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치료약 - 연기법

2011. 7. 24. 11:1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20. 불교의 치료약 - 연기법

 

(1). 깨달음이란 분별망상(分別妄想)을 벗어나 하나의 본래 마음이 뚜렷한 것일 뿐, 어떤 지혜(智慧)나 도리(道理)를 새로 얻는 것이 아니다.

(2). 구름이 걷히면 맑은 허공에 태양이 빛나듯이, 망상(妄想)이 사라지면 본성(本性)이 뚜렷이 드러난다. 달리 얻을 도리도 지혜도 없다.

 

(3). 불교(佛敎) 즉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우리의 망상(妄想)이라는 병(病)을 치료하기 위하여 처방된 약(藥)이다.

(4). 망상이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처방된 약이 곧 불교(佛敎)이다.

 

(5). 망상이라는 병이 치유되어 자신의 본래 마음이 뚜렷이 드러나면 그 뿐, 다시 불교라는 약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6). 약은 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방편일 뿐, 약 자체가 곧 병이 치료된 건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병이 없으면 약도 필요 없는 것이다. 만약 병이 없는데도 약을 계속 먹는다면, 그것은 약이 아니라 또 하나의 병이다.

(7). 불교라는 약의 가장 중요한 약성분은 연기법(緣起法)과 중도(中道)라는 이름의 약성분이다.

(8). 연기법과 중도라는 약성분이 발휘하는 효험은 망상(妄想)인 분별(分別)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9). 우리의 마음이 하나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분별(分別) 때문이다.

(10). 분별이란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을 나누어 각각을 따로 세워 두는 것이다.

 

(11). 분별은 곧 삼라만상을 각각 따로따로 인식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즉, ‘사과’는 ‘사과 아닌 것’과 분별될 때 ‘사과’라는 이름을 가진 독립적 사물로 인식된다. ‘사과’, ‘배’, ‘행복’, ‘불행’, ‘선’, ‘악’, ‘옳다’, ‘그르다’ 등등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모든 삼라만상은 분별됨으로써 제각각 다른 이름을 가지고 성립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란 분별을 통하여 인식된 세계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만법유식(萬法唯識; 삼라만상은 오직 인식됨으로써만 존재한다)이라고 한다.

 

(12). 이름은 뜻과 모양에 대응하여 붙인 것이다. 즉, 이름이 곧 뜻이고 모양이다. 그러므로 이름으로 분별한다는 것은 곧 뜻과 모양으로 분별한다는 것이고, 뜻과 모양을 다르게 인식하여 분별한다는 것은 곧 다른 이름을 붙여 분별한다는 것이다.

 

(13). 분별의 원리가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이 각각 구분되어 성립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이것 아닌 것’이 있을 때에 ‘이것’이고, ‘이것 아닌 것’은 ‘이것’이 있을 때에 ‘이것 아닌 것’이다.

즉, ‘이것’은 ‘이것 아닌 것’에 기대어 ‘이것’이고, ‘이것 아닌 것’은 ‘이것’에 기대어 ‘이것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 아닌 것’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것’이 되며, ‘이것’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것 아닌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은 함께 있거나 함께 없거나 함께 생겨나거나 함께 없어지는,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즉,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은 이름만 다를 뿐 사실은 하나이다.

 

(14). 이처럼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이 동시에 있고 동시에 없고 동시에 생겨나고 동시에 사라지는 것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 혹은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한다.

(15).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의 표현은 이렇다 :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도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저것’은 곧 ‘이것 아닌 것’이다.)

 

(16). ‘사과’는 ‘사과 아닌 것’에 의하여 ‘사과’가 되고, ‘사과 아닌 것’은 ‘사과’에 의하여 ‘사과 아닌 것’이 된다. 즉, ‘사과’와 ‘사과 아닌 것’은 이름으로는 다르게 구분되지만, 사실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사과’는 ‘사과 아닌 모든 삼라만상’과 이름으로는 다르게 구분되지만 사실은 하나이다. 이 세계의 삼라만상 하나하나가 전부 이와 같다. 각자는 그 자신 아닌 모든 것과 이름으로는 다르게 구분되지만, 사실은 구분되지 않는 하나이다. 즉, 모든 삼라만상은 그 자신 아닌 다른 모든 것들에 의지하여 그 자신이 되므로, 각각의 삼라만상은 나머지 모든 삼라만상과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은 제각각 성립되어 있지만, 하나의 세계이다. 『화엄경』에서는 이것을 인드라의 그물이라 하였다.

 

(17). 이처럼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은 다른 이름으로 분별되지만 하나이다. 즉, 분별은 삼라만상을 하나하나 나누고 있지만, 동시에 삼라만상이 하나라는 사실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8). 그러나 우리가 동전의 앞면을 볼 때에는 뒷면을 보지 못하고 뒷면을 볼 때에는 앞면을 보지 못하듯이, 우리가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을 따로따로 구분할 때에 우리는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이 다르다는 구분만 할 뿐,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이 또한 떨어질 수 없는 하나라는 사실은 잊어 버린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분별이 가진 습관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진실을 보려면 하나에 서서 양면을 보아야 하는데, 양면을 각각 따로 보고 그것이 전체인양 오해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를 일러 망상(妄想)이라 한다.

 

(19). 세계를 분별할 때에 항상 하나하나의 삼라만상을 구분해 보기만 할 뿐, 삼라만상이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모른다. 이처럼 분별은 언제나 하나의 전체에 통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즉, 분별은 언제나 변견(邊見; 한 쪽으로 치우친 견해)이다.

 

(20). 치우친 변견은 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망상(妄想)이라 한다. 우리가 가진 중생심(衆生心)이라는 병(病)은 바로 분별로 말미암은 망상인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분별하고 이해하고 살아가는 세계는 곧 분별이고, 변견이고, 망상이다.

 

(21). 우리가 망상 속에 있으면 진실(眞實)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번뇌(煩惱)를 느낀다. 즉 망상 속에 있으면 꼭 본래의 자신을 잃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본래의 자신을 잃어 버린 듯하여 본래의 자신에 대한 갈증이 나는 것이 바로 번뇌이다. 마치 부모를 잃고 헤매는 아이가 불안해 하며 부모를 그리워 하듯이, 번뇌는 불안 속에서 헤매며 구원(救援)을 바라는 심리이다. 그러므로 번뇌를 길을 잃고 헤맨다는 뜻인 미혹(迷惑)이라고도 이름한다. 망상이 곧 번뇌이다.

 

(22). 망상이라는 병은 진실한 본래 모습인 실상(實相)이라는 건강(建康)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세계, 현재의 삶은 그대로 완전한 실상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분별하기 때문에 스스로 치우친 변견에 떨어져 스스로 헛된 망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망상이라는 병은 실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만들어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는 실체가 없는 허망한 병인 것이다. 그러므로 실재하지 않는 헛된 모습을 본다고 하여 망상(妄想) 혹은 망상(妄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23). 망상이라는 병은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착각(錯覺) 때문에 일어난 헛된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망상이라는 병을 치료하면 될 뿐, 다시 실상(實相)이라는 건강(建康)을 찾을 필요는 없다. 병이 치유되면 건강인 것이지, 다시 얻어야 할 건강이 따로 있지는 않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파사(破邪) 즉 현정(顯正)이라고 한다. 삿됨을 부수는 것이 곧 바름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삿됨을 부수는 파사(破邪)와 바름을 드러내는 현정(顯正)은 동일한 것이라는 말이다.

 

(24). 불교는 이처럼 망상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처방된 것이다. 망상이라는 병의 본질은 곧 분별이요 변견이며, 불교라는 치료약의 본질은 곧 분별과 변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으로서 연기법(緣起法) 혹은 중도(中道)라고 부르는 것이다.

 

 

- 無事人

 

 

^*^♥ 주옥같은 향기로운 말 ♥^*^

같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라
그 곳에서는 히트곡이 여기서는 소음이 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말에도 온도가 있으니
썰렁한 말 대신 화끈한 말을 써라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열 올리지 말고
그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라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지 말라
체로 거르듯 곱게 말해도
불량율은 생기게 마련이다

상대방을 보며 말하라
눈이 맞아야 마음도 맞게 된다
풍부한 예화를 들어가며 말하라
예화는 말의 맛을 내는
훌륭한 천연 조미료이다

한번 한 말을 두번 다시 하지를 말라
듣는 사람을 지겹게 하려면 그렇게 하라
일관성 있게 말하라
믿음을 잃으면
진실도 거짓이 되어 버린다

말을 독점 말고
상대방에게도 기회를 주어라
대화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교류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라
말을 자꾸 가로채면
돈 빼앗긴 것보다 더 기분 나쁘다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상대방의 의견도 옳다고 받아들여라
죽는 소리를 하지 말라
죽는 소리를 하면
천하장사도 살아 남지 못한다

상대방이 말할 때는 열심히 경청하라
지방방송은 자신의 무식함을 나타내는 신호다
불평불만을 입에서 꺼내지 말라
불평불만은 불운의 동업자다

재판관이 아니라면
시시비비를 가리려 말라
옳고 그름은 시간이 판결한다
눈은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표정으로도 말을 하라
조리있게 말하라
전개가 잘못되면 동쪽이 서쪽된다

결코 남을 비판하지 말라
남을 감싸주는 것이
덕망있는 사람의 태도다
편집하며 말하라
분위기에 맞게 넣고 빼면 차원높은 예술이 된다

 

미운 사람에게 각별히 대하여라

각별하게 대해주면 적군도 아군이 된다

남을 비판하지 말라

남을 향해 쏘아올린 화살이 자신의 가슴에 명중된다

재미있게 말하라

사람들이 돈내고 극장가는 것도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선한 말로 기분좋게 해주어라
그래야 좋은 기의 파장이 주위를 둘러 싼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말을 하지 말라

듣고 싶어하는 얘기하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말에도 맛이 있다

입맛 떨어지는 말을 하지 말고
감칠 맛나는 말을 하라

 

또박또박 알아듣도록 말하라

속으로 웅얼거리면

염불하는지 욕하는지 남들은 모른다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말라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

올바른 생각을 많이 하라
올바른 생각을 많이 하면

올바른 말이 나오게 된다

부정적인 말은

하지도 듣지도 전하지도 말라

부정적인 말은 부정타는 말이다

모르면 이해될 때까지 열번이라도 물어라
묻는 것은 결례가 아니다
밝은 음색을 만들어 말하라
듣기좋은 소리는
음악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상대방을 높여서 말하라

말의 예절은

몸으로 하는 예절보다 윗자리에 있다

칭찬, 감사, 사랑의 말을 많이 사용하라

그렇게 하면 사람이 따른다

 

공통화제를 선택하라

화제가 잘못되면

남의 다리를 긁는 셈이 된다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는 사람은 경솔한 사람이다

가슴에서 우러 나오는 말을 하라

 

대상에 맞는 말을 하라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

좋아하는 말도 다르게 마련이다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말에는 지우개가 없으니 조심해서 말하라

품위있는 말을 사용하라

자신이 하는 말은자신의 인격을 나타낸다

자만, 교만, 거만은 적을 만드는 언어다

자신을 낮춰 겸손하게 말하라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지 말라

그것은 임종할 때 쓰는 말이다

표정을 지으며 온 몸으로 말하라

드라마 이상의 효과가 나타난다

 

활기있게 말하라

생동감은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원동력이다

솔직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행하라

그것이 승리자의 길이다

말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라

실언이 나쁜 것이 아니라 변명이 나쁘다

실언을 했을때는 곧바로 사과하라

 

말에는 메아리의 효과가 있다

자신이 한 말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말이 씨가 된다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라

말하는 방법을 전문가에게 배워라

스스로는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