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정 대원각(현재의 길상사)을 시주한 길상화(김영한) 보살이
시인 백석의 연인 “자야”임을 알게 되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쭉쭉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시 감상
북극에서는 눈이 펄펄 내리지 않고 푹푹 내려 쌓인다.
어느 눈 내리는 밤, 소주를 마시면서 한 사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기다린다.
이 이국 이름의 여인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이미 활달하고
천진난만한 귀여운 여인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 -오드리 헵번- 나타샤를 알게 된 안드레이가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면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충전하는 장면 역시, 이 시편 속의 사내와
나타샤위로 오버랩된다.
이제 백석이 남긴 명편으로 인해 '나타샤'는 이상화의 '마돈나'와 함께
모든 가난한 청텬으로 하여금 낭만적 사랑의 도피행을 꿈꾸게하는 견고한
아이콘이 되었다.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출출이(뱁새)만 외로이 우는 마가리(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려는 사내의 의지에 나타샤가 적극적인 호흥을 한다.
그녀는 사내의 귀에 대고 자신들의 사랑이 세상에 져서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악한 세상을 거부하는 적극적 행위라고 속삭인다.
그때 비로소 우주의 화음처럼 눈은 폭폭 내려 쌍이고, 사내와 나타샤는
사랑을 하고, 눈처럼 새하얀 '흰당나귀'도 '응앙응앙' 울음으로 和唱을 한다.
백석은 <통영> 연작을 통해 '손방아만 찧는 내사람'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을
호소했고,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바다)만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그렇게 언제나 고운 사람을 사랑했던 청년 백석의 사랑은 이토록 짙은
몽상의 분위기에 감싸인 채 우리의 기억 속으로 푹푹 내려 쌓이고 있다.
감상 :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