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5. 13:1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선정(禪定)이 으뜸
또한 선에는 얕고 깊은 것, 이른바 외도선(外道禪), 범부선(凡夫禪), 이승선(二乘禪), 대승선(大乘禪), 최상승선(最上乘禪)이 있는데 자세한 것은 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에 실린 것과 같습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심성이 본래 깨끗하고 번뇌가 본래 공했다.’라는 것은 최상승선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처믕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맞는 수행론이 있어야 하겠기에 이 글에서 방편(방편, 상황에 따라 쓰는 방법과 수단)과 실질을 함께 다루고자 합니다. 반드시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정과 혜가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그 핵심은 수행하는 사람이 신심(신심, 진리에 대해 확신하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인도의 용수가 지은 ‘대품반야경’에 대한 주석서>에 이르기를 “설사 세상의 일을 추구하더라도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가장 뛰어난 진리를 배우는 데 어찌 선정에 힘쓰지 않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게송에서는 ‘선정(禪定)이라는 금강 투구가 번뇌를 막으니 禪은 지혜를 지키는 곳간이요, 공덕의 복전이다. 어지러운 티끌이 하늘을 가리면 큰 비가 씻어 내리듯이 번뇌와 망상의 바람이 마음을 흔들면 선정이 잠재운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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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1]
선은 불교에서 특정한 의미로 쓰는 것이지만, 마음의 집중에 의해 심리적인 평정을 추구하는 일련의 행위와 동작을 다 포함합니다. 따라서 명상에 준하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외도란 불교외의 유교나 도교, 요가 등의 명상법 일체를 말하는데, 이 명상 수행은 일정한 수준까지는 불교와 큰 차이가 없지만 궁극적으로 윤회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니라고 봅니다.
선의 깊고 얕음과 좁고 넓음을 구분한 규봉 종밀 선사의 <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상에 태어나고자 하는 것이 외도선이다. 인과의 법칙을 믿어서 나쁜 인과 응보를 초래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범부선이며, 공(空)의 진리를 깨우치고자 수행하는 것이 소승선(=二乘禪/성문, 연각)이다. 사람과 사물이 모두 공하다는 진리를 닦는 것이 대승선이며, 자신의 마음이 본래 깨끗하고 모든 것을 갖추어 그 마음 그대로가 바로 부처라는 진리를 깨닫고 이에 입각해서 수행하는 것이 최상승선이요 또한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다.”
[해설2]
끝없는 공덕과 가장 높은 지혜가 모두 선정의 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빛이 없는 등불도 없지만, 등불이 없이 불빛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등불과 불빛을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정과 혜 또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구분하면 선정(禪定)이 지혜에 앞서기 때문에
여기서는 주로 선정을 위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게송에서 선정은 번뇌와 망상을 잠재워 평정에 이르는 수행이므로 번뇌를 막는 금강투구라 했습니다.
지혜란 따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정을 통해 마음의 본성을 확인하는 것이고, 선정으로부터 온갖 공덕이 나오므로 지혜의 곳간이요, 공덕의 밭이라고 했습니다. 게송에서 두 번째 행은 선정이 번뇌와 망상을 가라앉힘을 비유한 것입니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는 “선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이 참으로 내 자식이다.”라고 하시고, 게송에서도 “고요한 무위(無爲)의 부처님 경지에서 깨끗한 보리를 얻나니 선정에 든 사람을 훼방하는 것은 곧 여래를 훼방함이라.”라고 했다.
그리고 <정법염경(正法念經)에서는 “온 세상 사람을 구한 공덕도 밥 먹을 동안 마음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르게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고, <기신론(起信論)>에서는 ‘만일 어떤 사람이 이업을 듣고 비겁하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반드시 부처님의 씨앗을 이을 것이니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수기(授記, 깨달은 사람에게 내리는 예시나 예언)를 받을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넓고 끝없는 세계에 가득한 중생을 교화해 열 가지 선행을 행하게 하더라도 밥 먹을 동안 이 법을 바로 생각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
[해설3]
<대집경>은 공사상에 밀교적 요소가 가미된 대승 불교의 경전이며,
<정법염경>은 선악에 따라 받는 인과응보를 구체적으로 밝힌 대승경전입니다.
<기신론>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줄인 이름으로 인도의 마명(馬鳴) 선사가
대승불교의 중심 사상을 이론과 실천에 걸쳐 설명했다고 알려진 매우 중요한 저술입니다.
대승불교 전통에서 선과 교는 대개 상대적인 개념으로 쓰이는데, 선은 실천수행을 말하고, 교는 이론적 탐구를 말합니다. 불교는 지혜와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경전을 읽거나 설법을 듣는 중에 지혜가 열리고 깨달음도 얻을 수 있는데 지눌 역시 세 번의 큰 깨달음을 모두 경전을 읽는 중에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만 높이고 교를 경시할 수 없습니다.
선과 교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로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마음의 본성을 깨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전을 보거나 선지식의 말을 듣고 마음의 본바탕을 깨칠 수도 있지만
선정을 함께 닦는 것이 바르고 빠른 길입니다.
지혜와 깨달음이 모두 마음의 본바탕을 분명히 보고 깨치는 것이니만큼
그 밖의 다른 수행이나 보살행보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계속-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마음 봄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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