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도의 갈래와 방법

2010. 5. 20. 19:5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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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도의 갈래와 방법


 1)일반적인 기도의 순서와 방법


  아래의 과정은 수행의 예비과정으로 일상적으로 행해야할 공양과 예경, 참회, 발원 등이 함께 있다. 앞에서 다룬 내용들이므로 간략히 하겠다.


  ①준비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또한 기도의 기간을 먼저 정하여 그 기간동안에는 8재계를 지키고 보리심을 발하며, 목욕을 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그리고 한 번 기간을 정했으면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가능한그 기간을 채우는 것이 기도 성취에 큰 힘이 된다. 기도에 앞서 도량을 청소하고 결계라 하여 물을 뿌리거나 금을 긋는 등 도량의 한계를 정하고 청정히 하는데 이를 대신해서 사방찬과 도량찬의 게송을 외우고 정구업진언이나 정삼업진언을 외운다. 천수경의 경우에는 경 안에 이미 기도의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으므로 천수경 독송만으로 기도를 끝마칠 수 있다.


  ②공양

  기도를 시작할 때 먼저 향과 초, 차(茶) 또는 청수로 공양한다. 그 의미는 앞서 말한 것과 같다. 향을 올리고 오분향례를 올리면 된다. 특히 몸이 아픈 사람은 청수를 올리고 기도를 마친 후 그 물을 마시면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기도의 경우에도 청수를 함께 나누어 마시면 맑은 기운이 몸에 퍼져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가족에 대한 축원을 한 경우 청수를 마시면 소원성취에 대한 감응도 빠르게 나타난다.


  ③예경

  먼저 불보살님의 자비가 이미 이 우주에 가득차 있으며 이 몸에 내재되어 있음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동안 오만하고 어리석었던 자신에 대해 참회하고 나의 본성이 불보살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와 남의 분별이 없이 모두 하나인 그 자리에 예경하는 것이다. 시간이 허락하면 예불문에 따라 예불을 드리고 안되면 삼배를 정성스럽게 드린다. 예경은 예배와 찬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법회 때 삼귀의를 하고 찬불가를 부르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예배는 지극한 마음과 정성어린 동작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불교의 예배법은 나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오체투지로써 근본 정신은 자기를 낮추고 부처님을 받드는 것이다. 오체투지란 몸의 다섯 곳을 바닥에 닿게 하는 것으로 양팔꿈치와 양무릎 그리고 이마를 땅에 대는 것이다. 손은 합장하고 가슴에 모아 반듯이 선 자세에서 허리를 똑바로 한 채 무릎을 굽혀 앉은 뒤 왼손을 가슴에 가볍게 대고, 오른손을 먼저 바닥에 내리고 왼손을 내려 바닥에 닿게 하면서 고개와 허리를 자연스럽게 굽혀 이마가 땅에 닿을 때까지 숙인다. 이때 손바닥을 뒤집어 귀 높이로 올려 부처님을 떠받드는 모양을 한다. 다시 합장하고 천천히 일어선다. 이때 마음을 모아 몸이 흐트러지지 않게 천천히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아무렇게나 하지 않도록 한다. 보통은 삼배를 하는데 108배, 1080배, 3천배 등 여러번 거듭하는 경우에도 빨리 하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하는 것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는 엎드린 상태에서 합장하고 이마에 대고 다시 한번 간절한 마음을 표한다.

  예배는 그 자체로 훌륭한 수행법이 되므로 절수행은 재가불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수행법이다. 예배의 의미는 앞의 총설편에서 말한 바와 같다. 몸을 굽혀 가장 낮은 자세를 갖추고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고 찬탄함으로써 예배는 몸과 마음과 뜻을 맑히는 기능을 하며, 특히 아만이 높은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 또한  몸과 마음이 태만해지고 감각적 욕망이 치성해질 때 절수행은 큰 도움이 된다. 108배, 1080배. 3천배 등 많은 절을 할 때, 힘들고, 그만두고 슆은 고비가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고 계속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욕망을 조복받는 큰 힘이 있다. 그리고 절을 할 때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면 나중에는 절이 저절로 되는데 이때 무념무상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 때가 절수행의 결정을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이렇게 절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하고 의문을 가지면서 절을 한다면 더욱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영명연수선사는 예배의 공덕과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보현관경>에는 이르기를 “만일 어떤 이가 있어 주야로 언제나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대승의 경전을 읽으며 또한 第一義의 매우 깊은 空法을 한 순간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실로 헤아릴 수 없는 겁의 생사죄를 멸제할 것이다. 이와 같이 법답게 수행하는 이는 참으로 불자며 諸佛로 좇아 난지라 시방의 부처님과 모든 보살이 그의 화상이 되므로 이를 이름하여 ‘보살계를 구족한 자’라 하리니, 구태여 갈마를 애써 구하지 않아도 자연히 성취해서 마땅히 일체 인천의 공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업보차별경>에 이르기를 “부처님 전에 한 번 만이라도 예배하면 대번에 그 무릎 아래로부터 金剛際에 이르기까지 한 티끌마다 한 전륜왕위가 되어서 열 가지의 뛰어난 공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그 열 가지의 공덕이란 이른바 妙色身을 얻는 것, 말을 냄에 사람들이 다 믿는 것, 무리에 처하여 두렵지 않는 것, 온갖 사람들이 다 가까이 따르는 것, 하늘들이 우러러 공경하는 것, 큰 福報를 갖추는 것, 命을 마친 뒤엔 왕생하는 것, 그리고 속히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하였다.

  또 문수보살은 이르기를 “마음이 생멸하지 않으므로 공경히 예배함에도 觀할 바가 없나니, 오직 안으로는 평등을 행하고 밖으로 공경함을 닦아서 안과 밖이 함께 冥合하는 것이 곧 평등례인 것이다” 하였다.<만선동귀집 제2장>


  ④발원

  기도를 시작할 때 이미 내가 왜 기도를 하는 가가 정해지기 때문에 사실은 별도의 발원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기도가 의지를 강화하고 어떤 원을 성취해가는 힘을 기르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발원은 매우 중요하다. 발원은 기원과 다르다. 기원은 바라는 것에 그치지만 발원은 그것을 이루겠다는 주체적인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즉, 발원은 내가 무엇무엇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그 뜻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문장화하여 매일 반복적으로 소리내어 발원하는 것이 좋다.


  ⑤염송

  염불과 염송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염불, 독경, 사경, 진언 등을 모두 포함한 말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즉, 기도는 염불, 간경, 진언을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것들과 구분하지 않고 그 안에 포함시킬 수도 있으나 구체적인 바람을 가지고 행할 때 기도라고 구분지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염송은 기도의 핵심부분으로 각 수행법에서 언급했듯이 일념이 되는 것이 관건이다.


  ⑥회향

  기도에서 회향이 중요한 것은 지금하는 기도가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고 이 기도공덕으로 일체중생이 함께 해탈하기를 발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발원을 회향의 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개는 사홍서원으로 대신한다. 구체적인 회향의 한 형태로 축원이 있다. 축원은 누군가가 행복해지고 불법의 이치를 깨닫기를 바라며 부처님께 기원하는 것이다. 기도를 끝마치기 전에 특정인에 대한 축복에서 출발하여 차츰 범위를 넓혀 우주 만물 모두에게 축원한다. 이것은 불교의 전통 관법 중의 자비관과 흡사하다. 축원을 할 때에는 본심에서 우러나는 지극한 사랑의 힘을 가지고 상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면서 하면 좋다. 그리고 그가 이미 축복을 받아 행복해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모든 기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마치고 나서는 기도가 성취되었음을 확신하는 관을 한다.


 2)참회기도


  참회란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먼저 안으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워 하는 것이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았을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끄러움은 일반적인 후회나 반성과 다르다. 후회는 잘못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으로 주로 과거에 묶여서 오히려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하지 못하였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때는 대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기가 어떻게 비쳤을까를 걱정하는 마음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후회하는 마음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자 하는 마음과 같다. 이에 반해 반성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는다. 그러나 아직 문제의 원인 규명까지는 하지 못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고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또는 부처님 앞에서 드러낸다. 그리고 잘못의 원인을 확실히 규명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따라서 참회에는 이참과 사참이 있다. 이참은 이치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으면 그 근원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아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사참은 타인에게 사죄하거나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한다거나 하는 실제적인 참회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만이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되고 진정한 참회를 했다고 한다.

  참회하는 방법에는 事懺과 理懺이 있다. 사참은 불보살께 자신의 잘못을 몸과 말과 뜻으로 드러내서 참회하는 방법(隨事分別懺悔 : 잘못한 일을 따라 반성해가는 참회법)이며 이참은 본래 일어난 바가 없는 죄의 참 모습을 관찰하여 죄에서 벗어나는 참회법(觀察實相懺悔 : 법계의 실상을 관찰하여 죄를 없애는 참회법)이다.

  다시 참회법은 作法참회 · 取相참회 · 無生참회의 세가지 참회로 분류되니(금광명경문구기 권3) 작법참회, 취상참회는 사참이고 무생참회는 이참이다. 작법참회는 참회의 의례를 통해서 죄를 없애는 법이며, 취상참회는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죄업을 소멸시키는 법이며, 무생참회는 죄가 본래 일어난 바가 없음을 바로 살펴서 죄를 없애는 법이다.

  참회의 의례는 여러 경전에서 제시되었고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방법이 만들어져 전해 오고 있지만 여기서는 <점찰선악업보경>1)의 예를 인용해 보겠다. 순서는 일반적인 기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①준비

  참회의 법을 닦고자 하는 이는 고요한 곳에 머물러 힘의 능하는 바를 따라 하방을 장엄하여 안에 부처님을 모시고 경전을 두고 비단 번기와 일산을 걸어 부처님을 모시고 경전을 두고 비단 번기와 일산을 걸며 향과 꽃을 구하여 모아서 공양을 닦는다. 그리고 몸을 씻고 의복을 빨아 입어 악취와 더러움이 없게 한다.


  ②예경

  낮에는 세 때 명호를 부르되 한 마음으로 과거의 칠불과 53불을 공경하여 예배하며, 다음은 시방의 방위를 따라서 낱낱이 모두 귀의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두루 일체의 부처님 일에 예배하는 것이요, 다음은 또 시방 삼세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 모두 예배드리고 또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시방의 일체 법의 갈무리에 두루 예배하며 다음에는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시방의 일체 성현을 두루 예배할 것입니다.


  ③참회

  그렇게 한 뒤에 따로 명호를 부르면서 지장보살마하살에게 예배할 것이며 이렇게 예배를 바치고 지었던 바의 죄를 설명하며 한마음으로 우러러 아뢸 것이다.

“원하옵노니 시방의 모든 크게 인자하고 높으신 이시여, 증명하여 아시어 보호하고 염려하옵소서. 저는 지금 참회하고 다시는 짓지 않겠나이다. 원하옵건대 저와 일체 중생은 빨리 한량없는 겁 이래로 십악 사중 오역의 뒤바뀜과 삼보를 헐뜯었던 일천제의 죄를 없어지게 하옵소서”라고 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은 죄의 성품은 다만 허망하고 뒤바뀐 마음에서 일어났으므로 결정되었거나 진실되어 얻은 것이 없고 본래가 공하여 고요할 뿐이다. 나와 일체의 중생은 빨리 마음의 근본을 통달하여 영원히 죄의 뿌리를 없애기를 원하리라’고 한다.


  ④회향의 원

  다음에 다시 청하면서 원을 세울 것이니  ‘원하옵노니 아직 정각을 이루지 못한 시방의 일체 보살로 하여금 빨리 정각을 이루게 하옵시며, 만일 이미 정각을 이룬 이면 세상에 항상 머물러 계시면서 바른 법의 바퀴를 굴리시며 열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하고 다음에 다시 따라 기뻐하는 원을 세울 것이니 ‘원하옵노니 나와 일체 중생은 필경까지 길이 질투하는 마음을 버리고 삼세 동안에 일체의 세계 국토에서 모든 배움을 닦은 온갖 공덕을 성취한 이에게 죄다 따라 기뻐할 것이옵니다.’라고 하며, 다음에 다시 회향의 원을 세울 것이니 ‘원하옵노니 제가 닦은 바의 공덕은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돕고 이롭게하며, 함께 부처님의 지혜에 나아가 열반의 성에 이르게 하옵소서.’라고 한다.

 

  ⑤염송

  다시 고요한 방에 나가서 단정히 앉아 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외우거나 묵묵히 생각하여 수면을 줄여 없앨 것이며 만일 혼침이 많은 이면 도량의 방안을 돌면서 외우거나 생각한다.

  밤이 와서 만일 등촉을 밝힐 일이 있으면 또한 삼시로 공경하고 공양하며 허물을 뉘우치며 발원한다. 고요한 방 안에 있으면서 한 마음으로 외우거나 생각한다.


  ⑥청정함을 얻음

  날마다 이렇게 참회의 법을 행하면서 게으르거나 폐지하지 말 것이니 만일 그 사람이 지난 세상에 오랫동안 선한 뿌리가 있었으면 잠깐 나쁜 인연을 만나 악한 법을 지었더라도 경미할 것이요, 그 마음이 용맹하고 날카롭고 지력이 강한 이는 칠일을 지난 뒤에는 곧 청정함을 얻어 모든 장애가 없어진다. 혹은 이칠일이 지난 뒤에야 청정함을 얻기도 하고, 혹은 삼칠일이 지난 뒤에야 청정함을 얻기도 하며, 만일 과거 현재에 모두 왕성하고 가지가지의 중한 죄가 있는 이면 혹은 백일을 지나서 청정을 얻고 혹은 이백일 내지 혹은 천일을 지나고서야 청정함을 얻기도 한다. 만일 근기가 극히 둔하고 죄상이 매우 중한 이면 다만 용맹스런 마음을 내어 몸과 목숨을 돌보거나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언제나 부지런히 부르고 생각하면서 밤낮으로 돌며, 수면을 줄이고 예배하며 참회하고 발원할 것이요, 공양을 즐거이 닦아 게으르지 않고 폐지하지 않으며, 내지 목숨을 잃을지언정 반드시 쉬지 않아야 하리니, 천일 동안 이와같이 진정으로 하면 반드시 청정함을 얻게 될 것이다.

  한밤중에 다시 광명이 그 방에 두루 차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유다른 좋은 향기를 맡아 몸과 뜻이 쾌연해지기도 하고, 혹은 좋은 꿈을 꾸기도 하며 꿈 속에 부처님의 색신이 오셔서 그를 위해 증명을 지으시며, 손으로 그 머리를 만지면서 칭찬하며 말씀하시기를 ‘착하도다. 너는 이제야 청정하여졌으므로 내가 와서 너를 증명하노라’하기도 하며, 혹은 꿈에 보살이 몸소 와서 그를 위해 증명하기도 하며, 혹은 꿈에 부처님 형상에서 광명을 놓으면서 그를 위해 증명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이 경에서는 지장보살 염불이 들어 있지만 다른 염불이나 독경 또는 진언도 무방하다. 또 현재 많이 행해지고 있는 방법으로는 절을 하면서 하는 참회법이 있는데 108배, 1080배, 3천배, 1만배 등이 있고 예불 대참회문(108참회문)을 외우면서 절을 하는 경우도 있고 염불하면서 절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같은 방법은 대중이 함께 법회나 기도할 때 또는 혼자서 할 때 역시 마음 속으로 참회하는 경우이고, 공동체 내에서 열린 참회법으로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고 참회하는 법과, 다른 사람이 잘못을 지적해 주면 따라서 참회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이 포살과 자자이다.


 3)예불


  예불도 기도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도량찬(도량석과 사물) 공양(다게·오분향례) 예경(예불문) 발원(발원문) 회향(반야심경) 등 기도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조석예불은 수행자가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원을 성취할 수 있는 정진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침예불은 오늘 하루도 원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하는 다짐의 시간이고, 저녁예불은 아침에 발원한 것처럼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다. 따라서 조석예불은 수행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여서 사찰에서는 전 대중이 반드시 예불에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에 불단을 모시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웃나라들은 가정에 불단을 모시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앞에서 수행의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필수적인 요건이라 했다. 다행이 집 가까이 절이 있어서 조석예불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으니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가정에서 예불을 모셔야 할 것이다. 꼭 불상을 모시지 않더라도 경전이나 촛대, 향로, 염주, 불자(佛字) 등으로 간단하게 장엄하여도 좋다. 모든 불자들이 가정에 수행의 공간을 마련해 놓고 온 가족이 그곳을 중심으로 마음을 모으고 원력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격식을 갖춘 예불이 어렵다하더라도 자기다짐과 서원을 굳건히 하기 위한 점검법으로 아침 저녁으로 삼보를 생각하고 불법승 삼보를 생각하고 예배하는 시간을 반드시 갖도록 하자. 이 때는 절을 하던 염불을 하던 잠시 입정을 하던 자기가 정해서 단 5분, 10분이라도 시간을 낸다. 중요한건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매일 자기 점검을 생활화 해야 한다. 만일 아침 저녁으로 두 번도 힘들다면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좋다. 특히 밤에 잠자기 전에 하는 기도는 무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모란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봄의 절정이 지나는 오월에 피는 이꽃을 보면 위의 시가 떠 오르는 것이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 순수시 운동의 주역이었던 영랑님의 시이고,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이겠지요
그시대에는 "북도에 소월(평북출신) 남도에 영랑(전남출신)"이란 말까지 있었답니다

 

 

영랑님의 순수시란, 시에서 일체의 이념적, 사회적 관심을 배제하고 오직 섬세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추구하는 시란 뜻이랍니다. 현대시의 언어와 형식에서 좀더 세련된 차원으로 나아가게 한 詩史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봄'은 대지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북돋우고, 생명을 싹트게 합니다. 그 봄의 막바지인 5월에 모란은 봄의 절정을 장식하지요. 따라서 '모란'이 지면 '봄'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봄'(모란)은 시인의 희망과 소망을 상징한 말입니다

 

 

그러나 '모란'이 단지 소망만은 아니랍니다.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야 봄에 꽃을 피우듯이, 꽃이 아무리 희망의 상징이라 해도 이면에는 고통과 좌절과 어둠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과 같습니다. 결국 '모란'을 통해   인간의 절망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봄의 막바지에 모란이 피어나기 때문에, 그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모란이 지는 날이면 봄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에서 절정의 순간은 결국 봄과 모란을 함께 상실하는 순간이라고 하겠는데, 소멸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정서의 극치를 시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표현하고 있네요.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말이 참 좋은데.... 이러한 모순 형용은 모란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쁨과 그 소멸로 인한 슬픔이 한데 섞인 시인의 심경을 표현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시인이 느꼈던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구요.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도 며칠 안가 뚝뚝 지고 맙니다, 제가 찍은 이꽃들도 아마 지금쯤은 자취도 없이 봄과 함께 사라졌겠지요? 생명의 모순과 숙명을 시인은 탄식합니다

 

 

그러함에도 시인은 다시 또 모란이 피기를 기다립니다.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지만, 모란이 지는 슬픔은 "절망적 슬픔"이 아니라 미래의 꿈을 잉태한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2010.5.12.일산 호수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