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느끼는 주체 ... "나"는 없다.

2012. 6. 16. 09:3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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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느끼는 주체 ... "나"는 없다.

 

 

우리는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합니다. 

괴로움의 정체는 생각입니다.

괴로운 생각을 떠올리면 괴롭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생각을 버려라' 라고 하셨고, '생각을 버리기 위해 수행(사타마)하라' 하셨습니다. 생각을 없애고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삼매 수행은 고통을 느끼는 주체, 즉 나(我)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게 하기 위함 이였습니다.

 

부처님은 그래서 '불교의 근본 사상은 무아(無我)'라 하셨고,

'상처 입을 "나(我)"'는 없다는 겁니다.

 

상처 입는 나는 육체일까요? 마음일까요?

육체라면, 죽은 시신에게 욕을 하면 죽은 시신도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하는데 시신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럼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마음이란 본래 형체나 모습이 없습니다. 모습과 형체가 없는데 무엇이 고통이 있느냐는 이론이 성립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중생의 마음은 마음의 힘이 묘하고 강하서, 스스로 착각하고, 스스로 그렇다고 믿어버림으로 인하여 고통의 늪에 빠져 들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뭔지, 고통이 뭔지 분석을 해볼 생각은 일체 해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분석할 생각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저 괴로워하거나 신세한탄만 합니다.

 

불교는 마음을 분석하는 종교입니다. 즉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종교입니다.그래서 괴로움을 분석하고, 마음을 다스려 괴로움을 끝장냄으로 결국 행복(열반)에 도달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없는데, 내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괴로움이 지속됩니다. 고통당하는 내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정신적인 모든 괴로움은 다 사라지게 됩니다.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나”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도 "나"지요.

  그럼 당연히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나를 분석해야만 합니다. 만약 "나"가 있다면 치료가 가능해 질 것이고, 만약 "나"가 없다면 치료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걸 전도몽상(轉倒夢想)이라고 합니다. 즉, 착각이라는 거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있으니 내가 스스로 착각했다는 뜻 입니다.

  근본이 무아(無我)인데 전도몽상(轉倒夢想)을 하여 고통 받는 불행을 자초 하였으니 불교에서는 잘못된 것이 라는 거지요.

 

고통은 원래 없는데, 고통을 당해야 하는 주체가 없는데, 뭔 고통이 있겠습니까마는 무지의 중생들에게는 그리 쉽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은 몸인 물질과 정신인 마음으로 구성되어져 있고, 이것을 오온(五蘊)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오온(五蘊)에서 온(蘊)이란 무더기를 뜻 합니다. 다섯 가지 무더기란 뜻 즉 다섯 가지 집합체라는 의미입니다.

 

오온이란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입니다.

색(色)이란 몸뚱이를 뜻하고 물질이며, 나머지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은 정신을 뜻 합니다.

 

첫째, 육신(색)

둘째, 마음(수, 상, 행, 식)

   - 수(受) : 느낌

   - 상(想) : 생각

   - 행(行) : 의지

   - 식(識) : 인식

 

불교에서는 마음을 네 가지(수(受), 상(想), 행(行), 식(識))로 나눕니다. 여기서 가장 주된 것은 식(識)이며 나머지는 그 식에 따른 반응입니다.

  수(受), 상(想), 행(行), 식(識) 으로 고통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따져보면

 

첫째, 식(識)이 예전에 불쾌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 인식

둘째, 그럼 불쾌한 느낌이 듭니다. 기분 나쁘지요 → 느낌

셋째, 그럼 생각합니다. 상상하지요. 저 못된 것을 어떻게 혼내줄까? → 생각

넷째, 생각이 결정되면 뭔가 행위를 하려고 합니다. → 의지

 

이렇게 계속 생각이 이어지면서 반복됩니다.

 

존재를 괴롭히는 게 바로 느낌입니다. 느낌이란 것도 마음 중에 하나이며, 네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느낌입니다.

느낌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무덤덤한 느낌이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느낌이란 무상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 아니다. 무상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마음에 대해서 분석해야만 합니다. 불교만큼 마음에 대해 상세히 분석해놓은 종교는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네가지로 구분된 마음, 이 네가지 모두 다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느낌, 생각, 의지, 인식, 네 가지는 매 순간순간 변화 합니다.

 

고통당하는 그 주체가 나인데, 분석해보면 주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생각일 뿐입니다. 생각을 할 때만 내가 존재하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괴로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괴롭고 불쾌한 생각을 할 때만 괴롭습니다.

 

문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마음, 이것이 고통입니다. 고통스런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집착이라고도 하며, 집착은 한 생각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집착이 나를 이기적이게끔 만듭니다.

 

삶의 고통에서 해방을 원한단면 생각하는 주체를 찾고, 찾다보면 생각하는 주체는 없음을 알게 됩니다. 

텅 비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 모습은 허공과 같습니다. 가끔씩 바람에 실려 먼지가 허공에 흘러들어오긴 하지만 허공의 본체는 언제나 비어 있습니다. 

이것과 같이 우리 마음도 허공과 같습니다.

그냥 가끔씩 또는 때때로 불쾌한 생각, 기쁜 생각 등이 먼지처럼 흘러들어오지만 그 먼지를 "나"라고 여기면서 사는 게 사람입니다.

 

주인은 허공인데, 먼지가 주인행세를 하는 거지요. 이유는 마음이란 것이 물질인 육체를 "나"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물질이 나가 아님을 알아야 하고, 둘째는 이 마음이 나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걸 하나하나 분석해나가는 게 불교 공부 입니다.

나 자신을 분석해나가면서 정신이 어떻게 작용되는지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해 어디에서 고통이 생기는지도 당연히 알게 됨으로 고통까지도 직접 스스로 제거가 가능합니다.

 

불교는 마음이 핵심인데, 불교 공부를 하시려면 가장 먼저 오온을 배우셔야 합니다. 오온이 바로 “나(我)”입니다.

 

반야심경이란 경을 많이 들여다보셨을 것입니다. 앞부분에 “조견오온개공” 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여기서 바로 오온이란 바로 “나(我)”를 뜻 합니다.

 

불교는 나를 깨우는 공부이며, 곧 나를 알았을 때가 부처인 것입니다. 불교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종교나 철학은 없습니다. 열심히 나를 찾는 공부를 하여 자유로운 세상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 옮긴 법문

 

 

 
Ramona, Giovanni Mar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