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1. 14:04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문>
무생이라는 법문의 말씀을 되새기지만 실천하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일승도량인 현정회상의 문하로 허물이 많지만 큰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답>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철저히 사무쳐야 합니다. 무생(無生)의 법문을 듣고, 그것이
한갓 기억이나 인상으로 남아있을 뿐이라면 그건 말을 배우는 것일 뿐이요, 결코 법
문을 제대로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 법문을 제대로 들어서, 그 법문의 내용과
상응(相應)했다면, 당장 진리(眞理)에 계합(契合)해서, 안으로 <나>도 없고, 밖으로는
들은 바의 법문도 없을 텐데, ···그리하여 현전(現前)하는 세간상(世間相)이 <지금
있는 이대로> 공적(空寂)하여 <아무 일도 없음>을 요지(了知)한다면, 다시 무엇이
있어서 <어렵다> <쉽다>고 말할 일이 있겠습니까?
요컨대, 말만 배우는 사람은 <무생(無生)의 도리>를 들으면, <남(生)이 있음>을
보내고 <남이 없음>에 처하려고 하기 때문에 항상 이쪽 저쪽 하면서 문(門)안에 들지
못하고, 늘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만법이 무생인데, 그리하여 자체성이
없어서 모두가 <한 성품>(一性)이요, <한 성품>이기 때문에 만법이 평등하니, 이에
이르면 일여법계(一如法界)에 도무지 <가지런하지 않는 법>(不齊法)이 있음을 보지
못할 테니, 종일토록 동서남북으로 설친들 무슨 거리낌이 있겠어요? 일체의 갈등과
마찰은 영원히 다하여, 문자 그대로 <생주이멸(生住異滅) 사상(四相)의 변천이 없는
진리>에 합하면, 이것이 바로 여래(如來)의 행한 바와 일치하여, 바로 성교(聖敎)의
요체를 다하는 것입니다.
본래 <무생>(無生)이거늘 다시 무슨 일이 있겠어요. 그저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서,
생각 생각에 앎이 없고, 생각 생각에 머묾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참된 수행자의 길
임을 알아야 합니다.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아버님전 상서 / 신경희
나는 행복했습니다.
꿋꿋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잘 키워주신 당신
한 마음 일심의 마음은
'건강하십시요'.
식탁에 둘러 앉아 옛 이야기 나누며
따뜻한 탁주 한 잔 올리며 찾아 뵈올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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