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오직 마음의 편안함과 안온함 추구해/무상스님

2010. 7. 7. 18:4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곡성 성륜사 주지 무상스님

 
 
곡성 성륜사 주지 무상스님은 은사인 청화스님의 유지를 이어 가람을 수호하고 그 가르침을 널리 펴고 있다.
 
 
 
“불교는 오직 마음의 편안함과 안온함 추구해”
 
 
‘마음 하나 그대로 닦는’ 최상의 방법은 염불
 
그 자체가 禪, 부처와 내가 다르지 않음 드러내
 
先悟後修…깨치려면 이론적으로 먼저 깨달아야
 
 
전남 곡성 성륜사는 입적한 청화스님의 유지가 서린 곳이다.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이 스님에게 귀의해 성륜사를 지어 보시했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 기원정사를 바친 수닷따 장자에 비견되는 불연(佛緣)으로 회자된다. 청화스님 입적 후 제자들은 4년 마다 한 번씩 사찰을 지킬 소임자를 선출한다. 제자들은 성륜사 소임 맡기를 꺼린다. 본사 규모 못지않은 대중에다 가람 규모가 커 살림살이가 만만치 않은데다 대부분 스승을 좇아 자기 공부를 더 중히 여기는 문도 분위기 때문이다. 현 주지 무상스님은 지난 3월부터 사찰을 맡아 가람을 수호하고 선원 대중들을 외호(外護)하고 있다.
지난 6월23일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도 곡성에 도착할 무렵은 벌써 늦은 오후가 시작되고 있었다.
 
새벽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느라 졸았는지 고속도로 곳곳이 사고로 얼룩져 수도권을 벗어나는데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성륜사를 들어서자 곳곳에 참선공부를 알리는 소식지가 붙어있다. 광주에서 벗어난 산속 사찰인데 법회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있다. 매월 첫째주 일요일 오후1시 ‘큰 스님 영상법문’을 비롯 토요일 오후2시부터 4시까지 청화불교대학 염불선 강좌, 둘째주 토요일 오후3시에는 문도스님 초청 법문, 매주 토요일 저녁 철야정진, 초하루부터 초3일 신중기도, 초7일 산신각 기도, 보름 원불축원기도, 지장재일부터 관음재일 기간 1주일 아미타기도… 끝이 없다.
 
선원은 더 활발하다. 비구선원 선방에 10명이 결제를 나고 있으며 재가선원에도 20명이 정진중이다. 결제철 뿐만 아니라 산철에도 철야정진이 이어진다. 이들을 외호하기 위해 후원에만 10명이 바삐 움직인다. 주지 무상스님은 “정부 보조 한 푼 없이 오직 신도들의 기도와 정진, 포교 세 축으로 사찰을 운영한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님은 “도량이 이처럼 크고 대중이 많아 도저히 운영이 안될 것 같은데도 지금껏 적자 한번 나지 않았다”며 “모두 큰 스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스님이 은사스님을 처음 대한 것은 1984년 전주에서였다. 학교를 마치고 불교에 심취해있던 스님은 당시 청화스님의 명성을 듣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전주 원각회에서 청화스님 초청 법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게 됐다. 한 번의 법문을 듣고 감동한 스님은 안성 칠장사에서 첫 회상을 연 청화스님을 찾아가 제자를 삼아 주십사 간청했다. 하지만 청화스님은 더 이상 상좌를 두지 않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당시 청화스님 세납이 62세였다.
 
“큰 스님께서는 평생 수행만 하시고 회상을 열어 대중을 거느리지 않았습니다. 지리산 실상사 백장암에서 수좌들을 지도하시고 법문한 적은 있었지만 회상을 연 것은 칠장사가 처음이었어요, 상좌를 두기는 했지만 오래전 일이었어요. 이제 당신 상좌들이 상좌를 둘 때지 당신이 직접 두는 것은 지났다고 했지요.” 무상스님은 하지만 큰스님 밑으로 들어가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평생 행자생활을 해도 좋으니 곁에만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사중 일을 거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화스님이 부르더니 자네 내 상좌 하소” 한마디 하며 제자 됨을 허락했다. 무상스님의 고집 덕분에 뒤로 65명의 상좌가 더 큰스님을 은사로 모실 수 있게 됐다. 이후 무상스님은 청화스님이 2003년 열반할 때까지 20여 년을 모셨다.
 
이듬해 1985년 청화스님은 곡성 동리산 태안사에서 3년 결사를 시작으로 회상을 이뤄 대중교화의 인연을 지었다. 대중과 함께 정진하는 가운데 한국전쟁으로 퇴락한 태안사 중창 복원불사를 시작해 1995년 구산선문의 하나인 태안사 동리산문을 재건했다. 무상스님은 3년 결사를 비롯해 태안사 복원 내내 스님 곁을 지키며 정진했다. 3년 결사를 마친 스님은 미국 교민의 초청을 받아 캘리포니아 등지를 방문하며 법문했다. 미국에서 스님은 덕산 이한상 거사가 건립한 캘리포니아의 카렐 삼보사를 맡은 것을 비롯해 해발 3700m의 산 목장 부지를 사들여 금강선원을 개원했다. 여기서 스님은 다시 3년 결사를 보냈다. 무상스님은 미국 결사 현장에서 큰스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시봉을 오래하면 대개 좋은 면뿐만 아니라 나쁜 면도 보게 되는데 저는 살면 살수록 진실로 감동하게 됩니다. 아,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살고 수행까지 하게 되는가 존경 말고는 다른 감정이 들지를 않습니다. 모든 말씀이 법문이고 절대 허튼 말씀 안하시고 상좌들에게 욕도 하지 않습니다. 하대(下待)도 하지 않습니다. 꼭 저를 ‘무상아’ 하지 않고 ‘무상 수좌’ 이렇게 불렀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얼마나 양에 안차고 모자랐겠습니까. 그런데도 제가 잘못하면 가장 큰 꾸지람이 ‘자네 그러지 마소’입니다. 스님을 모셨지만 힘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기껏 운전한 것밖에 없습니다. 양말 한 짝도 당신이 직접 빨고 방 청소도 직접 하셨습니다. 낮에는 사람들을 만나 법문하고 상담하시고 밤에는 당신 빨래를 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에게는 매우 엄정하면서 상좌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웠습니다. 신도는 물론 상좌들에게도 절대로 그냥 앉아서 절을 받지 않고 늘 맞절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 앞에만 가면 눈물부터 흘리는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제 스승은 바로 성인이셨습니다.”
 
청화스님은 하루 한번 먹는 일종식(一種食)에다 평생을 눕지 않는 장좌불와 정진으로 유명하다. 철두철미한 수행과 무소유로 일관한 스님의 삶을 더 위대하게 만든 것은 부처님의 정통법을 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상스님은 “큰스님의 가장 위대한 점은 부처님과 조사의 정통 정맥을 이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사상적 위대성이 바로 염불선(念佛禪)이다.
 
 
정부 보조 없이 오로지
 
신도들 기도와 정진 포교
 
세 축으로 사찰 운영
 
“지금껏 적자 한번 없어”
 
 
염불선은 무엇인가. “염불(念佛)은 말 그대로 자기 본래 면목을 법계에 체현해내는 것이다. 즉 부처와 내가 다르지 않음(不二佛)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염불이다. 그러므로 염불 그 자체가 바로 선(禪)이다. 큰 스님께서는 ‘부처를 염(念)하는 염불하는 마음이 바로 불(佛)이요, 망상하는 마음이 바로 중생”이라며 “항상 염불하면 모든 상을 여의게 되는데 이를 불성이라 하고 제법실상이라 하고 정토라 하고 보리라 하고 또는 금강삼매 열반계라는 등 이름은 헤아릴 수없이 많으나 모두 동일한 진여불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입각한 최상승의 수행법’이라고 주창하셨다.”
 
청화스님은 “부처님이 저 멀리 극락세계에 계신다는 마음을 갖고 즉 마음밖에 두고 하면 방편 염불이고 부처님은 우주 법계에 두루 계시며 우리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고 생각해야 참다운 부처님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염불은 ‘내가 바로 부처’임을 염(念), 즉 드러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공부하는 방법은 먼저 깨닫고(先悟), 뒤에 닦는(後修)다. 우선 그 이치를 알아야한다. 청화스님은 생전에 “참다운 중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참선도 해야 하고 기도도 모셔서 우리 업장이 녹아나야 되겠습니다만 그렇기 전에 이론적으로 먼저 깨달아야한다”고 하셨다. 이는 마치 길을 떠나기 전에 어디를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미리 알고 가는 것과 같다. 혜능 이후 여러 갈래의 선(禪)으로 분화하기 이전 오직 ‘마음 하나 그대로 닦는’ 달마에서 육조까지 시대를 순선(純禪)시대라고 부른 청화스님은 “불교는 오로지 마음 편하고 안온함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 최상의 방법이 염불이라는 것이다.
 
무상스님은 “본래 부처이므로 본래 부처 모습으로 살아라는 것이 큰스님의 가르침이셨으며 은사스님은 그 모습 그대로 사셨다”고 말했다.
 
곡성=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무상스님은…
 
염불선을 주창한 신라 출신 ‘정중무상선사’와 법명이 같은 무상스님은 청화스님의 법문을 듣고 감동을 받아 안성 칠장사로 찾아가 1984년 출가했다. 청화스님을 모시고 태안사에서 3년 결사했다. 태안사 해인사 통도사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결제했으며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승가대 재학 중 휴학하고 은사스님이 오래 머물며 법을 펴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1년 염불 정진하기도 했다. 은사스님을 모시고 미국에서 포교했다. 지난 3월부터 성륜사를 맡아 은사스님의 뜻을 잇고 있다. 부임 뒤 재정공개를 단행했으며 앞으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 보궁을 짓고, 정통조사맥을 이을 회상을 꾸리기 위한 100년 대계 조감도를 만들 계획이다. 미술관을 청화스님 유물관으로 조성하고 재가불자 선원을 더 확장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불교신문 2636호/ 7월3일자]
2010-06-30 오전 11:19:38 / 송고
 

 

   Quizas, Quizas, Quizas ♪♪

 

       

   

            

            Siempre que te pregunto            시엠프레 케 테 프레군토             늘 네게 묻네
            Que, cuándo, cómo y dónde      케, 콴도, 코모 이 돈데                 언제? 어떻게? 어디서?
            Tú siempre me respondes         투 시엠프레 메 레스폰데스          늘 내게 말하지
            Quizás, quizás, quizás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 아래 2소절은 후렴으로 반복 됩니다 ♪♪

 

            Y así pasan los días                  이 아시 파산 로스 디아스             이렇게 날은 지나가고
            Y yo, voy desesperando            이 요 보이 데세스페란도              나는 절망하는데

            Y tú, tú contestando                    이 투, 투 콘테스탄도                   너는, 너는 늘 대답이
            Quizás, quizás, quizás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Estás perdiendo el tiempo          에스타스 페르디엔도 엘 티엠포    제일 좋은 것만                  

            Pensando, pensando                펜산도, 펜산도                            따지며 따지며
            Por lo que más tú quieras          포르 로 케 마스 투 키에라스         시간을 날리네
            Hasta cuándo?                           아스타 쿠안도?                           언제 까지나?
            Hasta cuándo?                           아스타 쿠안도?                           언제 까지나?
                 

                                  

            

 

   
 

Quizas Quizas Quizas - Laura Fygi
 

 

 

 Quizas Quizas Quizas - Trio Los Panchos

 

 

 

 

라틴음악은  우수와 낭만,

      라틴 특유의 정열로 이글 거립니다.

2곡은 같은 노래임에도 전혀 다른 맛이 나지요.

 

가사에 없는 아이!( ay! )라는 감탄사가 가끔

나오는데.."아이고" 라는 탄식이 랍니다. 

같이 한번 불러 보실까요?

 

     

   

사랑이란 늘 목마름의 갈증!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합니다.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 이기에..! 

 

그대를 사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