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로 이어지는 장례문화

2010. 3. 10. 21: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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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로 이어지는 장례문화

 

-'사업' 아닌 '포교'로 접근해야 -
- 간병부터 장례 아우르는 봉사 활성화 시급 -

죽음에의 문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두려움을 갖고 있는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불교에서 장례에 대한 인식은 아직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례문화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곳이 가톨릭이다.1985년 155만명이던 가톨릭 신자가 1995년에 515만 명으로 급증한데는 장례문화의 보급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가톨릭 성당에는 납골당을 비롯해 장례식장을 갖춘 곳도 늘어나고 있으며, 장례봉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불교의 장례 관련 활동은 미비한 실정이다. 몇몇 사찰에서 상조회를 조직해 활동하고는 있지만 극소수에 그치고 있으며, 납골당을 보유한 사찰도 손에 꼽는다. 또 3여년전부터 몇몇 사찰에서 수목장을 추진해 큰 호응을 얻고는 있지만 이 또한 "납골당이나 분묘보다는 저렴하지만, 적지않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수목장을 수입원으로 볼 것이 아니라, 포교의 일환으로 사찰 주변 나무를 활용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남정토사 주지 보광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은 "수목장을 사업이아니라 신도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업으로 접근할 경우 분양, 관리 등의 부담과 자연재해로 인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사찰에 부모님의 영가를 모심으로써 매년 수차례 찾아와 제적신도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큰 포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례문화포교를 위한 대안은 크게 두 가지. 호스피스 봉사와 장례봉사로 나뉜다. 호스피스 봉사가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장례봉사는 사후 49재까지 봉사를 의미한다. 정토마을, 광주 자비신행회 등에서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호스피스 봉사가 대표적이다.

간병활동은 장례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염불과 수계의식을 통해 편안히 죽음을 맞도록 하면 가족들의 포교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보광스님은 "간병에서 장사, 장례, 천도, 제사를 아우르는 장례포교를 해야 한다. 행복하게 죽음을 맞도록 인도하고, 장례의식을 신도들이 도우면 천도와 제사도 자연히 사찰에 의탁하게 된다"며 "반대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개종하는 경우, 그 가족과 불교의 인연은 끊어질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

장례봉사 조직으로는 상조회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가족단위로 장례를 치렀지만 핵가족화가 진행된 이후 1~2명의 자녀들이 장례를 진행하기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각종 상조회 조직이 생겨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부천 석왕사다.석왕사는 장례식장인 장례의례종합법당을 사찰 내에 마련했다. 또 '108상조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회원이 1,500여 명에 달한다. 회원들은 매달 2만원씩 총 5년간 120만원을 납부하는데, 회원에 대해서는 장의용품 일체와 비품을 대여하고, 염불 등 불교의식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상조회의 또 다른 형태는 염불봉사모임을 통해 장례를 서로 돕는 것이다. 서울 능인선원, 성남 정토사 등에서 '염불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봉사단은 장례가 발생하면 장례절차, 문상객 접대 등 모든 절차를 도와주고 스님과 신도가 번갈아가며 염불을 하고, 고인의 극락왕생을 축원하고 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장례문화학과 유재철 교수는 "임종에서 장례식, 사후 기도절차까지를 조직적으로 도울 수 있는 봉사조직을 결성해 활동하면 노인포교에 매우 큰 진전이 기대 된다"고 말했다.

장례문화는 이제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특히 종교단체에서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문화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장례문화와 신도조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노인층의 가톨릭 개종율이 매우 높다는 점을 불교계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정광님 글

 

2004년 6월호 동국 반야지 /한 보광스님 인터뷰 내용

스님께서는 일본 유학도 하셨고 정토신앙과 일본불교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일본 불교에 대해 소개를 해주십시오.

우리나라는 각 분야가 전문가를 잘 안 키우는데 일본 같은 경우에는 각 나라에 대사를 보내는 데 있어서도 대학 때부터 그 부분에 전공자를 키운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길"일본 불교 별것 아니다"1600년 전 우리가 전해준 불교라고 생각 하는 데 그때 1600년 전 우리가 전해준 불교만 가지고 일본불교는 우리만 못하다고 폄하 하는 것은 1600년 신라시대 얘기일 뿐이다.

지금1600년 전 신라시대 얘기만 가지고 자랑으로 삼고 있는데 그것은 큰 잘못이다. 교학 적으로 일본불교는 우리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앞서 있지 않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숫자적으로도 우리불교 대학인 동국대학인 동국대 같은 종합대학이 그것도 종단에서 세운 불교대학이 54개나 된다. 불교 전문학자가 3000명이나 되고 절이 10만개나 되는데 참고로 우리나라는 1만개에 불과하다.

 

스님 수는 20만인데 비해 우리는 2만 명밖에 되지 않고 국민의 95%가 불교인인데 우리는 40몇% 밖에 안 된다. 또한 사찰이 유치원 교육을 시행하는 데 온 국민이 유치원 교육을 사찰에서 받게 된다. 그러므로 전 국민의 기본교육은 절에서 받게 되는 셈이다. 또한 스님 생활이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한 달에 한번 씩은 반드시 신도 집에가서 스님이 독경을 해줘야 하는데 한 사찰에 신도가 100세대라면 하루에 3집씩 돌아야 하고 300세대라면 하루에 열 집씩 돌아야 한다.

그러므로 스님은 매일 가장 방문을 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한국 불교 스님만큼 편하게 사는 곳이 없다 일본에서는 신도들이 집에다 반드시 부처님을 모시고 산다. 일본은 불교와 신도가 하나 되어 말 그대로 생활불교가 되어 산다. 더구나 사찰이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 같은 공간 속에서 호흡 한다 그러다 보니까 일본에서는 십자가를 볼 수 없다.

일본에 기독교가 들어간 것이 400년이 되었어도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것은 일본은 정토 신앙이 깊이 확산되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물론 선종도 있고 임재종, 조동종도 있지만, 정토종이나 진언종 쪽에서 기독교 보다 더 타력적인 신앙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독교에 갈 필요를 못 느끼니까 기독교가 우리보다 일찍 들어갔음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것 이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절에 가면 깨달아야 한다, 참선해야 한다 하니까 자기 생활하고는 동 떨어진 신앙이 되다보니 종교적인 만족을 못 느끼고 부담만 느끼다 보니까 기독교로 가게 되었든 것이다.

우리는 선만 하는 아주 고급 층과 기복 불교만 하는 일반 층으로 그 중간을 메워 줄 수 있는 층이 적다. 누구든지 종교적인 심성은 다 가지고 있는 데 그 사람들이 불교에서 만족을 못 찾다보니까 기독교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일본이 미국의 영향을 아무리 받아도 우리보다 더 받았지 않은가?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엄청난 경비를 들여서 일본을 기독교화 하려고 했어도 정토종이 꽉 자리 잡고 있으니까 기독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일본은 생활구조가 묘지를 사찰에다 두고 있으므로 기독교로 가려면 묘지를 다 옮겨야 하니까 개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식구 중 한명이 설사 기독교를 했어도 죽어서는 사찰에 있는 가족묘로 와야 하니까 죽으면 자연스럽게 사찰로 오게 된다. 그러다보니 일본에서는 목사도 상가 집에 갈 때는 염주를 들고 가야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초상집엔 검은 넥타이 메고가는 예절과 똑 같은 도리다. 일행 옮김

사부대중이 모두 힘을 합하여 불교장례문화를 정착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