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자기를 태워버려라_달집태우기/송강스님

2010. 3. 21. 21:47일반/생활일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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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 속에 황사가 다소 심합니다.

법우님들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가짜 자기를 태워버려라

달집태우기/송강스님

 

정월 대보름날은 동네가 하루 종일 분주했지. 매구놀이(집집마다 돌며 하는 지신밟기)도

막바지에 이르고, 달집을 만드느라 남녀노소 시끌벅적했다네.

우리 동네 달집은 에스키모 이글루 비슷했어. 솔가지를 잔뜩 꺾어다가 논 가운데 쌓아놓고는,

큰 대를 몇 개 잘라다 가운데에 턱 세운단 말씀이야.

다음엔 짚단을 엄청 많이 쌓고, 새끼로 칭칭 감아서 단단하게 반구형의 달집을 만들지.

동쪽에는 불을 넣을 수 있는 입을 하나 뻥 뚫어 놓고. “그러고 보니 어째 범부들 살림살이

만드는 것과 비슷하지 않소?”

해가 지기 시작하면 동네 사람들이 남김없이 나와서 달집 주위에 모이고,

아낙네들과 아이들 일부와 남자 몇은 뒷산에 올라 달님이 동쪽 산위로 얼굴 내밀길 기다렸어.

이윽고 뒷산 제일 높은 곳에 있던 사내의 외침이 온 동네를 울리지.

 

“달님이요!”

달집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동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동네의 어르신이 달집의 문에다

불을 넣는다는 말씀. 곧 이어 불집은 불기둥이 되고, 사람들은 소원이 적힌 종이를 던져 넣지.

그 달집이 다 사그라질 때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손을 비비며 소원을 비는 것이고.

그 사이 달은 휘영청 떠오르지.

어린 시절 매년 봐왔던 이 달집태우기는 그저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비는 행위로만 알았었지.

허참! 출가하고 한참 지나서야 그 숨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니, 쯧쯧.

 

보름달도 달집에 갇히면 빛 잃어

아집 깨트려야 지혜로워지는 것

 

출가이전부터 시작되어 참 오래 답답했던 내 존재와 교학에 대한 의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냉방의 기숙사였어. 억지로 떼를 쓰다시피 매년 혼자 남았던

겨울방학의 기숙사, 새벽 2시경 냉기를 면하려 켜놓은 석유난로의 냄새로 머리가 아파서

서쪽으로 난 창을 열었지. 뒷산은 온통 눈으로 하얗고, 하늘엔 정월 보름달이 떠 있었어.

둥글고 푸르른 한겨울의 보름달은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지.

한 시간 가량 달빛에 취했다가 문득 고개를 떨어뜨려 책상위의 법화경을 보니,

경은 사라지고 빛이 쏟아져 나오더구먼. 그때 비로소 모든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아무도 내 공부를 방해하지 않았는데, 괜스레 내 그림자에 가려 의심하며 헤맸던 것이지 뭐.

달빛은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한다네.

물론 그 지혜는 모든 이들이 본래 갖추고 있던 것이기도 하고.

나옹스님의 멋들어진 시를 소개하지.

 

 

 

격쇄허공무내외(擊碎虛空無內外)

일진불립로당당(一塵不立露堂堂)

번신직투위엄후(身直透威嚴後)

만월한광조파상(滿月寒光照破床)

 

 

‘허공을 쳐부수니 안과 밖이 따로 없어,

먼지 하나 없이 본래 모습 드러났네.

몸 한 번 뒤치니 곧바로 여래의 경지,

둥근달 차가운 빛 부서진 평상 비추네.’

 

 

달집태우기는 아마도 고승이나 매우 지혜로운 이가 창안해 내었을걸.

본래 각자에게 부족함이 없는 보름달 같은 지혜가 있건만, ‘나’라는 집에다

가두어 버림으로 해서 그 빛을 잃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 달을 가두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달집(我執)을 태워 달을 자유롭게

해야 하지 않겠나? 허공처럼 걸림 없는 지혜를 자유자재로 발휘하려면

모름지기 가짜 자기를 태워버려야 할 것이야.

달은 본래 둥글지만 그림자에 가려서 때론 작게 보이기도 하고,

그림자에 가리지 않으면 크게도 보이지. 그 달의 그림자는 바로 우리가

서있는 이 지구가 만들어 낸 것이고. 우리의 본성도 본디 이지러짐 없지만

아집에 의해 많이 가렸으면 어리석다고 하고, 덜 가리면 지혜롭다고 하며,

완전히 벗어나면 깨달았다고 표현할 뿐이지.

 

 

[명상음악] 슬픈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