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안심(安心)/월호스님

2010. 7. 8. 20:4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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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안심(安心)

 

 

바로 지금 여기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


실체 없는 마음 편안케 하는 방편
참선 통해 궁극적 깨달음 체험해


불교 수행의 핵심은 참선에 있으며, 참선은 다름 아닌 안심법문이다. 일시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마음을 편안케 해주는 효능이 있다. 선의 초조인 보리달마와 2조 혜가 사이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전한다.

달마대사에게 혜가가 말했다.

“저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스님께서 편안하게 해주소서.”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주리라.”

혜가가 대답했다.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그대의 마음을 벌써 편안하게 해주었느니라.”

혜가는 이곳저곳으로 가르침을 구해 다녔지만 궁극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모든 지식과 사상이 정작 마음을 편안케 하는 데는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달마대사의 ‘마음을 가져 오너라’는 한 마디에 마음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만 불안하다고 생각해왔을 뿐, 실제로 불안한 마음을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 라고 하는 대답으로 마음이 이미 편안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보리달마의 가르침을 ‘대승안심지법(大乘安心之法)’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달마선의 주목되는 특색으로 ‘안심’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안심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것이며, 밖으로 무언가에 기댄 안심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성청정심에 입각한 안심이다. 또한 먼 훗날을 기약하는 안심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안심인 것이다. 6ㆍ25전쟁 당시 한 젊은이가 어떤 스님에게 마음의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 때 스님이 되물었다.

“전쟁 하고 자네 마음 괴로운 것 하고 무슨 관계인가?”

모든 번민은 자승자박일 뿐이다. 물론 외부와의 반연으로 일어나는 괴로움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보자면 그 역시 스스로가 만들어낸 일이다. 고통은 스스로가 수용하는 만큼 받는 것이다. 따라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놓아버리면 된다. 몸뚱이, 재물, 명예 등에 대한 애착을 놓아버리면 그 자리에서 해탈이 가능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참선을 하면 행복해진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를 테면 기도는 바라는 것이 있어서 소원을 빌게 되고, 소원이 성취됨으로써 기쁨을 느끼겠지만, 참선은 이와는 다르다. 누군가에게 나의 행복을 빌고 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 행복의 조건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실상 행복해지기 어렵다. 예컨대 가정의 평화와 경제적 풍요, 그리고 여러 가지 주변 상황이 자신의 뜻에 딱 맞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쉽게 행복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더 이상 될 것이 없음을 체험하는 것이 진정한 참선의 행복이다.

 
 
- 월호스님의 불교란 무엇인가 / 불교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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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쌍파티1집/주현미&김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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