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5. 20:5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2] 명리를 떠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승려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불교를 공부한다고 하면서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명예와 이익만을 좇고 있습니다. 이렇게 헛된 욕망의 굴레에 갇혀 수행은 하지 않고 옷과 밥만 허비하니 출가(出家,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수행생활에 들어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해설>
예나 지금이나 일부 수행자들의 빗나간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출가한 승려가 도리어 일반 사람보다 더 탐욕스럽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야 할 수행자가 도리어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현신을 탄식한 것입니다.
지눌스님이 활동하던 고려말기에는 불교가 크게 번성하였지만 한편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에 지눌스님은 승려는 승려답게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정혜결사>를 선언하여 당시 불교계를 쇄신하려고 한 것입니다.
아아, 삼계를 벗어나 해탈하려고 하면서 번뇌를 끊지 않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것은 옛사람이 일러준 큰 도리를 등지는 것이며, 네 가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해설>
삼계란 중생이 사는 세 가지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합니다. 해탈이란 이러한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해탈하지 못하는 것은 번뇌를 끊지 못하기 때문인데, 번뇌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입니다. 네 가지 은혜란 부모, 중생, 국왕, 스승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말합니다. 여기서 중생의 은혜란 중생이 있음으로써 자신이 존재하며 또한 중생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도움으로써 복을 쌓을 수 있기에 은혜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에서는 중생도 복을 주는 밭인 복전(福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래전부터 이를 보고 탄식해 오다가 마침 개성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여하면서 함께 했던 동료 스님 십여 명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을 했습니다. “ 이 담선법회가 끝나면 명리(名利, 명성과 이익)를 버리고 산사에 들어가 함께 결사를 맺어 선정과 지혜를 닦읍시다. 예불을 드리고 경전을 읽고 각자 맡은 일에 따라 운력(運力)도 하고, 본성을 기르면서 거침없이 한생을 살아 봅시다. 이렇게 옛사람들의 훌륭한 삶을 본받는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해설>
담선법회란 선을 이야기하는 법회라는 뜻으로 고려말기에 시행되던 선종 승려의 자격시험을 말합니다. 지눌은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 이 시험에 응시해서 통과했는데, 담선법회에서 만난 도반 십여 명과 서로 마음이 맞는 것이 정혜결사의 첫 출발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불을 드리고 경전을 읽는 것은 승려 생활의 기본입니다. 승려가 스스로 밭을 갈거나 밥을 짓는 등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운력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수행하려는 의지와 검소한 삶을 드러내는 것으로 선종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본성을 기른다는 것은 사물에 끌려 다니지 않고 마음의 바탕인 한마음을 회복함을 뜻합니다. 지눌은 당시 승려들의 편안하고 한가로움만 좇는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로 잡고, 불교가 중생들의 삶에 기여하기 위해 부처님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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