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법인(無生法忍)

2012. 5. 11. 14:0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문>
무생이라는 법문의 말씀을 되새기지만 실천하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일승도량인 현정회상의 문하로 허물이 많지만 큰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답>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철저히 사무쳐야 합니다. 무생(無生)의 법문을 듣고, 그것이

한갓 기억이나 인상으로 남아있을 뿐이라면 그건 말을 배우는 것일 뿐이요, 결코 법

문을 제대로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 법문을 제대로 들어서, 그 법문의 내용과

상응(相應)했다면, 당장 진리(眞理)에 계합(契合)해서, 안으로 <나>도 없고, 밖으로는

들은 바의 법문도 없을 텐데, ···그리하여 현전(現前)하는 세간상(世間相)이 <지금

있는 이대로> 공적(空寂)하여 <아무 일도 없음>을 요지(了知)한다면, 다시 무엇이

있어서 <어렵다> <쉽다>고 말할 일이 있겠습니까?

 
요컨대, 말만 배우는 사람은 <무생(無生)의 도리>를 들으면, <남(生)이 있음>을

보내고 <남이 없음>에 처하려고 하기 때문에 항상 이쪽 저쪽 하면서 문(門)안에 들지

못하고, 늘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만법이 무생인데, 그리하여 자체성이

없어서 모두가 <한 성품>(一性)이요, <한 성품>이기 때문에 만법이 평등하니, 이에

이르면 일여법계(一如法界)에 도무지 <가지런하지 않는 법>(不齊法)이 있음을 보지

못할 테니, 종일토록 동서남북으로 설친들 무슨 거리낌이 있겠어요? 일체의 갈등과

마찰은 영원히 다하여, 문자 그대로 <생주이멸(生住異滅) 사상(四相)의 변천이 없는

진리>에 합하면, 이것이 바로 여래(如來)의 행한 바와 일치하여, 바로 성교(聖敎)의

요체를 다하는 것입니다.

 

본래 <무생>(無生)이거늘 다시 무슨 일이 있겠어요. 그저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서,

생각 생각에 앎이 없고, 생각 생각에 머묾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참된 수행자의 길

임을 알아야 합니다.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아버님전 상서 / 신경희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해질녘 창가에 서면
겨울나무 가지의 눈송이 처럼 맑은 당신
울먹이는 마음을 달래며
미소짓는 당신을 뒤로하였습니다.

찬바람이 불고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이 찾아오면
비맞은 낙엽처럼 눅눅해지는 마음은
내 멀리 있으되 늘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오르던 당신에게 달려갑니다.
고열로 누워있을 때면 잠못 이루는 당신이 곁에 있어

나는 행복했습니다.


꿋꿋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잘 키워주신 당신
한 마음 일심의 마음은

'건강하십시요'.
식탁에 둘러 앉아 옛 이야기 나누며
따뜻한 탁주 한 잔 올리며 찾아 뵈올 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