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과 영지

2010. 6. 22. 21: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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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과 영지

 

 

마음을 창문에 비유해서 닫으면 답답하니까 항상 열어 으라고 합니다.

열어 놓으면 안에 있는 먼지도 바깥으로 나가고 새로운 공기도 들어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보통 때는 잘 모르겠는데 좌선만 하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망상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죠.

뚜껑을 열어놨기 때문에 안에 있는 먼지가 나가야죠. 많이 나올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먼지가 나온다고 뚜껑을 닫아 놓으면 그 속에 있는 것들은 영영 나갈 길이 없습니다.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속에 있는 먼지가 나가고 새 공기가 들어오고 합니다.

조용히 좌정하고 있을 때 눈을 크게 뜨라고 했습니다.

눈을 크게 뜨면 있는 그대로 보입니다.

 

이게 생명의 근본입니다. 일상생활 할 때도 여기에 연결이 되어야지

연결이 안 되면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해서 사람이 쓰러지고 맙니다.

에너지나 영양분, 힘이라고 하면 비타민 주사를 맞고, 약이다, 음식이다,

여기서 오는 것 같지만, 이것은 할 수 없이 보조를 받고 있는 것이지

원래 근본은 이 마음자리 영지입니다.

먹고, 마시고, 비록 생각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이것을 항상 열어놔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 불생불멸입니다.

모두들 이를 까마득히 잊어 버리고 혼침에 젖었다가 24시간 중, 겨우 1분 정도 용케 깨어

에너지를 공급받지만 나머지는 거의 문을 닫아 놓았으니 늙고 병들고 결국 죽음이죠.(생노병사)

 

몸을 버리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때의 습관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는 둘째 치더라도 우선 마음이 맑아야죠.

망상이 오고 가고 하더라도 그대로 보고 있다면 그것은 정상입니다.

그 정상의 모습을 점점 더 강하게 키워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깨치는 때가 옵니다.

지금 당장 깨치려면 그게 바로 망상분별이 아니겠어요?

 

우선 맑고 볼 일입니다.

설사 내가 깨달았다 하더라도 마음이 혼탁하면 무슨 영험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마음이 밝고 맑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다 나중에 깨닫게 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어요?

 

우리가 '보통 좌선한다.' 하며 용맹정진 한다고 하는데

깨닫는 것보다 마음이 맑아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일년 전에도 앉으면 졸고 망상에 쌓여 있었는데 일년 후에도 그렇고

십 년 후에도 마찬가지면 과연 절에 와서 무엇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머리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속이 어떠하다는 것은 남은 모르지만 자기는 먼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란과 혼침에 끄달리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려면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방법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눈을 뜨고 바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은 무엇을 외운다던가,

주문을 한다던가 혹은 법당에서 예배를 드린다던가,

이런 것들은 다 조도(助道)의 방법이죠.

그 중에 자기에게 제일 잘 맞는 것을 골라 꾸준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단한 팔 운동도 처음에는 잘 안 되지만 매일같이 꾸준히 하다 보면

열 번, 백 번, 노력한 만큼 잘하게 됩니다.

우리가 눈 뜨고 바로 보는 것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눈도 따갑고 눈물이 나오고 눈에 핏발이 서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창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자기 속에서 스스로 씻어 내리는 과정입니다.

그럴 때 무리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면 차츰차츰 눈이 맑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눈을 보면 동시에 마음이죠.

마음이 흐리면 눈이 흐리고 졸고 있으면 틀림없이 감겨 있고,

망상분별하고 있으면 틀림없이 무언가 가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떨어 졌을 때 '아, 여기 사람이 있구나, 차구나, 덥구나' 하고 포착이 됩니다.

포착은 집착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조금씩 한 단계, 한 단계 궤도에 올라가면

옛날에는 그렇게 몰려오던 혼침과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이제 눈이 저절로 말똥말똥 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이 법당에 100명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모두 이 두 눈동자 속에 들어옵니다.

내가 생각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환하게 다 보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삼천 대천세계를 손바닥에 구슬 놓고 보듯이 보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육신 속에 있는 눈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시야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만일 육신을 벗었다 봅시다.

예를 들면 한 1mm 밖에 안 되는 벌레가 있다고 합시다.

그것도 눈이 있지만 보는 시야는 그것 밖에 안 되겠죠.

만일 지구와 같은 눈동자가 있다면 그만한 시야로 보게 되겠죠.

마음이 극도로 맑아지고 맑아지면 모든 것이 그림자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몸도 그림자요, 세계도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 눈동자가 보는 것은 어디서 어디까지 보는 한계가 없습니다.

끝없는 눈이라는 것입니다.

전체가 자기 눈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게 없습니다.

이것을 부처님 눈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그런 눈을 가지고 있지만,

망상분별이라는 막을 덮고 덮어서 조그마한 육신 속에 가둬두고 이것을 내 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상분별을 벗어나서 공적과 영지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앉아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눈을 뜨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행복한 추억의노래 모음



01. 라나에로스포 / 사랑해
02. 전   영 / 어디쯤 가고 있을까
03. 윤형주 / 어제 내린 비
04. 채은숙 / 빗물
05. 서유석 / 가는 세월
06. 정윤선 / 아들
07. 이용복 / 줄리아
08. 박양숙 / 어부의 노래
09. 고향(대사) / 별들의 고향
10. 이   숙 / 눈이 내리네

11. 김세화 / 작은 연인들
12. 박상규 / 조약돌
13. 블루진 / 서글픈 사랑
14. 사랑의 하모니 / 야화
15. 산울림 / 청춘
16. 이연실 / 그대
17. 이필원 / 약속
18. 해바라기 / 어서 말을 해
19. 정태춘 / 떠나가는 배
20. 정태춘 / 촛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