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아집(我執)'이라 하는가[대보적경]

2011. 2. 20. 17: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염불 불보살 이야기

728x90

만일 여래와 성문중이 서로 엇갈리면 곧 등지게 되고, 서로 등지면 거듭 서로 어그러지고, 서로 어그러지면 세속의 것[有]을 즐기게 되고, 세속의 것을 즐기면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게 되고, 세속의 것을 구하면 자꾸 끝없이 구[遍求]하게 되고, 끝없이 구하면 만족을 얻지 못하며 짓는 것이 많게 되고, 짓는 것이 많으면 곧 삼계(三界) 속에 잠들게[睡眠] 되느니라.
  만일 삼계에 잠들게 되면 곧 다른 이도 잠들게 하고, 다른 이도 잠들게 하면 그는 곧 따라 흐르게 되고, 또한 따라 흘러 다니는 자가 되느니라. 따라 흐르고 따라 흘러 다니는 자는 죽음에 나아가게 되고, 죽음에 나아가는 자는 열반에 나아가지 못하느니라.
  열반에 나아가지 못하면 못 갈 곳에 이르게 되고, 못 갈 곳에 이르면 지옥에 들어가느니라.
  이와 같이 가섭아, 상서롭지 못한법과 성내고 분하게 여기는 독한 마음과 덮어 가리우지 못하는 짓과 서로 응하느니라. 덮어 가리우지 못하면 아상(我相)을 관찰하지 못하고, 관찰하지 못하는 자는 한 덩어리의 생각을 지어서 '나[我]'라든가 '나의 것[我所]'이라는 집착을 녹여 없애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아집(我執)'이라 하는가. 실답지 못한 까닭에 갖가지 생각에 머물러 모든 세업(世業)을 지으며, 이런 사람은 아상에 집착하여 그것이 '나'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의 것'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탐욕이니 이것을 '나의 것'이라 하나니, 모든 욕심 낼 경계에 자기와 어울리며 탐심을 일으켜, 탐착을 낸 뒤에는 능히 금계(禁戒)를 파괴하고, '남의 것'에 좋지 못한 마음을 내어 진심의 덮임으로 말미암아 서로 경멸하며 남의 재물을 제것으로 만들어 애호하니 이것을 '남의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남의 것'이 있으면 유전(流轉)이 있고, 유전이 있으면 미혹이 있고, 미혹이 있으면 비방이 있고, 비방이 있으면 진에(瞋恚)가 있고, 진에가 있으면 해칠 마음을 먹게 되고, 해칠 마음을 먹으면 마음이 불타게 되고, 마음이 불타면 남을 불사르니, 이와 같은 허물이 다 탐욕으로 말미암느니라.
  남녀라는 생각과 목숨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어 이것이 '나의 소유'라고 하나니, 이것을 '나의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런 뜻에서 '나의 것'을 말하는 자는 자기 몸을 반성하여 꾸짖으라.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나'라는 번뇌로서 어리석은 범부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나의 것'이라 말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중생이 이 법을 듣지 못하고 '보리'와 '보살행'을 말하는 것은 올바른 행이 아니니라. 실로 행할 것 없는 것이 '보살행'이니라.
  또 가섭아, 만일 모든 보살이 행이 원만하여 이지러짐이 없고 청정하고 매우 청정하며 두루 청정함을 얻었다면 이 사람은 곧 큰 법을 말하리니, 위력이 있고 용맹 정진하는 자라 이름하리라. 그가 말한 법은 허공과 같아, 막히고 걸림이 없으리니, 이치다운 자며, 공덕 있는 자며, 능히 수행하는 자라 하리라. 그는 끝내 저 이치답지 못한 자, 공덕 없는 자, 수행하지 않는 자가 되지 않으리니, 너희들은 마땅히 이 법을 받아 지니되 이 법에 집착을 내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말씀은 제일이 되나니 최상승 중생의 물음을 위하여 최승(最勝)의 법으로 해설함이니라.
  어떤 것이 최승의 법이냐 하면, '법이란 생각 없는 것[無法想]'이 바로 그것이니라.
  가섭아, 이렇게 보살이 최초의 정계(淨戒)를 갖추어 호지(護持)하여 마음에 잘하는 체하지 말고 무간업(無間業)을 짓지 말지니라.
비구니를 범하지 말며,
또한 속인의 집을 친하고 가까이 말며,
살생(殺生)·도둑질·사음(邪淫)의 행을 멀리 여의며,
거짓말·이간하는 말·추악한 말·잡된 말을 여의며,
탐욕·진에·사견(邪見)을 멀리 여읠지니라.
  이미 스스로 시끄럽지 아니하고 또한 남을 시끄럽게 하지 말며,
욕심과 함께 하지 아니하고 또한 욕심을 받지 아니하며,
도박놀이 하지 않고 또한 남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며,
마침내 불남인(不男人:中性)을 친근하지 아니하고,
음녀·과부·처녀의 집에 가지 말며, 남의 아내를 가까이하지 말고,
  한 물고기와 새를 잡는 사람이나 사냥꾼·백정 등을 친하지 말지니라.
  술 마시는 사람과 그 손을 잡고 더불어 싸우거나 다투지도 말라.
이런 모든 일을 여의기를 사나운 개와 백정의 무리를 피하듯 하라.
  사랑하는 마음에 머물러서 저 일체 멀리 여읠 것을 한 생각 나쁜 마음이라도 일으키지 말지니라.
  마땅히 여읠 것이 이십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이십가지냐?
  말하자면 여인을 여의라. 또한 그들과 시시닥거리어 희롱하고 잡된 말로 논란하거나 다투고 송사하지 말지니라.
  부모와 불(佛)·법(法)·승(僧)에 공경하지 않는 일을 여읠지니라.
  만일 여인이 이십명이 되지 않거든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지 말지니라.
남자가 있는 곳은 제외하느니라.
  끝내 비구니가 설법하는 처소에 나아가지 말지니라.
  모든 비구니에게 안부를 묻지 말지니라.
  여인과 더불어 편지를 주고받거나 혹은 여인을 시켜 글을 남에게 전하지 말지니라.
서신은 남자에게 부칠 것이요 여인에게 부치지 말지니라.
  일체 친족의 별청(別請)은 끝내 받지 말지니라.
  욕심으로써 잠깐 동안이라도 여인 앞에 머물러 있지 말지니라.
  또한 제 처소를 떠나서 은밀한 곳에 가서 여인과 더불어 같이 이야기하지 말지니라.
  비구니를 좋아하여 같이 다니지 말지니라.
  만일 비구니가 의복을 베풀어 주거든 받아 쓰지 말지니라.
다만 사부중에 설법할 때는 제외하느니라.
설법을 위하여 옷을 베푸는 이가 있거든 마땅히 대지(大地)와 같이 평등한 마음으로 받을 것이요, 따로 베푸는 자의 낯을 보고 받아 쓰지 말지니라.
  만일 비구니가 권도(勸導)하여 옷을 베풀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거든 마땅히 받지 말지니라.
  만일 비구니가 음식 받기를 권청하거든 설사 병중에 있더라도 받지 않겠거든 하물며 병이 없이 받겠는가.
  만일 과부가 와서 공양을 청할 때 승수(僧數)가 차지 못하거든 또한 받지 말지니라. 

  또 마땅히 여승들 안에 들어가서 어떤 비구니를 불러내지 말라.
만일 비구니가 와서 보살을 부르거든 마땅히 그 처소를 옮겨 두 손을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버리고 갈지니라.
  만일 설법할 때에 비구니가 와서 그 발에 예배하거든 발을 움직이지 말고 다만 눈으로 두 손바닥만 볼지니라.
  선남자여, 다만 몸으로 정진할 뿐 아니라 또한 부지런히 마음으로 한 곳을 바로 생각하여 모든 경계에 탐냄·성냄을 일으키지 말지니라.

  온갖 지혜[一切智]를 구하기 위하여 굳은 맹세를 일으켜 이 법을 듣고는 신심을 성취하여 마땅히 닦아 배울지니라.
  가섭아, 만일 보살승(菩薩乘)에 나아가려는 선남자·선여인들이 이 법을 듣고 여실한 깊은 믿음을 내지 않으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닦아 배움으로 말미암아 저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요, 닦지 않고서는 능히 증득할 수 없느니라.
만일 닦아 익히지 않고 보리를 증득한다면 고양이와 토끼 따위도 또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리니,
왜냐하면 바로 행하지 않는 자는 능히 위없는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만일 바로 행하지 않고 보리를 얻을진대 음성과 언어도 또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리니 이렇게 말하리라. '나도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 나도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 이것으로 보리를 증득한다면 끝없는 중생이 마땅히 바른 깨달음[正覺]을 이루리라.

  중생이 이 행을 닦아 배우기는 매우 어려우니, 하루 낮과 밤 동안만이라도 순일한 생각을 마음에 두지 못하거든 하물며 어찌 일겁 내지 천 겁에 이르겠는가. 그러므로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 되느니라.

  가섭아,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일체 중생이 일겁, 백 겁, 천 겁 내지 억천 겁을 지나도록 한 중생을 위하여 같이 이런 말을 하여라. '너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라, 너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라.' 이 모든 중생이 다 같이 에워싸고 끊임없이 외치기를 '장차 부처가 되어라. 장차 부처가 되어라.' 이렇게 차례로 하되 숨쉬는 것은 오히려 그칠 수 있지만 이 외치는 소리는 그침이 없다고 하자. 이러한 외침이 오히려 처음 보리심을 익히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능히 위없는 불과(佛果)를 증득하겠느냐? 만일 증득한다면 이런 이치가 없느니라. 
  
  가섭아, 내가 멸도(滅度)한 뒤 말법 시대거나 또는 너희들이 이미 열반에 들어서 모든 하늘의 믿고 보호할 바가 되지 못할 적에 많은 중생이 나의 공덕을 듣고 보리심을 발하리라. 그 가운데 어떤 비구들이 비록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였더라도 다시 이십가지 법 가운데 머무르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이십가지냐, 말하자면 비구니에게 친근하는 일, 부정식(不淨食)을 받고 아름다운 맛에 탐착하는 일, 권화(勸化)하여 얻은 음식을 받는 일 등이니라.
  가섭아, 지금 들은 것이 많은 비구가 고요한 곳이나 혹은 촌락에 머물러서 부지런히 닦아 익히듯이 수세에 모든 비구들도 또한 이와 같이 촌락이나 혹은 고요한 곳에서 비구니와 더불어 모여 언론으로 법의(法義)를 답문하리니, 그 비구·비구니가 물든 마음을 내는 것은 많고 법의 마음 내기는 적으리라.
  가섭아, 너는 관찰할지니라. 이런 무리가 보살의 이름을 얻는다면 크게 위험한 데 떨어져 악취(惡趣)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때를 당하여 처음에는 법의 인연으로 서로 친근하였지만 보고 나서는 욕심의 불이 마음을 불사르며 입술을 움직이어 그 욕정을 표현하나니, 그들이 서로 가까이 할 적엔 처음에는 제자니 스승이니 하면서 예경을 표하다가, 다음은 차츰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여 서로 만날 기회를 만들고 혹은 길거리나 절 안에서 멀리 서로 바라보며, 나고 들 적에 어디로 다니는 길을 묻고 서로 친족이라 하고 남매를 맺으며, 이로 인하여 자주 서로 보는 까닭에 서로 친하게 되고, 친한 뒤에는 물든 마음을 내게 되고, 물든 마음을 낸 뒤에는 같이 부정한 일을 하게 되고, 부정한 일을 한 뒤에는 다시 범행(梵行)이 아닌 이름으로 서로 부르게 되느니라. 이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보리와 좋은 곳에 태어나는 일을 잃게 되며, '열반'을 멀리 여의고 여래를 놓아 버리며, 바른 법을 등지고 승가(僧伽)에게 버림 받게 되니, 그윽한 곳에 숨어서 탐욕과 진에와 남을 해칠 온갖 나쁜 생각을 일으키나니, 이 사람은 보살의 거룩한 업과 '네 가지 깨끗한 행[四淨行]'이 없느니라. 오늘에 부지런히 범행을 닦는 모든 보살도 미래세에 욕심과 진심과 남을 해칠 생각을 일으키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가섭아, 그때를 당하여 이런 종류에 처하는 자를 이른바 악한 행위·도둑의 행위·꾸미는 행위[矯行]라 하느니라.
  너는 그때에 금계를 허는 자를 보아라. 이런 경을 듣고 곧 비방하리라. 만일 계와 보시에 머물러서 기쁘게 보리심을 냈다가도 뒤에 이 경을 듣고 다시 비방하리라.
  네가 그때에 이런 모양이 있는 것을 보거든 명심하여 증험할지니라. 만일 이 경을 들으면 비방할 것이니라.
  그 가운데도 슬기로운 자와 깨끗한 계를 닦는 자와 바른 법을 지니는 자는 이 경을 알고 말하리라.
  '이 경을 비방하는 비구는 법을 알지 못하나니 마땅히 이런 사람은 멀리 여의라. 이런 무리는 마음으로 법을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까닭이라' 하느니라.”

[대보적경 제1권]


 

피하려고만 하지 말자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걱정만하고있다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현실을 직시하지 않음으로써 집중력마저 잃게 만든다

아무리 나쁜 상황에 처했더라도 피하지 말고 맞서자

 

첫째,우선 문제를 인정하고 전부를 받아들이자

그렇게 하면 마음이 침착해지고 문제에 집중할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걱정거리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이 의외로 간단하다

 

둘째, 최악의 경우를 예측했으면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정신적 평화를 느낄 것이다

 

셋째,정신적으로 받아들인 최악의 사태를 조금이나마

완화 시킬수 있는 방법을 찾자. 새로운 길이 열릴것이다

응용 심리학으로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여라 일단 일어난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이상 불행한 결과가 일어 나지

않도록 가로막을 수 있는 첫거음 이다

 

중국의 철학자 임어당도 그의 저서 "생활의 발견"을

통해 이를 강조 하였다

"참다운 마음의 평화는 최악의 사태를 감수하는 데에서 얻어지며

이는 심리학적으로 에너지의 해방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단 최악의 사실을 받아들이고보면

그 이상 나쁜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말해서 상황이 그 전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만일 어떤 고민이 있다면 다음 사항을 실행해보세요

 

!  일어날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 도저히 어쩔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 조용히 그 최악의 사태를 개선해 간다

 

 

- 좋은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