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수행은 왜 필요한가?/

2011. 7. 29. 21:1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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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수행은 왜 필요한가?

 

 

 

[1] 최상의 가르침

 

그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부처님의 법을 제대로 펼 수 없는 말법(末法) 시대입니다. 이미 깨가 그러한데 선정과 지혜를 닦을 수 있겠습니까? 차리리 아미타불을 염송해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바라는 게 낫겠습니다.

 

<해설>

불교 수행에는 어려운 길과 쉬운 길, 혹은 자신의 힘으로 닦는 길과 남의 도움으로 닦는 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선정과 지혜를 닦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수행하는 어려운 길이요, 염불(염불)은 아미타불의 힘에 의지하여 극락에 태어나는 쉬운 길이다. 앞의 경우는 괴로움의 바다를 헤엄쳐 건너가는 것에 비유되고 뒤의 경우는 안전한 배를 빌려서 쉽게 건너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묻는 사람은 붓다가 열반에 드신지 천오백 년이 지난 뒤라서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도 없고 수행해도 깨달음에 이를 가능성도 없는 말법시대이므로 염불을 통해 극락왕생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말법시대란 불교의 흥망성쇠를 일컫는 세계의 시대, 즉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 중 마지막 시기로 불교가 쇠퇴해 가르침만 남아 있고 참다운 수행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 시대를 말한다.

정법(正法) 시대는 붓다의 가르침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수행하는 사람과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있는 시대며, 상법(像法)시대는 붓다의 가르침과 수행만 있는 시대를 말한다.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보통 정법 시대는 붓다의 입적 뒤 오백년간을 말하고, 상업 시대는 그로부터 천 년간을, 그리고 말법 시대는 그 이후를 가리킨다.

 

내가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이 가신 뒤 시간이 흘렀고 상황도 변했지만 우리 마음의 본성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염불하고 경전을 읽으며 만행(만행)을 닦는 것은 승려가 늘 하는 생활이므로 정혜를 닦는 것과 서로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을 찾지 않고, 형상에 집착해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구한다면 지혜로운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해설]

불교 수행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염불은 흔히 입으로 소리 내어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 부처님의 모습과 그 덕을 마음으로 생각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만행은 말 그대로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를 통해서 수행하는 것이고, 정혜는 참선을 통해 지혜를 깨닫는 수행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이런 수행 방법에는 본래 낫고 못한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불교는 궁극적으로 마음을 닦는 가르침이므로 마음을 닦는 정혜의 수행이 근본이 되어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 우리들이 말법시대에 태어나 둔하고 어리석다고 해서 비굴한 마음으로 겉모습에 얽매여 도를 구한다면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혜의 빼어난 가르침을 따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물론 정혜를 닦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지금 버리고 닥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지금 마음을 내어 억지로라도 닦고 익히다 보면 어려움이 점차 줄어들 것입니다. 도를 얻어 성인이 된 사람 중에서 처음에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말법 시대의 중생이라고 해서 최상의 가르침을 따라서 안 된다는 말씀이 또 어느 경전에 씌어 있습니까?

 

[해설]

여기서 최상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돌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곧바로 다가가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가르침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마음의 본성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닦는 바른 길은 선정과 지혜의 수행입니다. 이것은 붓다 스스로 드러내 밝힌 이래 전 불교사를 통해 변함이 없는 정통적인 가르침입니다.

이 마음에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다 갖추어져 있고, 세상의 만물은 실로 이 한마음에서 전개된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혜의 수행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핵심적인 마음공부임에 불구하고 이것이 어렵다고 해서 스스로 비하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아상과 자만도 경계해야 하지만 지나친 자기비하는 수행의 큰 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염불수행자도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속의 부처님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참선도 위빠사나도 절수련도 그 목적이 오직 마음을 깨닫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 있어 자신의 마음이나 행동을 관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공부가 마음을 깨닫는 첫걸음입니다.

 

 

<<원각경(圓覺經)>>에 “말법 시대 중생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망상을 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바로 깨달은 보살이다.”라고 부처님이 말씀했으니,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부지런히 수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수행해서 곧바로 개달음을 얻지 못하더라도 지금 뿌린 복되고 좋은 씨앗이 다음 생에서 또다시 이러져서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해설]

<< 원각경(圓覺經)>>은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수행법을 설명한 대승불교 경전입니다. 원각은 다름 아닌 마음의 본성이요, 곧 한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공에 때가 묻을 수 없듯이 마음의 본성은 본래 밝고 깨끗합니다.

그러나 중생은 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시작을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시작된 윤회의 과정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본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스스로 일으킨 생각에 얽매이기 때문에 미혹해서 모든 생각이 망념이요, 번뇌가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동요가 없는 것이 마음의 본체를 밝히는 길이며 그러한 사람이 바로 개달은 사람이요 부처인 것입니다.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는 길이 바로 정혜를 닦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심결(唯心訣)>>에서 말하기를 “바른 가르침은 듣기만 하고 믿지 않더라도 부처가 될 씨앗을 심은 것과 같고, 그것을 배우기만 하고 미처 성취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다음 생에서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환경과 자신의 능력을 탓하지 말고 오로지 참된 가르침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굳건하게 수행한다면 비굴하고 나약한 마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해설]

<<유심결(唯心訣)>>은 중국 송나라 영명 연수(영명연수)대사의 저술로 제목과

같이 마음이 모든 것의 근원임을 밝힌 책이다. 마음이란 몸을 벗어나 있지 않으므로 마음의 본체를 찾는 일은 쉬울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가까이 있고 늘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찾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본체를 깨닫는 일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보다 쉽다는 선종의 말도 과장이 아니고, 수없이 오랜 세월을 두고 닦아야 이룰 수 있다는 교종의 말도 맞는 말입니다.

마음을 찾아가는 일이 이렇게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길이지만, 일단 방향을 제대로 잡고 첫발을 내딛었다면 이미 그 만큼 나아간 것입니다. 인생은 아무리 미화해도 괴로운 것입니다. 즐거움도 순간일 뿐 무상한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고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이렇게 괴로운 현실을 초월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른 가르침을 들었을 때 바로 마음을 결단해서 실천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 주옥같은 향기로운 말 ♧^*^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말을 하는데...
어떤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평생 5백만 마디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원석도 갈고 다듬으면 보석이 되듯
말도 갈고 닦고 다듬으면 보석처럼 빛나는 예술이 된다.
 
같은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라.
그 곳에서는 히트곡이 여기서는 소음이 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말에도 온도가 있으니
썰렁한 말 대신 화끈한 말을 써라.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열 올리지 말고
그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라.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지 말라.
체로 거르듯 곱게 말해도 불량율은 생기게 마련이다.

 

상대방을 보며 말하라.
눈이 맞아야 마음도 맞게 된다.
풍부한 예화를 들어가며 말하라.
예화는 말의 맛을 내는 훌륭한 천연 조미료이다.
 
한번 한 말을 두번 다시 하지를 말라.
듣는 사람을 지겹게 하려면 그렇게 하라.
일관성 있게 말하라.
믿음을 잃으면 진실도 거짓이 되어 버린다.

말을 독점 말고 상대방에게도 기회를 주어라.
대화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교류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라.
말을 자꾸 가로채면 돈 빼앗긴 것보다 더 기분 나쁘다.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상대방의 의견도 옳다고 받아들여라
죽는 소리를 하지 말라.
죽는 소리를 하면 천하장사도 살아 남지 못한다.

상대방이 말할 때는 열심히 경청하라.
지방방송은 자신의 무식함을 나타내는 신호다.
불평불만을 입에서 꺼내지 말라.
불평불만은 불운의 동업자다.

 

재판관이 아니라면 시시비비를 가리려 말라.
옳고 그름은 시간이 판결한다.
 
눈은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표정으로도 말을 하라.
조리있게 말하라.
전개가 잘못되면 동쪽이 서쪽된다.

결코 남을 비판하지 말라.
남을 감싸주는 것이 덕망있는 사람의 태도다.
 
편집하며 말하라.
분위기에 맞게 넣고 빼면 차원높은 예술이 된다.
 
미운 사람에게 각별히 대하여라.
각별하게 대해주면 적군도 아군이 된다.
남을 비판하지 말라.

남을 향해 쏘아올린 화살이
자신의 가슴에 명중된다.
 
재미있게 말하라.
사람들이 돈내고 극장가는 것도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선한 말로 기분좋게 해주어라.
그래야 좋은 기의 파장이 주위를 둘러 싼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말을 하지 말라.
듣고 싶어하는 얘기하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말에도 맛이 있다.
입맛 떨어지는 말을 하지 말고
감칠 맛나는 말을 하라.
 
또박또박 알아듣도록 말하라.
속으로 웅얼거리면
염불하는지 욕하는지 남들은 모른다.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말라.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

올바른 생각을 많이 하라
올바른 생각을 많이 하면
올바른 말이 나오게 된다.
 
부정적인 말은
하지도 듣지도 전하지도 말라.
부정적인 말은 부정타는 말이다.
 
모르면 이해될 때까지 열번이라도 물어라.
묻는 것은 결례가 아니다.

밝은 음색을 만들어 말하라.
듣기좋은 소리는
음악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상대방을 높여서 말하라.
말의 예절은
몸으로 하는 예절보다 윗자리에 있다.

칭찬, 감사, 사랑의 말을 많이 사용하라.
그렇게 하면 사람이 따른다.

공통화제를 선택하라.
화제가 잘못되면
남의 다리를 긁는 셈이 된다.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는 사람은
경솔한 사람이다.
가슴에서 우러 나오는 말을 하라.

대상에 맞는 말을 하라.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
좋아하는 말도 다르게 마련이다.

 말로 입은 상처는 평생 간다.
말에는 지우개가 없으니 조심해서 말하라.

품위있는 말을 사용하라.


자신이 하는 말은자신의 인격을 나타낸다.
자만, 교만, 거만은 적을 만드는 언어다.
자신을 낮춰 겸손하게 말하라.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하지 말라.
그것은 임종할 때 쓰는 말이다.

표정을 지으며 온 몸으로 말하라.
드라마 이상의 효과가 나타난다.

활기있게 말하라.
생동감은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원동력이다.
솔직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행하라.
그것이 승리자의 길이다.

 

말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라.
실언이 나쁜 것이 아니라 변명이 나쁘다.
실언을 했을때는 곧바로 사과하라.

말에는 메아리의 효과가 있다.


자신이 한 말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말이 씨가 된다.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라.

말하는 방법을 전문가에게 배워라.
스스로는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