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부루나의 노래에서

2009. 12. 18. 19: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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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등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딸이 어려서 죽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너무나 슬퍼서

먹는 것도 잊고 자는 것도 잊으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친한 친구가 위로하며

“소피아 말고도 자식이 여럿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소피아 같은 딸 하나 더 낳도록 하게나. 그리고 기운 차려야지.”

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도스토예프스키는

 “나에게 소피아 같은 딸이 어떻게 또 있을 수 있으며,

아이를 더 낳는다고 소피아가 다시 태어나지는 않지 않는가?”

하면서 슬픔을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다.

흔히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아버지의 사랑은

건조한 의무감이나 목적 의식으로 낮게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절한 것이다.

 

친구 사이인 조정 대신 두 사람이 어느 날 밤 야근을 하는데,

 한 친구의 조카가 아프다는 전갈이 왔다.

그 친구는 하룻밤에 무려 열 번을 조카에게 다녀왔다.

또 다른 어느 날 야근을 할 때

이번에는 그 친구의 친아들이 아프다는 전갈이 왔으나

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친구가 물었다.

“조카가 아플 때는 열 번이나 가보더니

아들이 아프다고 할 때는 왜 한 번도 안 가보는가?

그래, 그 느낌이 어떻던가?”

 

친구는 말했다.

“말도 말게.

조카가 아플 때는 열 번을 가보았어도

틈틈히 잠을 잤네.

하지만 아들놈이 아프다 하니

한 번 가보지 못했지만 한숨도 못잤네.”

 

부처님께서는 『심지관경』에서

“자비로운 아버지의 은혜는 산처럼 높다.”

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유교에서도

‘임금과 스승을 아버지처럼 섬기라君師父一體’

고 한 것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산처럼 높은

아버지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 

 

인생은 긴 여행과도 같습니다.
생명이 탄생하여 죽음으로 끝이 나는
약 7-80년의 유한한 여행,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나의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얼마동안 머무르다가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한때의 여인숙입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육체의 장막은
나의 영원한 몸이 아닙니다.
얼마 후에는 벗어 놓아야 할 일시의 육의 옷이요
죽으면 썩어버리는 물질의 그릇에 불과 합니다.
우리는 지상의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죽음 앞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죽음에서 도피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순례의 길에 어떤 이는 고독한 여행을 하고,
어떤 이는 행복한 여행을 하고,
어떤 이는 괴로운 여행을 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즐거운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짐승은 사람의 길을 갈 수 없고
사람은 짐승의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인간의 양심과 체면과 도리를 저버리고
짐승처럼 추잡하고 잔악한 행동을 할 때
그는 짐승의 차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춘하추동의 네 계절의 순서는
절대로 착오가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봄 다음에 갑자기 겨울이오고
겨울다음에 갑자기 여름이 오는 일은 없습니다.
우주의 대 법칙, 대자연의 질서에는
추호도 거짓이 없고 부조리가 없습니다.



옷이 나의 몸에 맞듯이
인(仁)이 나의 몸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인(仁)은 덕(德) 중에 덕(德)이요,
남을 사랑하는 것이며,
참되고 거짓이 없는 것이요
진실무망 한 것이며
사리사욕을 버리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며
꾸밈이 없이 소박하며 굳센 것입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설자리를 알고,
나의 나아갈 길을 알고,
나의 분수를 알며,
나의 실력을 알고,
나의 형편과 처지를 알고,
나의 책임과 본분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안병욱의 <명상록> 중에서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New Age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