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와 '과보'만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 / 도법스님

2011. 4. 2. 11: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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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와 '과보'만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 / 도법스님

 

 

고정불변의 '아트만'이 없다고 하셨다. 부처님은 '아트만' 설을 부정하셨다.

어제까지 '앙굴리말라'처럼 형편없이 살았어도 오늘 내가 마음을 고쳐먹으면

'아힘사'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어제까지 '아힘사'로 살았어도 오늘 내가

마음을 형편없이 먹으면 다시 '앙굴리말라'가 될 수 있다.

 

수다원과를 증득하거나, 장좌불와를 해야지, '개과천선'을 하고 '아힘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앙굴리말라'도 될

수 있고, '아힘사'도 될 수 있다.

깨달아야지 '아힘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못 깨달았기 때문에

'앙굴리말라'로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힘사'의 행위를 하면 아힘사가 되는 것이고, '앙굴리말라'의 행위를 하면

앙굴리말라가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후조종하는 나만의 고정불변의

어떤 '아트만' , 즉 '행위자'는 없다고 하셨다.

대신 과거의 나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나쁜 과보는 받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앙굴리말라도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지난날 행했던 '과보'가 있었고, 새로 태어난 '앙굴리말라'를사람들은 그 전에 

나쁜 앙굴리말라라는 고정불변의 사악한 '앙굴리말라'로 계속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그 사람의 나쁜 모습을 보고, 지금도 저 사람은 나쁘다고 '상'을 짓는다.

그러나 지금 그 사람이 좋은 마음을 먹고, 좋은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다시 나쁜 마음을 먹고 나쁜 행위를 하면 나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아니 되기도 한다고 했다.

도둑놈(아트만)이 도둑질을 한다 - 삿된 견해

부처님(아트만)은 대자대비한 분이다 - 삿된 견해

도둑질 하는 사람이 도둑놈이다 - 바른 견해

대자대비한 분이 부처이다 - 바른 견해

 

아무리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교묘'하게 다른 이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하게끔 한다면,

그것은 악한 업을 짓는 행위이며, 그 순간, 그는 '부처'도 아니며 '중생'인 것이다.

반대로 어제까지 '중생'으로 살았더라도, 지금의 그 행위가 남을 이해, 존중, 배려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선한 업을 짓는 행위이며, 그 순간, 그는 '중생'이 아닌 '부처'인

것이다. 즉. 부처라고 할 성품도 없고, 중생이라고 할 성품도 없다.

 

나는 태어난 이래로 한번도 살생한 적이 없다고 하신 '아힘사' 스님의 말씀처럼,

새롭게 마음을 고쳐먹으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물론 지난날에 익숙한 습관과 업이 있다보니, 또는 고정불변의 아트만이 있다는 생각을

믿다보니, 그것이 잘 안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난 이러한 사실들이 나에게 큰 희망을

주고,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불법이고 전법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