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 念佛 수행과 기도 /성본스님

2012. 3. 24. 21:3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728x90

 

念佛 수행과 기도
정성본 스님/경주 캠퍼스 정각원장

三業淸淨의 염불 수행은 자신의 법신불을 이루며 제불보살의 감응 을 받도록 하는 기도다.
念佛은 정토계경전의 선구가 되고 있는 『般舟三昧經』이나 『阿彌
陀經』『觀無量壽經』 등에서 설하고 있는 것처럼,

원래 부처님의 원만하고 자비스러운 모습을 마음 속에 상념(想念)하여 자신과 부
처님과 하나가 되는 觀想 念佛의 실천수행인 것이다.

즉, 念佛三昧 는 관불(觀佛)의 수행이다.
일상생활에서 잡다한 일에 시달리고 잡념으로 산란스럽고 불안하여 괴로우며,

탐진치 삼독으로 치달리는 사바세계의 삶을 부처님의 원만한 지혜와 자비스러운 인격을

마음속에 상념함으로써 자신도 일체의 분별심과 괴로움의 번뇌에서 벗어나

일념 청정한 부처님의 마음으로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만들기 위한 실천 수행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불교에서 염불이라고 하면 경전에서 주장하는 관상염불이 아니라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이라고

으로 부처님이나 보살의 명호를 소리내어 稱名念佛이 중심이 되고 있다.

관상염불을 칭명염불로 바꾸어 실천하도록 주장한 것은

중국 정토교의 선구자인 담란(曇鸞 : 476∼542 ?)인데, 그는 정토에 왕생 하기 위한 방법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입으로 소리내어 외우도록 권하였다.
또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인 善導(613∼681)는 경전 중에서 주장한
염불과는 관계없이 『觀無量壽經』에서

「일심으로 오로지 아미타 부처님의 명호를 念(一心尊念彌陀名號)」하는 새로운 염불관을 확립하여,

칭명(稱名)을 念佛과 동일시한 실천으로 중국 정토교의 새로운 실천 방법을 개척한 것이다.
염불은 본래 부처님을 상념하고 그것에 정신을 집중하여

삼매(통일)를 이루도록 하는 정신적인 실천수행이다.

염불과 같이 念法念僧
은 각기 부처님의 가르침과 교단을 상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중국 정토교에서는 염불에 한정하는 정신적인 작용보다도 발성 행
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꾸어 稱名, 口稱念佛로 실천하도록 한 것 이다.

원래 念의 원어 anusmrti에는 發聲이라는 의미는 없지만,

자음인 念은 상념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경전을 소리내어 읽는 讀誦의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예를들면 念經이라면 경전을 독송하는 것을 말하기에

염불은 부처님의 명호를 소리내어 외우는 것이라고
사용해도 중국어의 감각으로는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현재 정토교에서 사용하는 칭명염불은 이렇게 중국불교에서 실천 수행의 用
法으로 재용한 것이다.
『禪家龜鑑』에도 「입으로 외우는 것은 誦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 이 염불이다.

입으로만 명호를 외우고

마음으로 생각(自覺)하지 않으면 불도를 닦는데 아무런 이익이 없다.」라고 하였다.
서산대사는 또, 「나무아미타불의 六字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의 경계를 생각(自覺)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란(一心佛亂) 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라고
염불하는 올바른 실천법을 설하고 있다.
선가구감에서도 「身口意 三業이 淸淨하면 부처가 出世한다」라고 설하고 있는 것처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염불은 삼업청정의 수행 으로 각자의 법신불을 구현하게 하는 실천인 것이다.

이렇게 단순 한 염불 수행이 어떻게 삼업청정의 수행으로 자신의 법신불을 구현 할 수가 있을까?
합장하여 한송이 연꽃이 된 자신의 몸이 바로 신체적인 안정과 평안으로 身業이 청정한 것이 되고,

오로지 한결같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부처님의 성스러운 성호를 외우는 稱名 염불은 口業 청정이 되며,

자신의 입으로 칭명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聖號의
그 소리인 법신불의 목소리를 자신의 마음의 귀로 또렷하게 듣고
자각하는 것이 意業이 청정하게 되는 것이다.
南無阿彌陀佛은 무량수불에게 귀의한다는 의미로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고 의지하여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도록 하는 원력과 실천수행인 것이다.

南無阿彌陀佛이라고 稱名 염불하는 실천 수행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실천 수행인데,
왕생은 모두 법신불인 부처님의 가피(힘)에 의한 것이다.
지금 여기서 내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칭명 염불하지만 그것은
나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라는 생각, 나의 목소리라고 하는 자아의식이 남아 있는 것은 올바른 염불 삼매가 되지 못한 것이며,

진정한 염불 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 나무아미타
불이라고 부처님의 명호를 외우고 있지만,

그것은 나의 입으로 외우(稱名)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법신불이 되어 부처의 입으로 칭명
하는 것을 듣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칭명염불이 올바른 염불 수행이 되기 위해서는 부처가 각자 자신에게 들려주는 칭
명이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처가 부처를 염불하는 것이 염불이며, 一念 一念으로
부르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칭명은 내가 염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법신불이 염불하고 염불하는 것을 자기 법신불이 또렷 하게 듣고 自覺하고 있는 것이 된다.
염불 수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염불하는 중에 조금이라도 자신,

기라는 의식이 남아 있으면 염불이 될 수가 없다.

부처와 자기와 하나(一如)가 되어

부처도 자기도 없어진 경지에서 하는 염불이 진정한 염불수행이 되는 것이다.
염불을 할 때는 흩어진 몸과 마음으로 할 것이 아니라 두 손을 모
우고 합장하여 몸을 단정히 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성심 성의를 다
하여 염불 기도하면 이 몸이 그대로 삼업이 청정하게 되어 부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정토교에서는 이것을 범부의 몸 그대로 성불하는 凡夫成佛의 염불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히 입으로 口稱하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한마디의 염불이

지금 여기 자신의 범부 몸 그대로를 삼업청정의 염불 수행으로 하여 법신불로 전향하도록 하고 있다.

합장하는 자신의 모습은 이미 자기라는 의식이 없어진 사바세계의 한송이의 연꽃으로 자신을 그대로 법신불로 승화한 청정한 부처의 몸인 것이다.
南無는 아미타부처님의 본원력에 사바세계를 벗어나

청정한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원력과 보리심으로 자기 향상의 구도적인 의지라고 하겠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칭명하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호 소리를 자신의 귀로 또렷하게 듣고
자각하는 염불수행은 그대로 법신불과 법신불과의 자각적인 대화로
이어지는 일념상응(一念相應)의 염불삼매가 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삼업청정한 수행으로 실천하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칭명의
염불 소리는 이미 자기라는 자아의식이 없어진 삼업청정한 염불 수행이기에 자기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법신불의 法音인 것이다.
마음에서 추구하는 부처(覺者)는 어디에 있는가? 부처는 멀고 먼
彼岸이나 서방 극락정토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밖을 향해서 부처나 진리나 도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부처는 어디에 있을까?

참된 부처를 그리워하고 추구하는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의문과 질문을 갖지 않고선 부처나 극락정토,
깨달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고, 의미없는 것이 되고 만다.

구하는 부처는 이러한 의문과 질문을 벗어난 멀고 먼 저쪽 서방정
토나 피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지금 이 질문 가운데에 부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하지 않는자에게는 이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의미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부처님!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부를 때 부
처라고 말하는 자신의 마음의 목소리 그 가운데에 부처가 있는 것 이다.

아니 부처님이라는 그 목소리가 이미 나의 목소리가 아닌 것 이다.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그 소리와 부처님이라고 듣는 그 소리와는 둘 이지만 이미 둘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는 질문하는 것과 대답하는
것이 둘이지만 이미 둘이 아닌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 이라고
하는 목소리는 「부처님은 여기 있다」라고 하는 부처의 목소리인 것이다.
傳大七의 게송에 「부처가 어디 있는지 알고자 하는가? 바로 이 말
을 하는 그 목소리가 부처인 것이다(欲知佛何在 兄遭語聲是)」라고 읊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나옹(懶翁)화상도

누이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여 염불 수행의 바른 실천법을 제시하고 있다.

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 부처님 어디에 계신가?
着得心頭切莫忘 철저히 마음으로 잘 챙겨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라.
念到念窮無念處 일체 망념이 없어져 무념처에 이르면,
六門常放紫金光 이 몸이 법신불이 되어 금색 광명을 발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