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3. 23:3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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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에 관한 저의 의견을 더 보고 싶으신 분들은, 본 카페(화엄경보현행원) 게시판 중
1.지유게시판->공지 사항 밑에서 세번째 '일상 생활에도 수행이 있다. 2.질문과 답변->111, 수행하면 밝아지는가? 59, 수행하지 말라는 말에 의문이.. 3.보현명상언어->'수행'으로 검색하시면 많은 글들이 나옵니다. |
*"수행의 공덕을 구하지 말라"는 글도 있었는데,
어디 있는지 제가 올리고도 못 찾겠네요...*^*^*_()_
*********[추가]***불교신문에서***************
무비스님 ‘신심명’ 출간기념 조계사 강의 |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선물한 꽃 한 송이” ‘사람이 바로 부처님’ 인간불교 사상 역설 법회 시작 30분 전부터 대웅전 가득 차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스님은 지난 17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신심명’ 출간을 기념해 특강을 갖고 불자들의 수행정진을 당부했다.
저서 〈신심명(信心銘)〉에서 “모든 것이 꿈이요 환영이요 헛꽃”이라고 웃어 넘겼던 중국 선종 제3조 승찬스님은 나병(癩病) 환자였다.
신체적 고통보다 끔찍한 ‘문둥이’라는 낙인. 학대와 멸시가 일상화된 한계상황에서 스님은 어떻게 거짓말처럼 초연할 수 있었을까. 조계종 교육원장을 지낸 무비스님이 〈신심명 강의〉(조계종출판사) 출간을 기념해 지난 17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특강을 열었다. 그 동안 숱한 경전해설서를 출간했지만 스님에게 이번 책은 매우 각별하다. 스스로 이야기하길 “승찬스님과 비슷한 처지에서 써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법회는 지난 2003년 12월 허리디스크로 교육원장에서 물러난 후 3년 3개월 만에 펴는 대중법문이었다. 법상에도 오르지 못한 채 맨바닥에 책상을 놓고 강의를 진행하는 모습에서 여전히 진행형인 고통을 읽을 수 있었다. 스님의 병고는 한때 거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다. 오죽하면 자살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수행자의 입에서 “정말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는 고백이 터져 나왔을까.
와병을 접고 근 4년 만에 나선 나들이였기에 스님의 강의에 대한 불자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법회 시작 30분전부터 대웅전은 만원이 됐다. 자필 서명을 받으려 구입한 책을 들이미는 신도들 통에 스님은 한참 동안 지팡이를 놓아야 했다.
스님은 불법의 정수를 선시 형식으로 풀어낸 〈신심명〉의 문헌적 의의로 서두를 열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려할 뿐이다.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는 첫 구절로 유명한 〈신심명〉은 많은 불자들이 즐겨 읽는다. 방황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 안성맞춤인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님은 곧바로 예쁘게 단장한 마음 아래 웅크린 비명과 고름을 끄집어냈다. 화두는 ‘고통’이었다.
“〈신심명〉은 뛰어난 내용 못지않게 승찬이라는 개인이 가진 이력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입니다. 승찬스님은 출가 전 우리가 으레 문둥병이라고 부르는 한센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도인을 만나면 병이 나을까 하는 생각에 선종의 2조인 혜가스님을 찾아갑니다.”
어렵게 혜가스님을 만난 승찬스님은 이렇게 부탁했다. ‘저는 나병을 앓고 있습니다. 과거에 죄가 많아서 그런가 봅니다. 어떻게 참회하면 병이 낫겠습니까.’ 그러자 혜가스님이 답했다. ‘그대가 죄가 많아서 그런 병을 앓고 있다고 하니, 그 죄를 나에게 보인다면 그 죄를 내가 참회시켜주겠다.’
이 장면은 혜가스님이 스승인 초조 달마대사를 찾아갔을 때 주고받던 문답과 비슷하다. 혜가스님도 달마스님 앞에서 스스로 팔을 잘라가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을 구했으나 달마스님은 ‘불안한 네 마음을 가져오라’고 응수했을 뿐이다.
혜가스님 역시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지 못했듯이 승찬스님 또한 죄를 내보이지 못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승찬스님이 ‘죄의 실체가 없다’고 말하자 혜가스님은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다’고 진단을 내렸다.
‘있지도 않은 것에 괴로워 말라’는 충고다. 천형(天刑)이란 인간이 자의적으로 만든 편견일 뿐이니 현혹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혜가스님의 한 마디에 승찬스님의 육체적 고통과 죄에 대한 강박관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물론 혜가스님의 안심(安心) 법문 뒤에도 계속 손가락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어느 누구의 것이든 육체는 시간이 지나면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다만 승찬스님의 육체가 좀더 빨리 시간과 친해졌을 뿐. “‘모두 꿈이요 환영이요 헛꽃인 것을, 어찌하여 수고로이 붙잡으려 하는가. 이득과 손실과 옳고 그른 것을 일시에 모두 다 놓아버리라’는 신심명 구절은 승찬스님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토양으로 아름답게 핀 꽃 한 송이일 것입니다.”
달마스님이 창시한 조사선의 진정성은 모든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단순히 손에서 수갑을 빼내는 것을 넘어 구속당했다는 마음으로부터의 근본적 해방이다.
아쉽게도 마음을 이기는 뾰족한 수는 없다. 원래 마음의 본성이 늘 어지럽고 헝클어지는 생물과 같기 때문이다. 스님은 〈신심명〉의 핵심적인 구절을 소개하면서 ‘그냥 놔두는 것만이 진리에 이르는 길’임을 강조했다.
“‘깊은 뜻을 알지 못하면 한갓 수고로이 생각만 고요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不識玄旨 徒勞念靜)’…. 깊은 이치를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앉았을 때는 잠깐 조용하다가 금방 흔들려버립니다. 그게 무슨 공부입니까.
불교 공부는 그렇게 마음 가라앉혀서 겨우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런 공부가 아닙니다. 깊은 뜻을 알지 못하면 마음을 고요히 하려고 그저 앉아 있어봐야 내내 그대로입니다. 평생 그렇게 10년, 20년, 30년 앉아 있으면 내내 그 모양일 뿐입니다. 처음 했을 때 망상이 부글부글 끓듯이 30년 60년 해도 망상은 부글부글 끓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본령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렇게 생긴 것을 한 곳에 붙잡아매려고 하니 그게 될 일입니까.”
스님은 그간의 저서에서 인간불교 사상을 일관되게 역설했다. ‘사람이 바로 부처님.’, 잘 나거나 못 나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비장애인이나 장애인 모두가 부처라는 선언이다.
“‘유를 보내면 유에 빠지고 공을 따라가면 공을 등진다(遣有沒有 從空背空)’ …. 우리들이 지나치게 ‘있음(有)’에 걸려 있으니까 불교에서는 있다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空)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유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공이라는 약이 좋지만, 그 약은 마치 맛을 내는 데 필요한 소금과 같아서, 맛을 낸다고 많이 먹으면 결국은 공도 또 하나의 병이 됩니다.
그래서 유도 좇지 말고 공에도 머물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에 빠지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둬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그 나름의 가치로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것을 더 낫다고 추켜세울 것도 없습니다.”
일평생을 경전의 문자와 씨름해 온 대강백이 전하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 이채롭다. 점수(漸修) 이론에 길들여졌다면 ‘본질을 직관하지 않으면 수행도 군더더기이거나 오히려 장애일 따름’이라는 발언이 낯설 수도 있다. 절망에 대처하는 정공법에 도리어 속 시원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중요한 것은 불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증언하는 불의 뜨거움이라는 점이다. 고통은 내가 나임을, 겨우 나임을, 결국 나일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그것이 진실이고 부처라고 일깨운다.
스님이 삶을 지탱하는 좌우명으로 ‘감(堪, 견딤).인(忍, 참음).대(待, 기다림)’를 이야기했던 기억이 마치 불을 만진 듯 귓가에 쟁쟁하다.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312호/ 3월24일자] 2007-03-21 오전 5:09:44 / 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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