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체계 2)수행자의 자세

2010. 4. 14. 20:0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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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수행자의 자세


  ①자기를 변화시킨다

  수행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를 변화시켜야 한다. 자기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을 안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자기는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권한다한들 누가 그 말을 믿고 따르겠는가? 그러므로 먼저 자기를 이롭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가? 마음이다. 탐욕으로 물들고 성냄으로 물들고 어리석음으로 물들어 있는 마음을 본래의 청정심으로 회복해야 한다.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은 더 이상 끝없는 욕망의 굴레에서 괴로워하지 말고 욕망과 불행의 실체를 똑똑히 인식하고 소욕과 지족의 생활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삼보에 의지하는 것 말고 달리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변하기 쉬운 존재이며 항상하거나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염세주의자가 되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허송세월을 보내라는 것은 아니다. 허무주의자가 되어 세상을 등지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 욕망의 뿌리를 알고 우리 고통의 근원을 알아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해탈의 삶을 살아보라는 것이다. 그럴려면 먼저 바른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닌지 헛된 욕망에 기초한 것은 아니지를 살펴, 마음을 비우고 세상의 이익과 안락을 향한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좋은 목표란 그 결과 뿐만아니라 과정도 좋은 것이니 결과에 대해서는 연연할 필요가 없다. 바른 목표와 최선을 다한 노력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자유로워운 삶을 산다면 범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건데 욕망과 잘못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그렇게 함으로써 삶은 행복과 기쁨으로 넘치며 활기와 밝음이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러한 삶을 위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자의 첫 번째 자세로서 가치관의 변화, 사고 방식의 전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전환을 가져온 뒤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자기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격개조, 습관 고치기 등이 자기변화의 실제적인 내용이 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중생업에 의해 여러 가지 습관이 몸과 마음에 베어있다. 그리고 그 습관대로 아무런 반성없이 살아간다. 모난 성격, 화를 잘 내는 성격, 급한 성격, 이기적인 성격 등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해치게 되고,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향한 인류의 보편적 희망을 등진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먼저 자기를 변화시키고자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에 대해 잘 살피고 있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관심은 늘 밖을 향하여 치달려 갔다. 이제는 안으로 돌려 자신을 살피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수행자의 첫 번째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②항상 도를 생각한다

  언제나 보리심을 잃지 말고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던 생각을 거기에 두는 것이다. 이를테면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면서 비우고 버리는 공덕을 생각하며 이같이 언제나 비우고 버릴 것을 바라고, 세수를 할 때에는 번뇌의 때도 이같이 씻어지기를 바라며, 반듯한 길을 갈때에는 중생들이 마음이 곧고 발라 몸과 입에 조금도 굽음이 없으면 하고 바라고, 험한 길을 갈 때에는 중생들이 나쁜 길을 모두 버리고 그릇된 소견을 다 없앴으면 하고 바란다. <화엄경 정행품>에서는 언제나 도를 생각함에 각 각의 때와 장소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잘 제시되어 있다. 이와같이 언제 어디서나 도를 생각해서 잊지 말아야 한다.


  ③사람 몸 받기 어렵다

  <비유경>에 이르기를 “한 비구가 있었는데 다만 배부르게 먹고 방안에서 문을 걸고 몸의 편안함을 즐기며 잠만 자다가 그 뒤 7일 후에는 목숨이 마치려 하매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그 비구에게 나아가 말씀하셨다. ‘돌아보니 그대는 유위불 때에 일찍이 출가는 하였으나 경계(經戒)는 염하지 않고 다만 배부르게 먹고 잠자기만 일삼더니 그 뒤 목숨이 마치매 혼신이 지네가 되어 5만 세를 지났고, 목숨이 다하여는 다시 물속의 고동 조개와 나뭇 속의 좀벌레 등이 되면서 각각 5만 세 동안씩을 지났었다. 이 네 종류의 벌레들은 어둠 속에 살면서 몸을 탐하고 즐거운 곳만 찾아 애착하나니, 오직 어두운 곳으로만 즐겨 찾아 집을 삼는지라 밝은 곳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한 번 잠들면 백 세가 되어야 겨우 한 번 잠을 깬다. 그래서 죄의 그물에 얽매여 있어도 벗어남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는 이제야 비로소 죄업을 다 마치고 겨우 사람 몸을 받아 사문이 되었거늘 어찌 다시 잠만 자며 싫어할 줄 모르는가’ 그 말씀을 들은 비구는 부끄럽고 두려워 스스로를 꾸짖으매 그로해서 오개가 곧 제거되고 드디어 아라한과를 이룬 것이다” 하였다.(<만선동귀집> 제3장)


  이렇듯 사람 몸 받기 어려우니 부디 사람 몸 받았을 때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떤 사람은 이번 생에는 이 정도만 하고 다음 생에 성불할 수 있게 공덕이나 쌓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어떻게 다음생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번 생에 깨달아서 해탈하지 않으면 윤회로부터 벗어날 길은 요원한 것이다. 또한 이번 생에 반드시 부처가 되겠다는 자세로 할 때만 게으름과 무수한 장애를 극복하고 전일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다.


  ④소욕과 지족

  수행은 실제 생활의 문제이다. 실생활에서 더 평화롭고 더 자유롭고 더 자비롭고 더 기쁘게 산다면 수행을 성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절제와 만족의 생활이 필요하다. 욕망은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욕망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참삶을 살아보자. <유교경>에서 부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하는 것이 많은 까닭으로 고뇌도 많거니와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하고자함이 없어 근심 걱정이 없음을 알아야 된다. 오로지 소욕(少欲)하기 위해서도 오히려 마땅히 닦아야 하거늘 하물며 소욕이 모든 공덕을 낳게 함에 있어서랴. 욕심이 적은 사람은 아첨으로써 남의 마음을 사려고 하지 않고, 모든 감관에 이끌리지 않는다.

  소욕을 행하는 사람은 마음이 평안하여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고, 하는 일에 여유가 있어 언제나 모자람이 없다. 이렇게 욕심이 적은 사람은 열반의 경지에 들게 되는데, 이것을 「욕심이 적음」(少欲)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만약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마땅히 「만족할 줄 아는」 것에 대하여 관찰해 보라. 만족함을 아는 법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한 곳이다. 넉넉히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오히려 편안하고 즐겁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록 천당에 있을지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비록 부유한듯하나 가난하거니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가난한듯 하나 부유하다. 만족을 모르는 자는 항상 오욕에 이끌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불쌍하게 여기는 바가 된다. 이것을 만족할 줄 앎(知足)이라 한다. 


  ⑤깨어 있는 생활

  이어서 수행생활의 보다 구체적인 실천법들을 <유교경>을 인용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스승이 제자들을 위해 마직막 남긴 간절한 뜻을 깊이 헤아려 받들어 지키기 바란다.


방일을 다스리는 법

  마음을 방일시켜 오욕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 비유를 들자면 소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쥐고 소를 주시하면서 날뛰는 소로 하여금 남의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만일 오근(五根:눈, 귀, 코, 혀, 몸)을 제멋대로 놓아두면 오욕으로 뿐만 아니라 갈려고 하는 곳이 끝이 없어서 제어할 수 없다. 또한 사나운 말과 같아서 재갈을 채우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끌어다 흙구덩이에 처박히게 할 것이다. 도둑의 침해를 당하는 것은 그 괴로움이 일생(一生)에 그치지만 오근이라는 도적의 화는 그 재앙이 여러 생에 미치어, 그 피해가 심히 무겁다. 마땅히 삼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오근을 제어하여 따르지 않고, 그것을 잡아두기를 마치 도둑을 잡는 것과 같이하여 방일하지 않게 한다. 가령 방일하게 하더라도 모두 또한 오래지 않고 그것이 마멸(磨滅)함을 볼 것이다.       

  이 五根은 마음이 그 주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마음을 잘 제지해야 된다. 마음이 두렵기는 독사나 악수(惡獸), 원적(怨賊)보다 심해서 큰 불이 넘쳐 번지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음식 먹는 법

  모든 음식을 받을 때에는 마땅히 약을 먹는 듯이 하고,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마음을 더하고 덜하지 말며, 몸을 지탱하고, 주리고 목마름을 없애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비유를 들자면 지혜 있는 자가 소의 힘이 감당할 수 있는 바가 많고 적음을 헤아려 소의 한계를 지나치게 하여 그 힘을 다 없애지 않게 하는 것과 같다.   


게으름을 다스리는 법

  낮에는 부지런한 마음으로 착한 법을 닦아 익혀서, 때(時期)를 잃지 않게 하며, 초저녁과 새벽에도 또한 공부를 폐하지 말며, 한 밤중에도 경전을 읽어서 스스로 소식이 있어야 한다. 수면을 인연하여 일생을 아무 소득없이 헛되이 보내지 말라. 마땅히 무상의 불이 모든 세간을 태우고 있음을 잊지 말고 생각하여 조속히 자기를 구제할 것이요, 부디 잠만 자지 말라. 모든 번뇌의 도적은 항상 사람을 엿보아 죽이는 것이 원수보다 심하다. 어찌 잠만 자고 스스로 경책하여 깨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번뇌의 독사가 너의 마음에 잠자고 있으니, 비유하자면 검은 뱀이 너의 방에 잠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마땅히 지계의 칼로 빨리 물리쳐 없애야 된다. 잠자는 뱀이 이미 나간 뒤에야 비로소 편안히 잠잘 수 있는 것과 같다. 독사가 나가지 않은 데도 잠자고 있는 이는 부끄러워 함이 없는 사람이니, 부끄럼의 옷은 모든 장엄 가운데 가장 최고이다. 부끄럼은 마치 철로 만든 갈고리와 같아서 능히 사람의 법답지 않는 것을 제어한다. 그러므로 항상 부끄러워할 줄 알아서 잠시라도 폐지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떠나면 모든 공덕을 잃어버린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착한 법이 있거니와 만약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모든 금수와 더불어 다를 바가 없다.


성냄을 다스리는 법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너의 사지 마디마디를 끊는다 해도, 스스로 마음을 거두어서 성을 내어 한을 품지 말라. 또 입을 보호하여 나쁜 말을 하지말라. 만약 성내는 마음을 제멋대로 놓아두면 스스로가 도를 장애하여 공덕의 이익을 잃고 만다. 참는 것이 덕이 되는 것은 계를 가지거나 고행하는 것으로도 능히 미칠 수가 없다. 능히 참음을 행하는 자는 곧 힘 있는 대인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만약 더러운 꾸지람의 독을 참고 받아들이기를 마치 감로수를 마시듯이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에 들어간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냄의 해는 모든 선법을 파괴하며, 좋은 명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금세와 후세의 사람들이 기쁘게 보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성내는 마음은 맹렬히 타오르는 불보다 심하다. 항상 막고 보호하여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된다. 공덕을 겁탈하는 도적은 성냄보다 앞서가는 것이 없다.


아첨을 다스리는 법

  아첨하는 마음은 도와 더불어 서로 어긋난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을 정직하고 질박하게 해야 된다. 아첨은 단지 속임수이니, 도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올바르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음을 단정히 하여 질박하고 정직함을 근본으로 해야 된다.  


적정원리(寂靜遠離)

  적정무위(寂靜無爲)의 안락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안팎의 심란(心亂)과 시끄러움을 떠나 혼자서 한가한 곳에 있어야 한다. 세간 일에 얽매이고 집착하여 여러가지 괴로움에 빠지는 것은 마치 늙은 코끼리가 진흙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멀리 떠남(遠離)이라 한다.  


정진

  만일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비유컨대 작은 물방울도 쉬지 않고 떨어지면 돌을 뚫는 것과 같다. 만약 수행인의 마음이 게을러 정진을 쉬게 되면, 마치 나무를 비벼 불씨를 얻으려 할 때 나무가 뜨거워지기도 전에 그만두는 것과 같다. 비록 아무리 불씨를 얻으려고 하더라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정진(精進)이라 한다.


선정

  만일 마음을 거두면 마음은 곧 定의 상태를 이룰 것이다. 마음이 평정상태(定)로 있는 까닭에 세간의 생멸하는 존재 양상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항상 모든 선정을 부지런히 닦아 익혀야 한다. 만약 선정을 이루면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물을 아끼는 집에서 둑이나 못을 잘 관리하는 것과 같이, 수행자도 또한 그러하여 지혜의 물을 잘 보존하기위해 선정(禪定)을 잘 닦고 그 물이 새지 않도록 한다. 이것을 「정(定)」이라고 한다.  

지혜

  지혜가 있으면 탐착이 없어지는 것이니, 항상 스스로 성찰하여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법 중에서 능히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수행자도 아니며, 또 재가신자도 아니므로 무엇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 진실한 지혜는 곧 노병사(老病死)의 바다를 건너는 견고한 배이고, 무명의 어두움을 밝히는 크나큰 등불이며, 모든 병든 자의 좋은 약이고, 번뇌의 나무를 베는 예리한 도끼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문·사·수(聞․思․修)의 세가지 지혜로써 자신을 더욱 증익(增益)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혜의 비춤을 가졌다면, 비록 그것이 육안이라도 그는 밝게 보는 사람이다. 이것을 「지혜」라고 한다.   


희론하지 않음

 여러가지로 무익한 희론(戱論)을 일삼는다면 그 마음은 산란해 진다. 만일 너희들이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오직 희론으로부터 오는 환난을 잘 멸해야 한다. 이것을 「희론하지 않음」이라고 한다.


  모든 공덕에 항상 한 마음으로써 모든 방일을 버리기를 마치 원수인 도적을 여의듯해야 한다. 크게 자비로운 세존이 설하신 바의 이익은 모두 이미 극진한 것이니, 너희들은 오로지 부지런히 그것을 행하라. 혹 산간이나, 혹은 비어 있는 습하고 풀이 무성한 곳이나, 혹은 나무 밑에서나, 한가하고 고요한 방일지라도 받은 바의 법을 생각하여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며, 항상 스스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닦아야 한다. 한 일도 없이 헛되이 죽으면 뒤에 후회함이 있을 것이다. 나는 마치 훌륭한 의사와 같이 병을 알아 약을 베푸나니, 복용하고 복용하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또 나는 잘 인도하는 길잡이와 같아서 사람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다. 

여기에 있는 새는 박새과의 박새입니다.

 

 

 

이새는 직박구리 새입니다. 

 

직박구리가 나무 열매를 따먹는 모습 

 

 

 

이새는 곤줄박이 라는 새입니다.

얼마전에  이 새의 먹이먹는 모습을  담은 것이 올린적이 있습니다.

날개짓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새는  동박새 입니다.

모양이 참새 같이 작고  노란색을 하여 매우 예쁜새입니다.

눈 주위에 흰색의 둥근 줄이 있어서 더욱 잘 나타납니다.   

 

  

 

 

이새는 매우 귀한 새로 상모솔새라는 새입니다.

침엽수나무에서 먹이를 찾아 먹으며

머리부분에 노란줄이 있어서 멋을 더하고 있습니다. 

 

 

 

박새 한마리가   겁도 없이 망원렌즈위에 앉아 먹이를 달라고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