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법칙 / 광덕스님

2011. 12. 23. 23:2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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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법칙 / 광덕스님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觀自在菩薩 行心 般若波羅蜜多是 照見 五蘊皆空). 반야바라밀! 반야바라밀을 보건대 일체 중생이 구족한 지혜와 덕상과 역량이 다 갖추어져 있어서 반야바라밀로 볼 때는 무, 무, 무(無無無)….
육체적인 것,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 감정적인 것, 그 오온이 다 공해서 일체 고난과 액난이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로 보니까 일체 고난이 다 없어요. 그러면 뭐가 있느냐. 진실세상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실불허, 능제 일체고(眞實不虛 能除 一切苦)로 참되고 진실한 것뿐입니다. 능히 일체고를 없애는 것입니다. 일체고가 끊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생을 관하는 것처럼 우리들이 기도할 때 항상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까?
온전히 기도하라


형제들 중 저를 찾아오신 분들은 “기도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집 안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대책을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의 대답은 “온전히 기도하라.”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전제 조건이 무엇이냐? 이와 같이 관하라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냉대를 하십니다. 도저히 이해를 안 해주십니다.”
시어머니가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시어머니는 지극히 너그러우시고, 지극히 사랑해주시고, 지극히 큰복을 너에게 갖다 주시면서 네가 행복하고 성공하고 건강하라고 항상 기원해 주시는 부처님 같은 어른이다. 그렇게 관하라. 그렇게 생각하라. 멀리 계시더라도 엎드려서 절하라. 그리고 일심으로 반야바라밀을 염하고 어머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관하는 것, 일심으로 염하는 것, 항상 그것입니다.
“아들이 공부를 안 하고 반항하고 헤매고 그럽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아무리 야단을 치고 충격요법을 써도 낫지 않습니다.” 그 아들은 딴 것 없습니다.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 아들이 이와 같이 금덩어리 같은 것으로 생각하라.

 

부처님 공덕으로 태어났고, 집안의 복덩어리로 왔고, 지혜를 가지고 있고, 능력을 가지고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그렇게 믿어주고 그렇게 관하라. 마음으로 철저하게 봐줘라. 이제까지 밉게 보고 나쁘게 보았던 어리석은 생각을 비워버리고 참회하라. 일심 반야바라밀을 염하라. 그리고 그렇게 대해줘라.”


“여시 관중생(如是 觀衆生).” 부처님이 이렇게 중생을 관하십니다. 우리 기도도 그렇게 관하고 그렇게 마음으로 보고(관(觀)이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관이라고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견(見)이며 관은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심으로 반야바라밀을 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염하라
지혜가 가득하고 모든 고통이 끊어지고 청정열반이 넘치고 있는 그 자리가 반야바라밀입니다. 그 쪽을 향해서 마음을 두고 일심으로 염하라 했습니다.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을 생각하면서 염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은 다 망상입니다.


얼마 전에 편지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해답을 해드린 김해에 있는 한 노인한테서 또 편지가 왔습니다. 요점은 “망념이 자꾸 생겨서 부처님의 옥호상을 관하면서 염불하니까 산란심이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하오리까?”


편지를 몇 번 했기 때문에 미안한지 ‘짤막하게만 답변을 해주십시오.’ 했습니다.
“또 두 번째 방법으로는 아기가 어머니 생각하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하오리까? 둘 중에 어떤 것을 할지 대답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물론 부처님의 옥호를 관하는 것도 좋고 아기가 어머니 생각하듯이 하는 것도 좋지만 일체 경계에 마음을 두지 말고 일심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오직 일심으로 해야 합니다. 일심은 무념이라 진리가 통합니다. 형상을 정했다 할지라도 그 형상이 무(無)인 것을 알아서 형상에 얽매임이 없어야 됩니다.


첫째는 관할 것이요. 우리 부모님 훌륭하시고, 우리 남편 훌륭하시고, 우리 아내 훌륭하시고, 우리 아들 훌륭하시고, 훌륭하게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훌륭하지 않다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은혜로우신 부처님의 공덕이 가득한 훌륭하신 분, 나에게 은혜로 오신 분, 그렇게 생각하고 지극한 존경과 감사의 진실을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관하고 일심으로 반야바라밀을 염하고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기도의 원리는 거기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반야바라밀의 진리를 쓰게 되고 반야바라밀을 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평화스럽게 하는 것도 그렇고, 개인이 사업을 펴나가는 것도 그렇고, 학문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기본적인 것을 성취하는 방법은 거기 있습니다.


여러 형제들도 보셔서 알겠습니다만 제가 쓴 『생의 의문에서 그 해결까지』라는 책자 기도의 맨 앞에 그런 대목이 있습니다.
“기도는 어리석은 자, 약한 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있을 겁니다.
“기도는 반드시 지혜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할 때 기도 먼저 하라.”고

그랬습니다. 이 기도의 방식이 창조의 원리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연히 이루어진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쓰고 진리로 자기가 바뀜으로써 진리적인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불신하고 대립해서 한 쪽 사람이 쓰러져야 내가 산다는 식으로 해서는 사회에서도 그렇고, 세계에서도 어느 나라가 하나 망해야 산다는 대립관계를 가지고는 결코 반야바라밀의 공덕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 땅 이 세계가 하나의 생명이다1
세계는 하나의 산 꽃나무요, 인류는 한 몸입니다. 이 땅에 반야바라밀 공덕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이 땅 이 세계가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알고, 이러한 반야바라밀 마음에 근거해가지고 세계를 경륜하고 국가를 경륜해야 할 것입니다.


한나라 가운데서도 수많은 기능을 달리하고 또 이해를 달리하는 계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를 달리하고 기능을 달리하는 수많은 계층들이 서로 협동하고 어울려서 그 나라의

국력이 성장하는 것이지 그 가운데 어느 층이 망해야 한 쪽이 잘 되고

나라가 잘 되는 법은 없습니다.


이 손이나 저 손이나 한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요소입니다. 그 가운데 어느 계층이 망해야 내가 잘 되겠다는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른손이 망하면 왼손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왼손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병신이 됩니다.


저는 조국생명이라는 용어를 쓸 때가 있습니다. 조국이 내 생명의 한편이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어느 부분이 망한 데가 있고, 불행한 데가 있고, 짓눌린 데가 있고, 그늘진 데가 있다고 한다면 내 몸이 병든 것처럼 내 나라에 행복이 올 리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와글와글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와글와글은 누구의 것인가? 어느 편을 들 것이냐? 이 땅의 주인인 까닭에 서로 깨우쳐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 신뢰하고 서로 아껴서 서로 잘 되어야 이 나라가 잘 되는 것입니다. 저 회사가 망하고 저 집안이 망하고, 이 회사 이 집안이 잘 된다고 해서 경제가 부흥하고 국력이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썩지 않는 진실생명
지난 호에 말씀드린 것처럼 암라과 과실의 씨앗은 썩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의 말씀과 같이 삼매지혜가 구족하고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은 여시신지(如是信知)할지어다. 여래의 지혜가 구족히 갖추어져 있다. 너희들은 이와 같이 믿고 알지어다. 이와 같이 믿어라.” 이와 같이 부처님의 공덕이 절대로 상하지 않고 썩지 않고 병들지 않고 물들지 않았습니다. 제 가슴속에 진실생명이 그와 같이 깃들어 있고 만인이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암라과가 크게 자라나는 것처럼 이 법문을 통해서 우리 자신한테 있는 부처님의 무량공덕장 세계를 크게 전개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조국과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함께 진리가 충만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광덕스님의 귀한법문 보내드립니다 모든법우님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