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제로)과 불교

2010. 2. 23. 20:2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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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불교

 

 

“하나하면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서 잘잘잘

두울하면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잘잘잘

아홉하면 아버지가 장보러 간다고 잘잘잘

여얼하면 열무장수 열무를 판다고 열무사려~”

 

기억 속에 가물가물해서 어지간해서는 입에 잘 올리지도 못하는 노래지만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 하면서 자주 불렀던 노래이다.

어린이들이 숫자와 수량의 늘어남

그리고 이어진 낱말들의 뜻을 알게 하려고 되풀이해서 가르치는 노래이다.

‘달달달’이라고도 하였고 ‘잘잘잘’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잘’이나 ‘달’이 모두 숙련되어서 익숙하다는 의미이므로 같다고 보아도 된다.

 

위 노래는 우리 노래이지만, 미국에도 숫자 부르는 노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미국 노래가 더 많이 불리고 기억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노래는 바로 “한 꼬마 두 꼬마…… 열 꼬마 인디언(Ten little Indian boys)”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해 숫자를 하나씩 늘려 가며

교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편집한 경전이 빨리어로 된 것은 『앙굿따라 니까야』이고,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한역된 것은 『증일아함경』이라 한다.

 

이 경전 무리에서는 1부터 시작해서 15까지의 법수를 더해 가면서

교리의 이해를 돕는 이야기들을 묶어서

공부하는 이들이 물러서지 않고 깨달음으로 향해 가도록 한다.

그리고 그 숫자는 마음으로 인식하는 감각대상이라는 뜻에서의 법法에

‘숫자’, ‘헤아린다’, ‘살핀다’는 뜻을 가진 수數가 붙어서 법수法數라고 한다.

 

한편 ‘숫자의 비롯, 즉 가장 작은 숫자는 무엇일까?’ 하고 물으면

흔히 ‘하나’ 또는 ‘일一’이라고 답하기 쉽지만

그보다 작은 숫자인 ‘반’도 있고 그보다 더욱 작은 숫자인 ‘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영은 인도에서 발견(?)해서 세계인이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정말 꼭 필요한 숫자이다.

 

영의 발견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커다란 사건이었다.

만일 영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1에서 9까지의 숫자만으로 큰 수, 큰 돈, 많은 사람 등을 나타낼 때

아주 복잡한 방법을 써야 했을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가 쉽게 쓰고 있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나

제곱근 등도 쓰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의 모든 것을 이끌어 간다고 평가받는 컴퓨터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0은 불교에서 모든 가르침을 엮어 주는 기본 틀인 공空의 다른 표현이다.

1에서부터 시작해서 10이 될 때마다 0을 사용해

한 자리씩 올라가는 것은 참으로 편리한 규칙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은 공간적으로 텅 비었다거나

숫자적으로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된 가치가 없어서 늘 변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0과 공空을 찾아낸 이들이

불교적 소양을 가진 인도 사람이었다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불교는 숫자 개념에 있어서도 매우 과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