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치 못합니다/현정선원

2012. 6. 16. 09: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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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해야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양단에서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 답변 >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 짓는 자도 받는 자도 없소.

주재자(主宰者)가 없단 말이오.

뭔가를 할 때에 하는 놈이 없어요,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지.· · ·

물결이 하루 종일 물결쳐도 어디 힘들다 소리합디까?

바람 부는 대로 물결쳤을 뿐이잖소? 공(功)을 들이는 놈이 없는 거요.

물결이 제가 스스로 공을 들여 물결친 게 아니라 소리요.· · ·

이 세상 일체만법이 자체로 성품이 없어서 허깨비나 그림자 같은 것인데,

어떻게 제가 작용을 일으켜서 뭔가를 할 수 있단 말이오?· · ·

그런데도 늘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를 놓고 고민하고 있으니,

그건 전혀 가당치도 않은 소리요.

 

'나'를 포함한 일체만법이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다른 그 무엇인가가 어울러서 있는 거요.

그러니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를

전부다 제 자리로 돌리고 나면 뭐가 남겠소?· · ·

아무것도 없잖소?

그런데 어떻게 '제'가 뭘 하겠다고 곤댓짓을 하냔 말이오?· · ·

바람 따라 그저 물결칠 뿐이니,

'제'가 애써서 건방지게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는 거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소?· · ·

전부 '내'가 일하고, '내'가 돈벌고, '내'가 식구들 먹여 살리고,

그래서 '내'가 힘들고,· · · 시종일관 전부 '나'지 않소?· · ·

그러니 미(迷)했다 소리를 면치 못하는 거요.· · ·

도무지 애써서 작용을 일으키는 놈이 없는 거요.

 

불의지도(不疑之道)라, 의도하고 도모하고 획책할 일이 없소.· · ·

이 소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소리가 아니라,

자기 소견으로 요리조리 따지고 재지 말고

그저 인연이 닿으면 무심코 하라 소리요.· · ·

인연을 따르되 조작함이 없으면 바로 부처 행리(行履)라 했으니,

바람 따라 그저 물결칠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문>
몸이 아프면 잘못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 옵니다.
몸이 아플때가 공부하기 좋은 때니라 하셨는데 이럴때는 어떻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하겠습니까?


<답>
고인이 이르기를, 『 이 세상 모든 법이 허공성(虛空性)이요, 무생성(無生性)이며,

무작성(無作性)이라는 사실을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하고 믿어들게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니라. 』 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유정(有情) 무정(無情)을 막론하고 이 세상의

모든 현전상(現前相)은 이것이 모두 환과 같은 존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리니, 이

모두가 인연소생(因緣所生)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본래 성품이

없어서, 생사(生死)가 없는 건데, 헛되이 이 세상에서 숨쉬며 왔다 갔다 하는 이

육신에 집착하여 「생사가 있다」고 여기게 된 겁니다.

 

거두절미하고, ― <요술로 된 사람>은 비록 사대육신이 멀쩡하지만 <배고프고,

목마르고, 춥고, 덥고, 괴롭고, 즐겁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살고, 죽고> 하는

등의 열 가지 일이 다 없는 것처럼, 인연이 가짜로 어울려서 된 이 육신도 그와

같아서, 지각(知覺)도 없고 힘도 없는 것인데, 미혹한 자들이 이 움직이는 몸과

움직이는 마음을 붙잡아서 <나>로 삼고는, 이 <나>의 안락한 삶을 위해 허망한

유위행(有爲行)을 쉬지 못하고, 날마다 헐떡이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중생 살이>의

실상인 겁니다.

 

모두들 꿈속에서 <있다>고 들 하지만, 꿈을 깨고 나면, 곧 성품을 보고 나면 티끌

만한 한 법도 볼 만한 것이 없는 게 실상이니, 당장 깨달아 마치고 싶으면 그저

모름지기 온갖 모습(相)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밖에 다시 딴 도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보되 봄이 없어서, 형상(形相)을 취함이 없는 앎>이 항상 스스로 환히

밝되 늘 고요한 것, 이것이 바로 부처 지혜의 나툼이니, 더욱 정진하십시오.

 


-현정선원 법정님의 법문-

 

< 질문 >

 법정님 말씀을 듣다보면 알음알이가· · · · · ·


< 답변 >

내 말을 들었다고 말하지 마시오. 모든 빛깔과 소리는 빈 거요.

모든 작용은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 주재자가 없소. 말을 하는 자가 말을

하고, 말을 듣는 자가 말을 듣는다는 생각은 전혀 잘못된 거요.

여기 앉은 노인이 말을 하고, 그 말하는 바를 거기에 앉은 사람이 들어서

그 말한 바 내용을 따지고 분석해서 알아듣고 있다면, 그건 전혀 법문들을

줄도 모르는 거요.

 

능·소(能所), 주체와 객체는 전부 인간이 머리 속으로 만들어낸 환상이오.
물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물결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인연에 감응해서

물결칠 뿐이니, 그 스스로는 성품도 없고 작용도 없는 거요. 성품도 없고

작용도 없기 때문에 그저 순히 인연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니, 따라서

그렇게 인연 따라 출렁이는 물결은 전부 빈 것으로 보라 소리요.· · · · · ·

 

부처는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라고 했소. 부처도 그렇거늘 하물며 육신을

뒤집어쓰고 있는 범부야 더 말해 무엇하겠소? 참으로 말을 하는 자도 없고,

말을 듣는 자도 없는 거요.

이 법은 본래 말이 없소. 하지만 말을 안 하고 처닫고 있으면 도무지

소통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방편으로 말을 하는 거요.

말이 전부 비었다는 사실도 말을 통하지 않으면 전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어서 말하는 거라 소리요.

 

그런데 '말이 전부 비었으니 집착하지 말라'고 얘기하면 그 말을 알아듣고

전부 그 말을 외워서 머리에 이고 다니니, 그쯤 되면 스승은 전혀 헛고생

한 거 아니겠소?· · · · · ·
말이 전부 빈 거라는 사실을 참으로 알아듣는다면, 말을 하건 말을 안

하건, 또 그 말이 옳건 그르건 무슨 상관이 있겠소?· · · · · ·

이 말을 또 알아들을까 걱정이오.

 

 

- 현정선원 - 법정님의 법문

 

 

 

 

 

마음속엔 언제나 녹지 않는 빙하 / 박종길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 상처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과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들의 몸 위에서 아픔을 주던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피가 멎고 아물어 그 흔적만을 남긴다. 

 

그 흔적은 새 살이 돋아난 흉터로 존재할 뿐 

그것을 대할 때 새삼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아문 흉터를 익숙해진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미처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은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고요하던 내 핏줄들을 흔들어 깨우고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울어대는 것이다.


 

나를 아프게 한 상대편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보상을 받고, 

치유되지 않은 내 상처를 남에게 투사해 화내기도 했다.
이유 없이 미워도 했었다. 
그리하여 마음속엔 언제나 녹지 않는 빙하가 흐르고 있었다.
이와 눈의 원칙보다 우선하는 부메랑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Richard Clayderman / Souvenirs D'enfance  어린 시절의 추억