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과 아버지의 추억
어렸을 때 여우가 나오는 산골에서 살았다.
마을 앞뒤와 양 옆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이고
그 사이에 자그마한 시내와 몇 마지기씩 지어먹는 논이 있었다.
그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저수지가 있어서 여름에는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얼음을 지치는 썰매장으로 매우 쓰임새가 좋았다.
저수지 위에는 소나무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할아버지 등에 업혀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았던 추억이 아스라이 남아 있다.
이런 시골에서 자라난 내가 청운의 꿈을 안고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서 서울 근교인 평택으로 올라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아버지는 약주가 들어가서 거나해지면 나를 불러놓고
친구간의 우애나 형제간의 사랑 등 여러 가지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재미나고도 간곡하게 해 주셨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한 시간여를 걸어서 다녔는데,
돈도 시간도 아끼기 위해서는 산길을 걸어서 다녀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길이었지만 나는 호젓한 산길을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는 길에 ‘불교학생법회’ 안내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명법사라는 작은 절에 가서 처음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처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내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이야기를 듣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날 이후 부처님에 대한 나의 믿음은 날로 커졌고
청년회 회장, 어린이 법회 교사, 학생회 지도법사 등을 맡으며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안색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신의 소신이었는데,
불교라는 게 ‘부처에게 기대고 무엇을 달라고 비는 것이 아닌가?’ 하는
뜨악한 생각에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절에 한 번 오시라는 권유에도 빙그레 웃으면서
“아드님이나 잘 다니라.”고 하셨던 당신께
어느 부처님 오신 날 절에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당시는 민요에도 나오듯이 ‘화전놀이’와 ‘관등놀이’를 하던 시절이고,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정말로 좋은 ‘휴가’로서의 의미를 갖는 날이 ‘초파일’이어서,
하루 종일 산에서 친구분들과 약주도 드시고 노래도 부르며 노시다가
해질 무렵에서야 아들 생각이 나셨던지 절에 찾아오셨다.
취흥이 도도한 모습으로 찾아오신 아버지를 부축해서
도량 곳곳과 법당을 소개하고 스님들께 소개를 시켜드렸다.
아버지도 스님들도 다들 기뻐하셨고 나도 속으로 정말이지 기뻤다.
부처님 오신 날 약주에 취해서 비틀비틀 오신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취기에도 아들의 당부를 기억하고 찾아오셨다는 것이
더욱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제 그렇게 찾아오실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가시고
나는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었다.
부처님 오신 날 도량에 등을 걸면서
가끔씩은 비틀거리면서 산문 안으로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만나는 꿈같은 상상을 해 본다.
아버지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등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딸이 어려서 죽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너무나 슬퍼서
먹는 것도 잊고 자는 것도 잊으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친한 친구가 위로하며
“소피아 말고도 자식이 여럿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소피아 같은 딸 하나 더 낳도록 하게나. 그리고 기운 차려야지.”
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도스토예프스키는
“나에게 소피아 같은 딸이 어떻게 또 있을 수 있으며,
아이를 더 낳는다고 소피아가 다시 태어나지는 않지 않는가?”
하면서 슬픔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다.
흔히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아버지의 사랑은
건조한 의무감이나 목적 의식으로 낮게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절한 것이다.
친구 사이인 조정 대신 두 사람이 어느 날 밤 야근을 하는데,
한 친구의 조카가 아프다는 전갈이 왔다.
그 친구는 하룻밤에 무려 열 번을 조카에게 다녀왔다.
또 다른 어느 날 야근을 할 때
이번에는 그 친구의 친아들이 아프다는 전갈이 왔으나
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친구가 물었다.
“조카가 아플 때는 열 번이나 가보더니
아들이 아프다고 할 때는 왜 한 번도 안 가보는가?
그래, 그 느낌이 어떻던가?”
친구는 말했다.
“말도 말게.
조카가 아플 때는 열 번을 가보았어도
틈틈히 잠을 잤네.
하지만 아들놈이 아프다 하니
한 번 가보지 못했지만 한숨도 못잤네.”
부처님께서는 『심지관경』에서
“자비로운 아버지의 은혜는 산처럼 높다.”
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유교에서도
‘임금과 스승을 아버지처럼 섬기라君師父一體’
고 한 것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산처럼 높은
아버지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