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붓다 - 사파현정 (필독)

2011. 7. 15. 21:06사상·철학·종교(당신의 덕분입니다)/노장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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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붓다

사파현정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상덕은 덕이 아닌 것 같으나 덕이 있고, 하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 이로써 덕이 없다.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상덕무위이무이위 하덕위지이유위이)

상덕은 하는 것이 없고 일부러 하고자 하는 바도 없다.

하덕은 하는 일이 있고, 굳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


上仁爲之而有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上禮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之.

(상인위지이유이위 상의위지이유이위 상례위지이막지응 즉양비이지)

상인은 일부러 하고자 하지 않지만 하는 바가 있고, 상의는 하는 일이 있고 굳이 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상례가 하는 일이란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팔을 거두어 물리친다.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의후의 실의이후례)

그러므로 도를 잃은 후에 덕이 있고, 덕을 잃은 후에 인이 있고, 인을 잃은 후에 의가 있고, 의를 잃은 후에 예가 있다.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부례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대저 예라는 것은 진실된 믿음이 옅은 것이니 세상을 어지럽히는 으뜸이다.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이전의 일을 아는 것은 실속 없이 화려하니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是以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 處其實, 不居其華.

(시이대장부처기후 불거기박 처기실 불거기화)

이에 대장부는 두터운 곳에 처하며, 옅은 곳에 머물지 않으며, 실질에 처하고, 겉만 화려함에 머물지 않는다.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그것이 바로 덕을 취하고 허례를 좇지 않음이다.

                    

(노자 도덕경 제28장 상덕 - 이경숙 해설)

  


덕을 인, 의, 예와 비유하고 있다.

 

공자가 평생을 두고 추구한 것은 예였다.

인, 의로서 예를 세우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며 그 어떤 고난과 형극의 가시밭 길도 마다하지 않았던 공자의 인, 의, 예를 노자는 유위한 행위, 즉 그 어떤 의도를 가진,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부자연스런 삶이라고 치부하며 평가절하 해버린다.


꾸밈없고, 가식없이 세상과 다투지 않고 무위자연하는 도인의 삶이야 말로 상덕의 삶이라 하는 노자의 사상을 나는 소인배의 처세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감히 생각한다.


노자의 도덕경 전편을 흐르는 일관된 주제는 부쟁, 즉 다투지 말라는 것이다.

굽은 것을 바로 펴려고 하지마라. 분별하지 마라.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마라.

나서지 말고 없는 듯이 살아라. 천하를 다 얻는다 해도 네 한몸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


그러나 큰 산 험한 바위 밑에 은거하여 무위자연하는 도인의 삶에 무슨 자비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 도인을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진실과 정의를 위하여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독배를 들었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아닌가? 


80년, 대학을 갓 입학한 나는 불의가 천하를 뒤덮고, 수 많은 생명들이 꽃잎처럼 쓰러져 갈 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는 것을 보고 그런 불교를 내 던져 버렸다.


내 나이 지천명을 넘어 또 다시 불의가 천하를 뒤덮을 때 그는 ‘진실과 정의’ 라는 숙제를 던져놓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자책과 회한으로 잠못 이루며, 번민의 밤을 지새울 때 내 앞에는 두 가지 초기경전이 있었다.

아함경과 니까야.


초기경전 속의 부처님은 그 전에 내가 알던 부처님이 아니었다.

“분별하라. 똑똑히 알아차림 하라”

무엇을 분별하고, 알아차림 하라는 말인가?

바로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를 분별하고 알아차림 하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초기경전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한탄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세상과 다투려 하지 않는데, 세상이 나와 다투려 하는구나.”


만약 노자가 이 말씀을 들었다면 이렇게 응수 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천하를 주유하며 노상 세상사람들에게 착하게 살아라. 나쁜 짓 하지마라. 거짓되게 살지말고 진실되게 살아라. 정의의 편에 서라. 불의에 눈 감지 마라 하며 외치고 다니니 세상이 당신을 미워하고 당신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요?“


초기경전 속의 부처님은 ‘죽어있는 지성’이 아니라 ‘살아 있는 양심’ 이었다.

더구나 세상 일에 무심한 무위자연하는 도인은 결코 아니었다.

중생의 아픔에 눈물 흘리며, 모순된 현실을 개선하고자 목숨걸고 투쟁하는 진보적 사상가였다.


요컨대 내가 불교라고 알고 있었던 ‘뜰 앞의 잣나무와 마른 똥막대기’는 불경이 아니라 도경 속에 있었던 것이다.


확고한 무신론자이자, 그 어떠한 우상도 거부하는 내가 역사상 인물 중 부처님을 내 마음 속의 스승으로 모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국불교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