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연애를 하다보면 첫인상과 잘 생긴 외모에 호감이 가서 만나다가 늘 새롭게 대면하게 되는 상대방에 대하여 때로는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다툴 때가 있다. 그래서 남녀 사이를 다룬 드라마에서 오래 사귀었는데도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푸념 같은 대사가 상투적으로 나온다. 열애에 빠져 늘 붙어있고 늘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기가 어려운 법이거늘,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아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람이 역사 속의 인물이면 어떨까? 사료를 뒤지는 학자들도 있고, 일기나 편지 등 비공식적 자료를 통해 실체적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전문적인 연구자가 아니라면 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을 읽거나, 제3자가 쓴 전기를 읽기도 한다. 자서전이나 전기를 읽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알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게 알게 된 역사 속 인물은 신화화되고 화석화된 사람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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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북에서 출간한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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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부엉이 바위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몸을 던진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짧게는 참여정부 5년간, 길게는 그가 정치를 하는 몇 십년간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 연애를 하였다. 때로는 그의 야속함과 무심함에 상처를 입은 국민들도 있었고, 사랑을 듬뿍 담은 이벤트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기도 했고, 때론 그가 힘들어 지쳤을 때 국민들이 그를 일으켜 세우고 힘을 북돋워주었다.
우리 국민은 그렇게 노무현과 연애를 해 왔다. 어쩌면 국민이 조울증 환자처럼 그를 매우 미워했다가도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변함없는 애정을 보내기도 했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국민은 다스림과 다스림을 받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연애를 하는 연인 관계의 성격이 더 강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노무현을 보내고 다시 그를 반추하기 위하여 책을 찾고 강연을 들으러 다닌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사람은 그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같이 했던 시간이 짧게 느껴지고, 그가 남겨 놓은 흔적에 대하여 곱씹어보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노무현 시민학교가 '노무현의 꿈-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지난해 미래연이 주최한 특별강연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상대적으로 시민 사회 강좌에 대한 참여 열기가 저조했던 지방에서도 노무현 시민학교는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해찬, 유시민, 문성근, 도종환, 박원순 등 정치인에서,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인사들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사람들은 늘 옆에서 있어줄 것 같은 대통령을 역사 속에 떠나보내고 나서 측근들의 입을 통해 노무현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던 것으로 해석이 된다.
노무현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 같은 느낌
이번에 '오마이북(오마이뉴스 출판 브랜드)'에서 인기를 끈 노무현 시민학교의 강좌를 책으로 엮어서 펴냈다. 책의 제목은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혹여 이 책을 보면서 지금까지 노무현을 사랑했던 평범한 국민들이 보아왔던 노무현과 다른 모습의 노무현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나 자신을 솔직히 드러냈고, 권위 대신에 소통을 추구한 지도자였다. 조중동의 색깔 안경을 끼지 않았다면, 국민들은 모두가 측근들이 보는 그대로의 노무현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노무현 대통령을 재확인 시켜주는 책일 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노무현을 가까이서 지켜본 각 층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노무현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연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10명이 이야기하고 있기에 같은 노무현을 이야기하지만 서로 다른 노무현의 10가지 모습이 책에서 드러난다.
책임총리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받았던 이해찬 전 총리는 그가 이룩하고자 했던 정치적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계승자라 할 수 있는 유시민은 의로움을 위하여 이로움을 기꺼이 버렸던 노무현의 정신을 강조한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이정우 교수는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경제 체질의 개선에 집중했던 노무현의 경제 정책을 조명하면서, 경제에 무능했다는 보수 신문이 덧씌운 프레임을 해체한다.
아마도 이 책에 나오는 10명의 사람들의 증언은 노무현을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 정치, 경제, 언론, 시민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참모이자 정치적 동반자로서 이야기이기에 노무현에 대한 권위 있는 시각의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노무현 대통령 관련 서적들이 베스트셀러에 속속 진입하는 인기를 끌고 있다. 누구보다 달변이었고 논리적 화법으로 유명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지금에 그를 만나는 유일한 길은 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이승에서 볼 수 없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기 위하여 책을 드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독자들의 희망에 어느 정도 부응해 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좇는 일은 그의 말을 되뇌이고 그의 생각의 궤적을 다시 따라가는 것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의 상황에서 최선을 추구했고 시대의 요구에 충실했을 것이고, 지금 우리의 사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시점부터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끊임없이 쌓여왔고 앞으로도 계속 사회는 변해갈 것이고 그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 될 것이다.
진정한 계승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과거를 끊임없이 재해석해가면서 우리의 나아갈 바를 정해가야 하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노무현과 국민의 관계를 남녀가 만나는 연애의 과정에 비유했다. 우리는 남녀가 만날 때 모든 성격이 정해져 있는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상정하지만, 기실 연애는 둘이 만나는 시점부터 서로가 어떻게 변해가는 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노무현을 떠나보내고 나서 우리가 다시 노무현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과정도 그와 같을 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서거한 시점의 노무현을 박제화하고 화석화하여 다시 재현한 노무현이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고 같이 성장해가는 노무현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죽어 있는 노무현이 아니라 역사 속에 살아 있는 노무현을 만들어야 하고, 그와 함께 대화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권위를 내던지고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려 했던 노무현의 정신을 부활시키는 길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권위 있는 정치 지도자나 전문가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10명의 노무현을 바탕으로 우리 마음과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 살아 숨쉬는 5천만의 노무현을 만들어 가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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