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두철미한 발심 發心을 / 탄허스님

2012. 3. 24. 23: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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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두철미한 발심 發心을’  /  탄허스님 』

팔만대장경은 모두 죽은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이 붙고 말이 붙기 때문이다.
모든 생각과 말이 끊어진 이 자리는 
팔만대장경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수천 길 벼랑에서 떨어지다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는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선가禪家에서는 여래선如來禪보다 조사선祖師禪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지 않는가? 본래 청정하며 실다운 부처님의 마음자리를 
견실심堅實心이라 우리는 일컫는다. 견실심의 밑바닥까지 가서 
이것을 완전히 보았을 때 비로소 조사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앙산仰山이 향엄香嚴에게
“사제의 요사이 견처見處가 어떠한가?”하고 물으니 
향엄이 대답하기를 
”내가 창졸간에 말할 수 없나이다“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하달 것 못되나
去年貧未是貧
금년 가난이야말로 참말 가난이다.
今年貧是始貧
지난 해 가난은 송곳 세울 땅이 없더니
去年貧無卓錐之地
금년 가난은 송곳도 없네.
今年貧錐也無
그러자 앙산仰山은
“그대가 여래선은 얻었으나 조사선은 얻지 못하였네”하였다.
또한 예전에 어떤 스님은 “내가 조사선을 얻었다.”하니 
다른 스님이 말하기를 “아직 멀었다”한다. 
그러자 그 스님은 향을 피워 놓고 
선정禪定에 들어 그 향이 다 타기도 전에 열반에 들었다. 
그러나 후자의 스님이 하는 말이 “
네가 앉아 죽고 서서 죽는 것은 마음대로 하되 
조사선은 못 보았다”고 했다.
이와 같을진댄 팔만대장경은 모두 죽은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이 붙고 말이 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각과 말이 끊어진 이 자리는 
팔만대장경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방 안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목적을 달성한 것이지 대청이니 문 밖 바로 앞에 왔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여동빈呂洞賓이라는 
사람이 신선도를 닦아 5만년 사는 법을 성취하였다. 
이 사람이 300여 세 되는 때에 황룡黃龍선사가 설법하는 곳에 
허락 없이 들어가 도청을 하였다. 선사가 대중을 훑어보며 
“이 가운데 어느 놈이 있어 법을 도둑질하는고?”하였다. 
여동빈이 
“신선도로써 5만년을 사는 도리를 성취한 여동빈입니다”하니, 
선사가 그에게 묻기를 
“그렇다면 내 그대에게 묻거니 천지가 생기기 전의 
 면목이 무엇인고?”하였다.
여동빈이 묵묵부답으로 아무런 대꾸를 못하자 선사가 말하였다.
“물이 다하고 땅이 다하고 나면 황룡黃龍이 출현한다.” 
이에 활연대오한 여동빈은 신선도 닦기를 집어치우고 발심하여 
불문에 귀의하였다 한다. 그가 비록 수만 년 사는 도리를 얻었다하나 
황룡선사를 만나기 전에는 그 바닥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듯 여래의 본래정정심本來淸淨心의 밑바닥을 
보기가 심히 어려우나, 일단 발심을 하였으면 
가다가 말겠다는 결심으로는 참된 진리의 바닥을 볼 수 없다.
진리의 나뭇가지를 붙잡은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손을 놓고 참된 진리의 자리로 떨어져 죽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다시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주자朱子는 
“사람이 배를 타고 갈 때 
 온 몸뚱이가 물속에 빠진 것이 되어야 옳다”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이 미혹하여 이 같은 진리의 바닥을 향하여 
매진할 용기를 갖지 못해서 집에서 기르던 개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온 집안 식구가 찾아 나서지만, 자기 마음이 바깥 경계에 부딪쳐 
잃어버렸을 때는 아무도 찾아나서는 사람이 없다.
<장자>에 나오는 돼지는 제관祭官이 와서 
“내가 일주일 동안 너를 호화스럽게 먹여주고 오색 비단옷을 입혀 
 오색 도마 위에 모셔 천자天子로부터 백관이 모두 너에게 
 절을 할테니 제물이 되겠느냐?” 하니 돼지는 그렇게 해서 
 자기가 희생이 되느니 차라리 더러운 우리 안에서 더러운 음식 
 찌꺼기를 먹으면서 자기를 보존하는 쪽을 택하겠다고 대답하였다.
돼지도 하물며 이와 같은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자신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잃어버린 자기를 찾으려 하지 않는가?
거울 안에 삼라만상이 비쳐질 때 우리 범부는 
거울보다도 거기에 비친 상에만 집착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거울에 비친 영상에 불과함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서 그 마음 거울의 본체를 깨닫고 그 밑바닥까지 
철저히 찾고야 말겠다는 철두철미한 발심을 해야 할 것이다. 
1973.07.29
◈ 탄허 스님(1913년~1983년) ◈
1933년 한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62년 월정사 주지
1965년 동국대학교 정각원장
1966년 동국역경원 초대 역경원장
1975년 동국학원 이사
*
찬불가 발표회는 월정사에 주석하셨던
"탄허스님"을 찬탄하는 찬불가 노랫말을
제가 지어서 작곡가가 작곡하고 있는데
이번에 발표한다고 합니다.
찬불가 노랫말은
 
빈탕을 품으시니=허공을 삼키시니(詠 呑虛大和尙)
글쓴이: 무상법현(無相 法顯)스님
 
1.
백두대간 태백준령 밟고 선 문수사리
천하으뜸 임금님도 어여삐 여기시어
마루이고 달빛이라 바위아래 빈탕이라
사랑으로 알아채고 슬기롭게 베푸시니
아 아 하늘에 오르소서
아 아 하늘이 내리소서
 
2.
마음공부 바탕으로 내가 아님 바로 알아
니르바나 이루어서 어진이도 건져주고
함이 없음 어우르니 하나가 셋이 되고
세 바탕이 하나로세 어화둥둥 우리님하 
아 아 하늘에 오르소서
아 아 하늘이 내리소서
 
 
3.
가만히 들여 보면 한 떨기 제비꽃
그 소식 아시고 들려주신 님의 모습
들림 없는 사자후여 포효하는 침묵이여
희열이 넘치누나 내 마음 그득하게
아 아 하늘에 오르소서
아 아 하늘이 내리소서

       

      행복

      지위가 높고 돈 많은 것이 곧 행복이라고 믿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의 대통령 부부는 그 높은 지위와
      ‘3천 켤레의 구두’로 대표되는 호사의 극치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행복이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지위를 이용해서 빼앗을 수도
      뇌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비로운 마음속에만 뿌리내리는,
      그리하여 누구나 스스로 싹 틔워 가꿀 수 있는
      꽃씨 같은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마음속에는 꽃씨가 들어있습니다.
      꽃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강호형 / 수필가

       

       

      일연(一然) 스님의 말씀

      세상에 제일 고약한 도둑은
      바로 자기 몸 안에 있는 여섯 가지 도둑일세.
      눈 도둑은 보이는 것마다 가지려고 성화를 하지.
      귀 도둑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네.
      콧구멍 도둑은 좋은 냄새는 제가 맡으려 하고
      혓바닥 도둑은 온갖 거짓말에다 맛난 것만 먹으려 하지
      제일 큰 도둑은 훔치고, 못된 짓 골라 하는 몸뚱이 도둑.
      마지막 도둑은 생각 도둑.
      이 놈은 싫다, 저 놈은 없애야 한다, 혼자 화내고 떠들며 난리를 치지.
      그대들 복 받기를 바라거든
      우선 이 여섯 가지 도둑부터 잡으시게나.

      고승열전 중에서

       

       

      왜 선정에 드시나요

      프랑스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교수가
      선사의 법문에 감화를 받아 참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도반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참선에 대한 선생의 의견을 듣고 싶소.”
      “좌복에 앉아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 동안 학문에 몰두했던 시간에 비해
      무척 손해보고 있다는 느낌이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반은 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참선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십니까?”
      “아닙니다. 지금은 선정에 드는 시간이 독서하는 시간보다
      훨씬 소중하다고 생각됩니다.”
      “왜 그렇게 달라지셨습니까?”
      “선에 들면 진정한 자유로움 속에서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되니까요.
      끈질기게 나를 괴롭혀 온 번뇌망상들로부터 조금씩은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 본래의 자성(自性) 자리를 향해 다가가게 되니까요.”

      김용복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