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어디 있는가?/경허선사

2010. 11. 28. 19:1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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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불법은 어디 있는가?

 

 

불법은 이상(異常)한 것이 아니다. 실로 마음을 일으켜 힘 써서 행하여 얻기를 마치 무거운 나무와 돌을 운반하는 것 같이 하거나 문무(文武)의 기술을 학습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는 특별한 작용도 아니요. 다만, 망상이 본래 없음을 통달하면 마음 바탕이 밝고 깨끗하고 안락하여 조작이 없고 가볍고 무거움도, 모자라고 남음도, 오고감과 생사도 없다.

 

   법이 이와 같으니 깨달은 자는 이러하고, 미혹한 자는 이러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곳을 당해서 이렇게 보림(保任)함이나 그러나 어찌 이렇다 할 것이 있겠는가. 공부를 하는데 어찌 여러가지 이름과 모양을 배열한 뒤에 손을 대겠는가.

 

   "이것의 뜻이 무엇입니까?" 

   "산하대지와 밝고 어두움과 빛과 공(空)이다." 

 

   "이것은 벌써 명상(名相)에 떨어졌습니다."

    "네가 무엇을 명상이라 하느냐?"

 

   "지금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생사가 이어지는 것이니 어떻게 제거해야 합니까?"

   "네가 무엇을 가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고 하는가?"

 

   "그렇다면 갈 데가 없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돌려다오."

 

   대게 출가한 사람은 먼저 그 안목을 바로 할 것이니, 만일 바른 안목을 얻으면 누가 감히 불법이니 세속법이니 하여 오고가며 도리를 지어 그 앞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또한 그렇지 않으면 천길의 절벽에 매달림이라 푸른대, 누른꽃과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말이다.

 

   누가 "현재 불성(佛性)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묻는다면, 나 성우(惺牛)는 크게 웃고 일어날 것이다 

 

 

7  임종때 겪는 처절한 고통

 

 

 


 

   물고기가 용이 되어 뼈를 바꾸어도 그 비늘은 고치지 못하고,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되어도 얼굴은 고칠 수 없다고 하였다. 밝지 못한 그대로 성품이 곧 불성(佛性)이요, 허망한 이 몸뚱이 이대로가 법신(法身)이다.

 

   이 도리는 매우 가까운 데 있는데, 눈을 열면 경계를 보는데 집착하고 눈을 감으면 스스로 현전처(現前處)를 이룬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네가 부처다."

 

   이렇게 명백하게 지도하여 번거롭게 인용하지 않으니, 이 모든 것이 범부를 성인이 되게 하는 지름길이다.

 

   옛사람이 이와 같이 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게 일러주고, 마음의 간절하기가 노파심 같으니, 외우고 익혀 반조하고 참구하며 선각자에게 널리 묻고 결택하여 깨닫는 이치로 회포를 삼아 자세히 탁마하면 도를 이룰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분(分)이 없을 것인가.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귀천과 남녀노소 모두 성불할 수 있는 분이 있다.

 

   슬프다! 머리 깍고 먹물 옷 입은 것은 무엇을 하려 함인가?

 

   눈이 빛에 끄달리면 아귀의 몸을 받고, 귀가 소리를 쫓으면 아비지옥에 들어가며, 빛과 소리에 취해 떨어지면 독을 넣은 술에 침몰되어 망상의 함정 속에 빠져 혼미하여 깨어나지 못한다. 오늘도 이러하고 내일도 이러하다가 섣달 그믐날이 닥치면 머리와 이마가 터지는 듯하고 간장이 잘라지는 듯 손과 발을 잡아빼는 듯할 때 그 슬프고 두려움은 끓는 물에 떨어진 게와 같고, 그 아픔을 참는 것은 거북의 가죽을 산채로 벗기는 것 같다.

 

   정신은 혼미하여 내가 천상으로 가는지 지옥으로 가는지 상상하여 헤아릴 수 없으니 슬프고 애석하다!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고난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고난에 굴복하고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하루를 좋은 날로 만들려는 사람은 행복의 창조자가 되고

"나중에"라고 미루며 시간을 놓치는 사람은 불행의 하수인이 됩니다.

힘들 때 손 잡아주는 친구가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행복의 당선자이고,
그런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행복 낙선자 입니다.

사람에는 기쁨도 슬픔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고
슬픔의 순간만들 기억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작은 집에 살아도 잠잘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작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남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사람은 이미 행복하고

상대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만 섭섭한 사람은 이미 불행합니다.

미운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반비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행복은 정비례합니다.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연합군이고
"너는 너, 나는 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의 독불장군입니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미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누구는 저렇게 사는데 나는"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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