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도 인터체인지가 있다 /지안스님

2010. 12. 5. 18:1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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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도 인터체인지가 있다 

- 지안 스님(조계종 승가대학원장)

 

 

사람이 사는 집은 평수에 따라 값을 매긴다. 요즈음 흔히 있는 일로, 같은 단지 내

에서 아파트를 분양할 때 집값의 차이는 곧 평수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위치나 층수 그리고 자재의 품질에 따라 값의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

으로는 공간의 크고 작음이 값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평수가 큰 집에 사는 사람이라도 마음이 좁으면 집이 작은 것이며,

아무리 작은 집에 살아도 마음이 넓으면 집이 크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말은 원래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를 변용한 말이다. 이 말은 물리적 공간보다 더

소중한 정신적 공간이 인간의 삶 속에 있음을 깨우쳐주는 메시지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마음이 커야 집이 큰 것이며 사람의 마음이 작으면 집이 작다는 말이다.

그래서 옛 선사(禪師)들의 법문에도

“사람을 보고 집을 보며 집을 보고 사람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분명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 공간에 행복이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 누리기’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쌓는 선업을 통해 내 인생의 의미가 만족되는 데 있지 않을까?

아무리 세속적 욕락(欲樂)에 탐닉하며 산다 해도 내 삶의 내용이 악업에 있다면

불행해지고 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스스로 악업을 지어놓고 그것으로

인생의 만족을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에서 내세우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살이라 한다. 이들의 활동을

보살도라는 말로 나타내며 인간 활동의 가장 모범이 되는 본보기로 제시하기도

한다. 『화엄경』을 위시한 대승 경전에서는 하나같이 보살도 실천으로 불교의

수행을 삼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보살도란 현대적인 의미로 설명하자면 내 행복의 공간을 남과 공유하는 것이다.

남이 불행할 때는 내 행복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노력하여 얻은 좋은

결과를 남과 함께 공유하며 나누는 것을 회향(廻向)이라 말하기도 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 회향 정신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바로 보살 정신이다.

 

경전에서는 보살도의 실천 덕목을 육바라밀(六波羅密)이나 사섭법(四攝法), 사무량

(四無量心)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보살도란 쉽게 말하면 보살의 마음이 되어 사람

사람의 마음 사이에 감동과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다. 서로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간 적인 유대와 협력 체계를 맺고 사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며, 이기적 개인주의

의 마음은 보살을 등지는 마음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때로는 깨달음 자체를 일컫는 말로 곧잘 쓰인다.

감정에 물든 희로애락이 일어나기 이전의 근원적인 마음, 괴롭거나 즐겁거나

슬프거나 노여운 상태 이전의 순수한 마음을 두고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또는

진여심(眞如心)이라 한다. 이 마음을 부처라 하며, 이 마음에 남을 도우려는

원력을 갖출 때를 보살의 마음이라 하는 것이다.

 

이 보살의 마음을 공간적으로 말하면 무한한 마음이라 하고 시간적으로 말할 때는

영원한 마음이라 한다. 영원하고 무한한 이 마음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갈무리하는

창고가 된다. 『화엄경』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에서는 중생들의 마음에

10개의 영원하고 무한한 창고가 있다 하였다. 사람의 마음에는 본래 갖춰진 공덕과

지혜가 한량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들은 이 창고에 갖춰져 있는

무진장의 보배를 모르고 산다 하였다.

 

우주 공간이 무한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비유하면 매우 작은 것이라는 말도 경전에

나온다. 『능엄경』에는 “허공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 바다에서 한 거품이 일어난

것과 같다(空生大覺中 如海一찉發)” 하였고 『원각경』에도 “가없는 허공이 마음

에서 나왔다(無邊虛空 覺所現發)” 하였다.

 

본래 중생이 가지고 있는 이렇게 크나큰 마음이 왜 작아졌을까? 번뇌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한다. 번뇌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가장 성질이 둔하여 끊기 어려운

근본 번뇌를 오둔사(五鈍使)라 하여 5가지를 드는데 욕심(貪), 성냄(瞋), 어리석음

(痴), 아만(慢), 의심(疑)이다. 이 번뇌가 장애가 되어 부처의 마음을 회복하지 못

하고 보살의 마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행복론은 이 번뇌장(煩惱障)에

서 벗어나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 행복의 공간을 막고 있는 번뇌를 극복해야 한다.

 

 

사람의 행복에는 독립성이 없다.

남은 불행한데 나만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이다.

 

행복은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깃드는 것이기 때문에

내 행복과 남의 행복 사이에 항상 인터체인지가 있는 법이다.

 

내가 남의 행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남이 내 행복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것이 보살의 사무량심 속 희사(喜捨)의 정신이다.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 사회에 이르러 사람의 마음속에는 번뇌가 더욱 많아

지고 있다. 그것은 사회의 모든 현상이 복잡다단해져가고 있는 데 기인한 의식의

혼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한 생각 속에 몸과 마음이 쉽게 피로해지면서 이런

저런 일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때로는 남이 귀찮아지고

이기적인 자기 안일만 위하는 아집을 갖고 남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행복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린다. 남을 어디까지나 부담스러운

 존재로만 생각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보살정신의 실종

이다. 나보다 잘된 남에 대한 열등감에서 불만이 생기고, 스스로 소외감에 빠져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지어 욕망의 노예가 되어 개인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자포자기하려는 심사가

되어 우발적인 충동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살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이고,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한다는 통계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현재 우리 사회는 매우 불우한 요소가 많다. 비록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사는 부류가 있다 하더라도, 진정한 개인의 행복이 축소당하고 폐쇄되려는 위협이

느껴지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적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힘이 필요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서로 소통되어 합쳐지는 힘이다.

 

내 행복의 공간과 남의 행복의 공간을 접속하는 일이 필요하다. 인터넷을 접속하여

나의 정보가 남의 정보가 되듯이,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이 되고 남의 행복이 내

행복이 될 수 있는 행복 접속의 큰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람의 행복에는

독립성이 없다. 남은 불행한데 나만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이다.

 

행복은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깃드는 것이기 때문에 내 행복과 남의 행복

사이에 항상 인터체인지가 있는 법이다. 내가 남의 행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남이 내 행복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것이 보살의 사무량심 속의 희사(喜捨)의

정신이다.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이 있고 만물동근(萬物同根)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가

한 송이 꽃이며, 만물이 같은 뿌리에서 자라고 있다는 이 말은 모두가 하나라는

동체의식을 드러낸다. 부처님의 자비를 동체자비(同體慈悲)라고 말하는 것처럼,

동체의식으로 돌아가 남을 생각해주며 함께 사이좋게 살라는 것이다.

 

양두사(兩頭蛇)라는 머리가 2개 달린 뱀의 이야기가 있다. 한 몸에 머리가 둘인

뱀이 먹이를 찾아 먹는데, 언제나 오른쪽 머리에 있는 입이 먹이를 집어 먹었다.

왼쪽 머리보다 훨씬 민첩하게 먹이를 찾아 먹는 것이었다.

  왼쪽 머리는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오른쪽 머리의 입으로만 먹이가 들어가고

자기 입은 얼씬도 못하니 오른쪽에 대한 불만과 열등의식이 생겼다. 그러다 한번은

먹이가 나타났는데도 오른쪽 머리가 먹지를 않는 것이었다. 이때다 싶어 왼쪽 머리

가 재빨리 먹이를 집어삼켜버렸다. 그런데 그 먹이에는 독이 들어 있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양두사는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한 몸 위에서 두 입이 대립하

듯이, 한 사회 한 나라 한 세계에서 서로가 대립하면 자칫 근본인 하나가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를 주는 이야기이다. 상생 또는 공생의 원리 속에서 중생의

삶은 발전할 수 있다. 생명의 발전도 이 상생의 이치 속에 있다.

 

천지만물을 골고루 비춰주는 햇빛처럼, 마음의 빛으로 남을 비춰주고 도와주는

사람이야말로 행복의 공간을 크게 만드는 보살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 불교문화 사진: 불교신문 -

 

 

 

  ♣인터넷 하는 老人의 두뇌(頭腦)는 건강하다 ♣

 

 

날카로운 기억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인터넷 서핑을 해라,

인터넷 검색이 중장년층의 기억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제까지 퍼즐이나 바둑등이 腦활동을 촉진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많았으나 인터넷 검색의 腦활동 촉진효과는 처음 발표된 것이다.

 

미국 ucla대학 연구팀은

"인터넷 검색이 독서보다 효과적으로 腦의 광범위한 영역을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며

"老人들의 사고력과 기억력을 유지하는데 인터넷이 주요한

역활을 할수 있을것" 이라고 밝혔다.

 

첨부이미지 

 

연구팀은 55세~76세 사이 중장년층 24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검색을하는동안 腦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mri로 촬영했다

이들중 절반은 인터넷 검색 경험이 있었고 나머지 지원자들은

전혀 사용한 경험이 없었다

 

실험 참가자들의 연령, 성별,교육 정도에는 차이가 없도록 조절했다,

그결과, 독서를 하는 동안에는 腦에서 독해와 언어 능력을 담당하는

후두엽의 활동이 활발했으나

 인터넷 검색을 하는 동안에는 전도엽을 포함해 더 많은 영역이

광범위하게 활성화 되는것으로 나타 났다.

 

단, 인터넷 검색에 익숙한 사람들일 수록 이같은 효과가 뚜렸 했으며,

처음 인터넷을 접하는 老人들의 경우에는 활성화 정도가 다소 낮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책을 읽을 때는 활성화 되지않는 腦의 부분들을 인터넷

검색으로 활성화 시킬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며 

"앞으로  老年층의 腦기능 저하방지을 위해  인터넷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