출가자들이 20년이 지나면 10% 정도만 남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가 행복한 삶을 등지고 고통의 세계로 가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도 그러하셨고 스님들도 행복해지려고 출가한 것입니다. 흔히 고행의 길을 택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고행의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단연 싯다르타의 6년 고행이 으뜸이 될 것입니다. 곡식 몇 알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는가하면 목욕도 삭발도 하지 않는 정좌생활을 6년간 했기에 머리에는 새가 집을 지어 새끼를 길렀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파키스탄의 라호르박물관에는 싯다르타의 고행상이 모셔져 있는데, 핏줄이 덩굴처럼 뼈 위를 지나고 있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습니다. 마주하고 앉아 응시하노라면 그 평화로운 모습에 동화되지만, 정작 부처님께서는 그 고행으로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6년 고행은 정해진 고행의 기간을 완수한 것이 아니라, 싯다르타가 고행이라는 방향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그만 둘 때까지의 기간일 뿐입니다. 당시로서는 다른 이들의 눈에 수행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정이었지요. 그 때문에 같이 고행을 하던 다섯 동료는 싯다르타가 타락했다고 비난하며 곁을 떠나버립니다. 그 이후 기운을 차린 싯다르타는 자리를 옮겨 선정과 관조로 이윽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깨달으신 후 부처님께서는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고행은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인들의 삶도 고행이지요. 모든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은 당신들의 책임을 다하느라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지만, 요즘의 세태로는 자식들의 존경도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또 학자들의 잠을 잊은 연구도 고행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이들이 고행이라고 할 삶을 이어갑니다. 만약 고행만으로 깨닫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보살이 되어 있어야 마땅할 것이고, 아버지들은 도인이 되어 있어야 마땅하며, 학자들도 선지식이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스님들이 선택한 길은 고행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의 삶입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행위를 출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생각의 틀을 깨뜨리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살면 정말로 평생 독신으로 사는 것 등이 고행이 될 것이고,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난행고행(難行苦行)도 봄날의 바람처럼 가벼울 것입니다. 출가의 중요성은 고행에 있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중생 곁으로 가셨듯이, 수행자도 자기 공부의 결과를 사회에 되돌려줘야 하는 것이지요.

 

누구라도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굳어진 생각을 깨 버릴 수 있다면 정신적인 출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정신적 출가는 자신도 남도 자유롭게 합니다. 그리하여 행복한 삶에 이르게 됩니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