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경의 지옥과 천상

2010. 1. 26. 19:5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염불 불보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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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세월은 쉼 없이 흘러간다고들 합니다만 사실은 사람들이 만든 달력에서 숫자가 바뀔 뿐이지 세월은 마냥 낮과 밤이 바뀔 뿐이고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는 곳에서는 절기에 따른 계절의 변화만 있는 것이지 아무것도 흘러 가지 않습니다.


다만,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몸이 늙어가고 큰 병이 없는 한, 마치 자동차가 세월이 가면 스스로 잔고장이 큰 고장으로 이어지다 결국에는 멈추고 말듯이 우리의 몸이라는 것도 이렇게 유한하게 무너지고 만다는 것은 세상을 웬만큼 살아오신 분들은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은 잘 아시면서 막상 경계에 부딪치는 순간에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아득바득해지는 우리들이기에 우리는 결국에는 중생에 불과하게 살다가 금생의 이 모습, 이 이름을 쓰던 누군가는 한 줌 재로 변해버리던가, 땅 속에 묻혀 세월 지나 유기질 토양으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중단에 반야심경을 외우면서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정이자 부증불감이라고 그리도 지극하게 했던 이치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참 한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냥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아프칸의 인질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만일에 전지전능하시다는 하나님이나 우리 중생들의 모든 원죄를 다 짊어지시고 중생들을 대신하여 속죄로 죽어주셨다가 다시 부활하셨다는 예수님이 아프칸을 내려다보고 계신다거나, 죽기 살기로 당

신을 추종하는 종들이 쌔버린 한국 땅에서 탈레반의 인질이 되어버린 어린 종들을 어찌 해결하실 것인가를 혼자서 생각하다보면 우리 중생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미물들인가를 새삼 자탄하다 혼자서 차 한잔마시고 털어버리고 맙니다.  


우리 불교는 부처님을 신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남겨주신 8만 4천의 무수종종의 가르침들이 거짓이 아니고 진리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께 예경을 하는 것은 부처라는 신에게 예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혹한 무명의 중생들에게 참다운 무상의 도리와 인과와 연기의 법칙과 팔정도와 육바라밀이라는 인간으로서의 덕목을 깨닫고 끝없는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성의 본래 면목을 찾도록 해주신데 대한 감사의 예경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조석예불이요, 지극한 감사의 뜻으로 108배, 천배 만 배로 공경하는 마음을 절로써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온갖 악행을 다하면서 믿기만 하면 천국으로 바로 간다는 이기적이고 자기 본위적인 그런 정신세계는 불교에서 가장 경계하는 마장인 것입니다.


천국이라고 하면 아주 먼 저 멀리 저 높은 하늘 위에 천국이 있는 줄로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구름을 뚫고 아무리 올라가 봐도 보는 눈이 없어서인지 하늘에 천국은 없었습니다.


지하철 공사장이나 대형건물을 짓는 공사장에 가서 그토록 깊이 들어가는 땅 밑을 봐도 지옥 또한 보는 눈이 없어서 인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혜로운 우리 조상님들은 사람이 죽어 매장을 하게 되면 예전부터 석자 이상은 파지 못하게 했습니다.

물론 풍수적으로 매장지의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합니다만, 대체적으로 석자, 90㎝를 넘지 않았습니다.

바로 예전부터 발아래에 석자 밑을 지하라 했던 것이고, 머리 위로 석자 위를 천상이라 했던 것입니다. 너무 멀리들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천상과 지하는 우리머리 위에 불과 1m도 안되게 너무도 가까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백중기도가 벌써 4재에 들었습니다.

백중기도 입재 때에 백중기도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렸었습니다만, 오늘은 백중기도가 생기게 된 유래의 주인공인 나복이의 이야기와 부처님 십대제자 중에 신통제일로 인정받는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찾아 들어가 본 지장경에서 묘사되는 지옥이 아닌 보다 더 현실적인 지옥세계에서 겪게 되는 인과의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 왕사성에 한 장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부상“이 했다. 그는 큰 부자여서 낙타와 나귀와 코끼리와 말이 산과 들을 덮었으며, 비단과 지주가 창고에 가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꾸어준 빚도 그 수를 알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는 말할 때는 언제나 웃음을 머금어서 인정을 거스리지 아니하고 육도 가운데서 한상 육바라밀을 행하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그의 부부 두 사람은 오직 아들 하나를 길렀으니 그 이름은 “나복”이라고 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장례를 모시고 산소를 써 3년 동안의 복을 벗고 나서 어머니께 여쭈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유교적인 대목이지만 ) 아버님이 계실 때는 돈과 재물이 한없이 많았으나 지금은 창고가 비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돈을 가지고 외국으로 나아가 장사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종 익리”로 하여금 돈을 가져오게 하여 계산해보3천관이었다.

이를 셋으로 나누어서 하나는 어머니께 드려서 집안을 보전케 하고 또 하나도 역시 어머니께 드려 삼보를 공양하며 매일 백승재를 베풀게 했으며, 아들도 하나를 가지고 금지국에 가서 장사를 경영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나서 종들을 불러 놓고 말하였다. 너희들은 다 이리 오너라.

우리 집은 큰 부자다. 만약 사문들이 우리 집 문 앞에 와서 교화하려 하면 나를 위하여 뭉둥이로 쳐주어서 목숨이 남아나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는 아들이 재를 올리라고 한 돈으로 돼지, 양, 거위, 오리, 닭, 개를 널리 사들여서 배불리 먹여 살찌워서 양을 기둥에 달아놓고 피를 내어 동이에 받으며, 돼지를 묶어놓고 몽둥이로 때리니 슬픈 울음소리가 그치지를 않고 배를 가르고 간을 꺼내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으로 모든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나복은 본전 1천관을 가지고 외국에서 3년 만에 본국으로 돌아왔다.

집에 40여리 떨어진 곳에 이르러 성 서쪽의 버드나무 밑에서 쉬면서 종 익리로 하여금 집으로 먼저 돌아가 어머니께 귀향을 말씀드리도록 했다.


나복이 혼자서 생각하기를, 만일 착한 인연을 지으셨으면 내가 이 돈을 가지고 돌아가 어머니께 공양할 것이고 만일 악업의 인연을 지었으면 나는 이 돈으로 어머니를 위해 보시하는데 바치겠나이다.


익리가 집에 돌아오니 금지가 멀리서 보고 마님인 “청제부인”에게 사실을 알렸다. 서방님이 돌아오십니다.

마님이 금지에게 묻는다. 네가 어찌 아느냐. 금지가 대답하되, 문 앞에서 익리를 보고 서방님께서 돌아오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인이 금지에게 명했다.

네가 나가서 문을 닫아걸어서 익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내가 창고에 들어가 당번을 꺼내어 후원에 늘어놓아 거짓 재를 지낸 모양을 꾸며놓거든 그때를 기다려 문을 열고 익리가 들어오게 하여라.


익리가 들어오자 말하기를, 네가 서방님과 함께 떠난 이후로 나는 집에서 날마다 “5백승재”를 지냈다.

네가 만일 믿어지지 않으면 후원 불당 앞에 가서 내가 재 올린 것을 보아라.

익리가 가서보니 수저는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향불의 연기는 아직도 서려 있었으며 사발이며 대접의 설겆이도 아직 마치지 못한 채로 있었다. 익리는 급히 달려가 주인에게 보고했다.  마님께서는 보통 어른이 아니더이다.

마님께서는 날마다 5백승재를 올렸습니다.

나복이 익리에게 물었다. 네가 어찌 알았느냐.

제가 집에 돌아가 보니 수저가 이리저리 엇갈려 놓여 있고 향을 사룬 연기는 자욱하고 스님네들도 방금 헤어져 그릇들의 설거지도 아직 끝내지 않은 채로 있었습니다.


나복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겼다.

나는 여기서 멀리 어머니를 향해서 1천 번 절을 하리라. 하고 1천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때 동. 서 마을의 이웃과 집안 식구들이 나복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그를 영접하기 위하여 성문 밖에까지 모두 나왔다.

그러나 나복이 절을 하느라고 일어나지 않음을 보고 물었다. “저 앞에는 부처님이 안 계시고 위에도 스님 네가 보이지 않는데 예배함은 어찌된 일인가.” 나복이 대답했다.


나는 어머님께 부끄럽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집에 계시면서 삼보를 공양하고 매일 5백승 재를 지냈다 합니다.

이 말에 이웃 사람들이 대답하되, 그대의 어머니는 그대가 집을 떠난 후 곧바로 집에서 삼보사승이 찾아오면 몽둥이로 때려쫓고 재를 올리라는 돈으로는 돼지와 염소와 거위와 오리와 닭, 개들을 많이 사서 잘 먹여 살찌게 하여 염소를 기둥에 달아매어 피를 내어 동이에 받으며, 돼지를 묶어 몽둥이로 때려 끓는 물로 몸을 튀기니 그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것을 또 배를 갈라 간을 꺼내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갖은 환락을 다했다네, 하자, 나복이 드디어 이 말을 듣고 몸을 들어 땅에 부딪치니 온 몸에서 피가 흐르며 까무라쳐 쓰러진 채 오래도록 깨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성 밖으로 그를 맞으러 나왔다.

그는 아들이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함을 보고 손을 잡고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나의 맹세하는 말을 들어라. 강물이 저렇게 넓고 커도 그 위에는 출렁이는 파도가 있는 것과 같이, 사람들 성공케 하는 사람은 적고 사람을 망하게 하는 자는 많으니라.

네가 떠난 뒤에 내가 너를 위하여 5백승재를 지내지 않았다면, 이제 내가 집에 돌아가는 대로 문득 중병을 얻어 이레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 아비대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나복이 어머니의 맹세가 너무나 중대함을 듣고는 그만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어머니는 갑자기 중병에 걸려 이레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 죽어 버렸다.

나복은 어머니 산소에서 풀을 매어 암자를 짓고 어머니의 무덤을 지키며 3년 동안 고행을 했다.

낮에는 삼태기로 흙을 담아다가 어머니 무덤에 흙을 더하고, 밤에는 대승경전을 읽으니 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효성에 감동되어 아홉 가지 빛이 나는 사슴이 무덤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흰 학이 나타나 상서로움을 표하기도 했으며, 자오는 두 눈에서 피가 흐르기도 했고 여러가지 새들이 흙을 물어다가 무덤 만드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나복은 새들이 흙을 물어옴을 보고 기쁜 마음이 생겨 사람을 불러다가 불상을 조성하고 3년 동안을 공양하다가 복을 마치고는 무덤을 하직하고 떠났다.


그 길로 기사굴산에 이르러 세존을 뵈옵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부모가 이미 다 돌아가시고 복입기를 마쳤음에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고자 원하온데 무슨 공덕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복아, 잘 왔다. 남염부제 중에 서 만약 한 사람의 남자나 여자 또는 한 남자 종이나 여자 종이라도 부처님을 따라 출가케 하는 것은 8만 4천의 부도와 보탑을 조성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며, 이로써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부모는 백년동안 복락을 누리게 되고 7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상까지도 마땅히 정토에 태어날 것인데, 하물며 너는 너 스스로 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냐.” 세존께서 곧 아난에게 명하여 나복의 머리와 수염을 깎게하고 이마를 만져 수기하시며 이름을 “대목건련”이라 고쳐 주시었다. 목련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탑을 넓고 크게 세운다면 그 공덕이 어떠한 것입니까. 세존은 이에 대답하여, 목련아, 보탑이 높고 커서 처마와 처마가 서로 맞닿아서 범천까지 통할지라도 백년 후에 비가 부처님 얼굴에 새게 되면 당장 죄를 얻게 되거니와 경전을 외우는 공덕은 금강과 같이 무너지지 않는 몸을 이루나니라. 목련이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지금 스승과 하직하고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고자 합니다.

세존이 이에 대답하여, 목련아, 네가 만일 도를 닦고자 할진대 다른 곳에 가지 말고 나를 따라 기사굴산에서 도를 닦도록 하여라. 목련이 다시 세존께 여쭈되, 그 산중에 무슨 양식이 있어서 머무를 수 있단 말씀입니까.

이에 부처님은, 목련아, 산중에는 호랑이와 이리, 그리고 새, 짐승들이 있어서 매양 재식할 때가 되면 입으로 향기나는 꽃을 물어다가 스스로 와서 공양해 주느니라.

목련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발우를 던져 공중으로 솟아 올라 기사굴산의 빈바라암이라는 절에 이르러 왼쪽 다리로 오른쪽 다리를 누르고 오른쪽 다리로 왼쪽다리를 누르며 혀로써 입천장을 받치고 三十三천을 관하다가 화락천궁에 이르러 보니 그 아버지는 하늘의 복을 누리고 있으나 그 어머니는 볼 수 없었다.


목련은 돌아와서 세존께 사뢰었다. 어머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날마다 5백승재를 올렸다고 하셨습니다.

죽어서는 마땅히 화락천궁에 태어날 것이온데 천궁에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니 지금 어디 계십니까.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이르시되, 너의 어머니는 세상에 있을 때 삼보를 믿지 않고 간탐하고 극악했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이 마치 수미산과 같아서 죽어서 지옥에 들어갔느니라. 

목련은 이 말을 듣고 몸을 던져 땅에 부딪쳐 슬프게 목놓아 울다가 땅에서 일어나 여러 지옥으로 어머니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이제부터 지옥의 묘사가 나옵니다.)


목련이 앞으로 가다가 보니 한곳의 지옥을 보니 거기에는 남염부제의 중생들이 방아 속에서 몸이 천 토막으로 끊겨 피와 가중이 어지러이 흩어져서 하루에도 만 번씩이나 죽었다 깨어나곤 한다.

목련이 슬퍼하며 그 지옥의 옥주에게 물었다.

이 지옥에 있는 중생들은 전생에 무슨 죄업을 지었기에 이러한 괴로움을 받습니까. 옥주는 대답한다.


이들은 남염부제의 사람인데 생전에 모든 중생들을 잘라 죽이고 남녀들이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입으로 그 맛이 좋다고 떠들다가 이제 제자들의 수중에 떨어져서 오직 죄를 달게 받고 있는 것이지요.


목련이 다시 앞으로 가다가 검수지옥을 보니 남염부제의 중생이 검수 끝에 있어 손으로 칼나무를 휘어잡으니 온몸이 모두 갈라지고, 발로 칼날을 밟으니 사지가 모두 부서진다. 목련이 슬프고 서러워서 지옥주인에게 묻는다.

이 지옥에 있는 중생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제 이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오? 지옥 주인이 대답했다.

이것은 남염부제의 사람들이 인과를 믿지 않아 중생을 꼬챙이에 꿰어 가지고, 구워서, 남녀가 둘러 앉아 머리를 모으고 함께 먹으면서 입으로 맛있다고 소리치다가 이제 제자의 수중에 떨어져서 다만 형벌을 달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목련은 다시 앞으로 가다 보니 한 석합지옥이 있었다. 두 덩어리 큰 돌이 뭇 죄인들을 갈아서 피와 살덩이가 흐트러진다. 목련은 슬퍼하면서 옥주에게 물었다.

이 지옥의 중생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입니까? 옥주가 대답했다.

이것은 남섬부주의 중생들이 개미와 벌레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이제 제자의 수중에 떨어져서 이렇게 괴로움을 달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목련이 다시 앞으로 나가다가 한 떼의 아귀를 보았는데, 그들의 머리는 태산만큼 크고, 배는 수미산처럼 부른데 목구멍은 바늘과 같았다.

그들은 걷는데 항상 五백 채나 되는 수레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목련이 그 아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가. 아귀들이 대답했다.


나는 전생에 죽은 사람을 위해서 재 올리는 것을 못하게 하고, 삼보를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겁 동안 좁쌀미음의 이름도 듣지 못하고, 음식도 맛도 보지 못해서 이런 꼴이 되었습니다.


목련이 다시 앞으로 나가니 한 회하지옥이 보인다.

거기에서는 모든 남섬부주 사람들이 잿물의 물결 속에 밀려다니고 있는데, 온 몸뚱이가 데어서 타고 있다.

동쪽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동쪽 문으로 달려가면 동쪽 문이 닫히고, 서쪽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서쪽 문으로 달려가면 서쪽 문이 다시 닫힌다.

또 남쪽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남쪽 문으로 달려가면 남쪽 문이 다시 닫히고, 북쪽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북쪽 문으로 달려가면 북쪽 문이 다시 닫힌다. 이렇게 물결을 따라 달리느라고 다시 조금도 쉴 새가 없다. 목련이 옥주에게 묻는다. 이 지옥의 중생들은 무슨 죄를 지었나요? 옥주가 대답한다.


이 사람들은 전생에 달걀을 삶아먹었기 때문에 이제 제자의 수중에 떨어져서 그 괴로움을 달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목련이 다시 앞으로 가다가 보니 한 확탕지옥이 있는데, 남섬부주의 중생들을 물이 끊고 있는 이 가마솥에서 삶고 있었다. 목련은 이것을 보고 슬퍼하여 옥주에게 물었다.

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입니까. 옥주가 대답한다.

이 사람들은 남섬부주 사람으로서 삼보를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큰 부잣집에 태어나서 뭇 생명 있는 것들을 삶아 먹었기 때문에 이제 제자들의 수중에 떨어져서 이 고통을 달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    ~ 이하 생략하고 다음 법회 때~


지옥은 꼭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철없는 맹신에 떨어졌거나 봉사와 선교라는 엄청 복을 지을 거라는 착각에 들뜬 마음으로 그곳에 갔던 철없는 중생들이 지금 탈레반에게 붙들려 겪고 있을 고통이 바로 지옥 고통인 것입니다.

천상과 지옥이 우리 머리 위아래 석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듯이 우리가 일상에서 자신의 욕구와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스스로 번뇌와 갈애를 일으켜 겪는 고초가 바로 지옥고이지만, 이러한 지옥 고는 일념돈탕제라 한 생각에 소멸시킬 수 있지만, 인과 연으로 인한 과보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는 윤회의 업연을 만들고 인과의 씨앗을 뿌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의 신구의 삼업으로 뿌려온 열 가지의 악업을 참회하고, 참회하는 것만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새로운 선업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카르마 업이라는 것에 대한 말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기왕에 지어진 업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 해도 지금부터 의업을 새롭게 하여 선의업과 선행과 선한 구업은 스스로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에 지어진 업이라도 해도 이기적이고 자기 본위적인 참회와 회개가 아닌 지극한 참회의 기도를 통하여 자신과 연결된 악연을 통해 오는 인과를 겸허하게 수용하여 큰 인과는 작아지고 작은 인과는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참회이자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성불하세요.

 

 

빨리도 가는 세월, 서유석이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하듯이 세월은 쉼 없이 가고 있지만 가는 세월 앞에서 범부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었든, 태어나고 싶지 않았던 태어나긴 태어났는데, 업과 인연따라 어떤 이는 삼성재벌의 집에도 태어나고 어떤 이는 타이거 우즈의 딸로도 태어나지만, 대부분은 그저 그렇고 고만고만하고 오순도순하게 보통사람들이라는 필부들의 가정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중생들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11일 수원에서 발생된 50대 부부의 피살 사건의 범인은 23된 친아들로 밝혀졌습니다.

또, 지난 9일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에서 일어난 공장화재로 사망한 피해자 6명은 60대 할머니들로 대부분이 아들이름으로 적금을 넣기 위해서, 아니면 맡겨진 손자들의 과자 값을 벌어보겠다고 잔업을 하다가 부주의로 일어난 화재로 사망한 것입니다.


그토록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있다면 이 세상이 어찌 이렇게 미쳐 돌아가,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의 생명을 이리도 쉽게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한단 말입니까?


태초에 신이 우리를 창조해두고 지금 중생들이 온갖 짓을 다한 다음에 벌주기 위해서 기다렸다가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낱알은 곳간에 거두고 쭉정이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버리겠다는 되먹지도 않은 신에게 “나는 종이로소이다!” 하는 순종하는 사람들이 일요일이면 동업중생들끼리 모여 울부짖고 통곡하며 죄 사함을 받는다고 거듭 태어났다고 해대면서 자기들로 인해 피해를 본 가족이나, 친지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가르침이 과연 옳다고 해야 하나 싶습니다.


자식의 인성교육은 뒷전이고 그저 공부만을 지상최대의 과제로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한들, 인성이 매 마른 그 자식에게 효도까지는 바라지 않겠지만 지 부모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지 말란 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온갖 짓을 다하고서라도 믿기만 하면 다 해결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사성제에서 밝히셨듯이, 고(苦)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적극적인 목표는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이 말을 소극적 목표로 바꾸어 본다면 불행해지고 싶지 않고 덜 불만족하고 싶어 한다고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나 지금 이 법문을 활자로 보시는 분들께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 나이 먹도록 자기 생각 일으키는 대로 모든 일들이 승승장구로 다 성취를 이루셨던가요?


아닐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니 행복하고 싶냐? 니 행복해지고 싶냐? 그렇다면 내 말대로 하거라, 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르침들이 바로 자기 내면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내면에 본능적으로 감춰진 팔만사천가지가 넘는 온갖 욕망과 욕구들이 자신의 감성과 이성을 분탕질을 하고 있을 때,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지금 이 현실만으로도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우칠 수 있고 자신이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지를 깨달아 채워지지 않은 욕구로 인해 생겨난 불만족과 남과 자기를 비교해가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혜로움을 전해주신 것입니다.


그런 성찰을 통해 자신의 정신세계에 자기가 주인이 될 때, 우리는 행복해지기 시작하고 행복 그 자체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그것을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이지, 죽어서 극락가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했던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러한 인성교육을 자식들에게 심어주지 못하고 모든 것 다 해줘가며 그저 공부 공부만하다보니 인성은 망가지고 웬수같은 컴퓨터가 생겨가지고 분별없는 과잉보호로 모든 것 다해주는 부모들의 품속에서 자기 극기를 못하는 의지 약한 애들이 오락에 빠져들어 성품은 더욱 나빠지고 인성은 삼천포로 빠져서 일어나는 일들이 수원에서 카드빚과 주식 빚을 핑계로 친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번 주와 오늘 우리가 공부하게 될 목련경을 보십시오.


나복이는 강남의 유명학원에는 안다녔어도 개판으로 살다 간 자신의 어머니 청제부인을 위해 그토록 효성을 다 했기에 목련의 효성을 책으로 해서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신라, 고려시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주로 유교가 전해진 조선시대에 특히나 열녀문, 효자각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 효자각이나 열녀문에 대해서 역발상으로 유추해 본다면 보통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효행을 장려시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인데, 모두가 효자효부고 열녀였다면 아마 조선 팔도가 열녀문에 효자각으로 넘쳤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효자효부가 귀했고, 열녀가 귀했기에 귀감으로 삼고자 효자 효부각이나 열녀문이 생겼단 말입니다.


옛 선인들이 말씀하시기를 효자는 불효자를 둘 수 있지만, 불효자는 효자를 만들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효자는 과거생의 악한 인연으로 인해 금생의 자식이 되어 불효로 웬수 갚음을 할 수는 있지만, 불효자는 효자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왜냐? 보고 배운 게 없는데다 동업중생들이 끼리끼리 모여 들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지요? 그러니 이제부터 목련경을 잘 새겨들으세요.

지장경에 나오는 지옥은 지옥들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지만, 이 목련경에 나오는 지옥은 나복이가 지옥의 옥졸들에게 저 지옥 중생은 살아생전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지옥의 과보를 받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나온단 말입니다.

 

전번  8월 첫 주 법문에 들으셨지요.

달걀만 즐겨 먹어도 잿물에 튀기는 회하지옥고를 받는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달걀은 무정란이라 살생에는 아마 안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맛 좋다고 유정란 좋아하면 회하지옥에 들어갑니다.

지옥이 다른게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지옥이 널려있습니다. 

축생의 몸이 되어 식탁에 올를 때가지 받는 고초가 바로 지옥고일 것입니다.

그리보면, 주부들이 지옥나졸들이고, 유명레스토랑주방이나, 푸줏간이나 도축장에 계신 분들도 다 지옥옥졸들 입니다.

포졸은 형사고 나졸은 경찰이고 옥졸은 교도소 간수들입니다.  죽어서는 옥졸이 젤 무섭습니다.


빚을 졌으면 빚 갚아야 되듯, 남에 살 잘들 먹었으면 나도 한 생은 축생의 몸을 받아 먹혀주고 육신공양공덕으로 빚 탕감하게 되듯, 두 번 먹었으면 두 생을 태어날 것이니 이를 어쩐답니까?

우리 모두가 여태껏 먹은 걸로 치면 세세생생 축생보를 한동안 못 벗어날 것인데 말입니다.

이것이 겁나시는 분은 저도 죽으면 제사밥도 못 얻어먹는 무주고혼이 될 건데도 제사도 안지내도 되고 믿으면 바로 천국 간다고 확성기 트는 데로 가보세요.

근데 그 사람은 지가 갔다 와서 그런 말을 하면 곧이듣겠는데 지도 안가보고 해대니 다 사기꾼으로만 보인단 말입니다.


그러니 요즘 대한민국이 다 사기꾼 천지고, 도둑이 극성을 떠는 것이 아닐까싶습니다요.  자, 사설이 길었습니다.  오늘 지옥은 바로 요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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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다시 앞으로 나가니 화분지옥이 보인다.

거기에는 남섬부주의 중생들이 머리에 불동이를 이고 두개골의 뼈마디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목련은 슬프게 여겨 옥졸에게 묻는다.

이 지옥의 중생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옥졸은 대답한다. 

이것은 남섬부주의 중생들이 짐승들의 골수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몬도가네 최고급요리 중의 하나가 바로 원숭이 두개골 요리입니다.)

목련이 지옥의 문 앞에서 큰 소리로 어머님을 불렀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에 날더러 말씀하시기를 날마다 오백승재를 열고 향과 꽃과 음식을 법대로 하지 않으신 것이 없다고 하셨으니 돌아가셔서는 마땅히 화락천궁에 태어나셔야 할 것인데 어찌해서 천궁에도 보이지 않고, 지옥에라도 계셔서 만나야 할진데 지옥에도 보이지 않습니까. 

옥중에 있던 팔만사천 명의 우두옥졸들이 가가대소하며 서로 보고 말한다.


앞문에 산 사람 소리가 나니 필경 이는 남섬부주에서 죄인들을 보내온 것이다.

내가 쇠창을 가지고 가서 그 가슴을 찔러가지고 잡아 오리라. 

목련은 이때 바로 지옥 문 앞에 있었는데 문득 깨달음이 있어 좌선하여 몸이 삼매에 들어가고 있었다.

옥졸이 몇 차례 부르자 목련은 선정으로부터 깨어났다.

스님은 어떤 사람인데 우리 지옥 문전에 와 있는 것입니까? 목련이 대답한다. 빈도에게 화내지 마시오. 빈도가 특별히 여기 온 것은 우리 어머니를 찾고자함입니다.


옥졸은 다시 묻는다. 그대의 어머니가 여기 있다고 누가 말하던가요. 목련이 다시 대답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우리 어머니가 여기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옥주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스님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목련이 다시 대답한다. 그분은 우리 스승님이시고, 나는 그 분의 제자 대목건련올시다.

옥졸이 이 말을 듣고 머리를 숙이고 철창을 내던지고 수없이 절을 하면서 칭찬의 말을 한다.

착하고 착한 일입니다. 오늘날 과보로서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어머님 께서는 성이 무엇입니까?  내 스님을 위해서 옥중에 가서 명부를 찾아보겠습니다. (여기도 빽이 통하나 봅니다.)

이렇게 말하고 옥졸이 들어가 문서를 검사해 보았으나 그런 이름이 없었다. 옥졸은 나와서 목련에게 말한다.

이제 옥중에 가서 문서를 검사해 보았으나 그런 이름이 없습니다. 여기서 더 가면 아비지옥이 있으니 그리로 가보십시오, 한다.

목련이 다시 앞으로 가다가 보니 한 커다란 지옥이 있었다.  담의 높이는 만 길이나 되고 검은 벽은 만 겹이나 된다.  철망으로 얽어서 그 위를 덮었고, 그 위에는 또 네마리 큰 동구가 있는데, 입으로 항상 뜨거운 불길을 토하여 그것이 무럭무럭 하늘로 타오른다.

소리를 질러 천 마디나 불러보아도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목련은 다시 돌아와 옥졸에게 묻는다.

앞에 큰 지옥이 있기는 하나 담의 높이가 만 길이요, 검은 벽이 만 겹으로 철망을 얽어 덮어 씌웠습니다.

그리고 천 번이나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나와 대답하는 이가 없습니다. 옥주가 대답한다.

스님의 법력이 부족한 탓이요. 이 문이 열리게 하려면 부처님께 물어볼 밖에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목련이 이 말을 듣자 발우를 던지고 하늘로 솟아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는 부처님을 세 바퀴를 돌고나서 부처님께 아뢴다.


세존이시여! 목련이 큰 지옥을 가서 보니 담의 높이가 만길이나 되고 검은 벽이 만 겹이나 되는데 아무리 여러 번 큰 소리를 질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목련에게 말한다.

너는 나의 열 두 고리가 달린 석장을 짚고, 내 가사를 입고, 내 발우를 가지고 그 지옥 문 앞에 이르러 석장을 세번 흔들면 옥문이 저절로 열리고, 자물쇠가 저절로 떨어지며, 옥중에 있는 모든 죄인들이 내가 짚던 석장 소리를 듣고 모두 잠시의 휴식을 얻을 것이다.


목련이 가사를 받아 입고 손에 석장을 쥐고, 지옥 문 앞에 이르러 석장을 흔들어 세 번 소리를 냈다.

그랬더니 옥문이 저절로 열리고 자물쇠도 저절로 떨어진다. 이에 목련은 지옥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옥졸들이 목련을 밀어내며 말한다.


스님은 누구시기에 맘대로 이 문을 여는 거요?

이 문은 오랜 세월 안 열렸던 문이오. 목련이 옥졸에게 묻는다. 문을 열지 않으면 죄인은 어디로 해서 들어옵니까.


옥졸이 목련에게 다시 말한다.

남섬부주 사람들은 불효를 많이 범하고, 오역을 많이 범했으며, 삼보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명이 다한 뒤에는 업풍에 밀려 와서 거꾸로 매달려 내려오고 문으로 해서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뉴스에 미국도축장의 목 잘려 거구로 매달린 소들)


옥졸이 다시 묻는다. 스님은 어찌하여 여기 오셨습니까.  목련이 대답한다.

내가 특별히 온 것은 우리 어머니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누가 스님의 어머니가 여기 계시다고 합디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우리 어머니가 여기 계시다고 했습니다. 옥졸이 또 묻는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무슨 관계가 있으십니까. 바로 나의 스승이십니다. 이에 옥졸이 또 묻는다. 

어머님의 성명이 무엇입니까. 내 스님을 위해서 옥중에 가서 명부를 검사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

보살님들은 지옥에서도 통하는 빽 중에 빽, 부처님 빽을 확실하게 믿으십시오. 이게 진짜로 믿는 겁니다. 

그래야 큰 병없이 살다 갈 때도 자는 듯이 가게되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저번 주 법회 때, 나온 지옥은 담의 높이는 만 길이나 되고 검은 벽은 만 겹이나 되고 위로는 철망으로 얽어서 그 위를 덮었고, 위에는 네 마리 구리로 만들어진 큰 개가 있는데, 입으로 항상 뜨거운 불길을 토하여 하늘로 타오르고 있는 지옥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전번 법회 때에 말씀드린 대로 이런 지옥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런 지옥이 있다고 겁주는 사람들은 그곳에 다녀와 봤답니까?


이런 무간지옥은 요즘 허위학력이 들통 나서 온갖 창피를 당하는 유명인사들이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인사들의 타들어가는 속내가 바로 이런 지옥일 것이고, 아프간에 인질로 잡혀있는 사람들의 속내가 바로 이런 지옥에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지장경이나 목련경에 나오는 지옥은 현실세계에선 자신의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꽉 박혀버린 사람들 예를 들어, 금융권에서 돈 빌려다가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금리 변동으로 인해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사람들의 속이 바로 지옥일 것이고, 우리가 윤회를 인정한다면 축생의 몸이 되어 식탁에 오를 때까지 받는 고초가 바로 온갖 지옥고초일 것이니, 지옥을 저 땅속 깊은 곳으로 알거나, 천국을 저 먼 하늘위로 보지 마시라 이겁니다.


이 세상의 가장 부자는 적게 먹고 적게 싸면서도 마음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자족하며 정신만족을 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삶은 스트레스로 인한 만 가지 현대 불치병에도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니 이 사람이 바로 절대부자이건만, 떠밀려 살아가는 중생들은 남들 다가는 피서는 왜 우리 집은 안가고 못가냐며, 옆집과 자기 집을 비교해 가며 남들 하는 것 나도 다 해야 한다는 헛된 사심으로 괜히 신경질 부리고 투정부리다 결국은 다툼의 원인이 되고 사니, 못 사니 한다면 이 얼마나 한심한 인생들이 되겠습니까?

지옥은 그러는 순간부터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목건련이 다음 지옥으로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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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장자의 아내이자 나복이의 어머니인 청제부인의 성은 유제사인데 목련이 옥졸에게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을 알려주자, 이에 옥졸은 지옥으로 들어가 외친다.


여기 지옥 중생 중에 왕사성에 살던 청제부인 성씨 유제사야! 여기에 있으면 대답하라!

 

문 앞에 출가 수행자가 된, 법명이 대 목건련이란 아들이 왔는데, 이는 부처님 제자로서 불가사의의 신통이 있으니, 만일 이 사람이 네 아들이라면 오래지 않아서 지옥을 떠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왕사성 안의 청제 부인아! 여기에 있다면 어서 대답하라! 하고 수차를 불러도 대답이 없더니 나중에 청제부인이 머뭇거리며 나오자, 너는 어찌하여 대답을 하지 않느냐, 하고 몇 번을 외치자 그때서야 죄인이 대답한다.


옥졸께서 다시 더 고생되는 곳으로 옮길까 두려워서 감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제 성씨가 유제사이고 왕사성에서 살았던 것은 맞는데 죄인에게 오직 한 아들이 있었는데 출가 수행자가 된 일도 없고, 이름도 대 목건련이 아닙니다.

옥졸이 밖으로 나와서 목련에게 말한다.

청제부인이라는 사람이 있지만 아들은 사문도 아니었고 이름도 대 목건련이라 하지도 않았답니다.


목련이 대답한다. 옥졸께서는 자비심을 베풀어 제 어미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일러주소서.

 

부모가 계실 때의 나의 이름은 나복이었고,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부처님의 제자인 사문이 되어 불법을 터득하고 사문의 이름을 쓰고 있으니 목건련입니다.


옥졸이 다시 목련에게 묻는다.

그러면 오늘 어머니를 찾아보게 해주면 장차 무엇으로 우리의 은혜를 갚겠습니까? 하자, 목련이 말하기를 오늘 어머니를 만나 뵙게 되면 여러 보살을 청하여 지옥중생들을 위하여 대승경전을 외어 옥졸의 은혜를 갚겠습니다. 하자, 옥졸은 다시 지옥으로 들어가 죄인을 향해 말한다.

내가 너의 기쁨을 도우리라. 문 앞에 찾아온 사람은 바로 너의 아들인 나복이다.


죄인이 이 말에,  만일 나복이라면 바로 이 조그만 뱃속에 품었던 자식입니다.

이때 옥졸이 쇠창을 가지고 청제부인을 찔러 일으켜서 못을 박아 땅에 떨어뜨리니 온 몸의 털구멍에서 모두 피가 흘렀다.

 

옥졸은 다시 쇠칼을 씌우고 칼로 몸을 에워싸서 내보내어 아들과 서로 보게 한 다음 목련에게 묻기를 어머니를 알아보겠습니까? 목련이 대답한다.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옥졸이 다시 말하기를, 저 앞에 온 몸에 모진 불이 활활타는 것이 바로 스님의 어머니입니다.

목련이 그 어머니임을 알아보고 크게 부르짖는다.


“어머님! 어머님이시여! 살아계실 때에 날마다 오백승재를 올려 향화와 음식을 모두 법대로 했다고 말씀하셨으니 돌아 가셔서는 의당 화락천궁에 나실 것이 온데, 천궁에 계시지 않고 도리어 지옥에 계십니까.

어머님 살아생전에 소자는 날마다 밥 먹을 때에 맛있는 음식만 있으면 가져다가 먼저 어머니께 공양을 드렸는데 어머니 얼굴은 어찌하여 그렇게 야위셨습니까? 어머니가 목련을 불러 말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앞으로 영영 내 아들을 보지 못할까 했더니 어떻게 오늘 이 지옥 문 앞에서 만나게 되었단 말이냐. 이 어미는 옥중에서 벌을 받기가 몹시 괴롭다.

배가 고프면 쇠로된 알을 먹고, 목이 마르면 구리 즙을 마시면서 지내왔다.

이렇게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해서 옥졸이 오더니 죄인을 붙들어 세우고 기다란 부젓가락으로 몸을 찌르니 온 창자가 모두 불에 타들어간다.


이때 같은 지옥에 있던 모든 죄인들이 서로 말한다.

남의 집 모자는 서로 만나보게 되는데 우리들은 어찌하여 나갈 기약이 없는가. 


옥졸이 목련을 보고 말한다. 어머니와는 오래 동안 말할 수 없습니다. 스님의 어머니는 죄를 받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소위 면회시간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스님이 만일 어머니를 놓치 않는다면, 내가 철창으로 가슴을 찔러 데려가겠습니다.


목련이 그 어머니를 놓으니 어머니는 옥주에게 끌려 지옥으로 들어가면서 소리친다.

우리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나는 고통을 참기가 괴로우니 부디 부처님께 말씀드려 이 어미를 구해다오.

이때 목련은 왼발은 지옥 문지방 안에 두고 오른 발은 문지방 밖에 둔 채 서 있다가 어머니의 괴로워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참을 수가 없어 머리를 기둥에 부딪치니 살과 피가 낭자했다.

목련이 옥졸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옥 속에 들어가 어머니를 대신해서 죄를 받고자 합니다. 하자, 옥졸이 대답하길, 스님의 어머니는 죄의 업력이 넓고 커서 서로 간여할 수 없으니 지옥에서 나가게 되기를 원하거든 부처님께 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목련이 이 말을 듣고 발우를 던지고 하늘로 솟아,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역시나 우효삼잡이라 부처님 곁을 좌에서 우로 세 바퀴 돌고 나서 부처님께 여쭙니다.


세존이시어! 저의 어머니가 지금 지옥에서 죄를 받느라고 견디지 못할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출가 수행자가 있게 되면 그 집안의 구족이 제도를 받는다고 했건만, 어찌하여 나의 어머니는 저 지옥 속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여야 어머니를 구출해서 이 지옥을 벗어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통곡을 하자, 세존이 대답하시길, 목련아! 너에 어머니는 세상에 살 때, 너무나 많은 살생을 한 인과로 그러한 죄를 받는 것이니 죄의 과보가 다하면 지옥을 벗어나리라. 하자, 목련이 지금 당장 어머님의 고통을 그냥 볼 수 없다며 인과가 다하기를 기다린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어서라도 어머님을 지옥에서 제도하겠다며 식음을 전폐하며 단식에 들어가자, 세존께서 목련에게 말하기를 내가 네 어머니를 구해 주리라. 하자, 목련이 묻되, 세존이시어! 제 어머니를 구해 낼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세존께서 신통을 보여 목련의 어머니가 있는 무간지옥으로 밧줄을 내려 보내자, 목련은 목이 터져라 하고 제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기를 “어머님! 어서 그 밧줄을 붙잡고 올라오소서!” 하고 소리를 쳐도 청제부인이 채, 알아듣지를 못하더니 나중에는 목련의 소리를 듣고 위를 쳐다보더니 얼른 밧줄을 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오르던 청제부인은 밧줄의 중간에 이르러 밑을 내려다보니 온갖 지옥중생들이 새까맣게 매달려 뒤따라 올라오자 청제 부인은 문득 가느다란 밧줄을 보고 줄이 끊어질까 싶어 자신만이 올라가야한다는 욕심에 뒤따르는 지옥 중생들을 발로 차 밟아 떨어트려 가면서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밧줄은 부처님의 신통에 의한 자비의 밧줄이었건만, 청제부인의 자기만 살겠다는 욕심에 자비의 밧줄은 그만 중간에 끊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목련아! 자, 봐라, 이것이 네 어머니의 업이니라. 난들 어찌하겠느냐. 하자, 목련이 자신의 신통으로는 어찌 할 수 없어 더욱 간절하게 세존께 매달리고 통곡을 하자, 이에 세존께서 결국은 대답한다. 그래 네가 네 어머니를 제도해주마, 하자, 목련은 제 귀를 의심하여 다시 세존께 간곡하게 청하자, 세존께서 말하기를 내가 만일 네 어머니를 구해 내지 못하면 내가 오랜 겁 동안 지옥 속으로 달려가서 네 어머니를 대신하여 죄를 받으리라. 하시고는 지옥을 향하여 가시는데 이때, 세존께서 지옥을 가시는 도중에 모든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 등, 무수억만 명을 거느리고 앞뒤로 둘러싸게 하고 허공에 몸을 흩으니 그 높이가 일곱 다라수만 하였다.


이에, 세존께서는 미간백호에서 다섯가지 색깔의 광명을 내어 그 빛으로 지옥을 깨뜨렸다.


철상지옥은 변해서 연화좌가 되고 검수지옥은 변해서 백옥으로 만든 사다리가 되고, 확탕지옥은 변해서 부용지가 되었다. 그때 염라대왕이 칭찬하여 말한다.


착하고 착하도다! 이제 내가 친히 부처님께 예배하고 향을 피울 수 있겠구나.

이러고서도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신 것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렇게 말하면서 우두옥졸을 시켜서 죄인을 놓아 모두 하늘에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요즘의 특별사면)


목련이 또 세존께 묻는다.

(여기서 아주 중요합니다.)

모든 죄인들은 모두 하늘에 태어났사온데 어머님은 어느 곳에 탁생되셨습니까.

(그래서 천도제는 형편 되는대로 해드리는게 좋 다는 말입니다.)

세존께서 목련에게 대답한다.

너의 어머니는 살아생전의 죄근이 깊고 무거우며, 업장이 다하지 못했으므로 대지옥에서는 나왔으나 다시 소혹암지옥으로 들어갔느니라.


모든 보살들이 재 올리고 남은 밥 한 발우를 너에게 줄 것이니 지옥 속에 가서 어머니께 드려 보아라.

목련이 밥을 얻어가지고 지옥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밥을 드리자 청제부인은 밥을 보고 탐나는 마음을 고치지 못해서 왼손으로 밥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로는 다른 지옥중생들이 오는 것을 막으면서 밥을 입속에 넣으니 전과 같이 그 밥이 변하여 모진 불길로 변해 다 타버렸다.


목련이 세존에게 지극하고 간절하게 다시 묻기를, 어떻게 하면 흑암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겠습니까.

세존이 대답한다.

너의 어머니를 흑암지옥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모든 보살들을 초청해서 대승경전을 외우고 읽어야만 흑암지옥을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에 목련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보살들을 청하여 대승경전을 외웠다.

그랬더니 목련의 어머니는 그 흑암지옥에서 나와서 또 아귀 지옥에 태어나게 되었다.


자, 오늘 지옥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이렇게 부처님의 위신력은 지옥에 가더라도 제도받을 수 있답니다.

대부분 다음날에 백중기도회향이라는 행사가 있게 되면 우리 불자들은 워찌나 계산들이 빠른지 일요법회는 생략하고 당일 날에 가지 뭐, 하고 마시는데 생각보담 많이들 오셔서 불전에 감사드렸단 말씀입니다.


요즘 서구에서는 “신이 있다, 없다”란 논쟁으로 뜨겁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세기의 성녀로 추앙을 받고 살아있는 성녀로 까지 존경을 받았던 인도 출신의 마더테레사 수녀님의 감춰진 비밀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면서부터입니다.


어찌 보면 한 인간의 내면의 고뇌를 비약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만, 그토록 신앙에 절실했고 지극했던 성녀로 추앙받았던 테레사 수녀님의 내면세계가 밝혀지면서 그런 성녀께서도 신의 존재에 대해 남모르게 고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한 인간의 모습으로도 비춰집니다.


내용인즉, 

테레사 수녀 50년간 '神의 부재'에 갈등 '신의 존재'에 대한 고뇌에 빠졌었다는 테레사 수녀의 비밀편지 고백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자 회의주의자들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고 있고, 가톨릭에서는 “의심 아닌 신앙적 번민 드러낸 것 뿐”이라고 서로 공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도 내용을 보면,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는 테레사 수녀의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번민을 고백한 비밀편지가 공개되면서 그녀의 삶과 신앙이 재조명되고 있는데, 평온하고 강한 신앙을 지닌 듯 했던 외면과 다르게 마음속으로는 무려 50년 동안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힘들어 했다는 사실이 비신자와 종교인들에게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고 AP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앞서 미 시사주간 타임 최신호는 테레사 수녀의 비밀 편지를 담은 신간 (마더 테레사, “와서 내 빛이 되라”)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10년 만에 공개된 편지 중에는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합니까? 신이 없다면 영혼도 없고, 영혼이 없다면 예수님 당신도 진실이 아닙니다.” 라며 신의 존재에 강하게 회의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비신자들과 회의주의자들에게는 테레사 수녀의 고뇌와 갈등은 종교적 믿음 자체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는데,

신의 허구에 대한 냉혹한 비판서인 <미셔너리 포지션>무신론 서적인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도 신도 인간이 만들어 낸 것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녀의 계속된 신앙고백은 자신이 빠진 함정을 더 깊게 파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가톨릭 신학자들과 테레사 수녀의 숭배자들은 이 고백이 그녀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고 그녀의 업적을 더욱 거룩한 것으로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트르담대학 신학 교수인 리차드 맥브라이언 신부“이 고백은 테레사 수녀가 신이나 인생의 궁극적 의미에 대해 전혀 의심을 품은 적 없는 석고상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고,

제임스 마틴 신부는 “우리 대부분은 성자들이 신과 끊임없이 연결돼 있으므로 그들이 행한 모든 것들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훨씬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면서 “이 책은 성자들도 우리만큼 또는 우리보다 더 힘들게 그러한 업적을 이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더 테레사”라는 책의 저자이자 테레사 수녀가 선종한 그녀를 성인으로 추앙할 것을 청원했던 장본인인 브라이언 콜로디 에이추크 신부는 “이 편지들에 담긴 깊은 의미는 테레사 수녀가 신의 존재를 의심한 것이 아니라, 신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을 슬퍼했던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세인트빈센트대의 짐 토위 총장은 “믿음을 가진 모든 이들은 의구심도 갖고 있다”면서 “테레사 수녀의 번민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믿음은 느낌이 아니라 신념이라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맨 뒤에 말처럼, 우리도 절박하기에 간절히 기도를 하면서도 가끔 씩이나 문득문득, 정말 이루어질까 하는 의심들이 드는 경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중생심이기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한 이라면 이러한 어리석은 의업으로부터 자유로우실 것입니다.


어제 법회 때 법문 내용처럼,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이던 안 믿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더욱 좋은 곳으로 가꾸어 지도록 하는 목적으로 창시됐던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가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영향을 미치려면, 모든 종교의 수행자나 성직자들이 각자 자기 종교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어떤 종교이든 종교행위의 전부를 이루는 기도라는 것은 모든 종교인 자신들의 마음 깊이 새겨진 신앙과 종교적인 신념을 자신에게 날마다 깨우쳐주는 스스로에게 참답게 살아가라는 자기 자신의 외침으로 기도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소망이나 기복,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목적으로 기도를 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이기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다겁생은 알 수도 없겠지만, 기도를 할 때,  금생만이라도 자신의 세 가지 행위들로 인해 알게 모르게 저질러진 온갖 업을 소멸하고 인과를 보다 부드럽고 가볍게 겪도록 하기 위한 참회의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소망과 기복을 위해서 하게 되면 이미 시작부터 삿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저질러온 온갖 업을 소멸하고 참회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기도는 첫 단추가 잘 끼워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시작이 있게 되면 자신이 발원하고 소망하는 것들은 자연스레 기도 속에서 성취되는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한 것들이란 말입니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큰 것은 보질 못하고 지극히 작은 것에 연연하여 똑 같은 시간에 기도를 해도 삿된 기도와 이기심으로 가득 찬 기도를 하기 때문에 마음이 열리지 못하고 지혜가 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제 9월 16일부터 제 3차 업장소멸을 위한 백일기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역시나 매월 말일에 당일치기 철야로 자비참법 3천배 기도가 있습니다.

적어도 금생에 자비참법기도를 열손가락은 넘도록 해보고서 업장소멸을 입에 올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하안거의 날이자 목련존자가 바로 백일동안 안거를 보낸 수행자들의 수행공덕의 힘을 입어 자신의 어머니의 무간지옥에 간 죄업을 씻어드리고 제도해드린 날입니다.


전번에 의왕에서 제 부모를 죽인 자식이나 양주 땅에서 일어난 제 어머니를 죽인 천하의 불효자식들을 보십시오.

그 뉴스를 듣는 순간 저는 그 부모들을 나무라고 싶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내 자식은 아니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내 손자나 그 후손에 가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과요 악연으로 인한 것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백중기도 회향에 목련경의 마무리에 들어가겠습니다.


목련이 다시 세존께 간절히 여쭙는다. 

어머니께서 아귀지옥 속에 계신지 오래 되었사오니 어머니와 함께 항하수가에 가서 물을 마시고 배를 씻어드릴까 합니다.


세존이 대답한다. (사음수 성독이요, 우음수 성유라) 모든 부처들이 물을 마시면 그것은 마치 좋은 젖과 같고, 모든 사문들이 물을 마시면 마치 단 이슬과 같고, 십선인이 물을 마시면 능히 목마름을 면할 것이나, 너의 어머니가 그 물을 마시면 그 물이 뱃속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모진 불로 변해서 창자를 태워 없애고 말 것이다.


이에 놀란 목련이 또 세존께 간절하게 묻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어머니가 아귀의 몸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 대답한다.

모든 보살을 청하여, 49등에 불을 켜며, 많은 산목숨을 놓아주고, 신번을 만들어 놓으면 너의 어머니가 이 아귀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자, 목련이 즉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보살을 청하여 49등을 켜고, 방생을 하여 많은 생명을 놓아 주며, 신번을 만들어서 어머니의 혼이 아귀의 몸을 벗어나도록 했다.


그 후, 목련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기를,

어머니께서는 아귀를 떠나 이제 어느 곳에 태어나셨습니까?

너의 어머니가 비록 아귀의 세계를 벗어나긴 했으나 지금은 왕사성에 태어나 개가 되었느니라.


목련은 이 말을 듣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으로 가서 그 개를 찾았다. 그 개는 목련을 보자 달려 나와 목련의 허리를 껴안고 애태우면서 말한다.


“내가 네 어머니이고, 너는 내 아들이다.” 목련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묻는다.

어머니께서 이제 개의 몸이 되어 고생을 하시는데, 전에 지옥에서 받으시던 고통에 비하면 어떻습니까.

개가 목련에게 말하기를, “내가 앞으로 영영 개의 몸이 되어 사람의 더러운 것을 먹을지언정 나는 지옥이란 소리도 들릴까 두렵다.”


목련은 개가 된 어머니의 혼을 보고나서 어찌할 바를 몰라 또 세존에게 간절하게 묻는다.

세존이시여, 어머니가 개 몸이 되어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개의 몸에서 벗어나겠습니까.


간절한 목련의 청에 어쩔 수 없이 세존이 대답한다.

목련아! 다만 七월 보름날에 우란분재를 베풀면 어머니가 개의 몸을 떠날 수가 있을 것이다.


목련이 또 세존에게 묻는다.

무슨 까닭에 13일, 14일은 택하지 않고 꼭 七월 十五일을 택하십니까. 


“목련아! 七월 十五일은 수행자들이 안거를 마치는 날이다. 네가 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추수하는 때에 백가지 햇과일과 백가지의 햇곡식 공양물을 그릇에 담아 공양을 올린다면 수행자들이 기뻐하면서 한곳에 모여서 너의 어머니를 건져내어 정토에 나게 할 것이다.” 하고 말해주자, 목련은 곧바로 시장에 나가 제물을 준비하여 재를 베풀어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개의 몸에서 떠나게 하였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어머니가 나아가서 五백계를 받도록 했다.

목련은 간절히 발원하기를, “원컨대 어머니는 삿된 마음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가시옵소서.” 하고 목을 놓아 통곡을 하며 기도를 하자 이러한 목련의 효심이 청제부인을 도리천궁에 태어나게 하여 모든 즐거움을 받도록 하였던 것이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부모를 위하여 이 경을 써서 지니고 읽어 외우면 三세의 부모와 七대의 죽은 조상이 곧 정토에 왕생하여 모두 해탈할 것이며, 자손은 입고 먹는 것이 제대로 되어서 장수하고 부귀를 누릴 것이다.

부처님이 설법하기를 마치자 천룡팔부와 인비인 등이 크게 기뻐하여 신심으로 받들어 행할 것을 맹세하며 예배하고 물러갔다. 하고 목련경은 끝을 맺게 됩니다.


지금 자녀를 기르고 계신 여러분들께서는 눈앞에 보이는 자식이 이런 목련과 같습니까?

아니라면,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겁 안나나요?

 

또, 여러분들께서는 목련존자처럼 자식의 도리를 다 해보셨습니까? 저는 그리 못했습니다만, 출가 수행만큼은 잘 해볼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살아가도 삼생의 부모님들과 7대의 선망조상님들이 모두 제도 받으실거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영단을 향해 기도할 때 마다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일체 영가들을 위한 기도를 한다면 짐승의 뼈 무더기를 향해 합장하고 지극하게 축원을 하셨던 부처님의 행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자녀의 눈앞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이십시오. 보이려들지 마시고 진실로 지극하게 있는 그대로 간절하게 가족들을 위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실천하십시오.

그렇게 실천하는 신행생활이 자식들에게 바로 살아가는 길을 몸으로 보여주는 교육인 것입니다.

영원한 효도는 부모와 선망조상님들을 윤회로부터 자유롭게 해드리는 것이 영원한 효도인 것입니다.

모두 성불하십시오.

 

 

 

왜 엄마 것은 없어요?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오시면

동생과 나는 오로지 장바구니에만 관심이 있었다.

"엄마 내 운동화 사왔어요?"

"다음에 꼭 사올게."

"운동화 다 떨어져서 창피하단 말이예요."

엄마의 장바구니엔 우리가 쓸 칫솔과 아버지 속옷

그리고 우리 식구가 먹을 찬거리뿐이었다.


내 나이 서른이 넘어 이제야 물어본다.

"엄마, 엄마가 쓸 것은 왜 하나도 없어요?"



- 심승현의 《파페포포 투게더》중에서 -



어머니를 생각하면 낡고 꼬질꼬질한

속옷부터 생각납니다. 비단옷을 감고 싶은 마음이

어머님인들 왜 없으셨겠습니까. 어머니가 되신 순간부터

모든 새 것, 좋은 것은 당신 것이 아니게 되었고,

어머니 몸에 걸쳐진 것은 언제나 낡고

때묻은 그 속옷뿐이었습니다.

 

 

*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듯이

이웃을 생각하는 이를 <보살>이라 합니다.  

 

 어머니와 자식관계 - 부처님은 중생제도를 그리하지요.

저기 새도 자기 새끼라면 몸을 다 바쳐 물어나립니다.

종족보존이 지상과제거늘 . .요즘은 독신들이 많으니 . . ._()_ 

가요 메드리를 듣노라니, 여러분도 6-70년대 대포집에서 놀던 생각 간절하지요?

회식날이나 군에간 친구들 보낼때 . .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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