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인사 가운데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이가 또 한 명 늘었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이다. 박 전 비서관은 지난 4월22일 문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정보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의 국방·안보 정책을 돌아보기 위한 인터뷰 자리였지만, 때가 때인지라 천안함 문제부터 질문했다. 5월14일 서울 여의도에서 그를 만났다.
-검찰에서 공안사범 취급을 한다. 소환 연락이 있었나.
=나올 수 있느냐고 변호사를 통해 연락이 왔다. 공개 소환을 하라고 했다. 나를 고소한 김태영 장관을 동시에 불러 조사하겠다면 가겠다고 했다. 혼자만 출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자도 전직 해군 최고위급 인사를 취재해 백령도 사고해역 주변에 1970년대 설치했다가 수거하지 못한 아군 기뢰의 존재를 보도했다가 전직 해군 장교로부터 군형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경찰이 전화해 군 기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제보자를 묻더라.
=며칠 뒤 김태영 장관이 아군 기뢰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았나. 더 자세히 언급했던데 김 장관은 왜 고발하지 않나.
-천안함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주장이 명예훼손이 되는지 의문이다.
=이 자료를 한번 봐라. 1967년 미국 리버티함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침몰했다. 그때 300여 명 가운데 34명이 죽고 172명이 다쳤다. 이 자료는 리버티함 사고에 관한 군법정 기록이다. 무려 730쪽이다. 리버티함의 위치정보, 이동경로, 교신일지, 장병들의 상황 진술서가 다 들어 있다. 미국은 안보를 중시하지 않아서 이런 자료를 공개했나. 투명하게 모든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접근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43년 전에.
-어떤 자료가 공개되면 침몰 원인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는가.
=사고 당시 정황이 담긴 열상감시장비(TOD) 영상이 정말 없을까. TOD는 사전 감지 목적도 있지만 사후 정보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적이 몇 시에 어떤 경로로 침투했는지, 이동 속도를 고려할 때 어디서 어떻게 작전을 펼쳐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중요 자료다. 그래서 휴전선에, 해안에 비싼 돈을 주고 설치하는 거다. 사각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백령도에 최소한 7개 이상이 있고, 천안함 침몰 해역 주변에도 다른 영상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은 투명성과 신뢰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천안함 침몰 사고를 조사 중인 민·군 합동조사단이 5월20일 발표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와 다른 내용이 있을까.
=몇몇 언론을 보면 거의 3단 변신 어뢰가 등장할 정도로 황당한 기사를 쓰고 있다. 아무 근거 없이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면 합조단이 사고 원인을 밝힐 중요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방증 아닐까. 비접촉 수중폭발, 즉 배에 닿지 않고 물속에서 폭발한 것 같다는 데는 대체로 일치하는 것 같다. 그러면 어뢰나 기뢰로 추정할 수 있는데, 뚜렷한 근거를 밝히지 않으면서 기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것 같다.
-전문가인 박 전 비서관은 침몰 원인에 관한 다른 정보가 있는가.
=최소한 당시 천안함이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아야 하는데 아무 정보가 없다. 그렇다면 합조단이 보고 있는 사고 원인을 근거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북한 잠수함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15km가량 침투해 천안함을 공격하고 도주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침투와 공격 징후를 포착하지 못한 점, 공격 차단에 실패한 점, 관련 정보 수집에 실패한 점, 대잠수함 경계임무에 실패한 점, 초기 중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천안함의 함장은 물론 2함대사령관, 합참의장, 국방장관은 직접 책임이 있다. 필요한 지원을 제때 했는지에 따라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다.
-이 대통령은 어제 “‘국방개혁 2020’ 계획에서부터 모든 것을 현실에 맞게 해결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말 웃기는 얘기다. ‘국방개혁 2020’은 이 정권의 인수위 시절부터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국방개혁 2025’를 만들어 큰 틀을 유지하되 주요 장비 구입을 5년씩 늦추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그 뒤 국방기본계획으로 바뀌었다. 2020은 현 정부에 의해 이미 폐기된 상태다. 이미 폐기한 것을 어떻게 수정·보완하나.
-‘국방개혁 2020’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2015년까지 대북 군사력에서 확고한 우위에 선다, 이후 잠재적 주변 세력에 대한 대비를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면한 위협에 대한 대비와 아울러 잠재적 주변 세력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잠수함과 조기경보통제기 등을 확보해 정보·정찰·감시 능력을 키우고 정밀 타격 수단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했다.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참여정부에서 국방비가 지나치게 증액됐다는 논란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힘이 없는 상태에서의 평화 주장은 공허하다고 말했다. 복지와 국방 예산이 해마다 10% 가까이 늘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9·19 선언 이후 당시 여권의 고위 인사가 “이제 국방 예산을 복지 예산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자 대통령은 “안보는 안보고 복지는 복지지 무슨 소리냐. 바로잡아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진보 정권 때문에 안보에 구멍이 난 것처럼 얘기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천안함 침몰은 북한 소행이고 참여정부의 ‘국방개혁 2020’ 탓에 안보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느냐는 문제제기로 읽힌다.
=적이 50km 바깥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자신과 그 측근들이다.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 정권이 성남공항 문제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나. 한나라당은 2009년 잠수함 12척 도입 계획에 대해 “쓸데없는 곳에 혈세를 낭비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정부에 비해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안보 환경이 나빠졌다고 보는가.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나. 노무현 대통령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안보, 힘으로 지키는 안보를 중시했다. 이명박 정권은 말로는 안보를 앞세우면서 적대세력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막상 일이 터지면 뒷감당을 못한다. 그러면서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도 한다. 현 정권의 국방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군 지휘부가 허탈해한다. 진보 정권에서 예산이 늘고 인사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대가 높던 보수 정권에서 예산이 깎이고 인사 간섭이 심해졌다. 최근의 군 관련 사고, 기강 해이 사례가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