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9. 09:56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하늘이 감춘 땅] 재가 불자 선원 악양 기원정사
17년만에 찾은 명당…지리산 등받이로 남녘 ‘툭’
주인도 객도 없이 ‘나를 내려 놓기’ 위해 수행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경남 하동 평사리 들판을 지나 지리산 쪽으로 길을 오르다보면 골짜기 여기저기에서 호롱불 같은 희미한 불빛이 반짝입니다. 수행자들이 홀로 머물며 수행하기 위해 지은 작은 집인 토굴들입니다. 등 뒤로 지리산의 보호를 받으며 섬진강을 바라다보는 명당 터전인 악양은 전국에서 수행자들의 토굴이 가장 많은 곳 중 한 곳입니다. 그만큼 이 일대는 수행자들이 좋아하는 터전입니다.
기원정사는 악양의 지리산 8부 능선쯤에 있습니다. 골마다 절이 있고, 스님들이 있지만 이곳엔 스님이 없습니다. 스님 대신 출가하지 않은 재가 불자들이 참선을 위해 꾸민 재가자 선원이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을 등받이로 한 이곳은 남녘의 너른 들판과 섬진강, 백운산을 한눈에 굽어보고 있습니다. 기원정사는 뒷산의 숫용과 앞산 암룡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빈터로 남아 있던 이 천하의 명당은 출가자의 절도 허용하지 않은 채 여의주를 굴릴 만한 유마거사와 방거사와 부설거사와 같은 재가도인을 기다려온 것일까요.
스물아홉에 남편 잃고 수행길…한 거사는 수억원 내놔
용도 아직 잠을 깨기엔 이를 듯한 칠흑 같은 새벽 3시 기원정사의 수행자들은 밤을 밝혔습니다. 가뿐한 수행복을 입은 재가의 거사와 보살(여성 불자)들이 하나둘씩 법당에 들어와 조용히 좌복에 앉더군요. 그 가운데 대덕행(60)보살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대덕행보살은 척추가 온전치 못한 환자입니다. 몸무게도 43㎏에 불과합니다. 불면 날아갈 듯 몸이 너무나 가벼워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곧추 세운 허리엔 소나무 같은 푸름이 느껴졌습니다. 체력의 한계를 넘어설 만한 그런 심지가 없었다면 아랫마을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이곳에 애당초 기원정사를 짓는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덕행보살은 스물아홉 살에 남편을 보내고 홀로 돼 딸 하나를 키우며, 모진 삶의 안식을 수행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보통의 불자들은 알기 어려운 수행처들을 찾아다니며 오랫동안 수행을 해왔더군요. 그러다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조그만 황토방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무려 17년 동안이나 찾아 다녔답니다. 그러다 찾은 곳이 바로 이 자리였다고 합니다.
기원정사에서 참선중인 수행자들
그런데 5년 전 계룡산 대자암에서 그와 함께 참선하던 도반들이 이 터를 보고 ‘혼자 공부할 터가 아니다’면서 합류했습니다. 그 가운데 태허(59)거사는 수억 원의 사재까지 조건 없이 내놓고선 자신의 몸뚱이마저 머슴이나 불목하니(절에서 밥 짓고 물을 긷는 사람)로 내놓고 도왔습니다. 대덕행보살과 태허거사는 함께 눈물겨운 기도와 정성으로 마침내 재가자들도 누구나 선승처럼 수행할 수 있는 선방을 지어냈습니다.
과부와 유부남이 들어와 도량 짓는다니 마을이 수군수군
이 선방을 짓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절을 짓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극구 반대했기 때문에 이 절을 짓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답니다. 그런데도 대덕행보살은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살면서 기도를 했답니다.
과부와 유부남이 시골에 와서 수행도량을 준비하다보니 마을에 좋지 않은 소문도 났습니다. 그러나 태허거사의 부인인 윤원보살이 내려와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모습에 그런 오해가 풀렸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아랫마을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이곳에 절집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해 어버이날 대덕행보살이 먹을 것을 준비해 경로당에 찾아갔습니다. 경로당에 있는 마을 어른들은 대덕행보살에게 장난 삼아 “노래 한 곡 불러보라”고 했고, 대덕행보살은 구성진 목소리로 선가(禪家)에서 부르는 <멍텅구리>를 불렀습니다. 멍텅구리는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는 노래인데, 이 노래를 들은 마을 노인들은 세상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는데도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채 깨달음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가사 내용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눈물을 철철 쏟았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 일이 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쉰네 살에 고행길 떠나 신통력 얻었지만…
기원정사에서 주안(72)거사는 최고 연장자로 수행자들이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는 분입니다. 그는 광주·전남의 재야운동가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쉰네 살이 되어 인생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그는 삶의 이치(도·道)를 깨닫지 못한다면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전남 영광 월출산에서부터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고 합니다.
텐트도 없이 침낭 하나 메고 미숫가루 몇 되만을 둘러멘 채 ‘나는 죽은 몸’이라고 여기고 떠난 고행이었습니다. 54일 만에 강원도 오대산에 도착해 한 스님의 권고로 산 속 토굴에서 6개월간 공부하면서 많은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참선으로 식(識)이 맑아지면서 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선지식을 만나보지 못한 것을 아파했다고 합니다. 그런 신통을 얻는 것이 도의 길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전남 곡성 성륜사에서 청화 스님을 친견하고 마침내 의심치 않고 한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선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염(念)하는 이가 누군가’라며 ‘근본 당체’(참나·불성)를 찾는 청화 스님의 ‘염불 선’을 하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누구나가 아무런 부담없이 안식 얻게 돕는 게 꿈
새벽 세간의 참선을 끝낸 수행자들이 공양간이 있는 옆 집으로 옮겨 죽으로 간단한 아침 공양을 합니다. 이곳에선 대접하는 주인도 대접 받는 객도 따로 없습니다. 누구나 와서 수행하면 그가 바로 주인입니다. 이곳 문에 들어서 대덕행보살과 태허거사처럼 아무런 대가 없이 다른 수행자들을 위해 온종일 자기 몸을 보시해 버린 보살도를 한나절만 지켜보면 자기도 모르게 참선만 아니라 ‘자신을 내려 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의 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밭일과 공양간 일에도 앞장서면서도 대접받는 왕과 왕비보다 더 자족한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전주에서 재가자들의 공부모임을 이끌고 있는 황훈(68)거사와 전국의 큰절 수행터를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녔던 보경자보살도 “이제야 우리들도 마음 놓고 수행할 터전을 발견했다”면서 이곳을 떠나지 않으며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중생의 고통과 방황을 참선으로 이겨낸 이들의 꿈은 오직 하나입니다. 자신들처럼 고통 받은 사람들 누구나가 아무런 물질적 정신적 부담감 없이 오직 수행을 통해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대덕행보살은 “출가자만이 도를 깨달아 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꼭 이곳에서 수행한 분 가운데 견성 도인을 만들어 법상에 올리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고 말했습니다.
“멍텅구리 멍텅구리 우리 인생이 멍텅구리…”
그 청정한 수행터에서 하루밤을 보내면서 저는 그 분들과 별을 보면서 많은 수행담을 나눴습니다. 비록 출가하지 않았지만 출가 수행자들보다 더 청정하고 용맹하게 정진하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하룻밤을 그렇게 보내고 언제 다시 볼 줄 모르는 저의 손을 그 나이든 재가의 선객들이 놓을 수 없다는 듯이 꼭 잡아 쥐었습니다. 꼭 다시 이곳에 와서 수행을 이어가 견성하라는 간절한 서원을 담은 손이었습니다. 대덕행보살님은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달라”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여전히 <멍텅구리>가 딱 어울리는 이 중생에게 말입니다.
청정한 재가 거사·보살들에게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면서 하산하는데, 대덕행보살의 멍텅구리가 제 가슴 깊숙히 파고들었습니다.
“멍텅구리 멍텅구리 우리 인생이 멍텅구리/온 곳을 모르는 인간이 간 곳을 어떻게 안단 말가/온 곳도 갈 곳도 모르니 그것도 또한 멍텅구리/올 때는 빈손에 왔으면서 갈 때는 무엇을 가져 갈까/공연한 탐욕을 부리니 그것도 또한 멍텅구리/세상에 학자라 하는 이들 동서에 모든 걸 안다 하네/자기가 자기도 모르니 그것도 또한 멍텅구리/백년도 못 사는 그 인생이 천년 살 것처럼 하는구나/끝없는 걱정을 하노니 그것도 또한 멍텅구리
◐그리움 하나 줍고 싶다◐
세월의 바람이 무심히 지나가면 어느새 인생도 가을
쓸쓸한 중년의 길목에서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로
가슴을 울리는 사람하나 만나면 좋겠다
그리움을 나누는 사람들이 날마다 우체국 문을열고 들어서듯
나도 글을 써서 누군가의 가슴을 열고 조금씩 조금씩 들어서고 싶다
한번쯤은 만나 보고도 싶다.
한번쯤은 가까이서 그의 숨소리를 듣고 싶고
거칠어진 손이지만 살며시 손 잡아주면 따뜻한 마음이
혈관 속으로 스며들 것도 같다
사랑이 아니어도 좋다
작은 그리움이라도 되어 오늘이 즐거울 수 있다면
말없이 웃음지으며 그저 바라만 봐도 좋겠다
거울 앞에 서면 늙어가는 세월이 씁쓸히 웃고 있지만
마음속의 거울은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이 있다
그래서 늘, 마음은 가을숲을 거닌다
숲 길을 산책하다 풀속에 숨은 밤알을 줍듯,
진주처럼 빛나는 그리움하나 줍고 싶다.
-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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