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아침의 명상

2010. 3. 24. 21:04일반/생활일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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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명상
      
    비굴 
    
    奔走權貴之家, 入室蛇行, 
    분주권귀지가, 입실사행,
    出門虎視, 豈不哀哉! 《述哀情》
    출문호시, 기불애재! 
    권세 높은 이의 집으로 뻔질나게 달려가 
    들어갈 때는 뱀처럼 기어 들어가서는, 
    문을 나설 때는 
    범처럼 사납게 째려보며 나오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굽신거리며 비굴한 아첨을 일삼던 자가 
    그 집 문을 나설 때는 여봐란 듯이 거들먹거리니 
    그 꼴이 내눈에는 서글프게만 뵌다. 
    그런 자일수록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는 
    자기가 굽신거렸던 그 이상으로 함부로 행동한다
    자료출처 鄭 珉 한문학

    或默不默處(혹묵부묵처) 침묵해선 안될 데서 입을 다물고, 或笑不笑處(혹소부소처) 웃지 말아야 할 곳에서 웃음을 짓네 침묵해야 할 곳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웃어야 할 자리에선 공연히 성을 낸다 목청을 높여야 할 데서는 짹소리도 못한다 자리도 못 가리고 헤픈 웃음을 짓는다 원효 큰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難忍能忍, 可言不言(난인능인,가언부언)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고, 말할 수 있는데도 말하지 않는다 아첨을 위한 인내가 아니다 굴종을 위한 침묵이 아니다 침묵에도 등급이 있고 웃음에도 수준이 있다 제작:왕언니
     
     

    * 요정 대원각(현재의 길상사)을 시주한 길상화(김영한) 보살이

    시인 백석의 연인 “자야”임을 알게 되었다.

    길상화 보살은 시주금 (당시의 시가 1,000억 원) 이 아깝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것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했다"  한다.  

    그녀는 말년의 회고록에서 백석이 쓴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에서의

    그리움의 대상이 바로 자기라고 밝혔다고 한다.


    현 재의 길상사는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자리라 한다.

    <김영한> 이라는 여인이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고

    대원각(현재의 길상사)을 시주 하겠다고  법정스님께 부탁 했다고 한다.

    스님께서 몇년에 걸처 거절하다가  결국에는  승낙 하셨다고 한다.

    김영한 할머니는 길상사에서 계를 받고 스님께서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셨다고 한다.

    길상사에 길상화 보살님의 조그마한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아직 가보지 못해 확인은 못했지만 한번 길상사를 참배하고 싶다

     

    - 백장산> 님이 올린 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쭉쭉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시 감상 
     
    북극에서는 눈이 펄펄 내리지 않고 푹푹 내려 쌓인다.
    어느 눈 내리는 밤, 소주를 마시면서 한 사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기다린다.
    이 이국 이름의 여인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이미 활달하고
    천진난만한 귀여운 여인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 -오드리 헵번-  나타샤를 알게 된 안드레이가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면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충전하는 장면 역시, 이 시편 속의 사내와
    나타샤위로 오버랩된다.
     
    이제 백석이 남긴 명편으로 인해 '나타샤'는 이상화의 '마돈나'와 함께 
    모든 가난한 청텬으로 하여금 낭만적 사랑의 도피행을 꿈꾸게하는 견고한
    아이콘이 되었다.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출출이(뱁새)만 외로이 우는 마가리(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려는 사내의 의지에 나타샤가 적극적인 호흥을 한다.
    그녀는 사내의 귀에 대고 자신들의 사랑이 세상에 져서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악한 세상을 거부하는 적극적 행위라고 속삭인다.
     
    그때 비로소 우주의 화음처럼 눈은 폭폭 내려 쌍이고, 사내와 나타샤는
    사랑을 하고, 눈처럼 새하얀 '흰당나귀'도 '응앙응앙' 울음으로 和唱을 한다.
    백석은 <통영> 연작을 통해 '손방아만 찧는 내사람'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을
    호소했고,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바다)만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그렇게 언제나 고운 사람을 사랑했던 청년 백석의 사랑은 이토록 짙은
    몽상의 분위기에 감싸인 채 우리의 기억 속으로 푹푹 내려 쌓이고 있다.        
     
                    감상 :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