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족~행복한 삶~

2009. 12. 20. 21:1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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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행복한 삶~

 

  ◇  날씨가 많이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불자님들 모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족생활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소위 가족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세 가지 인간관계를 맺게 됩니다.

 

   첫 번째는

   태어나면 부모와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나,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공덕입니다.

 

   두 번째는

   성장해서 결혼하면 아내와 남편이란 부부관계가 형성됩니다.

   이 부부관계는 내가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인연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자신의 책임이 따릅니다.

 

   세 번째는

   결혼한 후 자식을 낳게 되면 부모 자식과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이 자식에 대한 선택은 부부처럼 자신의 선택에 속합니다.

   그러나 자식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습니다.

    때문에 자식에 대한 책임은 부부에 대한 책임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평생 인간관계를 맺어 갑니다.

 

 

   [2]

 

    (1) 먼저, 부모와의 관계를 보면~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이니까 고마운 분이고,

    은혜를 입었기에 감사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자식들이 부모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왜 그럴까요?

    ‘나를 더 교육을 잘 안 시켜줬다, 어릴 때 야단을 쳤다,

     재산을 더 많이 안 물려줬다.’

     그러니까 은혜를 입고 살면서도 고마워하고 은혜를 갚는 마음을 갖기는커녕

     아직도 바라고, 오히려 원망하는 마음을 갔고 있습니다.

 

  ● 부모와 갈등이 있다는 것은 내가 부모에 대해서 고마워 할 줄 모르고,

     은혜 갚을 줄 모르고 오히려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부부라는 관계는

   내가 선택한 것이고, 세상에서 말하듯이 사랑으로 맺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부관계가 많은 사람들이 원만하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그 괴로움이 어느 정도냐? 원수를 보듯 합니다.

   

  ● 왜 이렇게 부부관계가 고통이 될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맺고 있는 부부관계가 큰 이기심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친구를 사귈 때는 “의리가 있냐!” 이것만 하나만 따지면 됩니다.

   또 사업이나 거래를 할 때는 “신용이 있느냐!”하나만 봅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려고 선을 볼 때는 어떻게 봅니까?

   열 가지, 스무 가지를 봅니다. 키도 조금 커야 하고, 얼굴도 예뻐야 하고,

   신체도 건강해야 하고, 학벌도 좋아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직업도 좋아야 하고, 거기다가 성격도 좋아야 하고,

   나만 사랑해야 하고…. 굉장히 이기적입니다.

 

   ◇ 친구를 사귀다가 의리가 없으면 친구 관계를 그만 두면 됩니다.

   또 사업을 같이 하다가 신용이 없으면 그만 둡니다.

   그런데 부부가 살면서

    “ 덕 볼라고 결혼을 했는데 살아보니까 별로 덕이 없네.”

    “에이, 혼자 사는 게 더 낳을 걸.”

    그러다가 더 지나면 덕 보기는커녕 손해를 봐. 그러니까

   “같이 살 필요가 없겠다. 혼자 사는 게 낳겠다.” 이렇게 해서

    헤어질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이렇게 우리가 갈등하는 것은

   출발할 때 생각하는 관점이 벌써 잘못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관계가 안 좋아지면, 왜 안 좋은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속았다. 돈 있는 줄 알고 결혼했더니 돈이 없더라.

   성격이 좋은 줄 알았더니 성격이 나쁘더라. 속았다.”라고 합니다.

 

   ● 그 말은 "상대가 나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등의 원인은 다 상대에게 있습니다.

 

   ● 부부관계가 나쁜 것은

   궁합 문제도 아니고, 사주팔자 문제도 아니고, 전생의 원수도 아니고

   바로 덕을 보려고 하는 이기심으로 만났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3) 다음은 자식의 문제입니다.

    자기가 낳아서 자기가 키웠으니까 자기 뜻대로 되어야 하는데

    자식들은 성장해 가면서 부모 뜻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 이 자식을 부모 뜻대로 하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 이 때문에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입고 커도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 보다는

    간섭하는 사람, 속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춘기가 되면 간섭을 안 받으려고 집을 나가는 일이 생깁니다.

    부모가 자식이라고 맘대로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관계가 나빠지게 됩니다.

 

   ◇ 부모는 자식에게 온갖 것을 해줬는데, 자식이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하니까 부모로서는 원수를 하나 키운 것 같이 고통스럽습니다. 

 

 

   [3]

 

    이와 같이 가족관계의 갈등과 고민이 인생살이 고민 중 90%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가족 관계를 맺고 사는가요?”

    우리는 행복하려고.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하기 위해서 가족관계를 맺는데,

    이 가족관계가 행복은커녕 도리어 불행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 그러면 중생은 본래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즉, 인간관계를 잘못 맺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 잘못 맺고 있느냐?

    바로 인간관계의 올바른 원리, 법칙, 이치 이걸 모르고

    소위 무지하게 무지해서 관계를 잘못 맺고 있다 이겁니다.

 

 

  ◇ 물질에는 물질의 성질이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의 성질을 모를 때는 이용하는데 굉장한 불편을 겪습니다.

   지금은 그런 물질의 법칙을 이용해서 우리가 물질을 내 필요에 맞게 이용합니다.

 

  ◇ 이와같이 사람의 마음에도 작용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 마음의 원리를 모르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것은 전생의 죄도 아니고, 사주팔자도 아니고, 하느님의 벌도 아니고

    알지못하는 것 <=무지= 무명(無明)>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모든 고(苦)의 근원이 됩니다.

 

 

  ◇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는 거기에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을 알게 되면, 내가 원하는 데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이 원리를 모르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 좋게 하려고 했는데 결과는 나빠지니까 억울하게 되고 

     결국 하늘을 원망하고, 전생을 탓하고, 팔자 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부처님 말씀은 있는 그대로의 법칙, 자연에는 자연의 성질,

   생명에는 생명의 원리, 마음에는 마음 작용의 원리를 바로 알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라 하는 윤리 도덕이 아니요,

   위의 법칙과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 그러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것은 무엇인가요?

   부처님께서 어떻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무지와 무명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을 도와주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실 때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고 말씀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부모님 때문에 괴롭다든지,

     어떤 아내나 남편으로 인해서 인생살이가 괴롭다든지,

    어떤 자식 때문에 괴롭던지 할 때

 

    1) ‘이 인간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하는 원리와

    2)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

       이 두 가지만 알면 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가 있게 됩니다.

 

 

   (1) 노인은 노인의 어떤 성질이 있다.

   부처님 처럼 까르마(Karma=업식=행동, 생각하는 습관=고정관념)

   즉, 업식(業識)을 완전히 벗어나 버린 사람이 아닌 이상

   노인은 노인의 어떤 성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부모님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이가 들어서 늙으면 몸뚱이도 굳어서 유연하게 휘어지지 않듯이

   이 생각도 바뀌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어르신들의 성질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습관화 된 것들은 고쳐지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어르신이나 부모님을 자꾸

   자신의 생각으로 <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이렇게 하면 좋습니다, 저렇게 하면 좋습니다.’ >이렇게 강요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자꾸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 어르신과 관계를 맺을 때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것은 부모님에 맞춰 주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나 부모님이 뭐라고 그러시면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하면 부모에게 좋은 것이 아니고, 결국 내가 좋습니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것을 “어리석다.” "무명"이라 하고,

   이런 이치를 아는 것을 “지혜롭다.” 고 하는 것입니다.

 

   ● 어리석으면 원수를 만들고,

       지혜로우면 원수를 만들지 않습니다.

 

 

   (2) 그 다음 두 번째, 부부지간에는 자라온 환경이 서로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말을 해도 그 말이 들리는 방식이 서로 다르게 들립니다.

 

   즉 자기가 듣기 좋은 소리만 들리고, 싫은 소리,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소리는 잘 안 들리게 됩니다.

 

   이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르다는 걸 생각 안하고,

   부부니까 항상 생각이 똑같은 줄 알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부는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 됩니다.

 

   (3) 세 번째 자식도 자라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집니다.

   그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무조건 자식을 너무 과잉보호하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식은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는 자식과의 일체 관계를 끊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이 자립적인 인간이 됩니다.

   이 세상을 자기가 주인이 돼서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 여러분들은 자녀의 길을 막아놓고,

   자녀가 길이 막히니 부모 밑에 붙어서 평생을 살게 되고,

   여러분은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을 하고 살아가야 됩니다.

   그것은 자식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부모의 문제입니다.

 

 

   ◇ 그래서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1) 노인은 노인의 습성에 맞춰주고,

      2) 부부관계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고,

      3) 자식은 어릴 때는 돌보아 주고, 사춘기 때는 지켜봐 주고,

         성년이 되면 정을 끊어주어 독립심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 그러므로 불자여러분

    어떻게 상대를 변화시켜서 내가 내 마음대로 하고, 덕 보려고 하지마세요.

 

    내가 깨쳐서 상대에게 혜택을 주는 쪽으로

    이해가 되려 하지 않고 이해하는 쪽으로,

    사랑 받으려 하지 않고 사랑 하는 쪽으로, 도움 받으려 않고

    도움 주는 쪽으로 내 삶을 보디사트바(Bodhisattva, 보살)로 전환 할 것이냐.

    이 기준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가족과 이웃과 세상을 억지로 바꾸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을 바꾸어 갈 뿐입니다.

 

    내가 바뀌면

    가족이 바뀌고, 이웃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게 됩니다.

    모든 문제의 출발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12월 16일

 

 

부안 내소사 설경



-내소사 전나무 숲길-
600여미터에 달하는 이 숲길은 해방 직후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능가산의 연봉들이 감싸고 있는 대웅전의 위치 선정은 탁월하지요?
이 건물은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토막들을 깍아 끼워 맞추어 세웠다고 합니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 칩니다.
사람들이 대웅전 처마 밑으로 바람을 피해 들어 옵니다.
설선당 처마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어 추위를 실감케 하구요.

 


 


 


 



스님들의 요사채로 땅의 높이에 따라 자연스레 터를 잡았습니다.
여느 사찰에서나 볼 수 없는 2층 건물이 특이하다.

 

 



전나무 숲길을 얼마쯤 걷다 보면 오른쪽에 지장암이라고 새긴 바위가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100여 미터 정도 가면 지장암이 나오지요.


내소사에 가면 꼭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나무 숲길이야 절로 가는 길이니 놓칠리 없겠지만
대웅전 꽃창살과 대웅전 내 불상 뒤의 백의관음보살상입니다.
또한 천왕문 좌우의 낮은 담장을 유심히 보아야 할 것입니다.
봉래루의 천연덕스러운 주춧돌과 기둥들,
땅 높이가 다른데도 지형을 그대로 살린 설선당의 2층 건물도
교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시간과 여력이 있다면
청련암, 직소폭포, 월명암에 이르는 산길을 가야
내소사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시점 천왕문 가기 전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연못 옆의 작은 실개천을 건너면 부도전이 있는데,
그 중 탄허스님이 흘림체로 호쾌하게 쓴 해안스님의 부도비
해안범부지비(海眼凡夫之碑)" 가 단연 눈에 들어 옵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生死於是 是無生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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