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과 깨달음

2010. 5. 12. 19:3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오매일여

728x90
어리석음과 깨달음

 

‘그녀’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네티즌이 있었다.

 ‘그녀’는 온라인에서도 사람들을 만났지만 오프라인에서 더 많이 만났다.

그녀는 아주 순진하게 웃으면서 말수가 아주 적어서

사람들 틈에 섞여 있어도 그녀가 거기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 앞에 서면 신들린 사람처럼 신명나게 웃으며,

온몸이 마디마디 떨어진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율동과 함께

노래와 이야기로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러던 그녀가 설이 돌아오니 절에 와서 차례를 지내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했더니 맑은 모습으로 절에 와서 조상님들께 찻잔을 올리며 불교식으로 합동 차례를 지내고 갔다.

 

한 사람의 캐릭터 속에는 아주 다른 요소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똑같은 모습으로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는가?

그런 이야기가 경전 속에도 많이 나온다.

그 가운데 으뜸은 『열반경』에 나오는 2녀二女 이야기이다.

 

어느 집에 길손이 찾아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주인이 나가 보니

아주 아리따우며 잘 차려입은 여인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했는데,

주인은 마음이 흡족하여 이름과 하는 일을 물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이름은 공덕천이요,

이르는 곳마다 가지가지 금은보화가 넘치게 하고,

그것으로 그 집을 위해 공양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했다.

주인은 공덕천을 기쁘게 맞이하며 맘 놓고 쉬어 가라 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 보니,

이번에는 아주 못 생기고 차림이 더러운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주인은 좋지 않은 마음으로 누구이며 뭐 하는 사람인지 물었다.

그녀는 흑암녀로 가는 곳마다 집안에 있는 재물을

칼로 물건을 베어내듯 없어지게 하는 일을 한다며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했다.

주인은 절대로 재워 줄 수 없다며 물러가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녀가 말하기를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오.

그대의 집 안에서 공양하고 있는 여자는 나의 언니로

우리 둘은 항상 같이 다닌답니다.

받아들이면 같이 있지만 하나라도 쫓아내면 같이 물러가는 것을 모르다니…….” 하였다.

 

주인이 깜짝 놀라서 집 안으로 들어가 예쁜 여인에게 그에 대해 물으니

밖에 있는 흑암녀는 친동생이며 그 말은 정말이라고 했다.

자, 그대가 여자를 만난 주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절 아래 동네에 신심이 장한 부부가 살았다.

그들에게는 장성한 딸이 하나 있었는데

부모를 따라 절에 다니다 젊은 스님을 마음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무심한 스님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고

상심한 그녀는 심화가 차서 죽어 버렸다.

그녀가 죽자 스님이 사는 절 뜨락에 이름 모를 꽃이 피었는데,

묘하게도 예쁜 꽃이 꽃잎만 쏘옥 올라와 자태를 한껏 뽐내다 시들고 나면

그제서야 잎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상사화相思花라고 불렀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는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전에 담긴 이야기는 실제 우리들 삶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중생들이 그것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두 여자의 비유를 들어 깨우쳐 주신 것이다.

우리 중생이 어리석어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지만

실제로는 삶과 죽음이 손바닥과 손등처럼 늘 같이 있는 것이다.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음 또한 삶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떨어져 있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이 같이 있다고는 하나

동시에 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빛과 어둠은 같은 모습으로 동시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빛’과 ‘어둠’은 실체가 있는 양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빛이 없는 상태를 우리가 어둠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이 실체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천 년 동안 어두웠던 동굴에 불을 밝히면

입구부터 서서히 밝아져 중간 지점에 그 밝음이 이르고

나중에 가서야 안쪽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

불을 밝히는 순간 한꺼번에 밝아짐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불이 꺼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이 밀려오는 게 아니라 어둠은 이미 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사화의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듯이

빛과 어둠은 서로 만나지 못하며,

어리석음과 깨달음은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서로 무관하지 않고 그물망과도 같은 관련성이 있다.

 

 

  수선화

 

 

 

수   선   화

                               - 김동명 詩 김동진 曲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날으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부칠곳 없는 정열을 가슴에 깊이 감추고

찬바람에 쓸쓸히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 또한 나의 작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수선화 - 소프라노 국영순

 

  

 

 

 

웨체스터 올드 타이머 소프라노 국영순

  

“제대로 된 합창단 만들고 싶어”

뉴욕 한인사회의 고달픈 이민생활을 달래주던 소프라노 국영순 씨. ‘야채가게’ 또는 ‘살라드 바’가 뉴욕 한인들의 대명사였던 시절, 국영순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던 잊을 수 없는 성악가이다.

한양대학과 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김자경 오페라단 멤버로 국립교향악단과 연주를 하며 이미 한국에서 오페라 가수의 자리를 굳혔던 국 씨는 전액 장학금으로 맨해튼 마네스 음대로 유학을 왔다.
요즈음은 유학생 뿐 아니라 한인 2세들까지 수많은 음악도가 뉴욕에 몰려들고 있지만 1980년대 만해도 어렵게 유학 온 몇 몇 한인 음악가들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그는 뉴욕 한인사회 뿐 아니라 뉴욕 음악계의 오페라 가수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갔었다.
에이버리 피셔 홀 등 뉴욕 굴지의 뮤직 홀에서 연주를 했으며, 마담 버터플라이에서는 초초산 역을 하는 등 주로 오페라의 프리마도나 역을 맡으며 40개가 넘는 연주를 했다고 한다.
국영순 씨는 결혼 후 웨체스터에 거주하며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연히 음악계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듯 했다.
“그 당시 저와 함께 활동하던 한국 음악인들은 거의 다 귀국을 해서 한국에서 연주활동을 하면서 또한 대학에서 가르치고들 있답니다.”며
다소 아쉬움을 보이는 국영순 씨는 결혼을 하고 이곳에서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왔다.
한때 한국에 가서 오페라의 유관순 역을 맡기도 했지만 주로 오페라 보다는 컨서트에 주력하며, 요즈음도 크고 작은 한인들의 음악 행사 또는 자선 공연 등에 출연을 하고 있다.


현재는 웨체스터 뮤직 컨서바토리(Music Conservatory of Westchester)에서 음성 트레이닝, 그리고 뉴욕신학교(NYTS)에서 찬송가를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뉴저지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에서 지휘를 맡고 있다.

지난달 덴버에 있는 한국학교 행사에 초대되어 갔다 왔다며, 한국말 교육에 열심을 내는 그곳 한인들에게서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 웨체스터의 한인 사회가 늘어나는 추세와 더불어 스카스데일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국영순 씨는 주변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합창단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고 있다고. 각 파트별로 성악을 아는 몇 명을 위시해 20명만 모일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라면서 “이왕에 시작한다면 그저 여가선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합창단을 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히는 그가 앞으로 웨체스터 한인 커뮤니티의 문화 예술을 이끌어갈 주요 인사임에 틀림이 없다.
2년 전, 다 준비되었던 독창회가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해 무산된 이후 아직은 독창회를 열 계획을 발표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그를 사랑하는 음악 애호가들 앞에 서는 국영순 씨를 기대해본다.

입력일자: 한국일보 2009-11-23 (월)  

 
 
 


스카스데일 올드 타이머 소프라노 국영순씨.

 

 

 

수선화

 

수선화

 

꽃말 : 고결, 자만
청아한 모습과 그윽한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에 얽힌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미소년 나르시소스는 어떤 요정의 유혹에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를 시기한 복수의 여신이 나르시소스를 자기 자신만 사랑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 때부터 그는 샘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졌고,

결국 사랑을 쫓아 샘안에 몸을 던지고 만다.

그가 죽은 후에 샘주변에는 나르시소스의 혼이 한 송이 수선화로 피어났다고 한다.

때문에 '자만', '자존심'등의 꽃말이 붙어 있지만 '고결'한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