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의 관심론/법문 

2011. 7. 9. 17: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달마혈맥론

728x90

달마의 관심론/법문

불도를 구하려면 어떤 법을 닦아야 가장 요긴하겠느냐고 혜가대사가 묻자,

달마대사는 관심법이 가장 요긴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마음을 관하는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관심법이란 자기 마음을 언제든지 잊지 않고 들여다보고 비춰 보는 방법으로서,

이 법말고 다른 법은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불도를 구하려면 계를 지키고, 불공도 들이고, 염불도 하고,

주력도 하고, 참선도 하고, 경도 외우고, 기도도 하고, 가사불사도 하고,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등 여러 가지 불사를 다 합니다.

 그러나 불법을 아는 사람은 그 모든 불사보다도 마음 관하는 한 법이 가장 요긴하며,

마음 관할 줄 알면 다른 법이 필요치 않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혜가대사가 다시 “어떻게 관심법 하나가 이 모든 행을 다 포함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삼라만상 일체 시위운동(施爲運動)이 다 법에 들어가는데, 어째서 한 가지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러자 달마대사가 “마음이란 만법의 근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만법이 마음으로부터 생겼기 때문에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지요.

밥 먹고 옷 입고 잠을 자는 것도 마음으로 하는 것이요,

기도나 참선이나 불사도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울고 웃고 성내는 것도 모두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만법의 근원이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비유를 하나 들었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뿌리가 받쳐주기 때문에

생장할 수 있는 것이지 뿌리가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무를 살리고자 하면 뿌리를 잘 건사해야 하고 나무를 죽이려면

뿌리를 베면 됩니다.  나무와 뿌리의 관계는 만법과 마음의 관계와 같아서,

마음이 근본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알고 도를 닦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닦아도 허사가 됩니다.

 

 선이든 악이든 이 마음으로 짓는 것이니, 마음 바깥에서 따로 불도를 구하려고

해봤자 되지도 않을 소리라는 것입니다.

또 “어떻게 마음을 관해야 요달한 것이 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요달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이 공(空)이며 무아(無我)인 줄을 알아야 하며,

자기 마음이 작용할 때 두 가지 마음을 보아야 한다고 대답의 서두를 열었습니다.


사대와 오온이 공하다는 말은 『반야심경(般若心經)』 첫 부분에도 나와서

우리가 매일 외우다시피 합니다. 관자재보살마하살이 깊은 지혜로 피안에

건너가는 행을 닦을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본다고 했지요.

 우리는 모두 저 언덕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합니다.

마음을 알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이 언덕은 늘 괴롭고 불편하고 자유가 없고

미운 것과 더러운 것이 있는 곳입니다.

 

그에 비해 저 언덕은 마음을 깨친 부처들이 사는 곳이라 고통이나 불편함이 없고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는 곳입니다. 보살이 거기에 가기 위해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사대오온이 공해서 ‘나’라 할 것이 없는 줄을 안다는 말입니다.

사대(四大)란 지·수·화·풍(地水火風), 즉 땅 기운과 물 기운과 불 기운과 바람

기운을 말하는데, 그 네 가지가 합해져서 우리 몸이 조성이 된 것이라,

이 몸뚱이를 사대색신(四大色身)이라고 합니다.

 

우리 몸은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두 가지 주워 모아서 조성된

것이란 말입니다. 마치 연자와 기둥과 서까래, 주춧돌 등을 보태서 이 집이 만들어진

것이지, 집이 본래 있던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오온(五蘊) 역시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다섯 가지가

인연 따라 모여서 우리 육신과 정신을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색(色)은 형상과 색깔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몸뚱이 역시 형상이 있으니

몸뚱이는 색에 속하고, 수·상·행·식은 모두 정신에 속합니다.

 

외부의 경계를 받아들인다고 해서 받을 수(受) 자, 받아들인 경계를 무엇이라고 개념

〔名字〕을 떠올린다고 해서 생각 상(想) 자, 생각해 떠올린 명칭이나 개념에 대해

계속 사유를 지어 간다고 해서 행할 행(行) 자, 분별을 한다고 해서 알 식(識) 자,

이 네 가지에 앞의 색을 더해 우리 육신과 정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대오온, 즉 우리 육신과 정신은 본래 공해서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처음 듣는 이는 조금 어렵겠지요. 내가 버젓이 여기 있는데 어째서 내가 없는 것으로

알라 할까 하는 의심이 날 테지만, 고요한 마음으로 그 뿌리를 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입이나 주먹이나 손 등 신체의 일부를 가리켜 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입은 입일 뿐 나는 아닙니다. 이렇게 이것저것 주워 보탠 것을 가지고 나라고 하니,

그 ‘나’라는 것은 이름에 불과할 뿐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두고 인연(因緣)의 화합(和合)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인연이란 본래 없던 것인데 어떤 때에 이것저것 필요에 따라 모인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도 인연으로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써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인연으로 된 것은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가령 여러분이 이 몸뚱이를 나라고

생각하여 애지중지 잘 먹이고 잘 입히면서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만,

불과 백년도 못 돼서 없어지고 맙니다. 무상하고 허망하지요.

 
그러므로 불교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라면 무상(無常)을 먼저 깨쳐야 합니다.

이 세상에 안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집도 산도 돌멩이도 땅덩이도,

필경에는 우리 몸뚱이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생겨나는 것은 다 죽고 마는구나,

만난 사람은 언젠가는 이별이 찾아오고야 마는구나, 이런 무상을 느껴야

무상하지 않은 진리를 찾습니다.

 

이리도 헤매고 저리도 헤매고 하면서 찾다가 결국은 어떤 인연으로 해서

부처님의 법에 귀의하게 되는데, 불법에 귀의하게 되는 이유는,

불법이 실상(實相)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무상한 것과 함께 무상하지 않은 진리를 일러준 이가 우리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몰랐을 때는 허망한 사대육신을 참된 것으로 알고 믿지만 허망한 줄

알았다면 거짓을 참으로 알고 집착을 할 것이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어느 경에서나 공(空)을 많이 말씀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중생들의 눈으로 보면, 이것이 실제인 줄 알고 거기 가서 탐착을 하기 때문입니다.

 집착하면 고통이 생겨납니다. 여러분도 경험을 하셨을 테지만, 가령 이 집이

내 집이다, 내 재산이다, 내 자식이다, 손자다, 내 물건이다 하는 집착이 있으면,

이것이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리면 괴롭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것들이 다 공(空)이며 무아(無我)라고 하셨습니다.

 공과 무아라는 것이 모든 법의 실상임을 설파하시는 한편, 공과 무아를 모르고

집착하는 데서 생기는 고통을 덜어주시려고 항상 절실하게 공과 무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생들은 나라고 하는 아집(我執) 때문에 고통을 받고 사는 존재이니,

고통을 여의려면 무아(無我)의 이치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없으면 고운 놈 미운 놈도 없고, 얻을 놈 잃을 놈도 없고, 무서운 놈 만만한

놈도 없고, 슬픈 일도 없고 기쁜 일도 없을 테니 아주 편안할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를 하려면 사대오온이 무아라는 이치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마음을 관하라고 했는데, 내 마음에서는 항시 일체 만법이 일어납니다.

 도를 알려면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고 쓰고 하는 것에 두 가지 차별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차를 마시는 것도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라고 하니

밤낮 찾아다녀도 마음이 나타나지 않는데, 어떻게 마음을 보라고 하느냐고

답답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참선을 하는데 마음을 보려면

다른 것을 보려 하지 말고, 이렇게 쓰는 것을 보면 나타납니다.

쓰지 않을 때는 숨어버려 자취가 없어서 마음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일으켜서 쓰는 것을 관찰해 보면 두 가지 차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깨끗한 마음이고 하나는 더러운 마음입니다.

마음에 본래 깨끗한 놈이 하나 있고 더러운 놈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쓰는 데에 따라서 두 가지로 나뉜다는 뜻입니다.


깨끗한 마음[淨心]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무루(無漏)인 진여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참 진(眞) 자에 같을 여(如) 자, 참되고 여여한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무루는 없을 무(無)에 샐 루(漏) 자, 새는 것이 없다는 말인데, 샌다는 것은

자루에서 물이 새어나오듯 마음이 바깥 경계를 향해서 새는 것을 뜻합니다.

 

한시도 쉴새없이 이렇게 변하고 저렇게 변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깨끗한 마음은 그렇게 변하는 일이 없어서 참되고 여여하다[眞如]는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은 참마음이라고 알아두면 되겠습니다.

 더러운 마음[染心]은 새는 것이 있는 무명(無明)의 마음입니다.

무명이란 밝음이 없다는 말인데, 지혜가 없기 때문에 어둡습니다.

 

어두운 마음은 이 생각이 나고 저 생각이 나고 이렇게 쑥쑥 빠져나갑니다.

자루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면 물건이 쑥쑥 빠져나가 듯, 그것이 더러운 마음이며

망념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종류의 마음은 본래 함께 있는 것이지,

인연이 화합한다고 해서 깨끗한 마음이 더러운 마음을 생기게 한다든지,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을 생기게 한다든지 하지는 않습니다.

 
깨끗한 마음은 항상 선한 행을 즐기고, 더러운 마음은 항상 악한 행을 좋아합니다.

무슨 일이거나 인이 있고 과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진여인 정심(淨心)을

스스로 깨달아서 그 깨달음이 더러운 데 물들지 않으면 그런 이를 성현이라고 합니다.

우리 중생은 일체 환경에 지배를 받아 경계를 마주하면 거기에 끄달리는데,

그것이 물든 마음입니다.

 

가령 붉은 것을 보면 붉은 마음이 생기고, 검은 것을 보면 검은 마음이 생깁니다.

 새소리를 들으면 새소리에 물들고, 개소리를 들으면 개소리에 물들고,

욕하는 소리를 들으면 대번에 얼굴색이 변해서 성을 내고, 누가 착하다고 해주면

기분 좋아하고, 이렇게 물이 듭니다.

 

그런데 여여한 참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경계가 닥쳐와도 동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서 일체 환경에 물들지 않는 이가 성현인데,

이런 분들은 모든 고통을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습니다.

 열반락이란 고요한 즐거움입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달콤하기도 하고

새콤하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한데, 열반에서는 이 세상과는 달리 고요해서

내 마음이 물들지 않는 그런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더러운 마음을 따라서 악을 지어 거기에 얽히고 설키고 속박을 받으면

그런 이를 범부라고 합니다. 범부는 무명 때문에 마음이 경계에 끄달려갈 뿐

아니라 집착을 내므로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릅니다.

 그리하여 욕계, 색계, 무색계에 쉴새없이 떴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온갖 고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 즉 진여의 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염심(染心)이 정심(淨心)을 가리고 있다는 이치를 『십지경』과

『열반경』을 인용하여 근거를 제시합니다. 『십지경』에서는, 중생들의 현재

몸 가운데도 견고해서 부서지지 않는 금강(金剛) 같은 불성(佛性)이 있는데,

그것이 환한 해처럼 이지러진 데 없이 밝고 둥글지만, 오온(五蘊)의 검은 구름에

덮여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병 속에

등불을 켜 놓으면 아무리 나오려 해도 빛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빛이 나타나지 않아도 병 속에는 등이 틀림없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중생이 번뇌망상에 덮여서 모르기는 하지만 불성은 틀림없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열반경』에서도, 일체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으나 무명에 덮여 있어서

해탈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불성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깨달아 지혜가 밝아지면

무명의 구름은 저절로 걷히는데 그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법이

깨침으로 근본을 삼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 각(覺)이라는 뿌리를 바탕으로 해서

모든 공덕의 나무를 생장하게 하고, 드디어는 열반이라는 열매가 열리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마음을 관해야 비로소 ‘알았다[了]’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옮겨온 법문

 

 

 

 

한송정(寒松亭) 달빛타고 흐르는 애모(愛慕)

 -   한송정에 떠오르는 다섯개의 달

 

 

열 엿새 기망(旣望)의 둥근 달이 정자 위에 둥실 떴다.

강원 감사 박신이 이튿날이면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어 이를 축하 하고자

강릉 한송정에서 송별연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초가을 저녁.

 

어둠을 밝히는 등불과 사방을 비추는 달빛 아래 강릉부사 조운흘은 술잔을 들어

가운데 앉은 박신에게 권한다. 술잔을 받아든 감사는 물끄러미 술잔을 들여다 본다.

얼굴이 밝지 못하다.

강릉 부사 조운흘은 그런 감사의 심정을 알고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너희들은 떠나는 감사영감을 위해 권주가나 한곡 부르라."
 

조부사의 말이 떨어지자 곁에 있던 농월(弄月)이 가야금을 뜯는다.

청아한 소리가 정자를 공중에 둥실 띄운다. 멀리 여울지며 동해바다로 퍼진다. 

가야금 소리와 기생들의 노랫소리가 여흥을 돋운다.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술잔을 높이 든다. 그러나 박신은 여전히 말이 없이 술잔만 들여다본다. 
 

빈 산엔 나뭇잎 지고 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옛 사람의 풍류가 이제는 적막쿠나
슬프다 한 잔 술을 다시 권키 어려운 것을
아! 옛 노래의 곡조가 오늘 새삼 새롭구나

 

 

그래도 박신의 얼굴은 펴지지 않는다.

 

"감사 영감. 무얼 그리 물끄러미 보시는 게요?"

"아, 아니오. 술잔에 뜬 달을 보는 중이오."

 

 

 

박신은 엉겹결에 둘러댄다. 옆에 있던 선옥(仙玉)이 토를 단다.

 

"감사 어른, 이 한송정에서는 동시에 달을 다섯 개를 볼 수 있답니다."

"아니, 달이 하나지 어찌 다섯씩이나 되느냐?"

 "모르사와요?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그래라. 어서 가르쳐 다오."

 "그러나 그냥은 안됩니다. 가르쳐 드린 값을 내셔야 합니다."

"허허, 무엇으로 값을 낼꼬? 내가 너의 머리를 얹어 주랴?"

"저는 그런 자격은 없구요. 가르쳐 드리면 그 값으로 노래하나 부르세요."

"그래라, 네가 내 노래 듣는 게 소원인게로구나!"

"한송정에 오르면 달이 다섯인데요.

 하나는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달, 또 하나는 경포대에 비친 달, 다른 하나는 지금

 영감님께서 보고 계신 술잔에 뜬 달, 다른 하나는 앞에 앉아 있는 제 눈에 비친 달,

그리고 마지막 달은 뭔지 맞춰 보세요."

"허허, 넌 참 유식한 애로구나. 나는 짐작도 못하겠다."

"마지막 달은요, 영감님 마음에 떠 있는 달이에요."

"하하하..."

 

좌중이 박장대소한다.

 

"아, 그러니까 감사영감의 기분이 우울한 것은 그 '마음의 달'이 보이지 않아

그러시는 게로구려."  

 

조부사가 술잔을 들어 권한다.

 

구름 속에 가렸던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경포호의 수면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옛부터 '경포영월(鏡浦迎月)'관동팔경 중에 으뜸으로 꼽는다.

멀리 둘러선 울창한 장송들이 환히 보일 만큼 달은 밝았다.

 

2.  경포호에서 부르는 사랑의 연가

  

박신은 자(字)를 경부(敬夫), 호를 설봉(雪峰)이라 하며 본관은 설봉으로 공민왕

11년에 태어나서 세종 26년까지 산 사람이다. 포은 정몽주 밑에서 수학하였고

고려가 망하기 7년 전 인 1385년 문과에 급제, 사헌부 규정을 거쳐 예조, 형조

 

정랑을 지냈다. 1400년 태종이 즉위하자 승추부좌승지로 발탁되어

관로가 트이기 시작하여 1404년 개성유후, 한성부윤을 역임하였으나 한때

대사헌이 되어 언사로써 왕의 비위를 거슬려 아주현에 귀양가기도 하였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으나, 선공감 제조로 있을 때

선공감 관리가 저지른 부정사건에 연루되어 13년 동안이나 통지현에

유배되었다가  1432년 풀려났다.

  

그가 강원 감사로 있던 기간은 비록 짧은 것이었으나, 그곳에서 만난 홍장과의

관계는 실로 깊은 애정 그것이었다. 박신이 서울로 떠나게 되면 어차피 서로

잊어야 할 처지라고 생각한  조부사가 일부러 이별슬픔을 못 이긴 홍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을 때 너무 놀라고 그 충격은 실로 컸다.

자신에게 향한 홍장의 사랑이 이토록 깊고 큰 줄을 몰랐던 터라 자기와 헤어지는

슬픔을 차라리 죽음으로 택한 그 애정이, 그 곧은 정절이 너무나 고맙고 한편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조부사의 송별연에서 한없이 침울한 마음을 달랠 길 없이 홍장의

웃음 띤 모습만이 술잔에 어른거렸을 뿐이었다.

 

그때 그림배 하나가 소리없이 호수에 떴다. 정자 위의 시선들이 모두 하얀

달빛 아래 한 여인이 거문고를 뜯고 있는 배에 쏠린다. 박신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정자 위에서 뛰어 내려배를 타고 여인이 뜯는 거문고 가락에 홀린 듯 그림배를

따라 다가간다. 
 놀란 것은 박신. 배 위에서 거문고를 타는 여인은 홍장이 아닌가!

조부사가 죽었다던 홍장이었다. 죽은 홍장이 다시 살아났다니. 취기가 가셨다.

박신은 홍장을 끌어 안았다.

볼을 비벼본다. 분명히 산 사람. 그것도 그렇게 보고 싶었던 홍장 바로 그녀였다.

이때 다른 배를 타고 따르던 조부사 일행의 웃음 소리가 호수의 수면에 번졌다.

 


 

 서거정의 <동인시화>에 박신과 홍장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이런 기록이 담겨 있다.
 

고려 우왕 때 강원 감사 박신이 강릉 기생 홍장을 사랑하였는데, 박신이 만기가 되어

떠나려 할 때, 강릉 부사 조운흘이 짐짓 홍장이 죽었다고 하였더니 박신이 몹시 슬퍼하였다.

하루는 조부사가 박감사를 초청하여 경포대로 뱃놀이를 나갔다.

문득 그림배 한 척이 앞에 나타났는데, 그 속에선 미인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는지라,

박감사는 '이는 진정 신선이로다'하고 감탄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홍장이라.

배에 탔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이와 같은 박신과 홍장과의 관계를 정송강은 <관동별곡>에서 이렇게 읊었다.
 

석양무렵에 현산의 철쭉꽃을 밟으면서 경포호로 내려가니, 십 리까지 뻗은 잔잔한

수면을 당기고 다시 끌어 당겨서, 낙락장송이 울창한 속에 마음껏 펼쳐져 있으니,

물결도 잔잔하기도 잔잔하구나. 호수 속의 모래를 헤아리겠구나.

외로운 배를 매어 놓고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넘어 그 옆이 동해로구나.

조용하구나 경포호의 수면이여, 멀리 넓게 펼쳐진 동해 바다여!

여기보다 경치가 더 잘 갖춰진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옛날 박신과 홍장의 고사가

야단스럽기도 하구나!

 이렇게 서로가 떨어지기 어려웠던 사랑하는 두 사람. 떠나려던 박신이 홍장과 더불어

경포대에서 며칠을 더 머물면서 정염을 불태웠지만 그러나 박신은 결국 떠나지

않을 수 없었고 보내지 않을 수 없는 홍장이었다.

 

울며불며 잡은 사매 떨떨이고 가지마오.
그대는 장부
(丈夫)라 도라가면 잇건마는
 소첩은 아녀자(兒女子)라 못내 잇씀네라

  

-작가미상-

 

이렇게 보낸 박신이었다. 그를 보낸 홍장은 그 날로부터 박신의 음신(音信)을

기다리는 것이 일과가 되다시피 하였으나 한 달, 두 달 소식이 없자 초조하다 못해

그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3. 한송정 달 밝은 밤에

 

 한자 쓰고 눈물지고 두자 쓰고 눈물지니

자자행행이 수묵 산수 되거고나

져 님아 울며 쓴 편지ㅣ니 휴지삼아 보시소

 

춘수(春水) 만사택(滿四澤)하니 물이 만아 못오더냐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峯)하니 산이 놉하 못오던가

추월이 양명휘(揚明輝)어를 무삼 일노 못오던가

 

편지야 너 오는냐 네 임자는 못 오든냐

장안도상 널은 길에 오고 가기 너뿐일다

일후란 너 오지말고 네 임자만 오거라

 

기다림.

작자가 미상이나 멀리 있는 남자정인을 향한 그리움과 소식을 묻는 여인들의

하소연이 담긴 시조들로 오가는 소식을 전하는 음신으로도 더 이상 성에 찰 수 없어

이제는 눈으로 보고 싶고 손으로 만지고 싶고 가슴으로 안고 싶은 그런 절절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홍장이 박신을 기다리고 그리워 하는 경지가 이에 미치고도 남았으리라.

 

 

한송정(寒松亭) 달 밝은 밤의 경포대(景瀑臺)의 물결 잔잔(潺潺)
유신
(有信)한 백구(白鷗)는 오락가락 하건만은
어떠타 우리의 왕손
(王孫)은 가고 아니 오는고
 홍장(紅粧

 

    

 

잊으려 한다고 해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인가!

미워해 보아도 미워지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인가!

참고 기다리자고 마음을 다질수록 그리움은 더한다.

 

기녀라는 사회적 신분에 매인 자신의 처지가 새삼 뼈아프게 아팠다.

한 여인의 사랑을 용납 못하는 사회의 제도적인 모순을 뼈저리게 아파하면서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홍장은 고려 때의 명기 동인홍(動人紅)이

기생의 신세를 한탄하여 지은 시를 뇌어 본다.

 

 창녀여양가 (娼女與良家)    기생과 양갓집 규수 사이에
 기심문기하 (其心問幾何)     
묻노니 그 마음 다를 게 있오.
 가연백주절 (可憐栢舟絶)     슬프다 송백같이 굳은 절개로
 자서시미타 (自誓矢靡他)    두 마음 안 먹고자 맹세한다오.

 

주변의 갖은 유혹 앞에 이기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 이런 고매한 정신 자세로

마음을 다 잡으며 살아 왔던 홍장이었건만, 때로는 기다림에 지친 그녀는 이런

자신을 조소하기도 했다. 차라리 한 남자에게 깊은 정을 주지 말 것을

때로는 불타는 성숙한 여인의 정염을 못 이겨 몸부림치고 또 어떤 때는 그리는

정에 독수공방의 불면의 밤을 지새우기도 하며 아무나 넓고 따뜻한 남정네의

품에 안겨버릴걸 하는 회한이 머리를 들곤 하여 그만 무너져 내리고 싶었던

밤들은 그 얼마였던가?

 

업는 졍 꾸며다가 잇는더시 단장헌들

그일니 오래숀가 삽시간에 나져질걸

구타여 심여올 허비허여 죠흘나 무삼허리

작가미상

 

끝내 소식이 없어도 홍장은 굳게 절개를 지키면서 박신을 기다렸다.

치근대는 취한이 있을 때마다, 끈질기게 덤벼드는 한량들에게 홍장은 오직

자기에게는 박신 뿐이라며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마음의 흔들림 누르고 지켰다.

 

조선 시대는 축첩제가 공인되고 또한 많은 여성이 기생으로 활동하였는데

이 두 가지 제도는 모두 양반 남성이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피 지배계층

여성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양반이나 한량들의 가무 음주 자리에 불려 나온 기생들에게는 술에 취한 손님들이

덤벼들며 집적대기 마련이었다. 이런 시절 버젓이 남편이 있다고 우겨댄들 기생의

정조를 인정치 않던 치한들로부터 홍장이박신을 향한 절개를 지키고자 몸을

눕히지 또는 마음을 열지 않고 가무음주 자리에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박신에게로 향하는 그리움은 걷잡을 길 없었다. 그런 그리움을 잘 나타낸

매창(梅窓)의 시가 있다.

 

상사도재불언리 (相思都在不言裏)     그리워 말 못하는 애타는 심정
일야심회발반사 (一夜心懷髮半絲)
     
하룻밤 괴로움에 머리가 센다오.
욕지시첩상사고 (欲知是妾相思苦) 
   
얼마나 그리웠나 알고 싶거든
수시금환감구위 (須試金環減舊圍)     금가락지 헐거워진 손가락 보오.

 

두견이 피를 토하며 울어대는 장장추야 달 밝은 밤. 전전반측(輾轉反側) 잠 못 드는

불면의 밤을 눈물로 고독을 달래는 나날들 갚은 밤 잠 못 들어 읊어보는 단장의

하소연은 탄식이 되고 시가 된다.

 

비는 온다마는 님은 어니 못오는고

물은 간다마는 나는 어이 못 가는고

오거나 가거나 하면 이대도록 그리랴 

 

- 작자미상

 

끝내 소식이 없는 박신을 두고 그러나 홍장은 그가 틀림없이 자기에게 돌아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그 큰 그리움을, 그 못 견딜 고독을 참자고 마음 다진다.

그러나 참자고 마음을 다질수록 그리움은 더한다.

 

산중상송능  (山中相送能)   산중에서 서로 보고 헤어진 당신
 일모엄시비 (日暮掩柴扉)   해는 져 사립 밖이 어둑하구려
 춘초년년록 (春草年年綠)    봄풀은 해마다 또다시 푸르건만,
 왕손귀불귀 (王孫歸不歸)   떠나간 당신은 다시 오지 않는구려.

     

 당나라 때 시인 '방우(方于)'가 느꼈던 그리움도 이런 것이었을까?

 

 

4.   사랑이여 ! 꿈이여 !

 

 

거울에 빗쵠 얼굴  내 보기에 꼿 것거든

허물며 단장(端粧)하고 님의 앒해 젹이랴

단장 님을 뵈니 그를 슬허 하노라

- 작가미상

 

거울 앞에 혼자 앉아 단장한 자신의 아름답던 얼굴이 나날이 그리움이 쌓여

수색이 깊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언제 한양 가신 그립고 보고픈 사람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아줄까 하고 초조감이 쌓이던 그리움의 1년이 지난 이듬해 여름.

박신이 순찰사가 되어 강릉에 들르게 되어 홍장의 일편단심과 굳은 절개를 알고

더욱 사랑하게 되어 홍장을 한양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측실을 삼았다.

한결같이 사랑에 목을 매었던 홍장의 염원은 이뤄졌다.

그 수 많은 기생들의 로맨스가 아쉬움으로 점철되거나 아니면 일방적인

기생의 희생과 주는 사랑으로 막을 내리는 것과 달리 이 두 사람은 행복한 사랑을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다.

 

 박신과 조운흘은  동문수학하던 사이였고, 벼슬길에 오른 뒤에도 친교가 두터웠다.

박신은 경포대의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었던가. 노경에 이르러 그때 일을 회상하는

시를 조운흘에게 보낸 것이 남아 있으니 곧

<증조석간운흘박혜숙신(贈趙石磵云屹朴惠肅信)>이 그것이다.

 

 

소년시절접관동(少年時節接關東)     내 일찍 젊어서 관동에 갔던 그 추억
경포청유입몽중(鏡浦淸遊入夢中)   경포호의 놀던 모습 꿈 속에도 완연타오.
 대하란주사우폄(臺下蘭舟思又貶)     그곳에 배를 띄워 또 한 번 놀고 싶소만
 각혐홍분소쇠옹(却嫌紅紛笑衰翁)   아가씨들이 늙은 나를 웃을까봐 두렵소.

  

이 시를 썼을 때의 박신은 이미 늙었고 그래서 홍장의 얼굴에도 주름살은 세월의

사연처럼 얽혀있었던 듯, 젊은 시절 노닐었던 그 경포호에서 젊은 기녀들과의

뱃놀이를 그리워하는 걸 보면

 

옮겨온글

출처: 조정래의 세상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