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망이 높은 스님들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올바른 것인가?.

2011. 7. 24. 10:26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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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망이 높은 스님들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올바른 것인가?.

명망이 높은 스님들의 말씀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고 받아 지니면 안된다.

청하스님은 기독교에 대해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원효스님의 위대함을 세계가 다 아는데도 화두로 안 했다고 그 분을 부정해 버립니다. 하물며 기독교 같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편협하기 짝이 없겠지요. 그것이 외도인 것 같으면 2천년 동안이나 순교자도 나오고 지금까지 발전해 오겠습니까. 이렇게 개명 천지에서 17억 인구가 믿고 있는 것인데 그네들을 아무 필요 없는 외도라고 간주해 버리면 결국은 싸움밖에 일어날 게 없습니다. http://cafe.daum.net/vajra/2e8k/89 ] 라고..., 원효스님에 대한 일부 화두승들의 비판과 타 종교 즉, 기독교 교리에 대한 비판은 그 본질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비교하는 것은 잘못 된 비교이며, 정견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티벳의 성인 달라이 라마스님은 기독계가 스님을 회유하기 위해 초청한 자리에서 이렇게 연설 했다고 하신다.

["기독교 교리에는 불교가 들어갈 자리가 없고, 불교의 교리에는 기독교의 (유일신)교리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고 역설 하셨다고 한다.

위 청하스님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비교가 되고 있다.

 

그렇다. 기독교 유일신의 천지창조설은 불교의 삼법인 오온 사성제 팔정도에는 들어올 자리가 없다. 만약 불교가 기독교의 유일신 교리를 외도가 아닌 정도로 인정하고 받아 드린다면 불교는 삼법인 내지 사성제 팔정도는 포기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의 핵심강령은 삼위일체입니다”라 하시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법신, 보신, 화신”과 같은 내용으로 비교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기독교의 구약과 신약에 대한 근본적이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구약과 신약을 비교해 보면 절대로 삼위일체설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들을 품고서라도 무리하게 믿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들은 외도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칼라마경]에서 외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신다.

."칼라마인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이라 해서, (오래된)전통이 그러하다고 해서, 소문에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원칙에 의한 것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에 의한 것이라 해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럴듯한 능력(마술이나 신통력 기적등..) 때문에,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고." 그대 스스로 `이들은 나쁜 것이고, 이들은 비난받을 일이며, 이들은 지혜로운 이에게 책망 받을 일이고, 이들이 행해져 그대로 가면 해롭고 괴롭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고,

 

그런데 스님은 17억 인구가 2천년 동안이나 믿어 왔고 순교자도 나오고 한 전통이 있는데 외도라 하면 되겠느냐.

정도로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 스님은 외도에 대한 바른 정의를 이해하고 계셨는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모든 가르침이 진리의 가르침인지 아니면 잘못된 가르침인지 알아보는 척도는 바로 사성제 팔정도의 내용이 그 안에 담겨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고 하셨습니다.

 

외도들의 법문이라 하드라고 그 안에 사성제 팔정도의 내용이 담겨 있다면 진리로 받아 드려도 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외도의 법문에 사성제 팔정도가 들어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외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예견일 뿐이다. 왜냐하면 만약 기독교에서 삼법인 오온 사성제 팔정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자기들의 유일신 교리는 표기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믿음과 지혜를 고루가춘 현명한 자는 이렇게 정견 정사유해야 한다.

즉, 고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는 어떻게 집기된 것인가? (외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고의 원인이 신이 먹지 말라는 사과를 명령을 어기고 따먹었기 때문에 생긴 원죄 때문인가? 그렇다면 고는 늘 존재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어떤 잘못된 마음이나 행동 때문에 마음에 괴로움이 생긴다고 보면 안 된다. 그렇다면 신이 고를 멸해 주지 않는다면 현재 어떤 선행이나 수행으로 마음을 닦더라도 고에서 해탈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바로 나쁜 마음 나쁜 행동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선한 마음 선한 행동에는 마음의 편안함과 즐거움이 따른다.) 또한, 고는 멸할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멸도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 고의 정체는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로 밝힐 수 있는 것인가? 고의 집기는 바른 견해 바른 사유가 없어도 밝힐 수 있는 것인가? 외도든지 불도든지 이 모든 법이 바른 견해 바른 사유가 없어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진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사유한다면 지혜는 증장되고 삿된 외도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무심지덕_()_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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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참고 자료-

==기도교의 근본을 이해하기 위한 그들이 일점 일흭도 무오하다는 기독경에서 살핀다===

 

- 정말 잘 들어 두시오. 아들(예수)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 아무 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입니다.[요한 5:19]

 

- 나는 아무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저 하느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심판을 할 뿐입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기 때문에 내 심판은 올바릅니다.[요한 5:30]

 

-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7:21]

 

ㅇ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장

ㅇ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장. (예수와 야훼는 하나다, 이 공식을 모든 구약 신약성서의 구절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자 삼위일체설이 성립이 될 수 있는지...?)


★자 보자! 어떻게 해야 예수의 말처럼 "하늘에 계신 예수의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야훼가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이스라엘민족(기독교인)이 믿고 따라야할 야훼하나님의 직접하신 말씀이다.======

+ 주위에 있는 백성들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서 어떤 신이든지 그 신을 따라가면 안 된다. 너희 하느님께서 화를 내시어 너희를 땅 위에서 쓸어버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계시는 너희 하느님 야훼는 질투하는 신이시다.[신명 6:14-15]

 

+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넘겨주는 (다른)민족을 전멸시켜야 한다. 그들을 가엽게 보지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아라.[신명 7:16]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탈출해 나라 없이 떠돌던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이미 터잡고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토속 민족들의 땅을 뻬앗기 위해 전멸시키라고 명령한다. 이스라엘의 야훼신은 다른 민족들과 화합해서 같이 잘 살기를 원치 않았다. 오직 떠돌이 이스라엘 민족의 건국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함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ㅇ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장 (예수와 야훼는 하나다, 이 공식을 모든 구약 신약성서의 구절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자 삼위일체설이 성립이 될 수 있는지...?)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령한다)

+ 너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야 한다.[사무엘 상15:3](분명히 이스라엘의 야훼신은 다른 민족들과 화합해서 같이 잘 살기를 원치 않는다.)

ㅇ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장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애굽 20장 5절]

ㅇ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장

 

+ 어찌하여 이렇게 여자들을 모두 살려 주었느냐 ‥‥ 아이들 가운데서도 사내 녀석들은 당장 죽여라. 남자를 안 일이 있는 여자도 다 죽여라. 다만 남자를 안 일이 없는 처녀들은 너희를 위하여 살려 두어라 ‥‥‥(기독신은 처녀 매니아???ㅋㅋ) 군대가 약탈해 온 전리품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양이 육십칠만오천 마리, ‥‥ 사람은 삼만 이천 명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남자를 안 일이 없는 처녀들이었다. 그 절반은 싸우러 나갔던 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는데 ‥‥‥ 나귀는 삼만 오백 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야훼께 드린 헌납품은 예순 한 마리였다. 사람은 만 육천 명인데, 그 가운데서 야훼께 헌납된 사람은 서른 두 명이었다.[민수기 31:17~40] ㅇ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장


♂♀==쾌락의 극치 "아가 7장" 애로시.==참고===>♂♀

1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꿰미 같구나

2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3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4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5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7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ㅋㅋㅋ

+

ㅇ 나(예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장

(신명기 20; 10~17)에서 야훼(하나님)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르친 말쌈을 보겠습니다.

[“어떤 성에 접근하여 치고자 할 때에는 먼저 ‘평화를 맺자’고 외쳐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기로 하고 성문을 열거든,

너희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거주민을 모두 노예로 삼아 너희을 섬기게 할 것이요.

(참고비교: 마가복음 12장31,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등의 말이 신약에

있다.

결국 네 이웃이란 말은 이스라엘 동네의 이웃을 말하는 것일 뿐 다른 나라의 성민을

이웃으로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을 생각이 없어서 싸움을 걸거든,(온갖 달콤한 미끼에도

속지 않을 때는 너희는 그 성을 포위 공격하라는 병법서와도 같습니다. )

너희 신 여호와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부치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 죽여라. (이 대목이 주는 뜻은 명백히 야훼란 신이

천지창조니 구원이니 하는 소리도 다 이스라엘이란 작은 나라의 하늘과 땅과 성민에

한계를 둔 민족 신앙임을 명백히 드려내고 있고 성품도 포악 잔인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성 노리개로) 차지하여도 된다.

너희 신 여호와께서 너희 원수(이스라엘민족이 아닌 타 민족사람)들에게서

빼앗아 주시는 전리품(노리개)을 너희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여기(근처)에 있는 (이스라엘)민족들의 성읍이 아니고, 아주 <먼 데 있는 타 성읍>들에는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너희 신 여호와께 유산으로 받은(강제로 탈취해서 뼀은) 이 민족들의 성읍(이스라엘

근처)들에서는 숨 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이 대목으로 짐작하건대 신화를

바탕으로 한 원시적 사고의 인간 감정으로 인간에 의해 창작된 국지적인 민족 신앙임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니,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너희 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신명기 20; 10~17)

ㅇ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장

(분명히 이스라엘의 야훼신은 다른 민족들과 화합해서 같이 잘 살기를 원치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의 복음을 외칠 수 있단 말인가? 신약은 구약의 악의를 숨기고 복음이란 그럴듯한 구호로 타민족의 정신적 식민지를 삼기 위한 술수에 불과 하다. 창조주란 말은 이스라엘 민족을 창시했다는 말이지 지구 전체를 창조했단 의미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이다.)


+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때려 당장에 숨지게 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 종이 하루나 이틀만 더 살아 있어도 벌을 면한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출애굽 21:20~21]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출애굽 21:24~25]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聖民=거룩한 이스라엘백성)이라.

무릇 스스로 (병들어)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客)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可=인가 한다는 뜻)하니라”.](신명기 14; 21)

(이 구절들은 야훼신의 성품과 도덕적 철학적 인격과 특질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민이라면 자기가 먹을 수 없는 병든 고기나 상한 음식을 남에게 권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성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은 먹지 못하는 상한 음식임을 알고도 객이나 이방인에게 속여 팔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민족을 어떻게 성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또, 이렇게 양아치 같은 행동을 가르치는 것을 어떻게 평등한 사랑의 구원의 신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마치 양아치 부모가 아들에게도 양아치 짓을 가르치는 것과 같지 않는가!. )

ㅇ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장

 

+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느님이 되어 주기로, 너와 대대로 네 뒤를 이을 후손들과 나 사이에 나의 계약을 세워 이를 영원한 계약으로 삼으리라. 네가 몸붙여 살고 있는 가나안 온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준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 주리라.[창세 17:7~8]

(그러나 창조주의 영원한 계약을 자칭 아들 예수가 효력만기 처분하고 새로운 약속인 신약을 발표한다. 그렇다면 신약도 이천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니 구약이나 다를바 없지 않은가?..삼위일체설이 성립 될 수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예수가 말하지 않았든가? "~!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7:21]고,

이렇게 개독들은 창조주 야훼가 시키는 대로 믿고 행동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단다. 나쁜 살인귀 두목신이 있는 그 곳으로...ㅋㅋ)



*어떤 것이 외도인지를 분석할 수 없다면 그가 설사 대승 소승을 장광 설법하고 있더라도 앵무세일 뿐 정도의 실체도 모른다고 봐야 한다. 마치 유리로 만든 가짜 다이아몬드에 속아서 진짜로 인정하는 것과 같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또한 세속일이야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진리를 어떻게 적당히 (전통이 오래 됐다고 해서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어) 타협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인가?

 

 

 

다산 정약용의 '죽난시사'라는 모임이 있었다네요

 

살구꽃이 피면 새해 첫 모임을 갖고

복숭아꽃이 피면 꽃에 앉은 봄을 보기위해

다시 모이며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여름을 즐기기 위해 또 한번 만난다 한다.

그리고 또 西池에 핀 연꽃을  감상하기위해 또 모이는

가을이 깊어져 국화가피면 서로 만나 보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다시만난다.

한해가 기울 무렵.화분에 심어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모두 모인다는  모임 

이렇게 운치있는 만남이 있다니 참으로.....

 

다산은 심부름하느라 쫓아 다니는 비복들의 옷깃에 스쳐

꽃들이 상처를 입을까봐 마당의  동북쪽으로 난간을 세워 이를  죽난이라 했다지요

 

죽난시사 의 풍류 는  아니어도

그 보다 더한 무심재 여행이 아닐 수 없지요.

연꽃 피는 소리는 들을 수 없어도

 

찌는듯한  더위를  향해

바람 같이 집을 나섭니다.

달리는  냉방  빵빵한 버스는

南으로  南으로

함양 상림 '천년의 숲'으로  먼저 들어갑니다

숲을  지나면 연꽃 이 나타납니다

이게 어인 일인가요

초록의 바다만 보입니다

 

 

 

 

 

 

초록잎  바다속에서 찾은 한 송이

 

 

 

 

 

 

 

그중에서 젤  이쁜연을 찾았네

 

 

 

 

 

 

 

 

 

 

 

 

 

 

 

 

 

 

 

 

져버린연    떠나간연

 

 

 

 

 

 

 

 

 

 

 

 

 

 

 

 

 

 

가고 있는연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에 있다

 

 

 

숨어서 보는연

 

 

용호정(봉선대)

 

 

 

 

 

진주 '촉석루'      여고시절  수학여행 때 가보고 50년 만에 찾았으나 

 멀리서 옆 얼굴만 보고 돌아 서는 아쉬움도...  촉석루에 앉아  남강도 바라보고 그랬어야 했는데   

 

희미하게 보이는 논개의 '의암'

 

 

전통 공예전시장에서     정말로 갖고싶은 거

 

버버리 문양의 고운 채  .거기에는  무얼 걸러야 할까?

 

 

 

 

 

한 여름의 벼논은   마치 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아래로 비친 내 그림자   서로 뉘신지.... 

 

 

 

 

훌훌 바람같이 푸른 연잎을 징검다리  삼아

저 곳으로 건너갈 수만 있다면...

 

한때 꽃이 가득했을 그곳 연지.

연꽃을 만나려면 다 때가 있다더니

때를 놓친 우리

그러나 초록의 바다가 우릴 반겨 주었다

 

 

무산 십이봉을 조성한 정원 그 가운데  용호지(봉선대)안에서

희한하게 그 정자 안은 참 시원하고,  연꽃 바람을 맞으며  둘러앉아   들려주신

  참봉 박현경' (현 소유자 박희우씨의 조부) 선대의 이야기는

용호정의 연꽃의 향기보다 그윽하였습니다

 

용호정을 나

진주라 천리길을  하루만에 휙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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