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승려들은 왜 행복할까?

2009. 12. 16. 20: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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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승려들은 왜 행복할까
.................유대인 스님 썹튼 갸초


푸른 눈 스님 썹튼 갸쵸(Thubten Gyatso, 58).
그가 겨울 휴식기간을 맞아 보성 대원사에서 명상에 잠겨있다. 포근한 인상에 붉은 승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여느 스님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그래도 푸른 눈 스님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세인의 삿된 생각일까?

 

더구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그가 출가를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모든 유대인이 유대교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크리스천이어서 모계를 따르는 유대인의 가풍에 의해 굳이

유대교를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행운이었다면 행운이었습니다. 특히 저희 부모님은 저에게 무엇을 강요하는 분들이 아니셨습니다.

 

유대교도였던 아버지도 '진실'을 알고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제 생각을 따랐죠."
그가 출가를 한 것은 75년의 일. 서양에 티베트 불교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 그는 이미 스님이 된 것이다.

그가 출가를 결심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을 뿐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가 승려가 된 것은 우연이요,

 

필연이었다. 그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여행에서다. 1974년 티베트를 여행하다 만난 승려들은 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이나 저는 부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처럼 행복하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죠.

 

 티베트를 오가며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고 왜 그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알았습니다."

티베트 승려들의 행복 비결을 알아낸 그는 불교 신자가 된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3개월간의 명상을 통해 그가 가야 할 길을 선택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그 자신이 출가해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는 길이었다.

그리고 1981년 스승의 뜻에 따라 프랑스로 건너온 그는 유럽에 불교를 전하기 시작한다.

 

유럽지역에 처음으로 티베트 불교 도량이 세워지고 신자들의 수는 늘어갔다.

 

그는 이 곳에서 6년을 머물면서 불교의 교리를 유럽에 전파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국인 호주 멜버른에 티베트 불교 도량을 세우고 최고의 도량으로 키워 내게 된다.

 

그래도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그 당시 의사였던 그는 열대병 전문의로서 성공은 보장됐던 것이다.

 

돈과 명예를 버리고 출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하지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에게 있어 돈과 권력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속세의 끈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의외였다.

 

"저를 속세에 잡아 두려는 것은 '가족'의 유혹이었습니다. 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출가를 결심하는 데 가장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해결책은 제 '전생'에 있었습니다. '전생에 너무 많은 가족과 아내를 두었으니 이번만은 쉬어 가자' 이렇게 생각했죠."


불교와 연을 맺은 그는 20세기 최고의 티베트 스님이라는 라마 에시를 스승으로 두고 불교에 정진한다.

 

 그리고 20년이 넘게 유럽과 아시아를 돌며 불교를 배우고 전하는 일에 전념했다. 무엇이 그를 부처님의 품에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일까.

 

"불교는 자신의 마음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 줍니다. 그리고 논리적입니다.

 

철학과 논리를 중시하는 유럽에서도 불교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티베트 불교가 얼마나 논리적인가는 제가 처음 공부할 때부터 놀랬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유럽에서는 심지어 기독교신자들도 불교를 공부할 정돕니다."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서양인들에게 논리적인 티베트 불교가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 유럽의 불교 신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란다.

"오랜 역사를 지닌 모든 종교가 서로 싸우고 헐뜯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싸우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이 싸우고 심지어 기독교와 기독교사이에도

싸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결코 싸우지 않습니다. 불교만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싸움이 없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사랑, 자비, 참음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는 '스승님'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의 모든 행동이 스승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에 따라 스승인 라마 조바의 뜻에 따르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는 스승과의 단단한 끈은 쉽게 끊을 수 없다. 그에게 불교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준 첫 번째 스승 라마 에쉬와의 인연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그의 스승이 타인의 몸으로 '환생'했기 때문이다.


"그가 6세 때 타이완에서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내 스승의 환생이라고 믿을 수 없었죠. 하지만 2년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그가 내 스승임을 확신했습니다.

 

 '나는 너를 기억한다'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내 스승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가 내 스승의 환생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며칠 후면 한국을 떠나 몽골을 향한다. 그의 다음 행로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몽골로 향하는 그는 또 다른 희망을 가지고 있다.

"몽골에서 불교는 불처럼 일어났다 불처럼 사라졌죠. 사실 몽고는 티베트와 함께 티베트 불교가 번성했던 곳이었지만

 

공산 치하에서 거의 모든 사원이 불태워지고 승려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스승님의 뜻에 따라 이런 몽골에 새로운 불교의 요충지를 만들 생각입니다.

 

현재 한 명의 승려가 불교를 가르치고 있지만 제가 그곳에 합류해서 몽고에서 잃었던 불교의 신화를 다시 이뤄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1~2년 정도 몽고에서 공부를 한 후 3년의 수행을 거쳐 자신도 진정한 '스승'이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호주로 돌아가 멜버른 근처의 교육도량에서 새로운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고 싶은 것이 그의 꿈.
하지만 이것도 '스승의 의지'에 달렸다며 웃는다.

 다시 태어나도 스승인 라마 에쉬를 만나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그. 끊임없이 도를 구하는 삶이야말로 인류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자원이요, 평화의 원천일 것이다.

 

아무래도 그가 떠나기 전에 그로부터 '행복의 지혜' 하나를 얻어야만 할 듯 싶다.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것인지 생각하십시오. 내 자신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줄지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자연히 행복해질 것입니다."


이세영 기자(gikimi@jeonlado.com)


정말 행복하신 스님이시네요

오늘도 내일도 항상 편안하십시요

 (),,,

 

 

 
   

 * 축복의 말로 행복을 저축합시다.  *  
‘남편이 출장 간 밤 혼자 잠이 
들었는데 ‘쾅’ 소리가 나 놀라서 깼습니다. 
강도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가슴이 콩콩 뛰며 숨이 막히는 것 같습니다. 
건넌방에 아이들이 자고 있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항상 필요할 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간신히 나와보니 거실 베란다 문을 
열어 놓아 바람에 커튼이 
날리면서 화분이 깨져 나뒹굴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겪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생각’이 감정과 행동을 지배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생각을 하면 행복해집니다. 
행복한 생각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행복한 말을 하는 습관입니다. 
뇌는 한번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닌 것 같아도 무의식이라는 
이름의 창고 속에 모두 저장되어 들었던 
내용이 필요한 경우에 툭 튀어나옵니다. 
행복한 말을 하는 사람은 행복이 기억되고, 
불행한 말을 하는 사람은 불행이 뇌에 새겨집니다. 
누구나 축복 어린 말,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축복의 말,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자,,,,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 
네가 있어서 좋다고, 
고맙다고, 행복하다고 하십시오. 
상대방이 ‘얘가 미쳤나?’하는 
이상한 눈으로 봐도 어색해하지 마십시오. 
‘행복’이라는 말을 꺼낸 것만으로 
이미 당신의 뇌속에는 행복이 저축되었습니다. 
행복의 말은 바이러스처럼 전염성이 있습니다. 
먼 훗날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 그 행복의 바이러스를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 나라고 자랑하셔도 좋습니다. 
-가톨릭대 의대 성모병원 정신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