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1. 22:3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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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감상>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 스님이 옛 절을 지나면서[過古寺] 읊은 시다.
아마 혼자 만행을 하다가 오래되어 돌보는 사람도 없는 폐사에 가까운 절에
머물면서 지은 시 같다.
조선 중엽 배불정책으로 스님들이 떠난 퇴락한 절이 많았으리라.
청허 스님은 세상 인연 다 끊고 오로지 외롭게 수행에만 몰두하여, 세상의 정도
인간적인 일체 상념도 다 떨어져 나간 바람같이 물같이 자연과 하나가 된 심경에
이른 듯하다.
여기에 절 문을 닫아 건 사람도 청허 스님 자신이고, 돌아갈 줄 모르는 나그네도
청허 스님 자신이며, 좌선하는 중도 청허 스님 자신이다.
선인(禪人)으로서 선경에 이르러 선심을 그린 선천 선지의 모습이다.
늦은 봄인가보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들은 하염없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스스로 봄을 찾아 나섰다가 이곳까지 왔다. 그리고는 그냥 그 곳에 눌러앉아
돌아갈 생각을 잊고 있다. 갈 곳도 없고 갈 필요도 없다.
마음이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다.
작은 바람결에 둥지 위에 앉은 학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선심이 얼마나 적정한 곳에 이르렀으면 이럴 수 있는가. 구름이 스쳐간 중의
누더기에 습기가 살짝 배어 있는 것을 느낀다. 보살은 삼매에 들었을 때 설산에
앉아 코끼리 떼가 항하강을 건너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한자의 배열과 리듬이 잘 어울린 도인의 멋진 선시다. 마음이 산란할 때라도
이 글을 붓으로 써보시라. 내가 학이 되어 산자락을 나르는 기분이 들 것이다.
가을에 길을 가며/명상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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