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선교, 이제는 그칠 때가 되었다

2010. 3. 16. 22:15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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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공격적 선교, 이제는 그칠 때가 되었다-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며칠 전 지방에 갔다가 밤늦게 영등포역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밤 12 시가 넘어 도착한 기차에서 내려 역사로 올라가는데 계단 입구부터 스피커에서 나오는 왠 노래 소리가 온 역사를 뒤덮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어느 교회에서 나온 합창단으로 역사 가운데 빈터에 플랭카드를 길게 걸어 놓고 대학생으로 보이는 십여명의 남녀가 기타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그 앞에는 수십 명의 중년 남녀들이 질서 정연하게 앉아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영등포역은 노숙자가 많은 곳이라 아마 노숙자 위무 차원으로 나온 모양으로 생각하고 처음과 달리 좋은 뜻으로 해석하려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왠지 편치 못했으니...

 

 

합창단 앞에서 같이 맞장구를 치며 노래하는 분들을 자세히 보니 모두 옷차림이 말쑥합니다. 그렇다면 노숙자들이 호응하여 앉은 것 같지는 않고, 필시 교회 신도들이 응원 차원에서 나온 것일 터.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노숙자들은 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고단한 몸을 여기저기 누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선교도 좋지만 잠 잘 시간에 이렇게 마이크로 큰 소리를 지르다니... 그 때 시각이 밤 12 시 10 분이었습니다.

 

그 며칠 전에도 영등포역을 다녀 오는데, 영등포 역사와 롯데 백화점이 맞닿아 한껏 바쁜 토요일 저녁, 십여 명의 대학생 차림의 젊은 남녀 합창단을 두고 중년의 남성 한 분이 '예수 믿으십시오'라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애타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 무더위에 정성이야 대단하지만 글쎄, 왜 저렇게들 하시는지...저렇게 하지 않으면 이 사회가 그 분들이 우려하시는대로 사탄, 악의 천지가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공격적 선교는 국내에서만의 일이 아닙니다. 주로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교도(?)의 나라를 대상으로 겉으로는 봉사라는 이름으로 물질적 도움을 주며 실상은 그 나라 문화, 역사를 부정하고 개신교의 우위를 부르짖는 한국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은 이미 유명한 일입니다. 스리랑카, 태국, 몽골...그리고 무슬림에게까지 뻗치는 이런 안하무인, 아전인수격 선교 활동은 마침내 23 명의 납치라는 비극을 불러왔다고 봅니다.

 

이럴 때면 흔히 '선교'가 아니라 '순수한 봉사활동'이라 하시는데, 그렇다면 어찌 인류애를 상징하는 그러한 봉사 활동이 거의 '이교도의 나라'에서만 행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개신교 국가 중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적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이런 선교는 제가 볼 때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 특히 제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인간의 성숙도를 평가하는데 가장 기본적 요소가 되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 유무인데, 개신교를 믿는 분들은 도무지 이런 마음을 보기가 힘들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씀이 될까요?

 

공공 장소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버젓이 하시고, 국가의 명예가 걸린 국제 대회에서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영광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기도 세레모니를 갖는 용기. 식사할 때 전혀 타인의 감정은 고려 않고 당신 식대로 올리는 식사 기도. 길가는 스님에게까지 강요하는 개종 요구. 

 

타 종교의 기적, 가르침은 모두 부정하며 당신들의 기적, 가르침은 전부 사실로 단정하며,  그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웃에게 존재하는지도 아니 하는지는 모르는 당신만의 구세주를 들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며 원하지도 않는 일방적인 사랑 강조.

 


거기다 한술 더 떠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며 부담을 주는 태도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더구나 그 기도 내용이 ' 당신을 믿지 않는 저 가엾은 어린 양을 하나님 어서 빨리 당신의 품으로 인도하소서...'라며 타인의  개종을 강요하는 기도임에야...

 

흔히 이런 개신교의 모습을 지적하면 그 분들은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부 기독교인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이러한 배타적, 공격적 선교는 일부 개신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한국 개신교가 안고 있는 공통적이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 정통이 이런 배타적, 공격적 선교입니다. 한국 개신교가 지극히 배타적이요 공격적이 아니라고 하는 분들은 아직 한국 개신교의 실체를 모르시는 '초짜(?) 크리스찬'이시거나, 아니면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정녕 '예수님을 닮은, 열린 마음의 크리스찬' 들이십니다.

 

 

그 중에서 얼마 안 되는 열린 마음의 크리스찬들은 기존 개신교의 배척과 왕따를 당하는 것이 우리나라 개신교의 현실입니다. 가깝게는  2004년 종교 자유를 요구하는 제자 편을 들었다가 해임된 대광고등학교 류 상태목사, 열린 종교를 주장하다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강남대학의 이 찬수교수,  멀리는 배타적 신학 틀을 깨고 토착적 신성을 구현하려다 감리교단서 파문 당한 변 선환목사 등이 계십니다.

 

 


공격적 선교를 하시는 개신교 분들은 또 이렇게 당신을 변호하시기도 합니다.
'다 좋은 뜰으로 좋은 일 하려다 생긴 부작용'이라고...

 


그러나 과연 '좋은 뜻 좋은 일'의 정의가 무엇일까요? 나에게 좋은 일이 좋은 일일까요, 남이 좋은 일이 정말 좋은 일일까요? 혹시 좋은 뜻, 좋은 일이라는 것이 내 만족 위주의 지극히 이기적 표현을 미화한 말은 아닐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저를 보고 불자인 보현 거사가 이제사 속내를 털어 놓고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라고 비웃으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것은 지극히 '개신교적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실지 모릅니다.  저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멀리 이국에서 납치되어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저 젊은이들이 딱하고, 그리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우리가 안쓰럽고, 공격적 선교로 마구 무너져 가는 이웃 나라들의 고운 문화, 풍습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방식의 선교를 한국 개신교들이 끝내야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말씀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정말 이제는 우리가 대립과 갈등을 버리고 화합을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얼마나 더 희생을 치르고 갈등을 겪어야 비로소 우리 모두가 웃는, 그러한 시절이 올까요?

 

 

저는 종교에 편견은 없습니다. 어찌 예수님이 이교도, 이민족을 저주하러 오시고, 어찌 부처님이 불교 믿는 이들만 제도하려 오셨겠습니까? 모든 인간이 행복하고, 일체 생명을 축복하러 오신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부 종교인들은 어찌하여 자꾸 마음을 닫아만 가는 것일까요? 닫힌 마음을 여는 것이 종교일 터인데, 오히려 종교 때문에 열린 마음도 닫아 가니...그리하여 가족 간에도 대립, 갈등이 생기게 하니, 어찌 제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비판을 하는 것은 듣는 사람뿐 아니라 하는 사람도 힘든 것입니다. 오늘 저의 말씀은 저의 허물을 무릅쓰고 드리는 고언으로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당신의 종교를 믿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가족 간에도 사탄과 마귀가 되어버리는 현실.
이제는 배타적 마음도 버리고 공격적 마음도 버리고,
넓고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공경하는 종교인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普賢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