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청화스님 공부모임 후기 - 보원

2010. 6. 24. 18:5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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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을 쌌다. 김치부침개도 몇 장 부쳤다. 수박을 잘라 그릇에 넣었다. 수선회 선방에 도착하면 30분 정도 다과를 하고 공부할 것이다.

 

종이를 놓고 흰구름을 본다는 틱낫한 스님의 영향이었을까, 이 컵이 그냥 공(空)! 하라셨다는 용타스님의 말씀을 반복해 들어서였을까. 나는 요새 ‘이 딸기가 건희야.’와 같은 헛소리(?)를 하고 (이에 작은 녀석은 ‘어억, 엄마! 엄마가 나를 먹어어?’ 하며 기절초풍하려고 했다) 이 오이와 당근이 오늘 보살님과 거사님이로고. 하며 킥킥하며 모임에 가져갈 서투른 김밥을 쌌다.

 

요리하니.. 생각난다.

나는 지독한 요리치인데, 특히나 음식을 부르르 떨면서 준비한 기억이 있다.

몇 년전 정토회 법륜 스님께서 반나절 누추한 아파트에 들르신 적이 있다. 그때 스님을 친견하고픈 불자님들까지 약 스무분 이상의 점심 한끼를 준비하였는데, 난 나같은 요리치가 난생 처음 스님의 공양을 준비한다는 사실에 (그 후로도 아직까지 스님을 모신적은 없다) 너무도 어떨떨하고 실감나서 대체 이를 어째야쓸까.. 자는둥마는둥 3시에 퍽 눈뜨고 일어나, 진정이 안돼 부엌에 냅다 절부터 마구 했다.

 

손이 설어 보통 때도 부엌에서는 딴생각을 잘 못하는데, 하여간 그때처럼 더 음식준비에 현재현재현재인 적이 없었다. 당근한번 양파한번 감자한번 칼로 내리썰면서 손에서 팔로 머리로 모를 느끼고 각을 느꼈다. 그러며 이 음식이 입을 따라 목을 따라 위를 따라 급기야 스님과 불자님들의 몸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지금 그런 것을 만들고 있다니 상상만 하고도 전율을 했다.

그런데 이제 음식과 같은 단순함을 넘어, 말로, 사물로, 행동으로, 뜻으로 덩어리째 이 모두가 하나로 굴러가고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니 모든 것이 보통문제가 아니고 더더욱 현재를 깨어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보리방편문 공부를 하면서,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이나 때로 사물과 무엇을 주고 받는지를 늘 생각하고 있다. 말을 건넨다고 하며 무엇을, 돈을 주고받는다고 하면서 무엇을, 운전때 양보하며 무엇을, 애들에게 야단치며 무엇을, 냉장고에서 얌전히 보관되어 나온 버섯에게 무엇을... 도현법사님 담배연기가 마구 흩어지는 장면 슬라이드가 지독히 맞다. 모두가 공空이며, 수연隨緣하니 또한 불공不空이라는...

 

이름에서 이미 내포된 관계의 의미는 내 사유에서 많이 축소되고, 그저 좋은 관계보다 나아가 어쩌다 얄궂은 만남에서, 때로 생경한 만남에서, 내가 처해 어떤 마음을 주고 받고 있는지, 특히 일터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객관적으로 자신에 더 곰곰할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결국 파장만이 왔다갔다 했던 것 같다.

그가 내 거울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통해 나를 볼라치면 여지없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때로 공부가 무색하게 아직도 현실에서 몸과 마음을 일치 못시켜 슬 일어나고야 말던 마음을 진정하느라 고속도로에서 유리창을 열고 머리에 바람을 쐬며 가야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불법을 배우는 공부의 길이 멀고 먼데도, 어 이런 시작의 정도만도 삶이 벌써 가벼워져 있었네 문득 느끼게 되었다. 이번 달로,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두게 될 예정이라 지난 시간을 돌아보다보니 그랬다. 배워가는 것과 현실에 적용하는 일은 조금 뻐걱뻐걱했지만 그래도 처음과는 계속 달라져왔던 것 같다.

슬 일어나는 상대에 대한 화살을 곰곰이 내게, 다시 또 내게 그렇게 돌리곤 했었는데, 돌아보니 억울했던 상황, 혹은 억울하게 했던 사람에게 아무 앙금이 남아있지 않았다. 걸리는 게 없었다. 게다가 나는 나를 너무 지독히 사랑하는지 스스로 화살돌려 맞던 내 어리석음에 대한 통탄의 느낌도 역시 없는 것 같았다. 살다보면 기억과 함께 늘 뜰뜨름하게 감정찌꺼기가 남곤 하는데, 오오라 삶이 가볍다란 말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다던가. ‘문제의 해결은 문제의 해소다‘.

그 말이 너무 좋아 대학 때부터 기억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특히 이 문제자체가 정녕 바른것인지, 사유할만한 것인지 첫단추부터 곰곰이 하게 하고, 결국 문제의 소멸을 주신다는 것에 어떻게 내가 이러한 것(法)을 만났는지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다..

 

... 늘 모임에 안빠지고 나오시던 중후하고 든든한 커플께서 직장이전으로 이번주 아리조나로 이사를 가신 바람에 인원이 줄었다. 아쉬워 지난 주말 따로이 모여 저녁식사를 같이 했지만, 막상 정기모임을 가져보니 너무도 빈자리가 컸다. 모두가 언젠가는 떠날 것을 알지마는, 막상 이별은 이렇게 마음이 쓸쓸하다.

 

그런데 마치 그대로 교체되듯이 새로운 한 커플께서 참여하셨다. 교회를 다니신 적이 있고, 불교는 전혀 문외한이신데, 끄덕거리시다가도 거사님께서 장난기 가득한 눈매로 ‘어허 쉽게 말해봐요‘, ‘말장난같은거 말고..‘와 같은 말씀을 직선적으로 말씀하시는 바람에, 모두가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정말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알고 본 것을 말하고 있는가.

 

굉장히 유머있고 재미있으신 분이지만, 내겐 이 분이 남의 얘기 주워하는 얘기 말고, 바로 각자 몸으로 아는 얘기를 하라는 무섭고 새로운 차원의 부처님으로 보였다.

이날은 일년 이상 반복이 된 보리방편문 개론에 더하여 무아 수행에 대한 강의와 윤독을 하였으니, 새로운 분께 한꺼번에 많은 것을 너무 쏟아드린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공부를 하였다.

 

이 날 내게 제일 마음에 남는 따듯한 도현 법사님의 말씀은,

‘무엇이 나를 가두고 얽매는가‘ 였다.

 

돌맹이가 날아올 때, 네가 어디에 있을 것이냐는 말씀이었다.

조그마한 병 속에 있을 것인지, 큰 병에 있을 것인지, 호수에 있을 것인지, 강물에 있을 것인지, 바다에 있을 것인지, 큰 허공에 있을 것인지...

허공, 혹 북극성 자리에 내가 있다면 모든 것이 미미한 일들이어서 나를 가두고 얽매는 일에서 한껏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보리방편문은 무명을 거슬러 하나하나 괴로움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허공과 같고 진여인 이 즐거운 상태를 계속 부어서 맑게 되는 것이다...

 

...도현 법사님은 얼마전 경주법사님으로부터 금강심론 등과 함께 소포를 선물받으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시기에 경주법사님의 마음이 우리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달라는 요청 같으시다고 했다. 그래서 그것을 동기삼아 하나 달라지려고 한다. 다음달부터 요일을 바꾸어 한 달에 두 번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실은 한달에 한번은 너무 짧다고 느끼던 차이기도 했다.

이분들께서 계시기에 이렇게 내가 공부할 수 있다니,

너무도 인연이 귀중하고 행복해서 때로 가슴이 아리기까지 한다.  

앞으로도 도반님들께서 함께 이 대법大法 공부하시는 데에 아무 장애없으시기를...

 

한국에서 함께 공부하시는 스승 금강도반님들,

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여여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보원합장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