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四溟) 성사의 외교

2010. 8. 29. 19:5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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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四溟) 성사의 외교

 

 

배광식(본지 집필위원)

 

올 8월은 유난히 더 더운 것 같다. 모든 달이 마찬가지이겠지만 8월에는 유난히 역사적으로 큰 사건들이 많았던 것 같다. 경술 국치일(1910.8.29)이 있은 지 100년이 지났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명성사(四溟聖師)께서 입적(1610.8.26)하신 지 꼭 4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은 평소에 국토방위의 대비가 없는 나라가 겪어야 할 곤욕을 잘 보여준 예이다. 선조임금은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는 왜병을 피해 신의주 몽진에 그치지 않고, 본인의 구명도생을 위해 아예 명나라로 건너갈 길을 엿보는 중에, 그나마 조선이라는 나라가 보전된 것은 평소에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민초들의 나라사랑에 의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배불숭유로 천대 받던 승려들이 의승군을 일으켜 목숨 걸고 싸운 일들은 두고두고 기려야 할 일이다.  

일본의 전국전란시대에 통일의 서광을 가져온 오다 노부나가가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습격을 받고 자살한 후, 일본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넘치는 무력의 힘을 빼기 위한 일환으로 명나라를 치기 위한 길을 내달라는 명분으로 조선침공을 시작한 것이 임진왜란이다.

이에 앞서 황윤길을 정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일본에 파견(1590)된 조선통신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돌아와, 정사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의지를 밝히고 대비를 주장한 반면, 부사 김성일은 그와 반대로 일본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 주장하여 결국 대비할 기회를 잃게 하였고, 2년 후 일본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이는 요즈음의 정치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왜침에 맞서기 위해 요청한 원군인 명나라 군대도 일부 도움이 되기는 하였지만, 그 행패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았다. 폭력적인 탈레반 남편에게 코와 귀를 잘린 아프간 여인의 사진이 타임지 표지화로 실려 있는데, 우리 죄없는 선조들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무수히 코와 귀가 잘려나갔다.

사명 성사(1544.10.17~1610.8.26)는 15-6세에 모친과 부친을 잃고, 17세에 직지사 신묵화상을 은사로 출가하여 18세에 봉은사에서 베풀어진 선과에 급제, 유학자와 문인들과 널리 교류하였고, 32세에 서산대사 휴정의 법제자가 되었다. 임진란이 일어난 49세에 의승군을 일으켜, 평양성 탈환에 수훈을 세우고, 가토오 기요마사의 진영으로 여러 번 들어가 회담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때 가토오 기요마사가 조선의 보배가 무엇이냐고 묻자, 가토오 기요마사의 목이 조선의 보배라고 말해 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하였으며, 이 후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설보(說寶; 보배를 말한) 화상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사명 성사가 55세가 되는 해 8월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음을 맞으며 유언으로 철군을 명령하여, 7년간의 왜란이 종결되었다. 왜란이 멎은 지 6년째인 61세 때 8월에 선조의 명에 의해 사절단을 이끌고 대마도를 거쳐 일본에 건너가 이듬해 2월 교토에 입성, 3월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死後) 세끼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여 실권을 장악한 쇼군인 도꾸가와 이에야스 및 차기 실권자인 그의 셋째 아들 도꾸가와 히데타다와 강화회담을 하였다. 이때 사명 성사는 일본으로부터 재침을 하지 않겠다는 약조, 조선왕조의 능침을 훼손한 병사의 조선 이첩, 3,000 여명의 피로(被擄) 송환 등의 업적을 이루어냈고, 이후 300여 년간 조일 교린(朝日交隣)의 길을 열었다.

요즈음 중동외교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문무를 겸비하고 전투와 외교에 출중하였던 사명 성사의 족적을 살펴보는 것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료되며, 올 4월에 출간된 역사소설 ‘사명대사 일본탐정기’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치의신보 월요시론 2010년 8월 23일(월요일) 제1864호

 

 

 

- ♤ 중년의 많은 색깔들... ♤

                      
중년은 많은 색깔을
갖고 있는 나이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분홍 추억이 생각나고
초록이 싱그러운 계절에도
회색의 고독을 그릴 수 있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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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은

많은 눈물을 가지고 있는 나이이다.
어느 가슴 아픈 사연이라도

모두 내 사연이 되어버리고
훈훈한 정이 오가는 감동 어린 현장엔 

함께하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만 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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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은

새로운 꿈들을 꾸고 사는 나이이다
나 자신의 소중했던 꿈들은

뿌연 안개처럼 사라져가고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꿈들로 가득해진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 꿈을 꾸고
가슴으로 잊어가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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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은 여자는 남자가 되고
남자는 여자가 되는 나이이다


마주보며 살아온 사이
상대방의 성격은 내 성격이 되었고
서로 자리를 비우면 불편하고
불안한 또 다른 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중년은 눈으로 흘기면서도
가슴으로 이해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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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은 진정한 사랑을 가꾸어갈 줄 안다.

중년은 아름답게 포기를 할 줄도 안다.  

중년은 자기주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그래서 중년은 앞섬보다 

한발 뒤에서 챙겨가는 나이이다.         

 

 

   - 좋은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