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깨달음
2010. 7. 5. 18:1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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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깨달음밖으로 치달리는 분별망상 쉬어라 |
본래 성품자리에 ‘초점’ 맞춰가 깨달음과 하나되는 경지 닦아야 불교는 신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 만큼 인간 저마다의 자유의지를 인정한다. 무한한 자유와 함께 무한한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확인하는 수행과 깨달음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대두하게 된다.
사실 불교에 있어서 깨달음과 수행에 관한 논의는 언제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많은 학자들이 깨달음과 수행에 관해 다양한 학설을 주장하고 있다. 저마다 ‘공의 체득’이라든가, ‘연기를 철견’ 한다든가 하는 현란한 언설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능엄경〉에서는 ‘쉬는 것이 곧 깨달음(歇卽菩提)’이라고 한다. 아주 쉽다. 어째서 쉬는 것이 곧 깨달음일까? 또 쉰다는 것은 무엇을 쉰다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쉬어야 하는 것인가? 연야달다의 비유는 이를 쉽게 설명해준다. 연야달다는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자기 머리에 얼굴과 눈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밖으로 뛰어 달아난다. 얼굴과 눈을 찾아서…. 하지만 본래 면목은 그대로 거기 있다. 다만 미친 증세만 쉰다면, 밖으로 찾아 나설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쉬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모두 허공 가운데 헛꽃과 같다. 허공 중에 헛꽃은 본래 없다. 눈이 피로해서 있는 듯 보일 뿐이지, 결코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착시현상은 실재하는 것이다. 본래 닦을 것이 없지만, 착시현상을 쉬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 착시현상의 근원에는 육근(六根)이 있다.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이루어진 여섯 감각기관이 주체가 되어 분별심을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별을 쉬기 위해서는 육근의 허망한 습기(習氣)를 벗어나야 한다. 육근의 허망한 습기를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근(耳根)이라는 문으로 들어가 원통(圓通)을 얻는 것이다. 육근 가운데서도 이근은 다른 다섯 근과 달리 수승하고도 빠르게 원통을 얻을 수 있다. 이근으로 원통을 얻는 방법은, 소리를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 것(反聞聞性)이다. 관찰자를 관찰하는 것(觀觀者)이다. 소리에는 생멸이 있으나, 듣는 성품에는 생멸이 없다. 몸뚱이는 비록 자고 있을지라도, 듣는 성품은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성품은 불생불멸인 것이다. 이 불생불멸인 성품 자리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소리와 색깔 등 바깥의 생멸경계에 더 이상 초점을 맞추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분별이 쉬어가는 것이다. 분별이 쉬면 저절로 미친 증세가 쉬어지고 곧 보리가 현전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조각가가 나무둥치의 불필요한 부분을 따내기만 하면 그대로 완성품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불교에서의 깨달음이란 곧 ‘쉬는 것’이다. 무엇을 쉬는가? 마음의 분별심과 몸뚱이 착(着)을 쉰다. 어떻게 쉬는가? 마음과 몸뚱이가 아닌 성품자리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저절로 쉬어지게 된다. 언제 어디서 쉬는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쉰다. 이와 같이 ‘쉬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터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因地修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불생불멸인 깨달음과 하나 되어가는 수행(果地修行)으로서의 반문문성법(反聞聞性法)을 꾸준히 닦아나가야만 될 것이다.
- 월호스님의 불교란 무엇인가 / 불교신문 -
종이배 / 김태정
사모하는 내마음은 종이배가 되오리다 출렁이는 물결따라 내사랑도 흘러흘러 저바다로 저바다로 님과 함께 가오리다
2 당신이 길이라면 내가 가야할 길이라면 내 모든걸 다 버리고 방랑자가 되오리다 거친 길위에 나 잠들거든 이슬바람 막아주오 님이시여 꿈에라도 지친마음 달래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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