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중생 향한 육바라밀행 / 숭산스님

2012. 3. 30. 19: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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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중생 향한 육바라밀행 / 숭산스님

 

 

 

대승불교에서 한가지 실천적인 문제를 뺄 수 없는 것은

육행바라밀이다.

 

육바라밀이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 가지이다.

 

이 여섯 가지 완전한 덕을 실천하면 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고통을 없애고 열반의 경지를 수용할 수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바라밀을 도피안-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

번역하였다.

 

이 고통과 액난의 이 세상을 이 언덕〔此岸〕이라 한다면 극락의 저 세상을 피안이라 한다.

 

 

첫째 보시란 무엇인가?

 

물질적인 것이 되었건 정신적인 것이 되었건 힘에 따라서 남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주는 것이다.

 

 

둘째, 지계는 윤리적 실천운동이다. 율(律)은 울타리다.

 

울타리가 있으면 도둑을 보호하게 된다.

 

도둑이 없으면 언제나 내놓고 살아도 편안하게 된다.

 

그러므로 계는 악업을 대치하고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만들어 마음속에 핍박과 고뇌를 없애주는 것이다.

 

 

셋째, 인욕은 잘 참는 것이요, 용서하는 것이다.

 

원한을 참고 해를 끼쳐오는 것을 참고, 고통을 잘 이겨나가고

진리를 관찰하여 마음의 동요가 없이 살아나가는 것이다.

 

 

넷째, 정진은 한 마음으로 꾸준히 진리를 행하여

나가는 것이다. 장애를 부수고 용맹정진으로 겁내는

마음이 없이 나의 이 노력이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하여야겠다는 굳건한 생각을 가지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정진하면 게으른 마음이 없어진다.

 

다섯째 선정은 고요히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와 세계의 깊고 깊은 곳을 붙들어 잡고 깊이 생각하여

흔들림 없이 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황해도 구월산 패엽사라는 절에 한 스님이 있었다.

 

젊은 스님들은 모두 피난하고 혼자 법당에 앉아 좌선하고 있었는데 왜놈들이 들어와서 몸을 흔들어 보고

코를 쑤셔보고 눈을 만져 보았다.

 

 

살기는 분명 살았는데 동요함이 없으므로 머리 뒤에다가 총을 세우고 공포 한방을 쏘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군인들도

모두 놀랐는데 스님만은 동요가 없었다.

 

“난데쓰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기 앞으로 접근하는 군인을 보고 스님은 그대로 ‘할’을 하였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앉아있던 사람 서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뒤로 자빠졌다.

 

그때 대중이 앞으로 나오며,“도인을 몰라보고 희롱해서 죄송하다.”하고 사과하고 물러갔다.

 

 

이와 같은 선정은 자성(自性)을 반조(返照) 하는 가운데서도

 

일체의 흔들림이 없고 어려움을 참고 나아가는 것이다.

 

선정이 있으면 바람이 일어도 혼란이 없어지고,

속마음이 잘 정돈된다.

 

그리하면 다시는 번뇌가 일어나지 못하여 마음에 안정을 얻으므로 전후좌우에 관계없이

 

언제나 편안한 마음을 갖고 살 수 있다.

 

 

끝으로 지혜는 어리석음을 대치하는 약이다.

 

지혜란 이 모든 것을 훤히 살펴보고 우주창조 이전의 하느님, 자기 선악 이전의 자리를 발견하여

 

분별없는 지혜로써 분별세계를 잘 분별해 주는

마하반야(摩訶般若)를 말한다.

 

화계사에서 내가 모셨던 우리 은사 스님의 이름이 고봉스님이고 그 스님의 은사스님이 만공이다.

 

고봉스님이 늘 술을 좋아하여 실수를 종종 저지르는데

술만 마시면 노스님을 욕했다.

 

 

“만공, 만공 그게 무슨 도인이야. 알기는 개떡을 알아 ~”하고 큰 소리로 욕을 했다.

 

그래도 스님은 그런 말을 들었을 뿐 직접 보지는 못하였는데,

 

하루는 그의 방 앞을 지나가다가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안 들어 갈 수가 없다. 만공스님은 고봉스님 방에 들어가,

 

“고봉, 자네가 왜 내 욕을 하는가? 내가 자네한테 뭐 잘못한 게 있는가?” 술에 취해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되어 개걸대던 상좌 고봉이 곧 정석을 하고 앉더니,

 

“스님, 제가 스님에게 무슨 욕을 합니까? 왜 스님에게

욕을 합니까?”하고 대들었다.

 

 

“아니, 자네가 지금, ‘만공 그놈이 무슨 도인이야’하고 야단치지 않았는가?”

 

“그거야 만공한테 욕한 것이지 스님한테 욕한 것이 아닙니다"

 

"허, 많이 취했구먼. 어서 자게.” 하고 자리를 펴주고 갔다.

 

도인은 술 속에서도 지혜겨룸을 하는 것이다.

 

 

스님은 술을 좋아하고 부인을 거느리며 살고 절 생활을

걸림 없게 하였지만

 

누구고 그 스님보고 도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체 모든 행이 중생을 위해서 법대로 살아간 스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를 행하는 사람은 베푸는 마음, 중생을 지키는 마음, 용서하고 노력하는 마음,

 

흔들림 없이 반성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이 세계와 인생을 지도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보시, 지계, 인욕을 통하여 복덕자량이 구족해져서

 

유정 중생을 널리 이익 되게 하는 복덕자량을 얻게되고,

 

정진, 선정, 지혜를 통하여 지혜자량을 구족하여 삿된 번뇌를 대치하고 불교적 인간상을 구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해(萬海) 한용운스님은 이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마음의 자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보시 : 님을 향하여 무엇이고 주고 싶은 마음의 자세로 ,

 

2. 지계 : 님에게 그 깨끗하고 청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의 자세로,

 

3. 인욕 : 어렵고 괴로운 일을 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세로 잘 참고 견디어 나간다.

 

4. 정진 : 어떻게든 노력하여 님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게 하여야겠다는 마음의 자세로,

 

5. 선정 : 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내 마음에 흔들림이 없이 마음을 가지는것 처럼,

 

6. 지혜 : 시비곡직을 분명히 하여 님이 삿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의 자세로,

 

 

처음 만난 애인이 오직 그를 위하여 몸과 마음,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자세로 일체중생을 향하여

 

바라밀을 행하면 이것이 곧 대승보살의 육도만행이라 하였다.

 

참으로 거룩한 말이다.

외국에서도 인정한 이 시대의 큰스승 숭산스님의

법어 이십니다

일체중생을 향한 육바라밀 너무도 거대해 그끝이

보이지 않는 법어 이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려할때 우리의 사량분별이

눈앞에 탑으로 우뚝서 이럴듯 일체모든 중생을 향한다는것 조차

생각하지도 못할 거대한 보살도를 차분이 풀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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