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사회와 국가의 정체정을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2009. 12. 9. 21:1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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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사람중생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철이 들면서부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살아오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의 인생이 만들어져 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는 남의 손가락질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더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누리며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다반사고, 저렇게 착하게 사는데도 지지리도 못사는 이웃들이 우리 주변에 흔히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을 따르는 제자들이라면 인과를 알고 연기법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들께서 고구정녕하게 남기셨던 말씀 중에 금생을 살아가며 이리도 힘든 이유는 과거 생에 무지와 무명과 교만으로 뿌렸던 씨앗들이 지금의 인과라는 열매로 맺혀짐을 알아야 하고, 또다시 다음 생을 향해 금생에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새로운 씨앗들을 뿌리고 있음을 진지하고 겸허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중생들이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어온 열 가지의 악업을 백일씩 끊어서 참회하는 기도중에 두 번째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엔 선망조상 영가님들을 천도해드리는 백중 기도를 시작하는 초제가 시작되는 입제일이라고들 알고 있는 날입니다.


백중날을 그저 선망조상이라는 영가들을 위한 날로만 알고들 계시지만, 그날은 살아생전에 못다 해드렸던 효도를 하는 날이자 자신의 지금까지 살아온 선악의 업력을 정화시키는 날이기도 한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목련존자가 막행막식으로 살다 죽어 무간지옥으로 간 어머니를 제도하고자 부처님께 간청하여 알게 된 영가 천도법이라고 알고들 계십니다만, 목련은 어머니를 위한 천도에 앞서 그 효성이 먼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법문은 전번에도 간략하게 말씀드렸던 소위 제사라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사란 사전적인 의미로 말하면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라고 하는데,  


옛 부터 동양에서는 천지(天地)·일월성신(日月星辰)을 비롯하여 풍사(風師)·우사(雨師)·사직(社稷)·산악(山岳)·강천(江川), 그리고 선왕(先王)·선조(先祖)를 대상으로 제사를 지내으며, 전국의 이름난 산천에는 해마다 나라에서 직접 제사를 올렸으며, 풍수설(風水說)이 강해진 뒤로는 더욱 산천을 중시하여 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요즘은 제사라 하면 단지 선조에 대한 의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제례는 사후세계라는 관념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에 선조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 가옥에서 필수적인 존재로 되있었고(예: 종로에 있는 종묘) 그러므로 제사는 사람이 죽어도 혼백은 남아 있으므로 살아 있을 때처럼 조상을 모셔야 한다는 조상숭배사상의 유교적 가치관에서 발전해왔던 것입니다.

예서(禮書)에 보게 되면 한국의 보편적인 제례는 사당제(祠堂祭)·사시제(四時祭)·이제(爾祭)·기일제(忌日祭)·묘제(墓祭)라고 하는 5가지가 있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례의 종류는 음력 매월 초하루나 보름 또는 조상의 생일 등에 낮에 간단히 지내는 제례가 있었지만, 사찰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명절에만 지내는 것으로 바뀐 차례(茶禮), 매년 사망한 날 닭이 울기 전 제주의 집에서 지내는 기제(忌祭), 매년 시월상달 문중이 모여서 시제답(時祭畓) 비용으로 함께 지내는 시제(時祭) 등이 있습니다.


시제는 묘사라고도 하고, 차례는 성묘를 가는 걸로 대신하고들 있습니다.


그런데 사찰에서 지내는 기제의 순서나 형식을 보면 유교적인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것은 부처님 당시의 경전에서는 제사라는 의례가 없었던 것이고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적인 형식이 법당에 까지 들어와 혼용하게 됐다고 여겨지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세속에서 지내는 유교적인 기제사의 순서는 어떤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진설(進設)이라 해서 북쪽에 병풍을 치고 병풍 앞에 신위를 모실 교의를 마련한 다음 상을 차리되, 식어도 괜찮은 음식부터 먼저 차리고, 진설이 다되면 영정이나 미리 써둔 지방을 교의의 신위함에 붙이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분향강신(焚香降神)이라 제주는 꿇어 앉아 향을 살라 향로에 꽂고 재배하고, 왼쪽에 있는 집사가 제주에게 강신잔을 주면 오른쪽에 있던 집사가 술을 반잔정도 따라주고, 제주는 모사그릇에 세 번에 나누어 모두 따릅니다. 

모사그릇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는 술잔을 향로 위에서 좌에서 우로 세 번을 돌린 다음 퇴주그릇에 따르게 됩니다만, 잔을 올릴 경우에는 왼쪽집사가 강신잔을 받아 오른쪽 집사에게 건네주어 제자리에 놓게 하고 제주는 재배합니다. 

다음은 참신(參神)이라 하여 제주이하 참석자 모두가 4배의 재배를 하게 됩니다.


이제 제상에 잔을 올리는데 초헌, 아헌 종헌, 이라 하여 잔을 세 번 올리게 되는데 초헌(初獻)은 좌집사가 잔을 제주에게 건네주면 제주는 우집사가 따라주는 술잔을 좌집사에게 건네주어 제상에 올리게 합니다.


그 후에 독축(讀祝)이라 하여 제주 이하 모든 사람이 꿇어앉고 참사자중에 한 사람이 축을 읽는 것인데, 예전엔 축문 읽기가 끝나면 곡(哭)을 했으나 지금은 생각도 못하고들 있고 축문 읽기가 끝나면 제주는 두 번 절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헌(亞獻)이라 해서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것을 말하는데 주부(主婦)가 올리는 것이 예이지만 주부가 올리기 어려울 때는 제주의 근친자나 장손이 올리고 재배를 합니다. 


세 번째 잔인 종헌(終獻)은 아헌자 다음가는 근친자가 올리며 집안에 따라서는 이때야 적을 올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개반(開飯)이라 해서 주부나 집사가 메(밥)와 탕 그릇의 뚜껑을 열고, 삽시(揷匙)라 해서 주부나 집사가 시접에 담겨있는 숟가락의 밥 뜨는 쪽이 동쪽을 보도록 한다든지 삽시를 하는 사람과 반대되게 해서 메그릇에 꽂고 젓가락은 시접위에 가지런히 걸쳐 놓습니다.


젓가락의 손잡이도 역시 숟가락과 같은 방식이고, 또 젓가락을 세 번 굴리거나 메 뚜껑에 세 번을 똑똑 찍기도 하고 해서 시접위에 가지런히 놓고 나서 재배를 합니다.


첨작(添酌)이라 해서 제주가 무릎 꿇고 다른 잔 혹은 그릇에 술을 따루어, 종헌자가 다 채우지 않은 술잔에 좌우 집사를 통하여 술잔을 채우도록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합문(合門)이라 해서 참사자 모두가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불효를 뉘우치는 뜻으로 부복한(엎드린)채,(대청일 경우 뜰아래로 내려서서) 조상이 진지를 9 숫갈 정도를 드시는 시간 동안 조용히 엎드려 생전의 조상을 생각한 다음, 개문(開門)이라 해서 제주가 기침으로 신호를 하고 조용히 문을 열고 일동과 함께 들어가서 헌다(獻茶)를 하는데 법당에서는 수반(水飯)이라고 해서 숭늉을 갱과 바꾸어 올리고 메(밥)를 조금씩 3번 떠서 말아놓고 정저(잠시 묵념)를 합니다. 

이때, 메에 꽂았던 숫가락은 반드시 손잡이가 집사의 좌측으로 가도록하여 숭늉그릇에 담가 둡니다.


그리고는 철시복반(撤匙復盤)이라, 숭늉그릇에 있는 수저를 거두어 시접에 담고 메그릇의 뚜껑을 덮고 사신(辭神)이라 해서 참사자 일동이 함께 재배를 올리고 신주를 모신 기제사일 경우에는 사당으로 옮겨 모시고, 지방과 축문은 불을 붙여 향로 위에서 두 손에 들고 사르게 됩니다.


다 끝나면 모든 제사 음식을 물리는 철상(撤床)을 하고  옷을 입은 그대로 조상이 드시고 남은 제물을 참사자 모두가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을 하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이렇게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사찰에서 지내는 방법과는 좀 다른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사찰에서 지내는 제사의식이 좀 더 간소화하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속가에서는 기제를 지낼 때, 기일이 다음날 인데 전날 밤 자정을 기해 지내게 되는 이유는 자시에는 하늘의 문이라는 천문이 열리는 시간인지라 자정에 제사를 지내고 나서 천문이 열린 천상계로 가라는 뜻으로 지방이나 축문을 향로위에서 손바닥에 들고 태우면서 재를 하늘로 날려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법문의 주제로 삼은 이유는 우리가 단순하게 조상을 기리기 위해서만 제사를 지내는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해서입니다.


요즘 세상이 엉망이 되어가는 이유는 인과가 허물어져 버린 이기적인 양면성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허물어져 버리고 없어져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디 제사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주기도 하지만 스스로 자기 집안의 정체성을 갖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제사라는 의식을 통해 나는 누구의 자손이고 우리 집안이 비록 권문세가는 아니어도 바르게 살아왔다는 긍지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인데 그런 정신들이 이제는 찾아볼 수가 없어져 버렸기에 정체성을 심어주는 자식교육은 뒷전이고 여자들은 명절날 차례 지내는게 귀찮고 힘들어 명절이 싫다는 둥, 며느리 병이라는 둥, 하는 말들을 하고들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안 입고, 안 먹고 자식들 사교육비를 감당한다고 심지어 파출부 노릇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키운 자식들의 정신세계에는 자신과 집안에 대한 정체성이라는 것이 없는지라, 빗나가기 십상인 것입니다.


이제 백중기도를 목전에 두고 우리는 기제사를 지내거나, 천도제를 할 때마다 살아생전에 다 못해드린 불효를 느낄 줄도 알아야하고, 가족들 건사하기에 바빠 자신의 신구의 삼업을 닦을 겨를도 없었던 선조들의 업력을 대신 소멸시켜드리는 효행을 행하고 더불어 조상들만 좋은 선업을 닦게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마음을 낸 자신의 신구의 삼업 또한 닦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첫째로 살아생전에 다 못해드린 불효가 있었다면 이제라도 뉘우치고 효성스럽게 돌아가신 날을 기려 조상님들의 삼업을 닦아드리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둘째는 각지에 흩어진 자손들이 그 날을 중심으로 서로 모여 그동안 안부를 묻고 단합과 화합을 하는 것이 그 둘째이고 먼저 말씀드린 대로 세 번 잔을 올리면서 첫 잔에 조상님들의 이름에 손가락질 받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았다는 보고의 의미가 있는 것이 첫잔을 올리는 의미인 것이며, 둘째 잔에는 앞으로도 지켜봐주시라는 발원의 뜻이 있는 것이며, 세 번째 잔에는 저희 자식들도 그렇게 교육 잘 시키겠습니다. 하는 다짐의 의미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지 단순하게 돌아가신 날을 기리는 정도의 의미는 아닌 것입니다.


거기다, 부처님의 도량에서 기제를 지내드리게 되면 여기에 두 가지 의미가 더해지게 됩니다.


살아생전에 가족들 건사하느라고 변변히 불법을 만나보기도 어려웠고 적선공덕도 제대로 못 지은 조상님들을 대신해서 선근공덕을 지어드리고 무명업식의 조상님들에게 부처님의 무상법문을 듣도록 해서 무명을 깨쳐 애착과 집착 을 끊고 대 자유의 해탈을 얻도록 해드리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살아생전에 알게 모르게 지었던 신구의 삼업을 대신 소멸시켜드리는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가오는 백중기도의 의미를 더욱 깊이있게 받아들여 참으로 간절하고 지극하게 “나무아미타불”명호를 염불(念佛)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뜻은 조상님들을 향해서 영단에 염불을 하게 되면 모든 착심을 다 놓아버리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로 어서 가시라고 권유하는 뜻이 되고, 자기 혼자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부르며 기도를 할 때는 나 죽게 되거들랑 극락세계로 가도록 해달라는 발원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지극하고 간절하게 염염 생각생각 아미타 부처님을 떠올리며 조상님들의 신구의 삼업을 씻어드리는 백중기도에 정성을 다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아울러 3개월이 넘어 유산된 낙태아나 수자령이라 부르는 인연들이 있다면 이 또한 무시하지 말고 기도에 동참시키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새해의 약속은 이렇게.



또 한 해를 맞이하는 희망으로

새해의 약속은 이렇게 시작될 것입니다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감사하자'


안팎으로 힘든 일이 많아 웃기 힘든 날들이지만

내가 먼저 웃을 수 있도록 웃는 연습부터 해야겠어요

우울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한 이들에게도

환한 웃음꽃을 피울 수 있도록

아침부터 밝은 마음 지니도록 애쓰겠습니다


때때로 성격과 견해 차이로

쉽게 친해지지 않는 이들에게

사소한 오해로 사이가 서먹해진 벗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하렵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노력의 열매가 사랑이니까요

상대가 나에게 해주기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다가서서 해주는

겸손한 용기가 사랑임을 믿으니까요


차 한 잔으로, 좋은 책으로, 대화로

내가 먼저 마음 문을 연다면

나를 피했던 이들조차 벗이 될 것입니다

습관적인 불평의 말이 나오려 할 땐

의식적으로 고마운 일부터 챙겨보는

성실함을 잃지 않겠습니다


평범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이야말로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소중한 밑거름이니까요

감사는 나를 살게 하는 힘

감사를 많이 할수록

행복도 커진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그 동안 감사를 소홀히 했습니다


해 아래 사는 이의 기쁨으로

다시 새해를 맞으며 새롭게 다짐합니다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감사하자'

그리하면 나의 삶은 평범하지만 진주처럼 영롱한

한 편의 詩가 될 것입니다


-이해인수녀님의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