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놓고 쉬는 도리/현정선원 법정님

2011. 7. 24. 10:1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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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놓고 쉬는 도리/현정선원 법정님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1

만법은 연생(緣生)이요, 연생하는 모든 법은 무생(無生)이라,
<성품도 없고>(無性) <모양도 없고>(無相) <작용도 없음>(無作)을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하게 하고  믿어들게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모름지기 연기설(緣起說)의 비밀한 뜻을 철저히 구명(究明)하여 만법이

성품 없음을 끝까지 사무쳐서 지금의 이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함을

밝혀야 합니다. 고불(古佛)의 법이 본래 일승(一乘)인데, 상(相)에 헷갈린

범부의 정견(情見)이 각각이므로 여러 승(乘)이 나누인 거예요.

 

마치 사람이 허공에 손가락으로 숱한 획(劃)을 그어, 수많은 구분을 지었다가,
이제 다시 손바닥으로 이것을 지워 없애려 하는데,
허공이야 어찌 일찍이 획을 받아들인 적이 있었겠어요?

 

이 이치를 알면 현행하는 일체의 시간 공간적인 차별상은 모두가 <참된 하나>

를 여의는 것이 아님을 알 것이며, 따라서 유정 무정 간에 일체만법의

구경운재(究竟運載)는 오직<하나> 뿐이요, 이에 이르면 끝내 <하나>

조차도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일승법(一乘法)에선 하나를 얻으면 일체를 얻는 것이요, 시작과 끝이

서로 거둬서 인과(因果)가 동시(同時)요, 결코 앞뒤에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초발심(初發心)에 문득 불과(佛果)를 얻어서, 다시는 더 수증(修證)

하는 일이 없음이 정법안장(正法眼藏)이니, 결국 인과 아닌 인과가 불과인 겁니다.

 

그러므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기하는 구도자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이 일에 다가선다면 더욱 난행(難行)할 것이며, 이것이 바로 몇 아승지겁을

지나도 상응할 분수가 없다고 말하는 근거예요.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佛性)의 상낙아정(常樂我淨)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에 의하여 믿음을 내고, 모름지기 <견문(見聞)의 작용>을 짓는 일을 당장

그만둘 수만 있으면, 머지 않아서 진불(眞佛)이 여여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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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끝내 성품을 밝혀야 합니다.
일체가 오직 인연화합일 뿐인데, 사람들이 모두 경험의 주체가 '나'인 줄로

오인하고, 끊임없이 조작하고 대처하기에 골몰하니, 어느 세월에

<신령하게 스스로 밝아서 조작을 기다리지 않는 '참 나'>를 밝혀서
걸림 없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은, 그것이 '탐욕'이든 '성냄'이든 '어리석음'이든 그 모두가 다만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요, 탐욕에 사로잡힌 자도 없고, 일체의 탐욕을 극복한

자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연기법'의 요체입니다,

 

즉 일체 작용의 주재자가 없으며, 다만 모든 일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멸하는

듯이 보일 뿐, 사실은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쳐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일승의 길'을 가는 학인은 우선 일체의 감정의 흐름을 회피하거나,
억제하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받아들여서도 안 됩니다.

절대로 탐욕을 억제하지 마십시오.
다만 그 감정의 흐름 속에 들어가서, 그 한 생각이 본래 나(生)는 일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증험해 알아야 합니다.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는데, 도대체 누가 탐욕에 사로잡힌 자이겠습니까?
일체의 경험은 거기, '경험하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을 때, 즉 마음에 '능·소'의 자취가 사라졌을 때,
그 때가 바로 '정각'이 현전하는 때입니다.
모든 상대가 끊어진, 허공 같은 마음이

과연 그 무엇과 더불어 싸우고, 회피하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잠잠히 지켜보되, 스스로 움직임이 없는 '부동지불'이

나타나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아무런 수승한 결과도 바라지 않으면서, 자나깨나

모든 생각이 남(生)이 없는 그 자리를 놓치지 말고, 설사 놓치더라도 탓하지 말고,

그저 보내고, 보내고 하다 보면 마침내 당신은 자신의 본래 스스로 청정한 마음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스스로 우뚝 드러나는 것을 증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그 자리에도 머물지 마십시오,

 

허공이 어찌 허공을 탐하며, 허공이 어찌 허공과 싸워 이기려고 하겠습니까?

 

- 현정선원 법정님의 저서 [마음놓고 쉬는 도리] p188~9

 

 

 

 

 걸림돌과 디딤돌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 많은 삶의 돌을 만납니다.

그때마다 그 돌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데요,
그 돌을 어떤 사람은 걸림돌이라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디딤돌이라고 말합니다.

삶에서 오는 모든 장애를
불평과 원망의 눈으로 보는 것과
또 그것을 발판으로 재기와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과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오늘도 장애의 요소와 같은 돌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그런 돌들은 생활에 무수히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깔려있는 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뒤쳐지게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온

모든 걸림돌을 오늘부터는 역으로 발판을 삼아서

디딤돌로 생각할 수 있다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겠지요.

 

 

~마음 밭에 향기나는 차 한잔 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