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이 도다/무문관

2010. 6. 21. 20:3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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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고 난 뒤에도 익혀가야 한다

제19칙 평상심이 도

 (가) 본칙(本則)
 
남전(南泉) 큰스님께 조주스님이 “도(道)가 무엇입니까?”하고 여쭈니
남전 큰스님이 대답하셨다.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이다.”
 조주스님이 남전 큰스님께 다시 여쭈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향해 닦아 나갈 수 있습니까?”
 남전 큰스님이 대답하였다. “그것을 향해 헤아리려고 하면 어긋난다.”
 
조주스님이 또 여쭈었다. “헤아리지 않으면 어찌 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남전 큰스님이 대답하셨다.
“도는 아는데 속하지 않고, 모르는데 속하지도 않는다.
안다고 하는 것은 거짓으로 깨닫는 것이요, 모른다는 것은 무기(無記)이다.
만약 참으로 헤아리지 않는 도를 통달하면, 마치 허공과 같아서
확연하게 탁 트이고 넓어진다. 어찌 억지로 옳으니 그르니 할 수 있겠는가?”
 
조주스님은 이 말에 문득 깨달았다.
  
(나) 평창(評唱) 및 송(頌)
 
남전 큰스님이 조주스님의 질문을 받고서는 곧바로 기왓장이 깨지고
얼음이 풀리듯 해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설령 조주스님이 깨달았다고 해도 다시금 30년은 더 닦아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무문스님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봄에는 온갖 꽃 피고, 가을에는 밝은 달/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하얀 눈/
만약 쓸데없는 일에 마음 두지 않는다면/
 바로 그때가 인간세계의 좋은 시절”
 
 
어떤 경우도 흔들리지 않으면 ‘삶 자체가 호시절’ 될 수밖에
  
(다) 설명
 
평상심(平常心)!  평상심이란 말은 남전보원 큰스님의 스승인 마조도일
선사가 가장 먼저 사용하였다.
“도란 닦을 필요가 없다. 단지,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된다.
곧바로 도를 이루고자하는가? 평상심이 도이니라. 평상의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조작(造作)하지 않고 시비(是非)하지 않으며, 취사(取捨)하지 않고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버리며, 평범하다느니 성스럽다느니 하는
생각이 없는 마음이다.”
 
평상심이란 우리가 본래 구족하고 있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다.
범부의 중생심 그대로가 아니라 즉심즉불(卽心卽佛)의 마음이며
무심(無心)자체이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평상심시도’라 함은 도(道)의 본질을 일컬음이지
도의 실행은 아니다. 도는 움직여야한다. 즉, 참으로 도행(道行)이 되도록
깨닫고 난 뒤에도 무문스님의 말대로 익혀가야 한다.
그리하여 그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심(無心)하게 그리고
평상심으로 살 수 있다면 삶 자체가 호시절(好時節)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납자가 장사경잠(長沙景岑)선사를 찾아와 “평상심이 도라 했는데
 어떻게 마음 쓰는 것이 평상심입니까?”하고 물었다.
선사는 답하기를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이것 외에 따로 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납자는 더 구체적인 답변을 원했다. 선사는 또 말했다.
 “더울 때는 부채질하고 추울 때는 화로를 가까이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道)속에 살면서 도를 모르고 지낼 뿐이다.
봄에는 꽃, 가을에는 달,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눈이 있지 않는가.
신통묘용(神通妙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일체 헤아리지 않고
물 긷고 땔나무 하는 일거수일투족임을 알아야 한다.
 
어느 누가 조주스님에게 도를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담장 밖에 있느니라.”
 “그런 도 말고 대도(大道)를 묻고 있습니다.”
 “대도는 장안으로 가는 길이지.”
 
헤아리려고 하면 어긋난다!
 
우학스님 /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무일선원 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